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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당선생집(澤堂先生集) 제2권 시(詩)...이식 [李植, 1584~1647]
영공암(令公巖) 면천(沔川) 의 대진(大津) 가운데에 있다.
令公巖乃在大津之中央 海濤日夜聲澎浪
屹然不移亦不僵 嗟乎峙質堅且强
有如大人特立扶天綱 舟人敬之報馨香
呼以令公名固當 君不見緋袍錦韉塞康莊
行人辟易分兩傍 誰能考實以名償
紛紛金銀銅鐵木石納官以爲常 或縛草偸捕熊狼
此等令公不可量 但使天爵日耗公廩瘡
嗚呼安得喚起郭汾陽 二十四考中書堂
削平胡羯安黔蒼
영공암은 바로 대진 한복판에 있는 바위
파도가 밤낮으로 소리내며 부서지나
꼼짝 않고 끄떡없이 서 있는 모습
아 산의 바탕 굳세고 강함이여
대인이 우뚝 서서 하늘을 떠받치는 듯
뱃사람들 공경하여 제사 올리며
영공의 이름 붙인 것도 당연하다 하리로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홍색 관복에 비단 안장 길거리 메우고 행차할 때
길 옆으로 썰물처럼 물러서는 행인들
누가 제대로 실적 따져 영공이란 이름 붙여 줬나
각종 재물 상납을 다반사로 여기면서
간혹 강도와 도적 붙잡아내기도 한다마는
이와 같은 영공의 역량 헤아릴 수 없는 속에
천작은 날로 마모되고 공름은 엉망되게 할 뿐
아 어떡하면 곽 분양 불러내어
중서당에 앉아 스물네 번 고과(考課)하며
오랑캐 평정하고 민생 안정시킬꼬
[주D-001]영공 : 보통 방백(方伯)을 영공이라고 불렀다.
[주D-002]어떡하면 …… 안정시킬꼬 : 곽 분양은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진 당(唐) 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로, 곽 영공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20년 동안 천하의 안위(安危)가 그의 한몸에 달려 있었는데, 그가 오래도록 중서령(中書令)으로 재직하면서 무려 스물네 번이나 인사 고과를 매기는 등 천하에 위세를 부렸는데도 조정이 시기하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郭子儀傳》
택당선생 속집(澤堂先生續集) 제 2권 시(詩)...이식 [李植, 1584~1647]
渡大津 (도대진) - 대진(大津)을 건너며
利往從貞卜 (이왕종정복) - 가는 게 이롭다는 점괘가 적중하려는 듯
遐觀豁滯胸 (하관활체흉) - 툭 터진 경치에 막힌 가슴 뚫리더니
平明大津渡 (평명대진도) - 새벽빛 밝아 오며 건너는 대진 나루
極目衆山重 (극목중산중) - 겹겹이 싸인 산만 눈에 온통 들어오네
日射魚龍竄 (일사어룡찬) - 아침 햇빛 쏘아 대자 물고기 화들짝 깊이 숨고
風微瘴霧濃 (풍미장무농) - 바람도 힘이 없어 운무(雲霧)만 짙게 깔렸어라
終南何處是 (종남하처시) - 저 산 중에 어딘가 남산도 서 있겠지
沔水亦朝宗 (면수역조종) - 면수 이 물결도 조종하러 흐르나니
[주D-001]조종(朝宗) : 옛날 제후가 천자를 뵙고 인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작은 강물이 큰 강물과 합수(合水)한다는 뜻으로, 면수가 한강에 합류되는 것을 가리킨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강한(江漢)이 바다에 조종(朝宗)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식 [李植, 1584~1647]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이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 양평군 향토유적 제16호)을 지어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낙향하여 은거한 후 수차례에 걸친 왕의 출사(出仕) 명을 계속 거부하여 1621년(광해군 13)에는 왕명을 어겼다 하여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조좌랑·예조참의·동승부지·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대사간·대사성·좌부승지 등을 지냈으며, 1633년 부제학을 거쳐 대제학과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642년(인조 20) 김상헌(金尙憲) 등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의주(義州)에서 구치(拘置)되었으나 탈주하여 돌아왔다. 이후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1647년(인조 25) 택풍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유(張維)와 더불어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한문4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선조실록(宣祖實錄)》의 수정을 맡아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고, 저서로는 《택당집(澤堂集)》,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 등이 있다.
