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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두 언
한민족(韓民族)의 역사(歷史) 그것은 이 땅에서 호흡(呼吸)하고 살아온 우리 선조(先祖)들의 총체적(總體的)) 발자취다 무릇 뿌리 없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역사(歷史) 없는 민족(民族)은 존재(存在)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牧會)자 신분으로서 이러한 민족(民族)의 궤적(軌跡)을 되돌아보고 연구(硏究)정리(整理)하여 민족(民族)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려 몸부림치는 분이 바로 고 재상 박사이다
특히 성자 예수가 희생(犧牲)과 사랑을 몸소 실천(實踐)하여 전쟁 갈등 원망 미움 파괴 등 암흑과 같은 세상에 희망(希望)의 빛을 던져 주었듯 단군(檀君)성조(聖祖)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가르쳐 정의(正義)롭고 바른 세상(世上)을 열어 주었다는 점은 맥을 같이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民族)은 단기(檀紀) 4343년의 장구(長久)한 역사(歷史)속에 평화(平和)를 추구하며 지나는 동안 6.25와 같은 참담한 시련도 장대(壯大)하게 딛고 일어서서 G20 정상회담(頂上會談)을 개최(開催)하는 나라로 발전(發展)하는 근저에는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과 단군(檀君)사상(思想)이 역동적(力動的)으로 gm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 한다
아무리 세태(世態)가 변하고 생업(生業)이 바쁘다 해도 지나온 삶의 궤적(軌跡)을 외면 할 수는 없다
역사는 자동차의 백미러(Back mirror)와 같은 것이라 했다 차(Car)가 안전(安全)하게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미러를 보아야 한다 과거(過去)에 안주(安住)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未來)를 설계(設計)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군(檀君)성조(聖祖)에 대한 연구(硏究)는 참으로 가치(價値)있는 작업(作業)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가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연구(硏究)자료(資料)에 있지 않나 싶다 고 재상 박사의 높고 깊은 뜻에 경의(敬意)를 표 한다
2010년 10월 10일
그린 비젼 코리아 중 앙 회 장 (겸)
(사) 한국 민족문화 사업회 상임고문 송 창 달
檀君神話와 基督敎
(DANGUN MYTHOLOGY AND CHRISTIANITY)
序言 (introduction)
檀君神話(DANGUN MYTHOLOGY AND CHRISTIANITY)는 오늘의 時代에서만 論議된 것은 아니다. 그 文獻이 말하여 주듯이 歷史學者들은 끊임없는 硏究와 記錄 혹은 保存하려는 勞力을 繼續하여 왔다. 그 理由는 五千年의 歷史를 여는 한 民族의 開祖(beginning father) 라는 점을 勘案할 때 너무도 當然하다 할 수 있다. 本人은 檀君神話에 대하여 깊은 硏究와 많은 考證을 했다는 것이 아니고 이에 대한 硏究를 돕고 關心을 높여서 올바른 歷史의 見解를 共有하자고 하는데 그 意味가 있다.
檀君神話를 硏究하는 데는 여러 種類의 方法이 多樣하게 동원 되어야 할 것이다. 井中觀天格으로 自己의 主張만 세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意見(review of ether)도 참고 해야 할 것이다.
古史(the old story)를 硏究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事項을 參考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 言語學的(linguisticall)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말이란 現實的으로 傳來되어 내려오는 歷史的 現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言語에는 古有의 思想과 哲學이 含有되어 있는 故로 그 時代의 背景과 아울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 文字로 記錄된 (scriptuer by latery)史料들을 參考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헌이란 저자의 편견도 있을 것임으로 여러 의견을 종합해야 할 것이다.
셋째 : 考古學的 考察 (ARCHAEOLOGICAL EVIDENCE) 이다.
人間의 삶은 그 自臭를 남기고 가는 때문에 考古品이야 말로 산 證人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 方面으로 文化의 遺蹟을 찾아 發掘하고 觀察해야 한다.
넷째 : 宗敎學的으로 考察 (religionological evidence)해야 한다.
宗敎란 “가르침의 머리(beginning of teaches)”란 意味로서 그 民族의 思想이 形成되는 根本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凡 宇宙的 (all cosmosist)으로 人類 文化史學的 (anthropological) 이여야 한다.
어떤 民族이던지 그 民族은 전 人類 속의 일 種族이지 결코 獨立的인 存在 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學文이 그러듯이 이웃의 民族과 文化와 關聯된 自他가 共認된 學說이 아니면 偏見에 不過 하기 때문이다.
특히 檀君 神話에 대하여 폭 넓게 硏究해야 할 必要를 느끼는 것은 世界속의 文化 市民으로서 올바른 民族의 歷史觀과 國家觀 내지 宗敎와 思想을 鼎立해야 할 必要가 있다고 할 것이다. G N P (gross nation product)만 높다고 해서 先進國이 되는 것은 아니다. 檀君 神話의 硏究는 우리 民族으로서는 언젠가는 치러야하는 必然的인 課題이다. 왜냐하면 檀君神話에 대하여 너무나도 그 異論이 整理 되지 못하여 있을 뿐 아니라 實題로 그 事實들을 너무나도 認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歷史가 흐르는 동안 여러 宗敎가 혼합된 多樣한 宗敎의 나라이기 때문에 自然히 이 問題에 대하여 意見 一致로 調和 되지 못 한 채 放置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民族의 歷史觀이 鼎立되지 못한 데는 나름 데로 그 理由가 있겠지만 이로 因해서 民族의 分列과 思想의 葛藤이 解消되지 못하고 民族의 永遠한 和合과 統一의 障碍 要因으로 作用한다는 現實을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모든 學問은 歷史觀으로부터 始作 한다. 歷史觀이 없는 學問은 存在 할 수 없듯이 歷史觀이 없는 國家가 國家이겠는가? 民族이 民族이겠는가? 아니면 家庭이 家庭이겠는가?
한 가지 附言하고자 하는 것은 本書를 因하여 基督敎人의 立場과 他宗敎와의 理解가 成就되는 接觸点(meeting place)이 되었으면 한다. 本書를 追薦해주신 분들과 原告 整理와 後援해 주신 분께 感謝하고 아울러 檀君神話의 더 많은 硏究와 發展을 期待 한다.
1985 년 10월 3일 開天節
著者 씀
檀君神話와 基督敎
序言 ......... ( 1 )
目次 ......... ( 3 )
1. 神話란 무엇인가? .......... ( 4 )
2. 檀君神話의 記錄 .......... ( 6 )
3. 檀君神話의 福音的 考察 .......... ( 8 )
4. 檀君神話의 傳來史 .......... ( 10 )
5. 古記의 考察 .......... ( 12 )
6. 考古學的 考察 .......... ( 14 )
7. 聖書 考古學的 考察 ............( 16 )
8. 言語學的 考察 ............( 18 )
9. 宗敎學的 考察 ............( 20 )
10. 계시 문자(啓示文字)의 고찰(考察) ( 22 )
11. 인류(人類)의 문화사적(文化史的) 고찰(考察) ( 25 )
12. 檀君神話 硏究의 動向 ........... ( 28 )
13. 基督敎的 見解들 ............( 30 )
14. 結論 ............( 34 )
부록 ( 36 )
15 . 紳士參拜와 檀君 神話 ........... ( )
圓佛敎와 檀君 神話 ( 생략 )
東道敎와 檀君 神話 ( 생략 )
16 . 參考 資料 ............ ( )
17 . 參考 文獻 : ............. ( )
18. 著者 略歷 : ............. ( )
檀君神話와 基督敎
(study of dangun mythology by biblical)
1. 神話란 무엇인가?
神話라는 말의 뜻은 고대 그리스어 (mythos) 마이도스 라는 어원으로서
신(myth)에 대한 崇畏感 혹은 依尊感을 높이려고 만든 이야기이다. 神話의
特性은 主人公이 반듯이 超自然的인 靈物이여야 하고 傳說과 民話 일 때는
주인공을 助力하지만, 宗敎나 開國神話 에서는 주인공인 영물이 出現하여,
人格 혹은 人態的으로 主力한다. 이 신화는 凡世界的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種類를 열거하면
1) 自然界의 事物 現象의 기원을 설명하는 자연 신화
2) 인간 문화 사상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는 인문 신화
3) 저속한 원시 종교의 신앙을 위한 샤만(shaman) 신화
4) 고급 지식인의 문학적 작품에 의한 신화 등이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나라의 신화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국조의 신화로서 인문 신화에 해당하며 창조나 개벽의 신화는 아니다. 여기에 부언하는 것은 創造神話란 성경에서 창세기의 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창조설화 같은 것들을 말한다.
어떤 이는 성경의 창조 설화를 신화로 알고 설명 혹은 인용하고 있으나 성경의 이야기에는 신화가 없다. 신화는 사람들이 만든 문학적 작품이다. 성경에 있는 이적과 기사는 신화가 아니며 신화를 믿는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다.
단군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으로 기록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만일 신화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하등의 문제가 될 필요도 없다. 단군의 기록은 신화적으로 기록한 그 이전의 기록된 고문들에는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김부식이나 안정복 같은 역사가들은 단군신화는 논쟁할 가치가 없는 기록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그 점을 말하여 준다.
신화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단군의 역사적 사실까지도 부정하는 경향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까지 비난받는 역반응을 일으켜 복음전도 에 막대한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해결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상호이해와 화합 그리고 연합과 협력의 한경이 조성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신화를 논한다는 것은 공연한 오해를 받을 수고 있다. 그러나 단군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입장에서 복음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오히려 이로 인하여 복음전도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역사가 오랜 민족일수록 신화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신화가 있다.
그 대다수는 전설적 자연신화이고, 그 다음은 인문신화이다. 신라의 박혁거세와 김수로왕과 고주몽은“알”에서 나왔다고 하는 설화가 있고 이보다 천년이 앞선 이 단군 신화가 곧 그 것이다.
이 단군신화는 창조나 개벽에 관한 신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창조나 개벽이후에 그 어느 곳으로부터 이동하여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화는 일반적으로 백성을 교화하려고 만든 문학작품이다. Alabiannight(아라비안의 야화)에 나오는 이야기나 牽牛 織女의 전설 야화 등 수 많은 상상과 깊은 상념을 남겨주는 이야기들이다.
대게 높임과 승배의 대상으로 어떤 인물을 신화화 하던지 종교나 개국의 이야기를 신화로 엮었던 사실은 비단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본의 개국신화 중국의 개벽신화 탐라의 개국신화등 얼마 던지 그 유형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신화를 너무 비상하여 억측을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신화는 일종의 문학 작품이거늘 마치 호랑이 그림에 날개를 붙여놓고 호랑이가 날아다닌다고 설명하거나 떡에 물감을 넣어서 아름다운 떡이라고 미화해서도 안 되고, 또 하나는 단군신화는 역사적 인물을 신화화 했기 때문에 그 본질이 가공의 존재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만일 단군왕검이 가공의 인물이라면 개국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하는가? 또 신라의 혁거세나 알지 주몽 등의 역사적 “란” 난 신화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본서는 단군신화의 사료와 고고학적 증명과 언어학적 증명 종교학적으로 그 배경을 설명하고, 단군신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이 단군신화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한다.
특히, 단군신화를 찬양하는 유불선(儒 彿 善)) 삼교와 그 외 종교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비 기독교인에게 단군신전 건립을 반대하는 이류를 설명하기로 한다. 아울러 일본의 신사 참배 강요는 무엇이였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였으며 단군 선양의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2. 檀君 神話의 記錄
( The record of Dangun mythology)
檀君神話는 高麗의 名僧 일연의 三國遺事 중 古朝鮮 편에 紀錄되었다. 승 일연은 지금부터 750년전 고려 희종 21년 1206 - 충열왕 15년 1289 사이에 그의 나이 75세의 작으로 추측한다. 이 신화는 그의 창작이 아니고 고기나 혹은 당의 배거전에서 인용한 편저이다.
이 신화는 불교의 전성기에 기록되었으나, 불교의 교리로 보아서 이 신화가 모두 공인 된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승 일연이 신봉하는 불교의 교리와 부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 왕검은 불교가 아닌 샤만 종교의 제주였기 때문이다.
단군 신화의 논란은 비단 오늘의 시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신화를 기록한 그 시대 뿐 아니라 그 시대 이전에도 논란의 대상 이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군이 실제적은 이물이 아니거나 그가 국조가 아니라서 그런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단군(檀君) 왕(王)儉의 종교와 신분이 샤마니즘(Samanism) 즉 원시 巫易 宗敎의 祭主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승 일연보다 100년 이전에 기록된 김부식의 三國史記에 이 신화의 이야기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로서도 충분히 증명 할 수가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종교는 그 原論의 眞僞를 不問하고 흥망성쇠를 가지게 된다. 그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와 민족의 흥성하면 그 종교도 흥성하고 쇠망하면 그 종교도 쇠약하다. 檀君王儉(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이 쇠망함으로 인하하면 그 종교도 쇠약하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세웠던 고조선의 건국과 흥망성쇠를 우리민족의 문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 비밀의 보고에 채워놓은 자물쇠를 열고 운무에 가리었던 태양을 보는 것처럼 밝은 빛으로 드러난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王歷 紀異 興法 義解 神呪 感通 孝善 등 7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고 불교의 포교적 차원에서 기록한 역사서이다. 그런데 이 단군신화는 왕역 편에 기록된 것이다.
三國遺事의 原文
古朝鮮 ( 왕검 조선)
魏書에 이르기를 2000년 전에 檀君 韓배儉이 亞斯達에 나라를 열어 이름을 朝鮮이라 하였다.
