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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라(왕상 18:30-40)
할렐루야! 생명의 주요, 구원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오직 예수”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오직 예수”만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귀한, 은혜와 축복의 날들이 계속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말 못할 어떤 형편 속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결코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보호하여 주시고, 늘 지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열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바냐 3:16-17절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서 기쁨으로 반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라”(왕상 18:30)고 했습니다.
그들이, 엘리야에게 가까이 가매, 그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무너진 제단, 돌보지 않은 제단, 망가진 제단, 어쩌면 제단 돌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그 위에 잡초가 우거진 제단을, 엘리야는 잡초를 제거하고, 다시 제단 돌들을 제자리에 갖다놓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대결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세운 것이었습니다.
묵묵히, 엘리야 혼자서, 무너져 내린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돌 열두 개를 취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왕상 18:33)
엘리야 주변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따라,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기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습니다.
어떻게 하면,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바르게 세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울 수 있을까요?
묵묵히, 말씀의 제단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도의 제단을 세우는 것입니다.
낙담될 때, 절망될 때,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19:130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처음 기록될 때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일점일획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무한한 힘을 없었고, 깊은 은혜를 받았고, 삶이 변화되었고, 삶의 활력을 회복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디셉 사람입니다. 시골 사람입니다. 처음 무대에 등장할 때, 그는 잘 알려지지 않는 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난 후, 그 당시 가장 힘이 센 아합 왕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아갔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아합 왕에게 선포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라리라”(왕상 17:1)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
까마귀들이 아침과 저녁, 떡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은 그를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한 후,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에 머문 기간이 3년 6개월입니다.
이 기간 동안, 과연 엘리야는 무엇을 했을까요? 허송세월을 보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요?
“말씀 듣고, 기도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시간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후, 광야로 나가, 삼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그는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잇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1-4)
사도 바울의 경험처럼, 엘리야 선지자는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에서, 3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시간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르밧에 머무는 동안, 엘리야를 대접하고, 그의 아들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겪으면서, 엘리야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르밧 과부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 17:24)고 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두 가지입니다.
“엘리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민수기 23: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역대하 20:20절을 보면, 여호사밧 왕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 그리고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앞에 선,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지자를 신뢰하고, 목회자를 신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의 대결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둘 사이에서 머뭇거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하나님, 한 분만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흐름과 논리와 유행을 따를 것인가?
말씀대로 살 것인가? 한 번만이라도 육체가 원하는 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것인가?
말씀이 시키는 대로 순종할 것인가? 세상이 제시하는 그럴듯한 방법을 따를 것인가?”
믿음과 세상, 하나님과 바알, 그 두 사이에서,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는 고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 서 있다가, 내게 유리하고, 좋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오직 나를 만드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며, 말씀을 붙들고, 피나는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무너진 말씀의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3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아멘.
36절을 보면, “저녁 소제 드릴 때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입니다.
하루하루, 모든 날들이 다 똑같고, 모든 시간들이 다 똑같지만, 예배 드리는 시간만큼은 다릅니다. 틀립니다. 수많은 날과 수많은 시간들이 우리들에게 있지만, 그 날과 그 시간만큼은 내 날이 아니요, 내 시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약한 날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최소한 그것만큼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예배의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므로,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로, 그 “저녁 소제 드릴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엘리야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합왕에게 가라. 그릿 시냇가로 가라.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라.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하라.”
이 모든 일들은, 엘리야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17:2-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17:8-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18:1절을 보면,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 반하여, 아합 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합 왕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괴로움이 더할 뿐입니다. 잘 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 15:2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안됩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고난과 아픔이 있을 때일수록, 염려와 근심이 많이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보물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말씀 속에 힘이 있고,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다 쌓은 후에, 수문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였습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읽었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는 동안,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앞에서 책을 펼 때에는,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에스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고, 그 옆에 서 있던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그 뜻을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에스라가 읽은 모세의 율법을 다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모두 다 울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
총독 느헤미야는,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성, 수문 앞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다 울었습니다.
그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고, 감동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울 때가 아닙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을 맘껏 들을 수 있음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19:7-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으로 누워 있는 하인을 둔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나와,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대답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즉시 하인이 깨끗하게 고침받았습니다.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마 8:8)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백부장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잠언 2:4-5절을 보면,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강원도 정선에 있는 화암동굴을 처음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직접 그 동굴 속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화암동굴은 금을 캐는 광산이었습니다. 금을 캐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굴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이, 금맥과 광맥을 찾아 굴을 파 들어갔습니다.
금맥을 찾아 들어가서, 정말 금덩어리를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경을 읽으면, 계속 성경을 읽으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금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4-46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야 선지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비범한 신앙을 소유한, 탁월한 믿음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말씀만 따라가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이, 그에게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놀라운 일들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자, 사람들이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잠언 24:13절을 보면,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방법,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이신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활짝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읍시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무너진 기도의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3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아멘.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했습니다.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왕상 18:23-24)
“하나님과 바알”
누가 진짜 하나님인가? 불로 응답하시는 이가 진짜 하나님이라는 대결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에게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불이 임했습니다.
무너진 기도의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아침 기도는 하루의 문을 여는 열쇠이고, 저녁 기도는 하루의 문을 닫는 자물쇠이다”라고 했습니다.
“불행할 때 기도하면 불행이 끝나고, 행복할 때 기도하면 행복이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과 같은 불행한 때가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불행하다고 생각되거늘, 그 불행을 끝내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과 같은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하다고 생각되거늘, 그 행복을 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떠오르는 말씀들이 있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 34:4)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에베소서 3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기도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음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기도할 수 있음에 소망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17절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때, 삼년 육개월 동안, 그가 기도한 대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대결이 끝난 후,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다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삼년 육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면, 비가 내리지 않았고, 그가 기도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한 다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을 본 그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방법은, 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실제적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제단, 기도의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껏 교회 생활을 열심을 내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따라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늘에서 불이 임하듯,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러 주시고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겠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