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이용 이벤트 알리고
다방처럼 배달 서비스도 나서
이상미씨(여·36)는 서울 명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한다. 브랜드 없는 개인점이지만 시내 중심상권에 위치한 만큼 손님은 꾸준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2~3년 사이 급증한 커피전문점들 때문이다. 매장을 예쁘게 꾸민 것은 물론 케이크, 와플, 아이스크림 등을 포함해 커피 빼고도 수십 종의 메뉴를 팔고 있다. 최근엔 주변 고층빌딩 사무실로 배달까지 해주는 곳도 생겼다. 이들의 마케팅 전략을 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있다간 손님을 모조리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커피전문점 업체들의 마케팅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손님을 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상이다. 소비자들의 감성을 겨냥해 매장을 개성 있게 꾸민 곳이 있는가 하면, 대중매체를 이용해 단기간에 시선을 사로잡은 곳도 있다. 최신 IT 트렌드를 이용해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고 직원들이 직접 소비자들을 ‘찾아가는 서비스’에 기대는 곳도 있다. 맛을 위한 메뉴 차별화는 기본이다.
매장을 도서관처럼 꾸며 고객 유인
소비자들에게 커피전문점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다. 휴식을 취하고 공부를 하며 모임도 갖는다. 일하는 장소 역할도 한다. 커피전문점에서 업무를 보는 이른바 ‘코피스족’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커피점이 생활공간으로 변한 것. 그만큼 편안하면서도 계속 찾고 싶은 맘이 들어야 한다. ‘감성 마케팅’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스타벅스가 선택한 것은 음악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음반을 취급하는 매장을 늘려 지금까지 4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대형 CD플레이어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직접 선택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엔제리너스는 캐릭터로 승부하고 있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씨가 그린 3종의 천사 캐릭터로 매장 인테리어와 소품을 장식하고 있다. 노트, 수첩, 가방, 우산 등 캐릭터 상품도 만들었다. 방문객들에게 보다 쉽고 친숙하게 브랜드를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커피빈은 서울 압구정 로데오점과 고려대학교 인근 안암점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방문객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 외에도 지적인 분위기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사로잡겠다는 의도다.
스마트폰, 트위터 등 최신 IT 트렌드를 마케팅에 접목시킨 곳도 있다. 고객과의 소통창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투썸플레이스는 지난 2월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신메뉴, 매장 위치, 진행 중인 이벤트 등을 알리는 용도로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한다. 지난 연말엔 사용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트위터 계정도 개설했다. 이디야도 스마트폰 활용에 적극적이다. ‘포스퀘어’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디야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지인들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자신의 소재를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지인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실시간 광고를 진행하는 셈이다.
‘스타 마케팅’도 커피전문점의 마케팅 전선을 달아오르게 만든 요소다. 카페베네는 지난해 국내 커피전문점으로는 처음으로 광고모델을 기용했다. ‘CF퀸’ 한예슬씨를 앞세운 방송·출판광고, 대중교통 광고판, 입간판으로 단번에 브랜드 파워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최근엔 인기 탤런트 최다니엘씨를 섭외해 한씨와 콤비를 이루도록 했다. 영화나 TV드라마에 매장을 노출시키는 PPL광고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부터 방영된 SBS 드라마 <커피하우스>에 카페베네 매장이 촬영장소로 등장한다.
직원들이 발품을 팔아 직접 소비자들을 찾는 일도 벌어진다. 최근 서울의 테헤란로,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에선 과거 다방처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피전문점들이 늘고 있다. 엔제리너스의 경우 8잔 이상을 주문하면 커피 배달을 부탁할 수 있다. 이 업체는 사무실과 가정에 커피머신도 무상으로 설치해준다. 2년 동안 매월 1kg 이상의 커피원두를 엔제리너스 매장에서 구매하는 조건이다. 이태환 마케팅팀장은 “커피원두 판매로 사업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고객들을 계속 매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영업시간을 무한정 늘린 곳도 있다. 탐앤탐스의 24시간 매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밤문화를 즐기는 청년층과 야근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에 만든 서비스”라며 “야간에 올리는 매장 수입보다는 24시간 브랜드를 노출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강남·신촌·대학로 등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전체 매장의 1/4인 46곳을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베이커리화’ 시도도 한창이다. 업체마다 케이크, 쿠키, 와플,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등을 주력 메뉴로 개발해둔 상태다. 식당처럼 아침메뉴, 점심메뉴를 별도로 구성한 곳도 있다.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커피를 제외하고 200여 가지 메뉴를 서비스한다. 다양한 먹을거리로 방문객을 유혹해 수익을 늘리려는 의도다. 업계 관계자는 “커피만 취급할 경우 평균 객단가가 6000원 선이지만 제과, 디저트 등 다양한 서브 메뉴를 두면 60% 이상 객단가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무역 커피 판매, 이미지 개선 나서기도
사회적 책임(CSR)에 비중을 두는 업체도 있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가장 앞선 곳은 스타벅스다. 미국 본사는 2002년부터 국제공정무역상표기구(FLO)와 협약을 맺고 전 세계 매장을 통해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커피를 공급하고 있다. 아프리카·중남미 등의 커피 생산자들에게 자유거래가의 3~4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호응도 높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에 따르면 공정무역 품목 중 하나인 ‘카페 에스티마’의 경우 올 들어 4월까지 판매량은 250g들이 포장 기준 1400개로 전년보다 48% 늘었다.