古記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桓因)이 있었는데, 그 아들 환웅(桓雄)이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여 그 뜻을 알고 三神山인 한밝 산에 弘益人間(사람을 크게 이롭게 할 수 있도록)의 목적을 위하여 天符印 3개를 주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한밝산 神檀樹 밑에 내려와 그 곳을 神市라 하고 그 분은 한웅천왕 이라고 한다.
그가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穀食, 命令, 病, 刑罰 및 善惡 을 맡고 또 세상의 360 가지의 일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때에 한 곰과 호랑이가 한 굴에 살았는데 사람이 되려고 한웅에게 빌자 신령한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고 해를 보지 말라 하였으나 곰은 37일 만에 웅녀가 되고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웅녀는 혼인할 사람도 없어 아이 갖기를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다. 이때 한웅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웅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이가 곧 단군 왕검 이다.
이 神話에 관하여는 三國遺事와 쌍벽을 이루는 1224 - 1300 년 어간에 기록된 이승휘(李承揮)의 帝王韻紀(제왕운기)에도 大同小里하게 기록된 점으로 보아 역사적 문헌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제왕 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운을 붙여 역은 책으로 고려 충열왕 때 경상도 진주부사로 있으면서, 왕명으로 재판을 공민왕9년(1360)에 안극인이 경상도 안염사로 있을 때 경주에서 중간을 이조 태종 17년 (1427)에 경주에서 3판이 나왔다. 1939년 조선 고전간행학회에서 이 책을 영인하여 간행하였다. 상은 中國 편 하는 韓國 편을 詩로 읖고 誌를 붙였다.
두 권의 신화를 비교하면 그 내용은 같으나 그 용어가 다르다는 점이다.유사에서는 한인(帝釋)으로 운기에서는 上帝로 解釋하였다 유사는 熊女로 운기에서는 孫女로 표현했다 단군의 壽도 유사는 1908년인데 운기는 1028년이다. 유사는 단(壇)字를 운기는 단(檀)字를 썼다. 통치 연대도 운기는 1048년인데, 유사는 1500년으로 되었다. 遺事는 徒 3천 인데 韻記는 鬼 3천이다. 유사는 熊女와 결혼 했는데, 운기는 孫女가 檀樹와 結婚 한 것으로 됐다.
이처럼 양 기록이 다른 이유는 이승휘는 유생이요, 일연은 승려이기 때문에 종교적 표현의 차이가 있는 반면, 遺事는 古記를 韻紀는 本紀를 引用했기 때문이다.
이로보건데 두 기록이 있기 이전에 檀君神話에 대하여 고 문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후 檀君의 表記에 壇이 아닌 檀字를 오늘까지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유교의 문화가 불교의 문화를 계승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3. 檀君神話의 福音的 考察
(The study of Dangun by biblicall )
승 一然이 三國遺事를 기록하던 시대의 왕인 고려 忠烈王은 원에 인질로 끌려가 원의 세조의 딸과 結婚하였다. 그 당시 원의 궁실에 세조의 어머니는 경교도였고, 경교의 세력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충열왕이 경교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아들 충속왕도 몽고의 여자와 결혼하였다. 세조는 자기의 딸을 고려에 출가시켰고 그렇다면 충숙왕은 그의 어머니가 경교도인 셈이다.
그뿐 아니라 세조는 경교도인 내얀(乃顔) 장군으로 하여금 얼마동안 고려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는 그의 軍旗에 十字架 表示를 할 정도로 신앙이 돈독하였고, 그 부하 중에는 경교도가 많았다. 그리하여 그 당시 고려인 중에는 경교의 지식을 흡수하여 영향은 받았을 것으로 간주 된다.
일본 하가다(博多)에 있는 원구 記念館에는 원의 軍器 중 景敎 十字架의 문양이 있는 철갑주가 있다. 이러한 군기는 고려에서 제작하였다.
원은 1274년 일본을 치는데 제 1차 원정군 8000명을 고려에 주둔 시켰고, 1275년 원의 사자로 일본에 갔다가 처형당한 5명중에 書狀官은 경교인 이였고, 그들을 수행한 통역관(通譯官)은 고려인 이였다.
경교가 고려인과 접촉한 사실을 고려 충열왕 시대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 간다. 경교가 중국에 전래되었던 당 태종 9년 635년은 신라의 선덕여왕, 고구려 영류왕 18년, 백제의 무왕 36년에 해당하며 景敎碑를 건립한 덕종 건중 2년 781년은 통일 신라의 선덕왕 2년이다.
이때를 전후하여 150년 어간에는 3국에서 해마다 당에 사절을 보내었고 당 태종 14년 (640)에는 국학에 유학을 허락받고 많은 인재가 공부하였다.
당의 현종 1대에만 29회에 걸쳐 사절을 파견하였고, 특히 문성왕 2년 (840)에만 유학생이 105인이 왕래하였다.
당의 조정에서는 경교가 절대적 환영과 보호를 받아 전국에 대진사가 건립되고 불교이상의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당에 유학생을 보낸 3국이 경교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가 없다.
續 日本書紀에 787년 당 개원 24년 일본 천평 8년 당나라의 황보가 페르샤 경교 선교사 李 밀의 (Millis)를 醫療 宣敎師로하여 聖武聖王을 만난 사실이 있다. 804년 延歷23년 고오보다이시 (弘法大師; 空海)는 당의 西明寺에서 불경을 번역하였다.
주목할 사항은 景敎碑文중 “道無常名 聖無常體”의 구절은 고오보다이시가 쓴 三敎指歸란 책의 結論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韓中日 三國이 경교와 불교가 접촉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1928년 6월 남 만주 案山部군 에서는 경교의 墳墓에서 7개의 인골과 瓦製 景敎 十字架가 出土 되었다. 또한 동방박사 아기 경배도가 조각된 바위가 출토되었다. 이는 690년 이래 고구려 유민 발해의 영토에서 우리민족의 종교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특히, 渤海에 공헌한 三一神誥의 관념은 기독교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 이라고 윤성범 박사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발해의 始祖 大祚榮의 동생 大也勃이 쓴 史記에도 檀君神話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1956년 경주에서 신라시대의 석제십자가 동제 십자가 마리아상 관음상 경교적 유물로 출토된 사실이다. 이방면의 권위자인 김양선 목사도 “조심성 있는 역사가는 소홀히 해선 안 된다”라고 하였다.
(동아 1967년 14109호 : 경교는 어느 때 들어왔나 ?)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굴암안에 부각된 십일면 관음상 십라한상 범천상제석천상 등의 옷무늬 와 신발 유리잔 호석에 부조된 무인상 십이지상 등이 페르샤 경교적 영향이라고 했다.( 간추린 한국교회사 8p 1962년판)
레스트리오 황제의 정죄를 받은 경교는 625년 중국에 들어와 약 250년간 중국 전역에 성행하였다. 이 경교비는 1621년 초 명조 말 희종 천계3년 장안 서남 150리 지점에서 출토되었다. 이 비문에는 “여호와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사단의 유혹을 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유리 하던 중에 메시야가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당 태종의 아들 고종은(650~683)알로펜을 우대하여 鎭國 大法王(greatspir
ituallord guardian)라는 칭호를 주고 각 지방에 경교사원을 건립했다. 경교는 제9세기 중엽부터 크게 좌절 되어 845년 무종 회창 5년 복고주의가 일어나 크게 위축되고, 874년 왕선지의 난 878년 황소의 난을 지나오다가 원대에 들어와 약간 성행 하였으나 마침내 쇠잔하여 버리고 말았다. 이상과 같이 단군신화는 기독교의 경교의 동정녀 탄생설화 같은 유사한 내용(웅녀와 가화이 혼지)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대야발의 삼일신고라는 교리의 명칭을 기독교의 삼위 일체 신관을 모방한 듯한 유사점과 한인 한웅 한단이란 명칭으로 홍익인간이란 기독교의 박애사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뜻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설법하였다는 표현 등은 불교와 기독교가 혼합하여 만들어 낸 인문신화 였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4. 檀君神話의 傳來史
( The misson story of Dangun )
단군 신화는 승 일현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시기보다 거슬러 올라가서 더 먼 시대에 기록된 점으로 보아서 승 일연의 창작이 아니다. 그렇다면 편의상 삼국유사의 기록된 시점을 전과 후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군신화가 승 일연의 기록보다 앞선 문헌이 많다. 그러나 그 기록들이 단군을 神子나 神孫이였다고 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고대의 역사에서는 개국시조는 거의 신인으로 기록하는 것이 정당한 진리처럼 되어 버렸다. 단군도 신자요 또한 죽지 않고 산신으로 화하여 불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런 생각은 원시 샤만니즘(SAMANISM)종교 思想에서는 名人은 죽어서 山神이 된다고 믿었다. 한인은 우리말 하나님의 한자 표시 음이다. 佛敎에서는 한인을 自然神으로 지칭 한다. 자연신이란 物各爲神인데 天에는 天神이 있고 物件마다 神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일명“ 生覺의 神”이라고 한다. 그래서 基督敎의 唯一 神觀과는 區別된다. 湖南地方에서는 檀骨이라하여 檀君의 語原을 이어받고 있다.
모든 宗敎는 “天”으로부터 始作 한다. 그럼으로 샤만종교의 제주였던 檀君王儉도 한인(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단군왕검을 신화적으로 기록하였다고 하여 개국의 사실과 실존 인물을 부정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요,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단군의 사기는 三國遺事나 帝王韻紀 이외에도 역사적 문헌들에 서 수 없이 기록 되어 있다. 東國輿地勝藍, 權近의 應祭時酒, 世宗實錄, 朝鮮史略, 東國通鑑, 世家譜, 檀紀古記, 癸苑史話, 三國史記, 東國史略, 文獻備考, 東史年表등에 기록 되어 있다. 각권의 내용들은 다음 장에서 비교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이상 14권의 문헌에서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단군왕검과 그 역사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알 수가 있다.
檀君王儉은 고조선을 개국한 이래 그 유민은 九夷韓族 (馬韓 辰韓 弁韓 夫餘 沃沮 耽羅 穢貊 倭 (우릅) 高句麗)등으로 분리하였으나, 그 후 삼국으로 鼎足地勢를 이루다가 통일 신라 이후에 한반도로 국한되어 실지를 회복하지 못 한 채 양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高句麗는 처음에는 孤竹國으로 불리었는데 비교적 古朝鮮 九韓族의 땅을 합병 통치하였으나, 羅 ․ 唐의 연합군에게 광활한 영토를 잃게 되었다.
高句麗의 遺將 大中相의 아들 大祚榮이 渤海를 세워 약 260년간 존속하다가 여진족에게 패망하여 지금까지 실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大也渤은 대조영의 동생으로 渤海國의 民族 精神的 志株라 할 수 있는 檀紀古史 檀君神話를 三一神誥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기록하였다.
고구려는 高(높다) 句(그리고) 麗(아름답다) 높고 아름답다는 뜻으로서 朝鮮(아침이 밝다) 아침을 이어 태양이 正午가되어 높고 밝다. (麗 ; 善)는 뜻으로 고조선을 이은 나라임을 뜻한다. 그 후 高麗는 句 字를 제하고 국호를 사용하였으나 高句麗의 國號를 계승하였고 korea는 高麗의 原音으로 우리의 永遠한 國名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李朝를 創業하는데 一等功臣 鄭道傳은 經國大典에서 “海東之國 不一其呼”라 하고 古朝鮮을 이어 李氏朝鮮 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이름이 大韓民國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朝鮮 사람인데 korea 라 부르는 이유는 古朝鮮의 歷史와 傳統을 이어온 高句麗의 民族精神의 繼承 때문이다.
단군왕검이 개국한 고조선의 도읍지는 亞斯達로서 한반도의 묘향산 구월산 혹은 평양 등 여려 지명등과 혼동하는데 원래 이 지역은 몽고의 흑룡강 과 송화강 사이에 있는 지명으로서 이는 단군왕검 제 14대 임금 시대부터 중국의 五帝 중 皇帝軒轅씨와 전쟁이 시작되어 한반도로 이동하여 오면서 아사달 지역의 지명을 붙여 사용함으로 후일에 혼동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삼국으로 나눠 정립지세를 이루었던 시대에도 삼국은 각기 단군왕검을 국조로 하여 숭배하였고, 민족의 지주이였음을 대야발은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였다.
고려조에서도 고종 1대에 5회에 걸쳐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를 거쳐 탐라까지 피란하면서도 불교계에서는 팔만 대장경을 제작하여 종교적으로 국론은 집약했던 시대에 승려의 신분으로 단군신화를 경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남기면서 비난을 무릅쓰고 유사의 첫머리에 기록한 것이다.
이조에 이르러서도 崇靈殿을 짓고 “朝鮮始祖 檀君之位” 라는 위폐를 숭배하였고, 儒學者 權近은 明帝에게 시문으로 단군을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이조가 庚戌國恥를 만나 合倂된 이후에 이 檀君의 歷史는 國定敎科書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샤마아니즘(samanism)은 迷信이다”라는 이론을 내세워 韓國 國民을 植民史觀으로 가르쳐왔다.
1945년 解放을 맞은 대한민국은 10월 3일 開天節을 國慶日로 制定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植民史觀的 國定敎科書로 敎育을 받은 潛在意識과 檀君의 歷史的 認識 不足으로 인하여 檀君神話는 雲霧속에 헤매고 있다.
