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특공대의 잊혀진 秘史
전쟁의 승패에 있어 병참의 중요함에 대해서 설명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한국전쟁 또한 군수지원의 중요성이 입증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중공이나 소련과 국경을 맞이하고 있는 북한에 비해서 해상을 통한 군수물자를 보급 받아야 하였던 한국은 절대 불리한 병참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제해권을 바탕으로 하였던 UN군의 해상 보급은 한국을 지탱하여 주었던 힘이기도 하였습니다.
[ 화물을 열심히 하역하는 한국전 당시 인천항의 모습입니다. UN 군의 해상보급은 자유를 수호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
한반도는 산악이 70 %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이라 최전선의 군수지원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사통팔달의 도로가 많이 개통되어 평시의 군수지원 환경은 많이 좋아 졌다고 합니다만 동부전선의 산악지역은 아직까지도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병참선이 차단 될 정도의 악조건입니다.
[ 한국전은 초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산악전으로 일관하였습니다 ]
지금도 그러한데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한 한국전 당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 특히 1951 년말부터 휴전까지 진행된 참호전은 대부분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고지에 주둔한 제 부대에 대한 병참지원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 산악전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인 부대의 병참지원 모습입니다 ]
그래서 연합군은 보급품을 운반하는데 일반 노무자들을 활용하였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소위 보국대를 비롯하여 유엔군 참전 이후 민간 운반단 ( CTC - Civilian Transport Corps ), 한국근무단 ( 일명 노무단 ) , 부두하역단 등 다양한 형태의 노무지원 활동이 있었습니다.
[ 포탄같은 중량물도 이 분들의 보급 수송에 절대 의존하였습니다 ]
그중 최전선의 산악 고지전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속칭 지게부대라고 불린 노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노무대는 전쟁 동안 산세가 험한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 포탄, 식량 등의 보급품 운반을 지게에 지고 운반하였으며 대부분 월남한 청장년들이나 피난민들의 자원입대나 징집으로 충당되었습니다.
[ 대오를 갖추어 정렬한 지원단 ( 上 ) 과 화물 적재 후의 모습 ]
전쟁 당시 노무자들의 규모는 육군 사단에 편성되어 전투근무지원을 직접 수행한 노무단원 9 만여 명을 포함하여 약 30 여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되며 공식 기록에 의하면 전쟁 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한 노무자들의 규모가 전사 2,064 명, 실종 2,448 명, 부상 4,282 명 등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노무자들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미군들은 이 분들을 A 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
노무자들의 지원 수단은 주로 지게였는데 그 모습이 알파벳 A 와 흡사하다고 하여 통상 근무단을 'A Frame Army' 즉, 지게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밴플리트 장군은 회고에서 "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 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 " 고 극찬하였습니다.
[ 이 분들의 노고는 조국을 수호하는 원동력 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이처럼 A 특공대는 戰史의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묵묵히 맞은바 임무를 다한 최고의 정예 부대였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힘써 주신 A 특공대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