커피전문점은 지금까지 ‘불황을 모르는 시장’으로 인식됐다. 주요 소비자층인 20~30대는 경기가 어려워도 좀처럼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커피전문점들의 마케팅이 접전으로 치닫는 이유는 뭘까.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커피전문점 브랜드는 100여 개 가까이 난립한 상황이다. 그러나 매출 상위 7~8개 업체가 90% 이상의 매출을 차지한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탐앤탐스처럼 매출을 전년(2008년)보다 80% 끌어올려 급성장한 업체들이 있는 반면, 부진 끝에 해체 직전인 브랜드도 속출한다. 더구나 20~30대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커피전문점을 선택할 때도 브랜드 인지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순간 ‘빈익빈’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가맹점 위주의 운영 방식이 유행인 것도 한 이유다. 일례로 카페베네의 경우 가맹점 모집을 통해 올해에만 90여 개 점포를 새로 열었다. 매장 수로는 올 상반기만 100%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가맹점 사업은 확장이 쉬운 만큼 위험도 크다. 박남수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콘텐츠팀장은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의 이탈이 속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커피전문점들이 점주들을 묶어두기 위해선 치열한 판촉전으로 손님들을 끌어와야 하는 셈이다.
타 업종 회사들의 공세도 커피전문점 업계의 고민거리다.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커피전문점 절반 가격의 ‘맥카페’는 지난해 출시 직후 한 달 만에 맥도날드의 월매출을 60% 이상 끌어올렸다. 던킨도너츠도 지난해 충북 음성에 커피 로스팅 공장을 세워 커피 공급망을 강화했다. 제과업체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도 매장마다 카페 개설을 늘리고 있다.
신종 업종의 출현도 불안 요소다. 일례로 최근엔 커피나 차 대신 고급생수를 제공하는 ‘워터카페’가 등장했다. 지난 3월 워터카페 브랜드 ‘드롭새즈드롭’을 런칭한 CJ엔시티의 김흥기 대표이사는 “프랑스, 뉴욕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는 ‘워터 바(water bar)’나 ‘아쿠아 카페(aqua cafe)’가 성업 중”이라며 “커피 위주 카페문화에 식상한 소비자들에게 경쟁력 있는 틈새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피전문점 마케팅 전선, 지방으로 확대 중
전문가들은 커피전문점의 마케팅 경쟁을 시장 과열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커피전문점들이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 더 많은 고객과 가맹점주들을 확보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 머지않아 조정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남수 한국창업연구소 팀장은 “샌드위치전문점 서브웨이나 치킨점 파파이스처럼 사업 초기 공격적인 성장을 거듭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가맹주들의 급속한 이탈을 경험한 사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맹 사업을 통한 공격적인 확장세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 중심상권에만 한정한다면 업계도 같은 시각이다. 이디야의 성중헌 마케팅팀장은 “커피전문점 출점 시 입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나, 주요 상권에선 이미 신규고객을 유치하기 어려운 ‘제로섬’ 양상”이라고 말했다. 같은 소비자를 서로 끌어가기 위해 출혈경쟁이 일어난다는 소리다.
업계는 그러나 커피전문점 시장의 성장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커피문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대중화하지 않아 진출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원을 웃돌았지만 커피전문점 시장은 650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커피믹스, 캔커피 등 인스턴트커피 분야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커피 소비국과는 정반대다. 그만큼 국내 커피전문점 입장에선 아직 개척되지 않은 ‘처녀지’가 광범하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의 마케팅 경쟁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으로 퍼질 전망이다. 성중헌 이디야 팀장은 “우리만 해도 현재 매장의 절반 이상이 서울, 경기도 지역에 집중돼 있다”며 “금년부터 지방 진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탐앤탐스 관계자는 “대구, 창원, 진주, 목포, 익산 등 기존 매장을 중심으로 지방 점포 개설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Tip | 한국인 선호커피 & 원가
아메리카노 가장 선호… 원가는 500원 내외
▷▶▷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캐러멜 마끼아또…. 커피전문점에 들어서면 대개 수십 종의 커피들이 메뉴판에 올라가 있다.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커피들이 골고루 다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커피들이 따로 있다.
스타벅스, 커피빈, 엔제리너스, 할리스, 탐앤탐스 등 주요 업체들에 문의한 결과,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페모카가 가장 많이 팔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가격은 업체마다 제각각이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커피전문점 사이에선 2300~4000원으로 편차가 큰 편이다.
커피 한 잔의 원가는 얼마일까.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커피원두, 물 등 원재료만 따질 경우 500원 내외다. 인건비, 임대료 등 매장 운영비를 제하면 60%가량이 마진으로 남는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