우리 韓民族의 將來는 歷史的 眼目으로 미루어 보면 共同 運命이다. 六者會談이나 核 問題보다 더 급한 문제의 핵심은 民族의 同質性과 南 ․ 北韓의 歷史 意識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5. 古記의 考察
(study of old story for dangun mythology)
1911년 桂延壽氏가 쓴 한檀 古記는 그 내용은 삼성기(三聖紀) 北夫餘紀 그리고 太白逸史를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三聖記는 신라의 승려 安含老와 元董仲이 쓴 것이다. 전편은 한인부터 -7세 단인까지 후편은 한웅- 18세 단웅까지 1565년의 역사를 적은 것이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杏村 李庵 文貞公이 전한 책으로 1세 단군부터 -47세 古列加 까지 2096년의 사기를 적은 것이다.
北夫餘紀는 고려 말 학자인 범장 선생이 전한 것으로 시조 해모수로부터 6세 고무서까지 204년과 가섭원 부여 108년 역사이다.
태백일사는 연산군과 중종때 한학자 이맥이 전한 책으로 한국 신시 시대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한단 고기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앞선 문헌으로서 단군의 역사 연구에 좋은 문헌이다.
韓檀古記의 삼성기와 단군세기는 中國歷史에서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의 三才와 같이 古史를 整理한 것이다. 한인시대 3301년 한웅시대 1565년 단군시대 2096년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한단고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기록한 고증적 문헌으로서 단군이 신화적 가공인물이 아니라 7대 한인과 18대 한웅의 나라를 계승하는 실제의 인물임을 말하고 있다. 북부여는 단군조선을 잇는 계승적 국가였고 고구려는 북부여를 고려는 고구려를 李氏朝鮮은 고려(korea)를 잇는 고조선의 계승적 국가임을 말하고 있다.
中國의 歷史는 天 地 人 三才로 始作한다. 그 다음은 5帝로 이어지는데 삼재는 가공인물이고 5제는 실제 인물인데, 모두 고조선의 인물로서 檀君王儉朝의 신하의 후예들이다. 단군왕검은 7인의 신하를 임명하여 나라를 다스렸는데, 蚩尤는 軍權을 맡고 神誌는 文權을 맡아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때에 象形文字와 한글이 創製 되었다. 후에 상형문자는 漢文으로 정리되고 한글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다듬어서 오늘의 한글로 쓰게 되었다.
高矢禮는 농사를 맡았는데 蚩尤의 자손은 중국의 서남부를 차지하고 神誌의 자손은 동북부를 高矢禮의 자손은 동북부를 차지하여 살게 되었다.
중국의 5帝는 伏犧 神農 軒轅 高揚 高辛이다. 이들은 복희 외에 복희씨는 한웅의 5대손 중 12째 아들이다. 少典之子니 少典은 高矢禮의 後裔라고 神市本紀에 기록되었다. 軒轅이 皇帝로 있을 때 最初로 反逆하여 古朝鮮에서는 蚩尤를 파송하여 진압하였다. (五帝本紀 )
高揚氏와 高辛氏는 姓은 高요 이름은 陽과 辛 이니 이들은 軒轅의 子孫이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고조선과 중국과의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북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하였고, 高矢禮의 자손들은 9 夷族 (犬夷 嵎夷 方夷 黃夷 白夷 狄夷 玄夷 風夷 良夷)로 나뉘어 나라를 세워 9韓族 혹은 東夷族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9한족 중에 북부여는 장자의 역할을 하였는데, 후에 쇠망하고 고구려가 계승하였다. 북부여가 망한 후에 그 유민들은 망국지한을 기리기 위하여 백제국을 세우면서 그 수도를 부여라 하였다. 처음부터 부여와 고구려는 형제지국 이였다. 그리고 中國은 漢族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蚩尤의 子孫과 合流하여 동북방의 靺鞨 肅愼 女眞 匈奴 등 神誌의 자손들과 마찰은 있었으나, 역사가 지남으로 거대한 영토를 합병하여 오늘의 중화민국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역사는 약소민족으로 전락하면서 이런 사실들을 주장한다면 감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진귀한 문헌들은 기록자들의 사후에 그 자손들이 보존하고 있다가 오랜 후에 밝혀지고 대부분 분실 되거나 소실되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출판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인쇄술이 발달하여 이 분야에 뜻을 가진 사가들이 고서를 연구 발표함으로 2007년도 교과서에 단군신화를 실제 인물로 바꾸었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되었으나, 62년만에 신화가 실사로 바로 잡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조선에서 중국이 파생하였느냐? 중국에서 고조선이 분파하였느냐? 하는 질문과 대답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단군이 신화냐? 실제 인물이냐? 하는 문제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흔히 고아들은 누가 형인지 누가 동생인지 누가 조상인지도 모르고 종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 중에는 한때는 흥성하다가도 패망한 나라가 많다. 그 나라들은 한 결 같이 그 국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문화를 잃은 것이요, 문화를 잃은 것은 그 역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맥시코나 인디안 들은 한때 북미대륙의 주인이었다 한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문화가 어떠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인식함으로 정립 되지 못한 9韓族의 民族史觀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堯舜의 時代라 지칭하는 순임금 儒敎를 集大成한 孔子 六韜三略을 周 文王에게 가르친 姜太公 등이 모두 東夷之人이라는 사실이다.
6. 考古學的 考察
(study of Archaeological for Dangun )
A. 古朝鮮의 遺跡(mounment)과 그 背景 (background)
檀君神話를 연구하는데는 古朝鮮의 건국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고 얼마만큼 존속하다가 패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를 살피는 것이 좋을 것이다. 古朝鮮의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어 참고가 되겠지만은 그 시대에 살았던 考古學的 유물들을 관찰하여 보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古朝鮮의 建國年代가 기원전 2333년이라면 고고학에서는 신석기(Neolithics) 시대에 해당 하고 말기에는 靑銅器(Chalcolithic) 시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고조선 사회에서는 신석기를 사용하였고 서북방계 민족의 청동기 무기와 문화가 들어오면서 종말을 맞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신석기시대에 세워진 古朝鮮의 人口는 어디서 왔을까? 국가가 세워지려면 많은 인민이 필요하다. 三國遺事에 率徒 3千이라 했으니 이는 많은 무리를 의미한다.
人類學에서는 Asia 대륙 북방에 살던 新石器인들을 古Asia족(Paleo.Asiatics) 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manua족 Tungus족 Koryak 족 Chukehee 족 Ainu 족이 있는데, 인종적 특징은 대표적으로 몽고 Manua족이므로 서양인의 기질도 닮고 있어 歷史的으로 匈奴족, 鮮卑족, 東夷族이 있었다. 그중에서 東夷族이 주역이 되어 古朝鮮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만들었던 돌칼이나 화살 촉 등이100군데 이상 발견되었다. 특히 신석기시대 쓰던 그릇으로 빗살무늬 토기가 있다.
이 土器는 滿洲 蒙古 Siberia 獨逸 Schandina 半島 등에서도 발견 된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중앙 Asia에서 Siberia를 거쳐 북만주 쪽으로 들어온 자취가 있고 하나는 Iran Turky 地中海로 연결되는 彩色土器, 黑色土器 등이 있어 原始的으로 中國係와 韓國係로 구분 된다.
B. 한국형과 중국형 청동기
신석기 시대는 주로 정착하여 살았는데, 외부에서 청동기 문화가 들어오면서 강한 침입이 이뤄졌다고 본다. 고조선 지역에서는 청동기는 피파형 靑銅劍 細形 銅劍 세문경 靑銅방울 등은 中國계 一字式 銅劍과 彫文鏡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고조선의 청동기들은 석판이나 석관묘에서나 적석묘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이런 묘는 중국 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고 Siberia의 Minusinsc 지방이나 Altai산맥의 Enisey 강 상류인 Pizilic에서 발견되어 그 문화의 유입 경로를 알 수 있다.
韓國形 靑銅器로 皮琶形 靑銅劍은 滿洲의 遙寧城 夫餘의 宋國리에서도 발견된 바 있고, 細形 銅劍도 韓半島에서 자주 발견되고 和順에서는 석제 容範이 발견되어 그 당시 제작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청동 거울도 한국형은 양각선인 반면 중국제는 사각형이다.
C. 다음은 고인돌 (ston of ago)로서 네 種類가 있다.
첫째는, 평면 사각형의 방을 상자 모양으로 짜서 그 위 에 큰 돌로 덮은 것인데, 이것들은 요녕반도 대동강유역 황해도 은율 강화도 등지 에서 발견되었다.
둘째는, 뚜껑을 바치는 다리가 8-10개의 이상으로 되어 평면원형의 방을 이루는 것으로 주로 濟州道와 全南地方에 많다.
셋째는, 지하에 석곽을 만들고 큰 돌로 덮은 것으로 경주나 고창등지에서 발견되었다.
넷째는, 지하에 매장하고 큰 돌로 덮은 것인데 강화도 부근에서는 10명이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있고 80-100톤 가량 되는 것으로 400-500명 의장정이 동원 되어야하는데 적어도 2000-2500명이 살았던 추장의 묘로 추정하며 이는 滿洲와 山東 半島 吉林城 濟州道 日本 九州 臺灣등지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중원이나 하남성이나 중심부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중국의 대륙과는 개성이 다른 독자 적은 문화이었음을 알수 있다.
이상의 考古學的 見地에서 본다면 古朝鮮의 관할 地域은 中國 본토를 제외한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 할 수가 있다. 특히 濟州道는 耽羅 혹은 毛羅國으로 古朝鮮과 관련된 문헌에 기록 되었는데, 東海之國에 三神山이 (瀛洲 蓬萊 方丈) 있고 不老 (神仙)草 가 있어 瀛洲 (제주)를 耽(귀클탐)羅라 하였고 (우리나라 속담에 귀가 크면 오래 산다는 말이 전하게 됐다) 그 뿐 아니라, 耽羅는 高乙郡 梁을나 夫을라 3乙那 (毛羅國) 이라고도 하였는데 2600년 동안 古朝鮮의 高矢禮의 子孫이 高麗 高宗 45년까지 존속하여 王位를 繼承하였다.
7. 聖書 考古學的 考察
욕단의 아들들 13명의 이름과 갈라진 시기와 이유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들은 동편 산으로 갔다는 방향을 제시하였고 출발점을 밝혀 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셈의 자손으로서 족속과 방언과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하였다.
삼국유사에 기록되기를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거느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다수가 이동하였다고 볼 수 있고 나라를 세웠다는 말은 집단적인 규율과 규범이 있었을 것으로 간주 한다.
三國遺事에서 단군은 風伯雨師를 동반하였다 하는데 이는 바람과 비의 기적을 엘리야처럼 간구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욕단은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는 벨렉과 형제였기 때문이며, 단군은 天神에게 祭祀하는 祭王 이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수명은 천년 혹은 500년을 살았던 것으로 추리해 본다면 셈의 자손들은 하늘의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창 15: 6) 아브라함도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으로 기록 되었다.
요순의 시대에 만든 선기옥형 (혼천의)이란 것도 단군이 가르친 천부경의 원리인 천문 관측기라는 것이다. 시계나 기상관측장비가 없는 고대에는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천문에 밝았을 것으로 추측 된다.
무지개 (창 9:16) 발람선지의 (민24:17)예언, 동방박사의 증언(마2:2)예수님의 “너희가 천기를 분변 할 줄 안다”(마 16:3). 이러한 기록은 하늘의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신앙의 증거로 보여 진다.
홍수로 인하여 전멸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고대 인물들은 누구나 하나님에 대한 인상이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였을 것으로 관측 된다.
미 항공 우주국에서 터키의 아라랏산을 촬영했는데, 성경에 기록한 내용과 규격이 일치하는 방 같은 배의 물체가 포착되었다. 현대 과학 문명은 점진적으로 창조와 고대 인류의 문화와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단군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이 미구에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 질 것으로 믿는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노아홍수사건은 주전 3000년이였다면, 단군의 역사는 노아의 홍수와 아브라함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으로 본다.
일반 고고학에서 이지역의 출토된 채색무늬의 토기와 흑색토기와 일자형동검 조문경과 한국형 빗살무늬토기와 세형 및 비파형 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동편으로 이동하였던 셈의 자손 중에는 중국 남방계와 북방계의 출토된 고고학의 자료들이 증거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남방계와 북방계가 합류하였을 것으로 본다.
8. 言語學的 考察 ( linguistic study of Dangun)
人類의 言語는 원래 하나였다고 한다. (창11.1) 洪水 이전에는 언어의 숫자를 알 수 없으나 홍수 후에는 언어가 하나였다고 했다.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진 후에는 인간의 언어가 각기 종족과 나라대로 나누어지면서 문자도 다양하게 만들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원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 있다. 가령 아바 나 엄마는 세계 공통어 이다.
히브리어 만나 ( ) 도 “이것이 무엇이냐?” 인데 m과 n의 닫소리 (ㅁ 과 ㄴ)만 남아서 우리말로 사용 된다.
몽고어의 어근은 우리말과 같이 어순과 음절이 유사하여 혈통적으로 나 언어학적으로 한 계통의 종족 이였음을 증명 한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조랑말은 (몽고어:조로마리) 구두(고돌) 아버지(아보) 사돈 (사돈)으로 사용 된다.
이것은 고조선의 도읍지는 阿斯達 이였는데, 이 지역은 몽고와 만주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考古學的으로 증명되었다.
아사달은 ASIA의 원음으로서 ASURYA 어의 아침이 밝다는 朝鮮이라는 뜻이며, 서쪽 EUROPE은 해가 진다는 뜻으로 朝鮮은 아시아의 宗主國이라는 어원이다.
