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에서 묵은 선 팔레스 호텔은 후쿠오카 항 근처에 있었는데
아시아민중기금 준비모임이 열리는 국제회의장이 바로 옆에 있다.
그 주변에 국제센타라는 건물도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수많은 만장들이 늘어서 있다.
무슨 관이니 집이니 하는 것이 써 있는 것으로 봐서 여러 단체가 참여해서 뭔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일행을 안내하는 성신일 선생한테 여쭤보니 스모대회가 열릴 예정이란다.
그 때서야 相搏이란 한자가 스모라고 읽는구나 알았다.
나는 저 칠 박자를 설핏 보아 넓을 박으로 읽고 무슨 박람회가 열린다고만 생각했으니
핫타리는 쉬운 한자를 읽는 데도 대강이다.
공식적인 일정이 있어 경기를 볼 수 없었지만
숙소 바로 옆이라 일정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에 잠깐 잠깐 엿보는 것만으로도
스모의 인기를 알 수 있다.
호텔로비에도 스모대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놓고 입장권을 팔고 있는데 일인당15만원이 넘는 표가
떨랑 두장 남아 있을 뿐이다.
일본스모협회가 공식적으로 개최하는 대회를 혼바쇼라고 하는데 홀수달에 전국을 돌면서 15일 일정으로 연다.
이 혼바쇼가 후쿠오카시에서 열리는 것인데 이 경기를 보기 위해 큐슈 전역에서 몰려 와 숙박시설을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혼바쇼 기간중 벌어지는 전 경기를 엔에이치케이에서 하루종일 방송한다.
흔적도 없이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한국의 씨름과 비교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게 만든다.
씨름장에 들어오는 선수에게서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에 대해 볼 수 있다.
앞에 오는 사람이 이 씨름대회에 나오는 사람이다.
옷부터 뒤에 따라 붙은 가방모찌-사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총수의 비서실장을 가리키는 말이되었는데
이 장면을 보니 절로 가방모찌란 말이 떠올랐다.
가방모찌는 가방을 들은 사람이라는 말인데 저 장면을 보니 하빠리니 시다바리니 하는 국적불명의 말도
덩달아 따라 나왔다.
조리라고 하는 일본 전통 신발을 신었는데 한명은 양말을 신고 시다바리는 벗었다.
사실 벗은 게 아니고 신을 수가 업는 것이다. 왜 하빠리니까
옷을 보면 선수는 무늬가 있는 고운 옷을 입었지만 뒤에 오는 친구는 단색의 좀 쌀티나는 옷을 입었다.
꼭 다른 그림 찾기처럼 되었는데 두 사람은 머리 모양도 다르다.
이 모든 것이 두 사람 계급 차이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외관상으로도 구별할 수 있는 차이 이것이 일본 계급사회가 남긴 흔적이다.
사실 한국도 이런게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왜 같다고 하느냐고 확실치 않으니 그렇다. 사실 핫타리라고 고백했으니 좀 쎄게 써도 되지만 그래도
겸손한 모습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스모는 체급이 없는 경기라 단일 등급인데 그 안에서 성적에 따른 계급이 명확히 갈린다.
우리가 어렸을 때 놀던 왕자와 거지라는 게임을 보면 하나씩 이겨서 왕자까지 올라가 명령을 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데 이들의 계급을 보면 딱 그 게임이 생각난다.
서양에서는 전 경기 성적에 의한 랭킹 순위에 의해 시드를 배정하는 정도이지만 이들은 완전히 계급으로
굳어져 복장이나 대우에서도 완연하게 차이가 난다.
선수 등급은
최상위인 요코즈나(橫綱) 그 다음 등급인 오제키(大關),세키와케, 고무스비(이 두 계급이 세개대회에서 연속
10승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오제키가 된다), 중간계급중 꼴찌인 마에가시라, 비로서 프로시름선수로 인정 받게 되는
주료라 하는데 이들이 받는 돈 주료는 에도시대에 한사람이 일년동안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다.
한사람이 일년동안 편히 먹고 살아야 비로소 프로로 인정했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이들 이외에는 스모로 밥을 먹고 살겠다고 배우는 아마추어인데
도리테기가 불리는 이들에게도 계급이 있어 마쿠시타, 산다메, 조니단, 조노구치라 한다.
