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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말씀: 누가복음 20장 9절 †18절 말씀.
지금은 열매를 맺는 결실의 계절입니다.
결실의 계절에는 일년 동안 수고하시고, 애쓰신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결실의 계절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실의 계절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실의 계절에는 우리가 다시 내년에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이 울이는 도 따른 영적인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영원한 결실의 날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될 줄을 믿습니다.
오늘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누가복음 20장 9절 †12절 말씀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포도원을 만들었고, 만든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었습니다.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이사야 5장 1절 †7절 말씀에 나오는 비유와 아주 유사한 비유입니다.
이사야 5장 1절 †7절 말씀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맑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포도원은 약속의 축복에 대한 희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이 약속의 장소를 의미한다면 농부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멀리 타국에 갔던 포도원 주인은 소출의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냅니다. 농부들은 종을 잡아다가 심히 때리고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거저 보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막 만들고 타국으로 떠났으니까 †포도원에서 열매를 기대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아마도 약 오년 정도는 지난 것 같습니다. 주인은 많은 것을 기대하고 종을 보냈지만, 종은 농부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그 많은 여램와 이악을 크게 기대하면서 종을 보냈지만, 종은 아무런 열매와 이익 없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을 거절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있는 예레미야 7장 25절 †㈀9절 말씀과 아주 유사합니다. 예레미야 7장 25절 †㈀9절 말씀에,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르 청조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으니라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하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조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조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나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 예루살렘아 너희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찌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을 거절하지만, 그 거절한 것에 대한 대가를 나중에 아주 심하게 치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포도원 주인은 다른 종을 보냅니다.
이번에도 농부들은 두 번째 종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거저 보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이번에도 농부들은 세 번째 종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았습니다.
농부들이 첫 번째 종, 두 번째 종, 그리고 세 번째 종을 때리고 능욕하고 상하게 한 것은 바로 주인을 거절했기 때문에 위해진 행동이었습니다.
혹시 농부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혹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적은 없었는지요?
혹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적은 없었는지요?
혹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 적은 몇 번 있었습니까?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고, 그 말씀이 자라서 삼십배, 육십배 그리고 백배의 놀라운 결심을 맺게 될 줄을 믿습니다. 특별히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삼십배, 육십배, 그리고 백배의 놀라운 영혼들의 결실이 맺어지는 퐁성한 삶을 누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합시다.
누가복음 20장 13절 †15절 말씀에, “포도원 주인이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으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향해서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생각합니다. 그 농부들을 위해서 주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권을 사용합니다. 바로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외아들을 그 농부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주인이 그의 마지막 카드인 아들을 보낸 것은 바로 그 농부들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 만큼은 공경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한 없는 인내와 한 없는 끈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외아들을 보냄으로써 그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다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인은 스스로 말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입니다.
이런 주인의 독백은 이사야 5장 4절의 말씀과 아주 유사합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주인은 그가 만든 포도원에서 좋은 포도 열매를 기대하면서, 그가 포도원을 가꾸기 위하여 모든 일을 했습니다. 포도원을 가꾸기 위해서 땅을 일구었을 것입니다. 그 척박한 땅에 거름을 더했을 것입니다. 묘목을 심고, 묘목을 가꾸고, 농약을 주고, 포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받침대 꽂이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포도원에 가서 포도가 잘 자라는지 늘 살피고 돌보며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좋고 견실하고 단맛 나는 포도를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포도 나무에서 열린 포도는 아무런 맛도 없는 들포도가 열렸습니다. 정말로 주인은 그 들포도를 보면서 망연자실 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은 결국 농부들에게 갔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을 보자 농부들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오지 않고 주인의 아들이 온 것은 주인이 죽었거나 혹은 죽게 되었거나 그래서 주인은 아들을 보내서 그의 포도원에 대한 상속을 아들에게 줄 것이라고 하는 그릇된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농부들은 서로 의논을 합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라고 말입니다.
결국 욕심에 눈이 먼 농부들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마저도 포도원을 가질 욕심에 죽이고 맙니다. 욕심에 끌려 어리석고 엉뚱한 추측과 오해를 함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해서는 안될 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욕심은 무서운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 말씀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욕심은 사망과 멸망을 볼러 올 정도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모두 떨구어 내야 될 줄을 믿습니다.
결국 어리석은 농부들은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습니다. 그런즉 이 포도원 주인은 아들까지 잃었는데 그 농부들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존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욕심에 끌려 어리석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과 존중의 마음은 아주 소중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늘 하나님을 존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존중하고, 권위를 존중하고, 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귀한 마음이 있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하고, 권위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그 마음 속에서 더 많은 의의 열매를 맺게 될 줄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상급을 받읍시다.
누가복음 20장 16절 †18절 말씀에, “와서 그 농부들이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어다 하거늘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에서 반문적 의문을 던지십니다.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말입니다.
주인의 종들을 죽이고 아들을 죽인 농부를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와서 그 농부를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말하기를,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무리를 보시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 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 2장 34절 †35절 말씀에,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인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들은 선지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농부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거절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 못 가운데 영원한 고통 중에 빠져서 이를 갈며 슬퍼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였으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습들이 있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될 줄을 믿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하여 관계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복된 인생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