단군은 몽고어로는 TENGOL (텐골)인데 임금임 이란 뜻으로서 전라도지역에서는 丹骨 (단골:주객)이라 사용되어 왔다. 이 북방계 종족은 猛獸 중에서 호랑이와 곰을 숭배하였고 남방계에서는 소를 숭배하여왔다.
고조선이 중국계의 세력에 의하여 “蘇塗”소도(수도)를 한반도 쪽으로 옮겨 왔는데, 이 뜻은 수(蘇): 고기와 (魚) 벼와 (禾) 나물 (草)로 하늘에 祭祀하는 땅(塗) 이라는 뜻으로 (수도)도읍지라는 말이다. (崔東 博士)라 했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3번이나 도읍지를 옮겨왔는데 평양성도 원래는 만주의 핑딩산(平頂山) 이였으며, 그곳에 있는 백두산은 (1,892M)로 잃어버린 땅이 한반도의 3배에 달하는 69만 평방미터나 된다고 대한 지적 공사가 밝혔다.(국민일보 제 5664호)실상은 고조선의 영토는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땅이다. “한”이란 “하나” “하나님” “크다” 의 뜻으로서 중국의 漢과는 구별되고 한 사상은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한글은 소리글로서 한 문의 뜻글과는 남녀와 같고 조화를 이룬다. 한웅 천왕의 5대손이 12명이 있었는데 그 말째 아들이 태호 복희씨라고 하였다.
그 여동생이 여화다. 女渦는 한글을 만들고 神誌는 象形文字를 만들었는데, 漢文은 그 글자의 뜻과 性質과 理致와 形質을 表示하는 金木水火土 와 陰陽을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글은 일본어와 같이 소리만 적고 한문으로는 그 뜻을 가지고 있어 소리만 듣고는 알 수가 없다.
(一時間 ) 이지 지강 (일본어)한 시간은 우리말은 실제로는 한문의 소리만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 한문도 일본어도 모두 우리글이다. 한글은1國語요,漢文은 2國語요 .일본어는 3국어다 실상은 한글이 먼저 창제 되고 한문은 후에 만든 像形文字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리되었으나 新種文字가 많다.
태호복희씨가 河水에서 나온 거북이 등을 보고 8괘를 그어 河圖洛書를 만들었다. 이는 天符經의 원리인 太極旗의 8卦인데 이준 열사가(1910년)萬國 平和會議에 참석하려고 가져간 것이 오늘 우리나라의 國旗가 되었다.
이 한자에는 宮 商 角 치(致) 羽 라는 五音이 있고, 태호복희 씨가 8괘의 획으로 제정되어 있어서 글자마다 그 음가와 의미를 부여하여 제작되었다. 그럼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한문의 창제 원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문은 중국인의 글이요, 한글은 한국인의 글이라는 말은 국민을 무지로 이끄는 우매자의 말이다. 한 가지 무기를 가진 자와 두 개 의 무기를 가진 자와 누가 더 유익 하겠는가?
히브리 인들은 헬라어로 신약을 기록하여 자기의 종교와 문화를 온 세계에 보급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배척하였으나 ROMA는 오히려 복음으로 인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VADICAN 왕국을 세웠다.
우리도 영어는 배워 사용하려 하면서도 우리의 제2국어인 지적 재산을 버리려하는가? 누가 이런 교육을 하게 하였는가?
일본은 한글을 본 받아 아비류 문자를 만들었는데 (대마도에서 나온 신대 문자) 가나로 음만 적고 한문으로 표시하여 어조사로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고조선의 한글과 유사한 소리글과 한문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거리의 간판도 90%는 한문이다.
인류의 언어는 처음 아람어 (창10;22 셈의 아들 엘람은 아람의 시조) 이였는데 서쪽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변화되고 동쪽으로 우랄 타이어 계통으로 인도어 몽골어 중국어 만주어 한국어 일본어로 발전하였다. (최현배 한글학자)
언어학 적으로 살펴본다면 단군 조선의 역사는 바벨론 지역에서 살았던 우랄 타이어 계통의 종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세웠던 고대의 국가로서 추정 할 수 있고 進化論者들의 주장처럼 獨自的으로 進化하거나 곰이 變化하여 結婚 하였거나,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神話的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 된다.
9. 宗敎學的 考察
(religionological evidence)
단군 신화는 종교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나라의 종교는 儒 佛 仙 삼교의 사상으로 기초를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기독교의 사상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儒佛仙은 그 이론이 서로 다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혼합 되고 조화를 이루어 구분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한국인의 基督敎도 聖經대로 믿는 福音主義라 하여도 유불선의 思想的 土壤에서는 유대적 傳統의 순수한 基督敎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檀君의 思想은 仙敎요 그 原理는 天符經이다. 이 天符經은 81자로 되었는데 天地人 三才를 基礎로 하여 3 6 9로 變化하여 81로 자승하고 9가 가득히 차면 다시 1로 환언 한다. 그래서 1은 無에서 始作하고 10은 다시 시작한 1로 환원 된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 이런 원리로 설명 한다.
이 原理는 불교의 原理인 般若心經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반야심경은 인간의 5觀 ( 耳 目 口 鼻 手) 이 있는데 이 5관이 인간을 범죄 하게 함으로 원천적으로 마음에서 無 만들어 없는 것처럼 “佛” (사람이 아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家出 혹은 歸依 라고 한다.
고조선을 지배했던 선교는 그 이론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천부경이라 했으니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 창조원리요 섭리원리 보존 원리라는 뜻으로 천부경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다.
基督敎 敎理的으로 살펴보면 그 理論 自體가 神은 아니다. 그 理論이 하나님이거나 혹은 鬼神이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天符經을 異端的 思想의 理論이라고 斷定한다. 여기서 기독교와 선교와의 사이에 괴리 현상이 나타난다. 천부경은 일종의 수학 공식과도 같은 것이다. 99 단이나 19단을 암기하여 활용하는 자를 범죄자라 할 수 없다.
가령 바둑은 천부경의 원리를 가지고 놀이를 하는 원리인데 19X19=361, 3+6+1=10, (1+0)=1 이란 공식을 설명한 것으로 孔子는 論語에서 吾道는 一以貫之라고 하였는데, 이 천부경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 또 소위 儒敎의 創始者인 孔子가 吾道는 一以貫之라고 하였을까?
단군왕검이 설명한 천부경은 최초에 한글로 기록하였는데 이 원리는 누구나 사용하는 99단이나 19단과 같은 수학공식인 것이다.
우리말의 財數나 運數 혹은 八字나 橫材라는 말은 모두 仙敎의 天符經의 原理에서 由來한 것이다. 그럼 왜 선교는 고조선 시대에는 성황 하였으나
그 후 쇠잔 하였는가? 이 천부경(天符經)의 원리(原理)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사용 할 수 있는 수학 공식(公式) 같은 원리이다. 물건(物件)도 특허품이라야 그 권위가 오래 보전 되거니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장구하게 인기를 보전 할 수가 없다.
불교가 전래 되면서 선교는 자연히 쇠잔한 것이다. 그렇다고 고조선이 쇠잔했으나 누구나 알 수 있는 수학(數學)공식(公式)이 소멸되지는 않는다. 수학 공식을 사용하는 자를 범좌로 규정한다고 그 공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 철학의 원리로서 의학(醫學) 지리(地理) 천문(天文) 군사(軍師) 역학(易學) 정치(政治) 인문(人文) 윤리학(倫理學) 등에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단군(檀君)도 신(神)이 아니다. 天符經도 역시 神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檀君과 天符經을 神으로 믿는 그 신봉(信奉)자들이 문제가 된다. 기독교도(基督敎徒)가 믿는 성경(聖經)이 하나님의 말씀이지 하나님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원리를 분별하는 진리이다. 그래서 그 별명은“Canon" 이다.
케논은 “자” 라는 헬라어로서 모든 종교의 이론을 검증 할 수가 있다.유교의 창시자는 檀君王儉이요 孔子가 아니다. 吾道란 檀君王儉을 가리키고 태호복희씨가 8괘를 그어 하도 낙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太極旗의 原理요 周易의 원리이다. 주역은 8x8=64괘로 되었는데, 孔子가 韋編이 三絶이라 가죽 끈으로 엮은 책이 3번 떨어지도록 읽었다고 하였다.
중국의 창시자는 太昊伏犧씨로 부터 始作 한다. 四書三經은 三皇 五帝로부터 시작하는데 五帝 中 最初의 皇帝가 伏犧씨다. 이는 환웅의 5대 손들 중 12째 아들이다. 이상의 事實을 미루어 보면 古朝鮮의 역사는 東洋人의 哲學思想의 原流로서 儒敎와 宣敎의 始發地인 셈이다.
佛敎는 印度에서 創始된 宗敎로서 古朝鮮과 中國의 仙敎를 衰弱하게 한 原因 이였는데, 李朝에서는 佛敎가 儒敎에 밀려 三國時代와 高麗時代의 權威를 잃었다고 보아야 한다. 聖經은 하나님이 주시는 啓示로서 하나님 외엔 神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그 신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무엇을 神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누가 檀君을 神話로 神을 만들었는가? 天符經으로 神을 만들었는가? 聖經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規正을 만들어 정하여 놓았다. 성경이 비록 하나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가지고 있거나 알고 외우고 있어도 그대로 행하지 않았으면 소용이 없다.
그럼으로 儒 佛 善 思想의 經典은 神이나 神의 權威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人造의 經典 일뿐 神의 啓示가 아니다. 기독교인은 천부경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지혜 있는 일이요, 유익한 일이다
10. 계시문자(啓示文字)의 고찰(考察)
( The study of revelation scriptuer)
인류(人類)가 사용(使用)하고 있는 문자(文字)들 중에 하나님의 구원계시(救援啓示)를 기록(記錄)한 문자(文字)를 상고(詳考)하는 것은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연구(연구)하는데도 매우 유익(有益)한 일이다
구원계시(救援啓示)라 할 수 있는 신약성경(新約聖經)은 헬라어로 기록(記錄)되었다. 홍수(洪水)에서 구원(救援)된 노아의 세 아들의 사적(史蹟)을 기록(記錄)하면서, 셋째아들인 야벳을 먼저 기록(記錄)하였다. (창10:1-5)
야벳은 (창9:27) 창대(昌大)하여 셈의 장막(帳幕)에 거(居)하게한다는 예언(豫言)대로 서쪽 URUB에서 창대(昌大)하게 되는 복(福)을 받았다. URUB은 앗수르어(語)인데 “해가 진다”는 뜻이다. ASIA는“해가 뜬다”는 말로서 인류(人類)가 앗수르 지역(地域)을 중심(中心)하여 동서(東西)로 나누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구원계시(救援계시)의 본체(本體)라 할 수 있는 메시야가 유대에서 났을 지라도 헬라어 사용지역(사용지역)인 알렉산더의 통치(통치)를 받아 그 영향(影響)으로 인하여 4복음서(福音書)와 편지서(편지서)들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이 헬라어는 히브리어와 같이 구원계시(救援啓示)의 문자(文字)가 되었고, 헬라어는 그 후 라틴어와 영어로 유럽(URUB)의 각국(各國) 이태리, 독일, 불란서 등의 언어(言語)와 문자(文字)가 됐다.
노아의 장자(장자)인 셈족(族)의 문자(문자)인 히브리어와 한글이 일본어(日本語)와 한문(漢文)과는 원리적(原理的)으로 관련성(關聯性)을 갖고 있다. 히브리어의 자음(子音)인 닷 소리 7 자(字) 기멜 눈 다렛 라멕 멤 베일 쉰 ( ) 는 한글의 닷 소리인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 7 자음(子音)과 유사(類似)하며 히브리어의 닷 소리에는 강음점(强音,点)을 찍어서 강의(强意)나 이중 자음(二重子音)으로 사용 한다. ( ) 이런 원리(原理)는 한글에서도 사용(使用)되었다. (예:ㄱ+ * =ㅋ ㅂ+* =ㅍ ㅅ+* =ㅈ ㄷ+ * =ㅌ ㅈ+*= ㅊ ㅇ+* =ㅎ ) 이 원리(原理)는 일본어(日本語)에서도 사용(使用)되었다.
( 한글은 고조선에서 창제한 제 1국어요 한문은 제 2국어며 일본어는 제 3국어다)
*자료 6 번 고조선한글, 일본어(가나) 대마도에서 발견된 아비류 문자, 한문 :상형문자 *
일본(倭人)은 9 한족(韓族)의 하나였음으로 한글(表音文字)과 한문(表意 文字)를 응용하여 문자를 만들었다 한문으로는 인터넷을 원용 할 수 없음으로 중국은 한글이 자국어라 하고 한(韓)족을 자국의 원족이라 하는 것은 오히려 고조선의 역사를 반증하는 것이 된다.
(예: )에 강음점(强音点)을 더하여 ( )로 응용(應用)되었다.
히브리어의 모음(母音)은 아이우에오 ( ㅜ i * .. * )인데 점(点)과 획(劃)으로 표시(表示)하며 일본어(日本語)의 모음(母音) 5자(字)도 이와 같이 한문(漢文)의 략자(略字)로 표기(表記)하여 응용(應用)되었다.
(예):牙以宇元五 ( :ㅏ l ㅜ ㅔ ㅗ)그러나 한글은 중모음(重母音) 을 만들어 (ㅑ ㅕ ㅛ ㅠ ㅢ)을 첨가(添加)하여 사용(使用)한다.