醉吃集 卷之三 詩 ---취흘집
大津江村 (대진강촌)---유숙(柳潚, 1564~1636) 詩---
醉臥沙汀穩。(취와사정온)--술 취해 모래섬에 편안히 누워보고
閑行草逕賖。(한행초경사)--아득한 풀밭 길 한가롭게 거니네
長風來賈舶。(장풍래고박)--멀리서 부는 바람 장삿배 들어오고
返照入漁家。(반조입어가)--해거름 저녁노을 어부의 집 찾아드네
乞火炊香稻。(걸화취향도)--쌀 일어 불 지펴 밥 짓는 향 그윽한데
爭隈采石華。(쟁외채석화)--어이해 저 물굽이 영웅암 치솟아 화려하네
江南眞樂地。(강남진락지)--참으로 즐거운 땅 강남의 어촌이여
不必賦懷沙。(불필부회사)--모래섬 품은 강마을 詩가 따로 필요없네
< 대진 강마을 >
술 취해 모래섬에 편안히 누워보고
아득한 풀밭 길 한가롭게 거니네
멀리서 부는 바람 장삿배 들어오고
해거름 저녁노을 어부의 집 찾아드네
쌀 일어 불 지펴 밥 짓는 향 그윽한데
어이해 저 물굽이 영웅암 치솟아 화려하네
참으로 즐거운 땅 강남의 어촌이여
모래섬 품은 강마을 詩가 따로 필요없네
<<< 취흘 유숙 시 >>>
**취흘(醉吃)--술 마시면 말을 더듬는다는 뜻.
東岳先生集卷之二十三 拾遺錄 下 : 이안눌(1571~1637) 詩
水原 大津舟中---(수원 대진 배 안에서 / 53세)
天啓癸亥七月二十一日己酉。以掃墳呈告。詣闕拜辭而行。
宿果川。庚戌。次水原栗田村舍。辛亥。次設倉。
壬子。渡大津。入沔川鄕墅。
하늘의 계시가 있어 1623년 7월 21일(기유일) 소분(경사 -1623년3월12일 인조반정으로 재임용됨-가 있어 조상께 제사 지내는 일)을 삼가 고하매, 궁궐에 나아가 임금님께 절을하고, 고향 면천으로 향하매, 과천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7월22일 이어 수원의 율촌 객사에, 그 다음날 7월23일 창고를 설치하고, 7월23일 대진(평택항-만호리, 신전포)을 건너 면천의 고향 서당에 들어가다. <<< 1623년-이안눌 53세 작품 >>>
鄕山隔浦對松杉。- 나루 저편 고향의 소나무 삼나무를 마주보고
雨霽長風送客帆。- 비 갠 뒤 시원한 바람 범선은 나그네를 보내구려
畏比游魚簇香餌。- 삼가 비유컨대 맛좋은 미끼에 걸린 물고기 같고
欣同逸驥脫重銜。- 천리마 타고 달리듯 자유로운 몸에 재갈을 물리는구나
紅塵紫陌黃金帶。- 도성의 황금관대 세속의 홍진(티끌)같고
碧樹蒼崖白罽衫。- 푸른 나무 파란 절벽의 흰융단 적삼 걸린 꼴이구나
向午篙工賀利涉。- 정오를 향해 뱃사공 축하소리 들으며 건너는데
艫頭已過令公巖。- 뱃머리는 이미 서해 영공암(영웅암)을 지나는구려
大津。乃我東邦津渡中第一險處也。有一大巖。屹立中流。
名曰海神令公巖。彼此來往之船。若過此岩。例得無虞云。
대진-우리나라 건너는 나루중 제일험한 곳이라. 커대란 바위있는데,
대진 건너는 중 서해바다 중류에 우뚝 솟아(100척), 이름을 바다의 신
영공암이라 한다. 이쪽저쪽을 왕래하는 배들은 이 바위를 지날 때에
근심 걱정없이 무사히 건너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건너는 관례가 있다.
