우리 한산이문의 선조님 중 잘 알려진 선조님이 바로 이유당 휘 덕수일 것이다.
그러나 휘 덕수 선조님이 지으신 목은집 발문을 읽어보신분들은 적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라고 나름 추측해 보면서 삼가 글을 게시해 본다.
목은집(牧隱集) 발문(跋文) 이유당 휘 덕수(李德洙)
선조인 목은의 시문집이 세상에 간행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난리를 겪은 이후로는 겨우 몇 편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불후(不朽)하게 전해져야 할 이 작품들이 장차 민멸(泯滅)되기라도 한다면, 타인의 입장에서도 괴이하게 여기면서 애석하게 생각할 텐데, 하물며 자손이 된 입장에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중간(重刊)할 뜻을 세운 지가 오래되었는데, 10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으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행히도 성대(聖代)를 만나 강남(江南)에 와서 지방관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므로, 힘닿는 대로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숙원(宿願)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찾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산질(散秩)이 없는지 검토해 보았더니, 한 편(篇)마다 세 건(件)이나 두 건 정도가 빠져 있었고, 14편의 경우만 단지 1건이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른바 내용이 중첩된 부분도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이는 역시 문열공(文烈公) 휘(諱) 계전(季甸)이 정선(精選)한 시(詩)와 판서공(判書公) 휘 증(增)이 개간(改刊)한 문(文)을 합치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또 구본(舊本)의 자획(字畫)을 보니 아주 작고 촘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 초록(抄錄)하여 간행해 낼 때에는 모두 대자(大字)를 썼으니, 이는 독자가 알아보기 쉽도록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중간할 때에도 초록한 것을 대본(臺本)으로 할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 당시에 문집이나 시집이 문인과 자손의 손으로 이루어졌고 보면 자료를 취사선택할 때 그렇게 했던 의도가 분명히 있기야 하겠지만, 전서(全書)를 전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아무래도 떨쳐 버릴 수가 없기에, 이번에는 전체를 모두 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자항(字行)을 간편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던 그 뜻 역시 어찌 우연한 것이었겠는가마는, 이번에 집의 아이가 베껴 쓸 때에는 자획을 조금 더 크게 쓰라고 특별히 지시하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행간(行間)의 글자 수는 모두 구본(舊本)의 체재를 따르기로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 당연히 휘(諱)해야 할 곳도 고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하지만 군(君)을 윤(尹)으로 하거나 한(翰)을 한(韓)으로 하는 등 글자를 잘못 기입한 것이 확실한 경우라든가, 있어야 할 글자가 빠졌거나 없어야 할 듯한데 글자가 첨가된 부분에 대해서는, 부득이 고쳐서 써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밖에 의심이 가는 곳도 간혹 눈에 띄긴 하였지만, 학문이 미천한 후예의 입장에서 감히 추측해서 의논할 수는 없기에, 이런 곳은 그냥 놔두어 뒷날 안목을 갖춘 분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목은시정선(牧隱詩精選)의 서문(序文)과 문헌서원(文獻書院)에 대한 기문(記文)을 이번에 중간(重刊)하면서 끝에다 두는 것도 합당하게 여겨지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이들 자료마저 없어져서 전해지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에, 모두 뒤에다 부록(附錄)으로 수록하였다.
천계(天啓) 6년(1626, 인조4) 8월 일에 10대손인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순천현감 겸 춘추관기사관(行順天縣監兼春秋館記事官) 덕수(德洙)는 삼가 발문을 쓰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2
牧隱藁跋
跋
牧隱藁跋[李德洙]
先祖牧隱集。刊行於世久矣。經亂以後絶無而僅有。使其不朽者將至泯滅。在他人猶足慨惜。況爲子孫者乎。余有志重刊日月多。而十年謫斥。無可奈何。幸逢聖世。來守江南。拮据材料。足償宿願。於是遍求諸有。閱其散帙。則或三件或二件。其中第十四篇。只有一件。而所謂重疊。亦文烈公諱季甸精選詩。判書公諱增改刊文。合005_180b而然矣。舊本字畫頗纖密。故前後抄而刊出者。皆用大字。以其觀者病之故也。欲因其抄開刊。而顧念當時文詩之集。出於門人弟子。則取舍之際。意必有在。而全書之不傳。不能無欠缺。故倂而鋟之。而其字行之簡便爲務者。亦豈偶然。今者豚兒繕寫之時。特使之稍大其畫。而行間字數。悉遵舊䂓。故當今所諱處亦不改之耳。至於字之訛誤005_180c如以尹爲君。以韓爲翰。宜有而闕。似無而添者。則不得不修改。其他可疑處。間或有之。而非裔末淺學所可擬議。故仍存之。以待後之具眼者。且選詩之序。書院之記。不當置於重刊之末。而慮或湮沒而無傳焉。故竝附于後。時天啓六年八月日。十代孫通訓大夫行順天縣監兼春秋館記事官德洙。謹跋。
한산이씨 목은 휘 색의 목은고((집) 부록 발문을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후손 이대원 삼가 글을 게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