그러나 한문(漢文)에는 5음(音)을 궁상각치우(宮商角雉羽)로 구분(區分)하는데, 이것은 金木水火土 (금목수화토)의 5행성(行聲)의 음가(音價)를 정(定)하여 놓았다. 金(ㅅ ㅈ ㅊ ) 木( ㄱ ㅋ )水 ( ㅁ ㅂ ㅍ ) 火 (ㅇ ㅎ ㅌ ) 土 ( ㄴ ㄷ ㄹ ) 이와 같이 히브리어와 한글이 유사(類似)한 원리(원리)로 창제(創製)되었다는 것은 노아의 5 대손(五代孫) 벨렉과 욕단이 에벨의 아들들로서 형제지간(兄弟之間)이란 사실(事實)을 증명(證明)한다.
그리고 욕단이 단군(檀君)이라는 것도 증명(證明)한다. 히브리어의 욕( )은 아우( )즉 동생(同生)의 원음(原音)이며, 단 ( )은 남자(男子)라는 뜻이다. 단군(檀君)은 동생(同生)임금(壬儉) 즉 적은 임금 이라는 뜻이다. 단군(檀君)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壇; 제터단 君 임금군 )이였는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檀(박달나무 단) 君(군)으로 기록(記錄)되어, 그 후에 단군(檀君)으로 사용되었다. 단군(壇 君)이란 제단(祭壇)에 제사(祭祀)하는 임금(壬儉)이란 뜻의 한문(漢文) 표기(表記)이다.
이 외에도 히브리어와 우리말의 어근(語根)은 동일(同一)한 것이 많다.
엘로힘( )은 우리말의 힘(力)이란 말이며, 하나님은 힘의 근원(根
源)인 생명(生命)의 원천(源泉)인 것을 말한다 . 히브리어의 아말( )은“말하다”인데 우리말의 “말”이란 어근이다. 또한 히브리어의 아후( )는 우리말의 아우 즉 “ 동생”이란 뜻이다. 히브리어의 만나( )는 우리말의 “무엇이냐”(ㅁ과 ㄴ) 의 원음(原音)이다.
히브리어의 아라랏( ) 산(山)은 아사달(亞斯達)의 원음(原音)이며, 이 말은 원래(原來)앗수르 어(語)인 아시아 (ASIA) 즉 해가 뜬다 (아침이 밝다 )는 조선(朝鮮)이란 의미(意味)이다. 이 아라랏 산은 아람어(語)로 “자애 ”혹은 “자비”의 뜻으로서 노아의 아내의 묘(墓)가 있어 어머니의 사랑를 뜻하며 산 정상(頂上)이 3/1쯤 천설(天雪)로 쌓여 있어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하는 한문(漢文) 표기(表記)의 별칭(別稱:愛稱)이다 .
* 자료 14 번 백두산은 아라랏 산의 별칭(애칭)이며 단군조에서 고향산천을 그리워하여 불렀던 이름으로 수도를 옮길 때 마다 백두산 명을 사용하여 백두라는 산 이름이 54개나 된다 아라랏 산은 한문으로 아사달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시아 라는 앗수르어의 이름이다.
욕단이 (창10:25-26)13 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스발로가는 동편산(東便山)으로 이동(移動)하여 아사달(亞斯達) 산(山)에 고조선(古朝鮮)을 세우면서 아라랏 산(山)을 한문표기(漢文表記)로 아사달이라고 하였으며, 아라랏 산의 별칭(別稱)인 이름을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불렀다. 선조(先祖)인 노아시대로 부터 살았던 고향(故鄕)의 산(山) 이름을 천설(天雪)을 기념(記念)하는 의미(意味)에서 백두(白頭)의 산(山)이 됐다.
이 백두산(白頭山)은 점차 한(韓) 반도(半島) 쪽으로 이동(移動)하면서 만주(滿洲)의 핑딩산(平頂山)을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불렀고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은 3번째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 지적공사제공)
단군(檀君)은 고조선(古朝鮮)을 개국(開國)하면서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을 가르친 것으로 문헌(文獻)에 기록(記錄)되었다.
이 천부경(天符經)은 81자(字)로 되었는데, (자료16번 원문 참조)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 무진본(析三極 無盡本) 일(一)은 무(無)에서 시작(始作)되고 무(無)는 아무 것도 없는 (0)에서 점(*)이 하나로부터 시작(始作)되어 삼극(三極)으로 우주(宇宙)와 만물(萬物)이 무진본(無盡本) 다함이 없이 창조(創造)되는데, 처음 시작(始作)한 점(*)을 주제(主帝) 주(*)로 표시하여 히브리어와 한글의 모음(母音) 점(*)으로 썻고 이 모음점(母音) 点(*)(ㅏㅣㅜㅓ ㅗ )을 5방(方)으로 닷 소리(子音)7자 ㄱㄴㄷㄹㅁㅂㅅ에 찍어 한글 문자(文字)의 창제 (創製)원리(原理)가 됐다. 히브리어도 동일한 원리(原理)로 자음(子音)에 모음점(母音点)과 획(劃)을 사용(使用)하였다.
히브리어의 알렙( )은 한글의 이응 (ㅇ)과 같이 자음(子音)이지만 모음점(母音点)을 만나면 소리가(價)가 생략(省略)되어 진다. 그러나 일본어 (日本語)에서는 모음(母音) 아이우에오 ( )는 있으나 닷 소리 안에 오히려 모음(母音)이 생략(省略)되어 (예)가기구게고( )로 되었다. 그것은 일본어(日本語)가 표음문자(表音文字)인데도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문(漢文)의 략자부호(略字符號)로 창제(創製)되었다는 것을 증명(證明)하는데 한문(漢文)은 원래(原來)모음(母音)이 5성(聲)자음(子音)안에 포함(包含)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료 2,3,4번 참조 )
자료 2, 3, 4 번 한문은 태호복희 씨의 점과 획(8괘)으로 만든 문자로서 하늘의 양수 8 획과 x 땅의 음수 8 괘 = 64 괘로 하여 5 행(금목수화토) 과 5 색 (청황적백흑)5 음(궁상각치우)의 원리로 만들었다 우리가 국기로 사용하는 태극기, 놀이문화의 바둑, 장기,고너 등이 천부경에서 나온 8괘의 원리이다 *
11. 인류(人類)의 문화사적(文化史的) 고찰(考察)
( The study of mankind culturul historical)
단군신화(檀君神話)와 관계(關係)된 히브리어와 한글 그리고 한문(漢文)과 일본어(日本語)등에서 문자(文字)의 창제적(創製的) 원리(原理)로 상고(詳考)해 본다면 벨렉은 구원계시(救援啓示)인 성경(聖經)을 욕단(檀君)은 일반계시(一般啓示)인 천부경(天符經)을 인류(人類)에게 전(傳)하여주었다.
그러나 구원계시(救援啓示)는 인간(人間)을 구원(救援)하거니와 일반계시 (一般啓示)만으로는 인간(人間)을 구원(救援)할 수 없고, 일반계시 (一般啓示)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구원계시(救援啓示)도 일반계시(一般啓示)가 없이는 구원계시(救援啓示)자체(自體)를 증거(證據)하기에 불충분(不充分)하다. 이러한 이유(理由)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구원계시(救援啓示)인 성경(聖經)을 기록(記錄)하면서 일반계시(一般啓示)를 먼져 기록(記錄)하였다. 일반계시(一般啓示)의 창조(創造)가 없이는 구원계시(救援啓示)도 불 필요(不必要)하다.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이 창조(創造)된 연후(然後)에 인간(人間)이 창조(創造)되고 그 인간(人間)이 범죄(犯罪)한 이후(以後)에 구원(救援)이 필요(必要)하다.
창세기(創世記) (1-2)장은 일반계시(一般啓示)의 창조(創造)와 아담과 하와의 창조(創造) 와 (3)장에 그들의 범죄(犯罪)와 구원계시(救援啓示)가 (창3:15)에 주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창조(創造)하신 일반계시(一般啓示)를 무용지물(無用之物)로 폄하(貶下)하고 마치 육체(肉體) 없는 영혼(靈魂) 처럼 허공(虛空)에서 맴돌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구원계시(救援啓示)의 해석자(解釋者)들과 과학자(科學者)들 간에 지구(地球)의 연대(年代)는 얼마인가? 며칠 만에 창조 되었는
가? 인간(人間)의 역사(歷史)는 얼마나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질문)들로 결론(結論)없는 논쟁(論爭)만 계속(繼續)되고 상대(相對)의 주장(主張)들
을 이해(理解)하지 못 하고 있다.
(자료 18-1 ,2 )구약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문화사는 아담부터 예수님까지 61대를 수록하였다. 그 중에서 단군(욕단)에 관한 역사는 (창10:25 -32 대상1: 19-23)에 기록되었다.
(자료 19 ) 고조선은 단군왕검 1세- 47대 고열가 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었는데 1048간이다 고조선은 9한족으로 분파 되었는데 서로 상생하지 못하여 그 세력이 한반도로 위축되었다. (자료 20- 1,2) 영주지는 (BC 2337 년) 건국하여 시조 고을라왕 - 45대 자견왕까지 3275년간 병화가 없이 고조선과 9한족의 역사를 기록한 유일무이한 자료가 된다.
벨렉과 그 자손(子孫) 들은 구원계시(救援啓示)를 간직(簡織)하였고, 욕단과 그 자손(子孫)들은 일반계시(一般啓示)를 간직(簡織)하여 왔다. 그러나 구원계시(救援啓示)가 벨렉과 그 자손(子孫)에게 주어졌을 지라도 구원계시(救援啓示)의 주체(主體)인 그리스도의 행적(行蹟)인 4복음(福音)과 서신(書信)들은 벨렉과 그 자손(子孫)들이 사용(使用)하는 히브리어로 기록(記
錄)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헬라어로 기록(記錄)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정작 그 땅에 강림(降臨)할 그 때는 그리스도를 배척(排斥)하였다.
욕단과 그 자손(子孫)들도 일반계시(一般啓示)와 그 원리(原理)를 간직(簡織)하였으나 역시 벨렉의 자손(子孫)들이 복음(福音)을 배척(排斥)한 것
처럼 욕단을 곰의 아들이라고 폄하(貶下)하였다. 그뿐 아니라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곰(熊女)과 결혼(結婚)하였다 하고 가회이혼지(假化而婚之)라는 망령(妄靈)된 이론(理論)을 전파(傳播)하였다. 히브리어가 구원(救援)의 계시(啓示)인 복음(福音)을 간직(簡織)하였으나, 복음(福音)이 헬라어로 기록(記錄)된 것처럼 한글로 일반계시(一般啓示)를 설명(說明)하였으나 그 원리(原理)는 한자(漢字)로 기록(記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욕단과 그 자손(子孫)들은 한자(漢字)와 그 일반계시(一般啓示)를 거부(拒否)하고 곁길로 가고 있다. 욕단(檀君)이 가르친 천부경(天符經)은 (창 1:14-19)에 기록한 “해와 달과 별을 하늘의 궁창(穹蒼)에 두어 땅에 비추게 하라”는 일반계시(一般啓示)를 선기옥형(璿 璣玉衡) 일명(一名)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 창조(創造)의 원리(原理)와 하나님을 가르쳤다.
해(日)는 양(陽)이요 달(月)은 음(陰)이다. 하늘의 일곱(七星) 별들을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나누어 28개의 별자리를 (4 방 x 7 성)정하여 두었다. 사도요한도 (계1: 22)그리스도께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잡고 있다고 했다.
벨렉의 자손(子孫)인 아브라함도 구원계시(救援啓示)를 받을 때 (창15:5)“하늘의 뭇 별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음성(音聲)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벨렉의 동생(同生)인 욕단이 하늘의 별들을 관찰(觀)하는 선기 옥형(璿璣玉衡)의 이론(理論)을 가르쳤던 천부경(天符經)은 삼일신고(三一神誥)와 함께 우리 에게 너무 귀중(貴重)한 선물(膳物)이다.
(자료 1번)선기옥형은 단군이 가르친 천부경의 실체로써 공자가 편집한 서전 우서 요전에 기록되고 중국의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양위하면서 제작하였다. 이 문헌에 기록된 사실들은 중국을 개국한 5제(복희 신농 헌원 고양 고신)와 요순이 모두 고조선에서 분가된 인물이며
중국의 중원이 단군의 관활 지역이며 통치권 하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 한다.
(자료 6 ) 선기옥형도에 있는 28 개의 별이름이 배치되어 전체 운행을 관찰 한다.
(선기옥형의 도안은 한국은행 만원 권에 세종대왕 영정도와 같이 사용되고 있음)
선기옥형 도안에는 하늘의 28 숙의 별자리가 적혀 있는데, 이 별자리의 이름이 (욥기 9장 7절)에 기록(記錄)된 것으로 보아 고대(古代)에 천문 관측(天文觀測)의 지식(知識)은 전승(傳承)되어 왔다고 본다.
삼일 신고(三一神誥)는 창세기 5장에 인간(人間)의 수명(壽命)이 천년(千年)을 살았으나 홍수(洪水) 이후에 수명(壽命)이 급격히 저하(低下)된 사실
(事實)에 대하여 추리(推理)해 볼 수 있는 내용(內容)이 수록(受錄)되었다.
한(韓) 중(中) 일(日) 3 국(國)이 사용(使用)하는 한글과 한문(漢文) 그리고 일본어(日本語)가 각기(各其) 다른 문화적(文化的) 배경(背景)에서 출발(出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일반 계시(一般啓示)의 원리(原理)를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의 결과(結果)이다 그럼으로 욕단(檀君)의 역사적(歷史的) 근원(根源)을 밝히 가르쳐서 벨렉의 구원 계시(救援啓示)를 알게 하는 증거(證據)를 삼아야 한다.