東岳先生集 卷之 二十三 拾遺錄 下
乙亥 九月二十九日丙子。朝發京城。夕宿水原栗田村舍。翌日丁丑。次南谷。十月初一日戊寅。次大津院。翌日己卯。渡津到沔莊。舟中有作。
1635년(을해) 9월29일. 아침 서울 출발. 저녁에 수원 율촌 객사에서 자고. 다음날 9월30일 남곡. 10월 1일 대진원. 10월2일 대진을 건너 면천 고을에 도착. 배 안에서 시를 짓다.
宿病三年重。(숙병삼년중)--오랜 중병이 삼 년간 더욱 깊어져
殘生萬念非。(잔생만념비)--깊은 시름에 스잔한 인생 생각하니 한스럽네
本遭淸世棄。(본조청세기)--맑은 세상을 돌보지 않아 이런 일을 당하는데
今向弊廬歸。(금향폐려귀)--이제 (벼슬)을 폐하고 초막으로 돌아가려하네
日落寒鴉噪。(일락한아소)--해지고 날은 찬데 까마귀 울어대고
風高老雁飛。(풍고로안비)--바람은 높고 늙은 기러기 하늘을 나는구나
北宸回白首。(북진회백수)--흰 머리칼 날리며 북쪽 대궐을 돌아보니
湖畔淚沾衣。(호반루첨의)--대진나루 호반에서 옷깃 눈물만 보태는구료
附次韻 부차운--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지음. (非,歸,飛,衣)
擾擾疲寅酉。(요요피인유)--인유년 피곤하고 어지러워
呶呶厭是非。(노노염시비)--노노히 시비를 싫어하네
誰先陳寔位。(수선진식위)--어느 뉘 먼저 여기(면천 고향) 자리를 잡았는가
空羨季鷹歸。(공선계응귀)--당대의 계응(송한필-문장가)이 노비되어 돌아가니 공허한 부러움일세
塢竹寒猶翠。(오죽한유취)--마을의 대나무 추위 속 오히려 더 푸르른데
沙禽近不飛。(사금근불비)--모랫가 날짐승들 가까이 다가서도 날지 않네
遙知湖上宅。(요지호상택)--호수 저편 위의 집 (배가)흔들려도 알 수 있고
芋火對麻衣。(우화대마의)--토란에 불지펴 아궁이 마주한 마의태자일세
從姪植 --종질(4촌 형제의 아들, 5촌) 식...택당 이식 [李植, 1584~1647]
***종질 택탕 이식(52세)이 동악 이안눌(65세)의 시에서 운을 따서 지은 시.
***1635년--덕수이씨의 선영이 있는 면천(당진군 송산면 선산)을 가면서
대진나루(평택 만호리, 신영리~송악 한진나루)를 건너며 배 안에서 읊은 시 ///
< 대진 배 안에서--大津舟中>... 이안눌 시 (1571~1637, 65세)
오랜 중병이 삼 년간 더욱 깊어져
깊은 시름에 스잔한 인생 생각하니 한스럽네
맑은 세상을 돌보지 않아 이런 일을 당하는데
이제 (벼슬)을 폐하고 초막으로 돌아가려하네
해지고 날은 찬데 까마귀 울어대고
바람은 높고 늙은 기러기 하늘을 나는구나
흰 머리칼 날리며 북쪽 대궐을 돌아보니
대진나루 호반에서 옷깃 눈물만 보태는구료
< 韻--非,歸,飛,衣 >...택당 이식 시 [李植, 1584~1647, 53세]
인유년 피곤하고 어지러워
노노히 시비를 싫어하네
어느 뉘 먼저 여기(면천 고향) 자리를 잡았는가
당대의 계응(송한필-문장가)이 노비되어 돌아가니 공허한 부러움일세
마을의 대나무 추위 속 오히려 더 푸르른데
모랫가 날짐승들 가까이 다가서도 날지 않네
호수 저편 위의 집 배가 흔들려도 알 수 있고
토란에 불지펴 아궁이 마주한 마의태자일세
첫댓글 영웅바위를 뽀개버린 사람들 벌받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