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미 소 외 1편
유병란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소죽을 끓이셨다
아침 밥상을 들이기도 전
제일 먼저 밥을 먹는 것은 어미 소였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늘 순종하며 온순했던 소
이른 봄 아버지와 짝을 맞춰
열두 마지기 논과 밭을 다 갈고도
한해건너 한 번씩 송아지를 쑥쑥 낳아
가난한 살림에 금고가 되기도 했다
쉬는 날보다 아버지와 따비밭을 일구던 날이
더 많았던 시간들
겨울이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주며
아버지는 어미 소를 살뜰하게 챙기셨다
어미 소와 함께 한평생을 우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의 끝에 서서
세 살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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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모 할머니
간식이라야 누룽지나 삶은 고구마가 전부였던 내 어릴 적
어쩌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손님보다 손에 들고 온 선물이 더 반가웠다
그중 대고모 할머니는 으뜸 손님이었다
잘생긴 아재 둘을 앞세우고
젤리사탕과 종합선물세트를 한 아름 들고 오시던 대고모 할머니
그런 날에는 뒤란 밤나무에서 우는 까치소리가
들뜬 내 마음처럼 온종일 방문을 들락거렸다
얼마 전 친척 결혼식장에서 아재를 만났다
젊고 잘생겼던 얼굴은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을 고스란히 부려놓고 있었다
오래전 돌아가셨다는 대고모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아재의 얼굴 속에 설핏 지나갔다
손님이 오는 날이면
깨금발로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던 내 유년이
지금은 아무도 없는 뒤란 밤나무 가지 위에서
저 혼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유병란 약력
2014 《불교문예》 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첫댓글 소가 금고였죠 공감가는 시입니다.
대고모 할머니, 저도 대고모할머니가 오시면 좋아서 뛰어다녔네요.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유년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