나아가서 韓.中.日 뿐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적(歷史的) 근원(根源)이 욕단(檀君)의 고조선(古朝鮮)으로부터 시작(始作)되었음을 알게 하는 이것이 아시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人類 歷史)의 질서(秩序)와 구원계시(救援啓示)와 일반 계시(一般啓示)와의 상충(相沖)되는 이론(理論)을 정리(整理)하여 중간(中間)에 가로막힌 장벽(障壁)을 헐고 창조론(創造論)과 진화론(進化論)이나 고착화(固着化)된 동.서양(東西洋)의 과학(科學)과 철학적(哲學的) 사고(思考)와 의식(意識)에 화평(和睦)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자료 :삼일신고 원문)삼일신고는 단군왕검이 천부경과 함께 가르친 원리로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의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전하여 준 것이다. 고구려는 9한족의 1부 이었는데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계승국으로서 9한족 중 가장 강력한 힘과 광범위한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9한족의 영토는 한 반도로 위축되고 고려조와 이씨 조선을 지나는 동안 아시아의 종주국이라는 고조선의 영광의 주체성이 오히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일신고는 1-5장으로 되었는데 1장-4장은 조직신학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 단군(욕단)이 유대인의 조상인 벨렉과 형제지간 이였음을 증명 한다. 그뿐 아니라 욥기서가 기록된 시기는 벨렉과 욕단의 시대이었다는 것과 욥의 3 친구들이 선기옥형과 삼일신고의 내용들을 논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삼일신고 5장에 기록된 진리훈에 관하여서는 인간의 육체의 생명이 감(히구노 탐염 )식(분란한열 진습) 촉(성색취미음저)의 18경에 좌우 된다는 일반계시를 설명하고 있다.
12. 檀君神話의 硏究動向
( study raund porses of dangun mythology)
檀君神話의 硏究는 일반 歷史學界와 여러 종교와의 관계뿐 아니라 기독교계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어 온지 오래다. 基督敎는 유대에서 발원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난을 겪어 왔다.
그러나 헬라의 哲學과의 理論的 戰爭은 끝나지 않는 戰爭처럼 勝者고 패자도 없는 논쟁을 오늘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과학의 발달은 基督敎의 적군으로 도전장을 내고 특히 進化論이란 武器를 들고 공격하였다. 날이 갈수록 적군의 수효는 날로 증가해 가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헬라 철학의 유물인 헤겔의 제자 막스의 共産主義 經濟 理論 때문에 수많은 基督敎人이 殉敎를 했고 죄 없는 무고한 인민이 죽어야 했다.
人類歷史에는 고요한 바다에서 일어나는 태풍처럼 하나님의 啓示에 맞지 않는 偶像이나 신을 내세워 騷亂을 피우다가 사라지고 만다.
檀君神話의 연구는 우리의 민족사를 연구하는 원류인 것은 사실이지 만은 그러나 聖經 啓示의 本質을 망각하고 중간 지점에서 적당하게 화해시키는 이론으로 새로운 복음을 창출하려는 학자가 있어 근심이 되기도 한다.
檀君神話는 東洋哲學의 原論이며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유교의 어머니이다. 기독교가 유대에서 동쪽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헬라 철학의 작은 산을 넘어 구라파와 남미를 돌아 선회한 이유는 儒 佛 仙 3敎의 영향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기독교는 그동안 아시아 대륙이나 한 반도에 전래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 불 선의 막강한 세력 때문에 가시덤불 속의 겨자씨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경교는 불교와 같이 화합하여 포교의 결과 맛을 잃게 되었다.
단군신화에서 승 일연이 불교인 이면서 기독교의 동정녀 탄생설화와 같은 방법으로 기록한 것은 비록 고기나 위서를 참고하였다 하더라고 복음적 사고와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단군 신화 연구 동향은 3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 김정석 교수는 신화이기 때문에 연구의 가치가 없다. 더구나 원시적인 totemism의 가치 없는 허탄한 이야기다. 1954년에 발표한 논문과 1964년에는 한국민족의 형성사 라는 논문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종교이야기이다.
역사적 사실로 표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불교와 같이 화합하여 포교의 결과 맛을 잃게 되었다.단군신화에서 승 일연이 불교인 이면서 기독교의 동정녀 탄생설화와 같은 방법으로 기록한 것은 비록 고기나 위서를 참고하였다 하더라고 복음적 사고와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 金載元 博士는 고고학적 해석을 시도했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의 기록보다도 약 1천 년 전에 건립된 중국 산동성 가상현 자운산하의 무씨 석실의 벽화에서 단군신화의 내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 신화가 고대로부터 전승되었다고 보았다. 이 벽화의 내용들은 역시 괴력난신들로 추정되는 것들이다. 이 그림은 천사와 인간과 동물들이 혼합된 그림들이다.
神 人 獸 三合의 그림이 곧 三國遺事의 환웅 (神) 단군 (人) 곰(獸)의 삼합설과 일치 된다고 했다 사람의 생각이 글자로나 그림으로 나 일치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渤海의 大也渤이 僧 一然보다 약 560년 전의 인물로서 檀君古記에서 이 신화를 수 집하여 기록하였다. 사실은 이 신화는 만주와 몽고지방이나 북부여 지방에서 古朝鮮의 신화가 전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셋째 : 李炳允씨는 정신 분석학적으로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푸로이드 리비도(libido)적인 방법으로 단군신화를 분석하였다.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무제한적 성적 동기나 기타 원시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동기에 의해서 전적으로 지배되었던 태고 시대가 있었다고 전제하고 신화를 분석하였다. 그는 삼수를 남성적 숫자로 풀었다. 천부인 세게 삼위태백 삼천의 무리 등이다.
넷째 : 崔南善 선생은 일찍이 언어학자로서 不咸文化論을 제창했던 그는 하나님을 太陽神으로 보고 “ 밝 ” 사상과 연결된 해석을 시도하였다. “ 밝 ”은 par-kan 으로서 몽고족의 ten gol (임금) 하늘같은 뜻으로 보았다. 우리나라나 외국에도 白子가 들어가는 산 이름이 많아 不咸文化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다섯째 : 白南雲의 사회경제학적 견해가 단군신화는 인간이 자연에 대한 생산 관계적 행동 지배와 복종의 관념형태로서 귀정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시대의 자연환경은 곰이나 범이 사는 고산 지대였다고 풀이 했다.
쑥이나 마늘이나 곡물은 생산 농정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다. 단군은 신화적 천손이나 문자적으로 천군 종교적으로 제주 등의 특성을 부여 받은 실제적 인격적 특성을 부여받은 인물이 아니다 고 했다. 그는 농업 공산 사회의 붕괴기에 원시 귀족적 남계 추장이라고 했다.이 같은 해석은 유물 사상에 맞춘 억지 견해로서 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도 무속적 해석을 시도한 김태곤 역사적 해석을 시도한 이기백 등이 있으나 약술하고 다음은 기독교적 해석을 살펴본다.
13. 基督敎的 見解들
( the views by christianity)
각계에서 1960년대를 계기로 한국사상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자 기독교계에서도 민족적 고유의 사상을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기독교계에서는 복음을 토착화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단군 신화를 복음적 해석으로 시도하여 왔다.
그러나 신학적 해석을 소개하기 전에 신학적 견지에서 모든 사상의 진위를 관찰해 볼 수는 있으나 모든 사상을 복음으로 퍼줄 마치기식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곡해하는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단군 신화를 복음 적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신화는 복음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겠으며 어떤 설화는 복음적으로 해석을 못하겠는가? 어떤 종교는 복음적으로 해석을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복음은 복음으로만 해석 할 수 있고 복음을 복음 아닌 다른 것으로 해석 할 수 없고 다른 무엇을 복음으로 해석하는 일은 용납 될 수가 없다. 복음이란 다른 복음은 없다.
신학은 신학이지 다른 명제가 가미될 수 없다. 해방 신학 민중 신학 토착화 신학 자유주의 신학 바울신학 칼빈신학 루터신학 등등 이처럼 신학위에 옷을 입히다 보니 복음의 본질은 잊은 채 단군신화도 복음으로 해석 한다면 단군신화도 복음의 1종이란 의미가 아닌가?
단군신화를 정경 외에 무슨 외경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 오류이다.
기독교의 견해를 소개하면
1) 張炳日씨는 (基督敎思想 1961.2)에서 “檀君 神話에 대한 神學的 理解” 라는 주제에서 創造神化와 土着化를 시도 한 봐 있다 그는 創造說話와 단군신화를 비교하여 그 思唯性과 類似性을 찾으려 했다.
그 양자의 신관과 인간관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결론적으로 창조진리와 단군 신화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없이 받아야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우리의 향토와 문화 정신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단군신화를 창조론과 같이 받아들였는데 성경의 창조론은 신화가 아니다. 복음은 복음 이상도 이하고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2) 윤성범 박사는
첫째 단군신화는 경교의 三位一體論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가설을
내 세우고 자신의 주장을 종교적 해석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삼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인데 단군신화도 환인 환웅 단검이 모두 남성이라고 했 다.
다음은 熊女의 順從이 마리아의 讚歌와 對比되며 웅녀의 孕胎過程이 聖書의 童貞女 孕胎過程과 같다고 했다.
셋째는 三位一體의 敎理에서 東方敎會처럼 父 靈 子의 關係 秩序와 같다고 했다.
넷째는 天符印 3개는 광명의 표상인 거울 위력의 표상인 칼 은덕의 표상인 곡종을 기독교의 믿음(faith) 사랑(love) 소망(hope)에 對比하였다.
다섯째 단군 신화의 형성기가 4~8세기 어간에 형성된 설화로 추정될 때 이 는 그 시기에 서역 지방과 중국에 이미 들어온 기독교의 한 분파인 경교회(nestrorian church)가 영향을 끼친 설화로 보았다.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윤성범 박사는 단군신화는 삼위일체론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했다. 중국의 경교회적 영향으로 한국에 수용된 신화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가설은 그럴듯하지만 단군 신화가 경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역사적으로 있었다는 증명이 있고 윤 박사의 주장을 증명할 실증이 없다. 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단군 설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단군 설화가 복음이라면 그럼 복음의 본질은 뭔가? 그렇다면 단군을 그리스도라고 할 것인가? 단군은 주전 4세기경에 기록한 고문들은 어떻게 해석하며 三國遺事에도 古記나 魏書의 引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尹 博士의 가설에 대하여 金 景淵 博士와 朴 鳳琅 博士 등이 강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1963.5에 사상계에 발표한 “ 환인 환웅 환검은 하나님이다 ” 라는 윤 박사의 논문을 비판하는 논문을 소위 (전이해와 단군신화)를 기독교 사상 8-9호에 발표하였다.
그는 윤 박사가 단군신화를 처 드는 이유가 무엇이며 三一論 의 痕迹設로 토착화를 강조하는 신학자가 민족의 주체성을 추구하지만은 오히려 신앙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基督敎의 三位一體와 檀君神話는 “비슷하기는커녕 고양이와 돌 같다” 고 했다.
尹 博士는 1963 10 “단군신화는 vestigium trinitatis 이다”는 논문을 발표하여 그의 지론은 굽히지 않았다 윤 박사의 三位一體 的 惠澤의 論文은 너무나 무리하여 수 없는 論爭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논문은 교계에 檀君神話 硏究에 큰 關心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것은 否認하지 못 한다.
3 ) 김 경제 교수는 1973. 10. 세계와 선교 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단군신화에 나타난 근원적 의식구조” 가 어떤 것인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단군신화의 종교적 실체를 (1) 지상 천국의 건설 (2) 천지의 조화 (3) 자연과의 조화된 삶 (4) 평화 지향적 덕치주의 (5) shamanism 적 신앙 등으로 파악하고 기독교 신학과 대비하면서 그 특성을 부각하고 그 장단점을 무게 있게 논평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윤 박사의 단군신화에 대한 삼위일체론 적 가설과 단군동상 논도 거들어 거론하며 비판했다.
4) 김 광식 박사는 1975 “선교와 토착화” 라는 논문에서 단군 신화에 대하여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선학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검토하여 단군신화를 한국민족의 자기이해의 자각적 표현으로 본 사람이 없었음에 착안하여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사람됨을 문제 삼는 신화해석을 존재론적 해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단군신화는 하나님이 사람됨의 인격화한 신화론 적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거기 등장한 한인을 하나님의 신격으로만 해석함으로 신화의 진면목을 가리는 해석이 됐다고 보았다.
그는 신의 인격화의 근거는
(1) 한민족의 하나님 신앙의 표현으로 보았다.
(2)하나님이 야웨신이 아니라는 데서 신의 사람됨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삼위(환인 환웅 환검)를 사람됨의 시작이라 가설을 존재론 적으로 검토풀이하고
첫째 환인을 천신의 인격화로 생각하는 것은 결국 그 근원을 하나님에게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했다.
둘째 환웅을 환웅보다 더 자세히 기록한 것은 그가 구세주로 등장하여 구 원의 의지가 세상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
셋째 환검은 신의 사람됨의 구조결과로서 유지하고 보존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이 存在論的 해석은 또 하나의 해석이긴 하지만 人間의 靈魂이 天神으로 부터 기인한다는 人乃天 思想의 侍天主 的 해석으로서는 의미가 있을 지라도 복음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겠는가 ? 신화는 그 신화 자체의 논리로서 관 찰
하여야하고 신화에는 아주 복합적인 동기로 형성되는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에 단순히 해석하는 것도 보람 직 한 일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단군신화를 복음의 토착화라는 미명하에 한국 신학의 수립에 착안하여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맞도록 신화를 복음 적으로 해석하였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나 신학은 그 자체가 그 자체 ( I am that I am ) 의 권위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신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지 신화를 해석하는 동질적 신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5 ) 문 상희 교수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보았다.