이 친구는 아마추어인데 내가 사진을 찍자니 왜 나같은 놈하고 찍자고 하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마지 못해 사진을 찍었다. 가족과 함께 시합장을 찾은 듯 한데 가족들은 그래도 내가 찍자고 하니
꽤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요쿠즈나가 되길 바란다.
이 들이 올라가 시합을 하는 무대를 도효라 한다.
높이가 50센티미터 전후의 한변의 길이가 6미터70센티인 정방형 무대인데 그 안에 직경 4미터55센티의 원이 그려져 있다.
원바깥에는 가마니를 묻어 경계를 지었는데 다와라라 한다.
도효 위에는 일본 전통가옥형태의 지붕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네 귀퉁이에는 방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사신또는 사계절을 나타내기도 하는 색실이 매달려 있다.
우리네 절집에 가면 부처님 모신 위에 닫집을 만들어 신성시 하는 것과 같이 이들도 도효를 신의 영역으로 본다.
이들이 매는 샅바를 마와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신성시 하여 더러워져도 빨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태극기는 더러워져도 빨지 않고 더 이상 못봐주겠다고 하면 태워 하늘로 올리는 것처럼 이들도
불에 태운다고 한다.
이렇게 쓰다보니 마와리에서 나는 냄새가 여기까지 풀풀나는 것 같다. 하여간 좀 별스럽다.
그래서 그렇게 변태영화도 많고 변태도 많다고 알려진 것일까? ㅎㅎㅎ
경기장에서 직접 보진 못했지만 티비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스모장면을 자꾸 보니 점점 재미가 붙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고, 보고 또 보다 보면 정이 든다는 말이 맞나보다.
이래서 일본씨름 스모는 굳건하게 인기를 지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도효위에 올라오면 선수들은 소금을 바닥에 뿌려 악귀나 잡신을 물리치는 행사를 하고 맑은 물을 받아 마셔서
기력을 회복하게 하고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종이로 몸을 닦는데 몸과 마음을 깨끗히 하는 것이란다.
신사에 들어갈 때 손과 입을 닦고 신께 나아가는 것과 동일하다.
선수가 마주보고 두팔과 두발을 들어 땅을 울리는데 지신에게 경기가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이라하는데
언젠가 본 몽골의 씨름꾼들이 새모양의 복장을 하면서 훨훨 춤을 추는 그 모습이 연상된다.
우리네 고구려 고분에 나타나는 수박희의 모습도 엿보인다.
경기는 상대방을 쳐서 쓰러뜨리든가 다와라라 하는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면 이긴다.
경기시작전 의식은 꽤 길게 하는데 실제 경기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끝나 긴장을 늦출수없게 한다.
단판으로 경기가 결정되는데 우리네 씨름의 삼판양승이나 경계선 밖으로 나가면 안으로 다시 들어와
경기를 재개하는 것과는 영판 다르다.
일본이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가면 바로 죽음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씨족이나 부족 번으로 이루어진 일본 사회에서 단체에서 밀려나가면 죽음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조직내 인간으로 교육받아오고 그렇게 살아서 한번 취직하면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고
직장을 옮긴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일본인 그들 핏속에 흐르는 승부의식인가 보다.
고스톱에서 쓰는 쇼당이니 쇼부에서 느껴지는 살벌함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그들 인식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바람한번 불면 일제히 떨어져 흩어지는 사쿠라처럼
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다 할복한 사무라이의 목처럼 툭 떨어져 뒹구는 동백처럼
비행기에 올라타 항공모함의 굴뚝으로 날아가 처박히는 가미가제 대원처럼
그들의 가슴속에 들어있는 모아니면 도
그것의 화현이 스모경기처럼 보였다.
그들에겐 절대로 가방모찌가 되어서도 하빠리가 되어서도 아님 시다바리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도
스모경기에 오는 선수들을 보면서 느꼈다.
약하면 정벌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심성이 1910년 한반도 침략이라는 결과를 나았듯
2010년부터 또다시 백년을 부르짖는 일본 우익의 그 침략성의 원형질을 일본 스모에서 보았다.
대회가 시작되는 날 아침 저 망루에 앉아 두드리든 그 북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첫댓글 예전에 한국인으로 요코즈나까지 오른 스모선수에 대해 신문에서 본 일이 있다.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줄 모르겠으나 한국인이라는 말땜에 그 기사를 자세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 놀라움에 내는 변태성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