신화는 인류사회에 어디서나 나타나게 된다. 신화는 문화의 유년 시대에 역사와 생활에서 부딪치는 궁극적 문제에 대하여 그 근본적 원인과 궁극적 의미와 상호 관계성을 추구할 때에 발생하는 것이다.
신화의 진수는 실제에 있어서 깊이의 차원을 나타냄에 있고 과학적으로 발견되고 분석되는 원인과 결과의 연속으로서 일어나는 역사적 표현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를 표현함에 있다고 했다.
신화는 의미와 가치의 언어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문의 의미와는 그 경정에서 신화적 형식으로 표현 된다. 한 역사적 위대한 인물은 역사적으로 볼 때는 신화적 표현과 특성을 입게 된다.
신화적이란 말은 영웅의 상징화란 뜻이다. 역사적 인물을 신화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를 영혼의 깊이에 근거한 의미의 표현으로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위대한 역사적 인물도 약 300년이 지나면 완전히 신화화 된다는 것이 신화학자들에 의하여 알려지고 있다. 역사를 신화화 한다는 말은 역사를 의미화 한다는 말을 뜻한다.
위대한 창조적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신화적 경향을 띄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직관의 본질이 신화이다 신화는 신화적 언어로서만 표현 할 수 있는 의미의 媒介體다 신화적 표상은 언제나 상징적이다.
이는 성질상 다른 언어나 사상으로 옮겨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림으로 신화는 신화의 요소에 있어서만 접근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신화는 독자적인 특성이 있어서 다른 무엇으로 대치 할 수 없다고 했다.
14. 결론
단군 신화는 언제부터 신화로 기록되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 본 바로는 상당히 긴 세월이 흘러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개국과 관련하여 역사적 실증을 찾으려는 노력도 계속되어 왔음도 밝혀졌다.
이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의견이 다양하다. 역시 기독교에서도 여러 종류의 견해가 제시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결론이 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2007년도에 국정 교과서에 단군은 실제 인물로 게제 되었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다. 왜냐면 단군의 역사가 실사가 아니라 신화라는 가공의 역사로 인식되어 민족의 주체사상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은 라 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으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할 때 백제를 복속했다고 기록됐다. 그 후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 나라를 세웠으나 통일 신라와 화합하지 못하고 결국 광활한 강토를 잃었다고 본다.
고조선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실체는 신화적 가공인문(곰의 아들)이고 그 다음은 기자 조선 위만 조선 그리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가 고구려에의 하여 정리되고 백제 신라 등이 건설되어 3국이 되었다는 참으로 애매하고 아리송한 역사를 가르쳐 왔다.
그 후 고려조가 고구려와 계승하여 신라를 복속하고 한반도는 통일을 했으나 잃어버린 고구려와 발해의 영지를 회복하지 못 한 채 북벌이라는 마지막 용단는 이조의 창업의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역사 교육 때문에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파생된 나라인 것으로 각인 시켜 민족적 단합과 화목의 정신이 결려되어 이 지구상에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한 채 분열과 반목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누가 어느 때에 이런 역사를 만들어서 우리 국민을 가르쳤다는 말인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 1945년 8월 36년 만에 해방이 되고도 62년 만에야 단군을 실사로 바로 잡았다하니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다.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빼앗긴 것이다. 나라를 잃은 것은 몸을 잃은 것이요 역사를 잃은 것은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몸은 타의에 의하여 빼앗길 수 있으나 정신은 자신이 잃는 것이다.
그럼으로 단군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신화를 실사로 인식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찾는 일은 그 문화를 찾는 일이다. 왜냐하면 역사란 문화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문화사라고 한다 단군의 역사는 ASIA 문화의 원조인 것이다. ASIA란 이사달의 원음으로서 고조선의 도읍지 이며 ASIA는 조선 (아침이 밝다) 이라는 어원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개국한 인물들은 5제가 모두 고조선의 자손들이이다.
공자가 기록했다는 서전 우서 순전에 기록되기를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 줄 때 만든 선기옥형이 있는데 이것을 혼천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 혼천의는 단군이 한글로 기록한 천부경의 원리를 실체로 제작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는 태호복희 씨가 만든 하도낙서인데 그는 환웅천왕의 5대손이며 그이 여동생은 한글을 만들었고 신지는 한문을 만들었다.
한글은 제1국어이고 한문은 제2국어이다 한문을 중국이 쓰고 있기 때문에 외국어라고 생각하나 이는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를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보라 우리의 지명과 인명 그리고 역사 등이 우리의 제2 국어로 쓰이지 않은 것이 있는가? 누가 한문은 외국어라고 하여 귀중한 유산을 버리고 우매한 국민을 만들면서도 왜 영어만을 그렇게 가르치려하는가?
공자가 평생 읽었다는 주역은 천부경의 원리를 64편으로 나누어 적은 것으로 태극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금나라의 시조 원세게의 아들 원극문은 1년에 1000명을 선발하여 단학 수련법을 무상으로 가르친다.
그 이유는 중국을 지키려면 배두산 족의 학문을 가르쳐야하는데 그 학문은 지육 체육 덕육을 가르치는 정신 수련의 원리이며 자신이 선조로부터 받은 재산을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참된 애국이 되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국의 전통적 선민사상의 주체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그러나 로마 인들은 영접하여 1000년 동안 유럽의 패자가 되어 지금도 바디칸 궁전은 천주교를 지배하고 있다.
중국인들도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로 중화민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중국이란
중앙의 토라는 의미로 동서남북의 중심이란 뜻으로서 천부경의 원리인 음양오행설인 금 목 수 화 토에 그 근거를 둔 사상인 것이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단군신화를 검토하면 우리의 문화유산을 신화라고 비방할 것이 아니고 그 신화 속에 담긴 의미와 그 역사 속에서 문화를 찾고 그 문화로 하나님을 만들어 하나님처럼 섬기는 어리 섞음을 깨닫게 하고 이러한 관심 속에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기회를 삼아야 한다.
附錄
1. 檀君 神話와 神社參拜
한국교회는 일제치하에서 40년 동안 신사참배라는 명목으로 무수한 박해를 받았다. 40년이 지난 오늘에는 다시 단군 신전 건립이라는 시련을 예고하는 듯 하여 불안하다.
역사는 언제나 평탄 하지 많은 않는다. 일치 일난의 변펀이 있기 마련이다. 1884년 선교사가 내한하여 1925년까지는 부흥기라 할 수 있지만은 그러나 1945년까지는 신사참배를 내세워 교회를 핍박 하였다.
폐지된 교회가 200 토옥 자가 2,000명 순교자가 50명이며 그 당시 조선총독부의 보고서에는 교인이 20만 명 3300개의 학교 3만 명의 학생 1900개의 집회소 27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 230명의 조선인 교직자가 있었다.
교회는 완전히 말살 되었다. 신학교가 폐교되고 선교사가 추방되고 폐교되지 않는 교회는 신사참배에 굴복하여 우상숭배의 교회만 남아서 겉으로 교회인데 내용은 신사 참배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당시 신사참배를 가결한 평양 노회는 그 후 1950년 6.25가 발발하여 부산에서 신의주 까지 붉은 사단의 세력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책으로 휴전선을 고착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단군교는 단군을 종교화하여 여러 분파를 만들어 내었다. 神社參拜도 東方遙拜라는 太陽을 하는 종교가 됐다. 그래서 國號를 日本이라 하였다. 조선은 아침의 나라인데 일본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나 문자가 한글을 모방하여 소리 글로 만들고 한문은 원문으로 쓰고 가나는 토(어조서)로 사용하는 글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고조선이 9한족으로 나누면서 왜인 이라는 분파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단군교는 이름을 바꾸어 대 종교 광명대도 용화 불교 천도교 원불교 등으로 파생되었다. 단군이 설법했다는 천부경은 동양인의 모든 종교화 음양 5행설을 비롯해서 동양철학의 모든 사상의 원리를 이루고 있다.
단군교는 일제의 신사에 밀려 만주까지 본부를 옮겨 움츠리고 있다가 일제가 항복하자 단군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대신 하려다가 초대 이승만의 반대로 오늘까지 이루지 못했다.
단군이 천부경과 함께 설파했다는 삼일 신고는 기독교 조직신학의 신론과 유사하여 동양 철학의 뿌리로서 후원자가 되어 그 옹호자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토착화 신학자는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군교의 한 분파인 東道敎는 東學이라고 하는데 崔水雲 先生이 人乃天이라는 思想으로 制唱하였다. 이 사상은 姜甑山이 계승하였고 그 후계자인 東京植은 정읍군 입남면 대흥리에 궁궐을 짓고 自稱 天子라 하였다. 그의 제자 全琫準은 東學軍을 이끌고 革命을 일으켰다. 古阜郡守 趙秉甲을 몰아내고 全州를 陷落하여 國號를 大震이라 하고 政府軍과 싸워 黃酸벌에서 勝利하였다. 이것이 세계 제 2차 대전으로 까지 번지게 됐다.
조정에서는 청나라 군대를 요청하여 전봉준 난을 평정하였으나 일본은 청일 전쟁을 자청하여 승리하고 러시아군을 초청하였으나 역시 승리하여 한일 합방을 강요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단군교와 신사와의 싸움 이였다고나 할까?
그 후 동학교도들은 손병희 선생을 주축으로 하여 3.1 독립 만세를 부르고 이준 열사를 만국평화 회의에 파송하면서 천부경과 하도 낙서의 원리인 태극기를 만들어 가지고 갔던 이유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國旗가 됐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은 정읍군 이평면 마항리 황토제에 전봉준 의거 혁명 기념비를 세우고 성역화 사업을 했다. 이 지역은 강증산의 출생지 이다.
이곳에서 동학 혁명군은 선전 포고와 같은 기치를 들었다.
3.1 독립 선언서의 서명자 33인 중에는 16명이 基督敎人이다. 그러나 그 대표자는 동학교도인 손병희 선생이다. 이 동학교도들은 단군을 敎祖로 하여 自稱天子니 大震國이니 하면서 李朝에 항거하여 正規軍을 打倒하고 世界戰爭을 일으켰다. 車 天子의 手下에는 東西南北을 關闊하는 4명의 政丞(장관)까지 임명되었다. 말하자면 천하의 패권을 잡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姜 甑山의 語錄에 보면 孔子를 中國의 責任者로 任命하고 釋迦를 印度의 책임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西洋의 聖人으로 任命한다는 文句가 있다. 이런 思想을 미루어 보면 神社 參拜의 國粹主義자들처럼 단군교의 弘益人間의 思想을 내세워 天下를 어지럽히는 大東亞 (세계 2차 ) 大戰을 일으켰다.
檀君神殿 建立 問題는 日本의 神社 參拜의 國粹主義的 發想이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공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민족의 優秀性이나 優越感을 앞세워 정당한 법과 질서를 어기고 인류의 평화와 화목을 깨는 것은 비록 단군이라 할지라도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1945년 8월 14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신사참배를 금하고 국군을 자위대 목적 외에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참고할 일이다.
參考 資料 解說
資料 1
琁璣 玉衡(선기옥형)은 孔子가 編集한 書經 虞書 舜典에 기록되고 일명 渾天儀라 부르는데 禹임금이 舜임금에게 讓位時에 제작된 天文 觀測器로서 天符經을 實物로 製作한 것으로 高麗大 博物館에 소장된 朝鮮朝 현종10년 觀象監 天文敎授 송이용이 제작하였다 (世界的인 人類의 文化遺産이다)
해설 : 애굽의 월력은 1460년 만에 나타나는 천랑성 (개별자리)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지구의 공전 주기를 365분의 4/1을 계산하지 못하여 착오를 일으켰다.
자료 2
太極旗는 太昊 伏犧 씨가 河水에서 거북이 등을 보고 그린 河圖洛書 인데 이는 8 괘의 原理로서 李 俊 烈士가 (1910년 7월 14일 서거 )네젤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萬國平和 會議에 가지고 간 후부터 우리나라 國旗가 되었다
이는 모두( 태극기 바둑 북극성 윳놀이 가위 바위 보 三足烏 등 ) 天符經의 原理이다
太 極 旗
解說
太昊는 “ 한 밝 ” 크게 밝다 는 뜻이요 伏犧란 “엎드려 제사” 한다는 뜻으로서 고조선의 단웅 천황의 5 대손으로 중국의 開國祖( 5제 복희 염제 헌원 고양 고신)가 되었다
資料 3
바둑판 ( 19 X 19 = 361 ) 3 + 6 + 1 = 10 ( 1 + 0 = 1 ) 天符經의 一積十 鉅 無 原理를 平面위에 그려 놓은 것인다 이는 天文 地理 人和를 敎習하는 精神 訓練場이다 黑과 白이 싸워서 1 点만 남아도 勝利 한다 그러나 싸워서 이긴들 하나도 結局은 없어져 버릴 것인데 ....
바둑의 원리는 하늘의 숫자 19 와 따의 숫자 19 사이에서 인간들이 8 방으로 나누어 전쟁하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바둑판
棋道十戒
不得 貪勝 入界 宜緩 對强 自補 勢孤 就和 攻彼 顧我 投子 爭先 勿愼 經速 動必 相應 小捨 取大 逢危 須棄 자료4
周易의 64 卦辭
孔子는 周易의 卦辭傳에 기록하기를 包犧(복희)씨는 神農씨에게 神農씨 는 堯舜에게 傳授한 것으로 述而不作이라고 했다 그리고 論語에서 孔子는
吾道는 一而貫之라 하고 3+6=1=10(1+0=1)( 一 積 十 鉅 無 ) 8 X 8 = 64 괘로 周易을 整理하였다 8 이란 하늘의 8 방과 땅의 8 방을 합하여 교차로 나눈 것이다 64 X 6 = 384 - 361 = 19 ( 1 + 9 = 10 1 + 0 = 1 )
天符 64 原象圖
해설 :
孔子는 周易을 韋編이 三絶이라고 하였다 가죽으로 역은 두루마리가 3번 달 토록 읽었다는 의미다
자료 5
北斗七星은 1 일 24 시간에 북극성을 한바퀴 회전 한다 天符經에 運 3 4 成環 5 7 1 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이란 (3 + 4 = 7 )과 1 (북극성)을 중심으로 5 를 ( 成環 )그리며 끝없이(萬往 萬來 )變用 할지라도 本 本心은 不動한다 고대에 별을 보고 하늘의 뜻을 분별하는 천문이 발달하였다
(창15:5)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
天符 公式 5 7 1 妙衍圖
解說
論語 爲政 第 2 篇에 爲政以德이 臂如北辰이 居其所어든 而重星이 共之
天文 易學은 春夏秋冬 四時成環하며 24 節侯가 星座에 의하여 움직 인다
선기 옥형은 天文(氣象) 觀測器로서 觀象監 (氣象廳)의 製作品이다
자료 6
天上界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그 역할을 부여하였다( 창1:16-1 ) 이 해와 달과 별은 그 자리를 지키면서 週期的으로 自轉 혹은 公轉을 한다 해를 陽이라 하고 달을 陰이라고 한다 그런데 별은 陽性도 아니고 陰性도 아니다 때로는 陰性도 되고 陽性도 된다 그렇다고 中性도 아니다
그래서 地球인 土를 중심하여 金 木 水 火의 별을 指稱하여 5 行星 이라고 한다 이 금목水火의 별들은 각각 7 개의 (4 X 7 = 28 ) 별을 관활 하여 북극성을 중심으로 성환 하고 있다 이를 28 宿이라 한다 이 별은 밤에 잠 잘 때 나타나기 때문에 下宿집이라는 用語가 나온 것이다
璇璣玉衡의 北極星을 中心한 28 宿 配置圖
解說 28 宿의 이름
東 : 角 亢 氐 房 心 尾 氣
북 ; 斗 牛 女 虛 危 室 壁
西.; 奎 婁 胃 卯 畢 紫 參
南 ; 井 鬼 柳 星 張 翼 珍
자료 7.
한글과 일본의 가나(야이루 문자)는 고조선에서 만든 소리글이요 한문은 상형 문자이다 (한글은 우리의 제 1국어요 한문은 제 2국어요 가나는 제 3국어다 ) 한글은 처음 고조선에서 만들었는데 히브리어 처럼 자음에 모음 부호를 붙여 사용하다가 차츰 문법을 만들어 세종대왕 때에 훈민정음으로 수정하여 현대문으로 발전되었다
고조선 한글과 일본 가나와 와 한문
解說
: 日本은 太陽을 중심한 國名으로 朝鮮은 아침이요 아침에 떠오른 태양을 말하는 것으로서 古朝鮮의 9 韓族의 일부였다 한문과 한글과 가나는 단군왕검조의 3 신하( 高矢 蚩尤 神誌)중 1 인으로 神誌는 文字를 創製하였다. (韓檀 古記)
解說 : 日本은 太陽(一極)을 國技로 하여 古 朝鮮(日光)의 國名과 관계가 있고 “가나”라는 文字의 名稱도 한글(가나다)과 관계가 있으며 對馬島에서 神代(고대)아이루 文字가 發見된 점 등은 倭人이 9 韓族의 一部 이였다는 기록을 증명 한다.
中國歷史 通鑑 제 2권에는 秦 始皇의 三神山에 不老草를 구하러 간 方士 徐市 등이 瀛洲(제주)를 거처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를 발전하였다 하였고 (초한전 )“ 王仁 博士는 百濟 近肖古王 (서기346-375)시대 일본으로 먼져 건너간 阿直其의 추천으로 千字文과 論語 10권을 가지고 가서 應神 天皇의 太子 우치노와 가이 로즈코의 스승이 되었다.
그후 일본은 海洋國家로서 ASIA의 강국으로 발전하기까지는 西洋의 先進 문물을 배우고 특히 英國의 憲法과 제도(천황:여왕) 선교사들의 ( 신. 구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조선의 한문을 자국의 원문으로 사용하고 “가나”의 文字는 表音이나 토씨 및 語助辭로 使用하고 있다.
遺跡 (유적) (1976년 시도 기념물 제 20호 지정 )
왕인은 일본에서 和邇 吉師라 는 尊稱을 주고 그 후손 들은 가와치 지방에 살면서 학문을 가르치고 일본 문화의 개조가 됐다 그의 유적은 일본 히라 가다 (조방)지방에 그의 무덤이 있고 전남 영암군 서동면 구림리 산 18번지 그의 사당이 있다.
자료 8
인류의 문자는 단군조에서 한글을 창제할 시기에 다양하게 만들어 사용하여 의사 소통을 하였던 것으로 고고학에서 밝혀졌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알파벳 문자도 최초에는 스메르어 였다 특히 히브리어는 자음에 모음 점을 찍어 사용하는 문자로 한글과 유사성이 있다 홍수 이전에도 사용하였던 문자가 기록된 비문에는 10명의 왕의 이름이 있어서 창세기의 홍수 이전의 고대역사를 노아가 보존하였다가 홍수 후세대에 전하여 주었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노아는 아담의 10세 손으로 그의 조부 무드셀라가
369세 때 노아를 낳고 노아 480세 되던 해에 방주를
지으라는 경고를 받았고 무드셀라는 849세이다.
무드셀라 300세 때에 그 아버지 에녹이 승천하였다.
그는 969세를 장수하고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다.
그런데 그 아들 라멕은 홍수가 나기 5년 전에 777
세를 향수하고 아버지 보다 먼저 죽었다(창5:21-32)
노아 94세때 셋이 라멕 56세때 아담아 죽었다.
그럼으로 노아의 방주는 무드셀라와 라멕 과 노아
그의 아들과 며느리 그의 아내 등 실지로는 가족이
총 동원 되었다고 본다. 노아는 480 세에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20년 후에 3 아들을 낳고 100년 후에
홍수를 만나기 까지 방주를 지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갈 짐승들과 공중의 새와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의 생물을 보존케 했다.
(창10:23) 우스 땅에 살았던 욥의 이야기 중에 욥의
3 친구들 (창 10:7) 그리고 부스 땅의(욥32:2)엘리후
등은 모두 노아의 자손들로서 노아가 살아 있을 당시
하나님에 관하여 제사(번제) 기도 회개 화목(욥1;1-5
42;1-12)등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 그렇다면 檀君王儉이 天符經과 함께 說法 했다는
渤海의 大也勃이 기록한 3 1 神誥의 내용은 욥기서의
문답 내용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고 본다.
原文은 天符經과 함께 후면에 소개하여 참조하고 우선
제 2장 天訓을 소개하면
神은 在上 無 一位하사 有 大德 大惠 大力하여 生天
하시고 主無數世界하시며 造生萬物 하시되 纖塵無漏에
昭昭靈靈하시고 不敢名量이라 聲氣願禱면 絶親見 이니
自性求子라야 降在 爾腦라 하였다.
신은 하늘 제일 높은 곳에 계셔서 큰 덕과 지혜와 권능을 가지고 하늘에 살아 계시고 셀수 없는 세계를 주관 히며 만물을 지으시되 티끌 만큼도 루락지 않고 밝고도 신령하여 감히 혜아리지 못한다 힘써서 소리내어 소원을 빌면 반드시 자신의 모습을 보이 신다 각자 마음에서 진실히 열매를 구하면 네 머리속에 임재하여 계신다.
미루어 보면 노아의 자손들은 하나님에 관한한 신앙이 거의 공통적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도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은 지금 까지 고수하고 있는걸 보면 가히 이해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만일 昭昭靈靈을 聖靈으로 自性求子 降在爾腦를 聖子 降臨으로 해석한다면 三一 神誥의 내용을 아는 자들의 불신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 진다고 할 것이다.
자료 9
지금 상용되는 알파벳 문자의 기원은 수메르 어로서 헬라어 와 히브리어의 기초가 되였으며 라틴어나 영어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그 문자의 사용은 사용하는 나라와 민족이 강성할 때는 사용인구가 확장 되었다가 쇠해지면 위축 된다. 영어는 영국이 강대국 이였다가 Amereca대륙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부터 사용인구가 많아 졌다. 그러나 인구가 많은 한문 사용의 인구를 능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알파벳 문자의 표본들
창세기 11 장 1 절에서 천하의 구음이 하나라 하였으니 아예 터키어와 같이 알파벳으로 문자를 통일하고 구음을 하나로 만드는 혁명을 일으켜 가는 것도 지구촌을 연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자료 10
문자의 종류를 개략 5 종으로 구분하면 설형문자 성형 문자 그림 문자 표의 문자 표음 문자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러한 문자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사용하는 국가나 민족의 문화와 습관 종교적 특성 그리고 정치적 감정과 영향에 따라 변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수메르어 문자의 표본 들
일본어는 원래 고조선에서 만든 한국어 와는
제 3 국어에 해당하지만 우리말에 식민통치의
감정으로 삽입되어서 알레르기성 용어로 남아
있는가 하면 한문은 역시 고조선에서 만든 제
2 국어 인데도 6.25 공산 주의 영향으로 국교
단절 상태에서 한때 한자 폐지 운동까지 일어
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농아들의 수화나 맹인들의 점자들은
자연적으로 공용 문자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자는 원래 암호나 약속 표적과 그림 등
상호 간 의사 전달이나 소통 기념일 등 기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항상 시대를 따라서
변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고문과 현대문 사이에는 외래어 지방
어(사투리)경어 저속어 등이 끼어서 동화 한다.
유대인 들은 구약의 (다니엘서는 아람어)모세 5경을 히브리어로 기록하였는데 75명의 가족으로 건너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으나 그 문자와 언어를 보존 하였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십계명을 친수로 써 주었다.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 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신약은 침략국의 언어인 헬라어로 기록하여 복음을 세계화하는데 아량을 보이고 결국 셰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였다.
자료11 (김병기 고고학 박사 한양대교수 제공 )
고대 동북 ASIA 족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터키의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엘람 (에베르)왕국을 건설하고 살다가 차츰 동쪽으로 이동하여 (창10:30) 중앙 아시아로 진출하였다고 본다. 이들은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누어지는데 고고학적 출토품에서 증명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빗살 무늬와 점으로 된 음각 토기는 주로 끝이 뾰족한 특징을 가진 토기로서 주로 북방계 민족들이 사용하였고 중국계 채도 무늬와 반치앙 토기는 남방계 민족이 사용하였다.
음각 토기 및 채색 토기 분포도
자료 12 ( 김병기 고고학 박사 )
古朝鮮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靑銅劍은 新石器時代의 빗살 무늬 土器 使用지역에서 石棺묘와 함께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에 북방계 종족이 남방계 종족의 一字形 銅劍과 사용지역이 구분되고 多듀(꼭지) 細紋鏡 과 중국계 L T V 字形鏡과 구분 된다.
遙寧式 銅劍 및 多듀鏡 分布圖
해설 :
고조선의 활동 무대는 고고학 적으로 볼때 요하유역 흑용강 연해주 요동반도 길림성 으로 추측된다.
자료 13
고조선의 도웁지는 아사달 인데 이는 ASIA의 원음 이며 앗수르어 아침이밝다 라는 의미로서 이는 고대 중동에서 고고학이나 인류학적으로 고대 아시아 족 이라고 부른다. 노아 홍 수 후에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앗수르 터키 이란 을 중심으로 아부류 제국을 건섷하고 살았다.
고대 중동지역 지도
해설 :
터키는 CAPPADOCIA 인데 TOCIA 즉 TURKY는 漢文으로 土耳其 땅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고대 지도에는 ASIA 족이라고 기록 되었고 신약성경에도 아시아 7교회라는 명칭이 사용 되었다. 이곳은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며 이스탐불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신 왕궁은 터키 해협을 건너 유럽 지역에 있다.
자료 14
노아는 홍수 이전에 600년을 살았음으로 홍수 이전의 문화와 문명을 알고 있으며 아담의 아들 셋이 874세 때에 노아가 출생하였고 노아가 94세 때에 9대 조가 되는 셋이 죽었다. 노아의 아버지인 라맥이 56세 때에 노아의 10 대조가 되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죽었다.
그 식구(아들과 며느리와 아내)가 8명 이였음으로 해서 홍수 후에 350년을 살았기 때문에 홍수 이전의 고대 문자등과 성경계시의 내용들를 포함해서 인류의 문화를 고대로부터 이어 오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노아의 10대손인 아브라함의 나이 58세에 노아가 죽었고 노아의 5대손 벨렉은 중앙아시아와 욕단은 극동아시아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고(창10:25)그 자손들이 글자를 만드는 데는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 되었다 그러나 그 제작된 문자로 상호 의사를 소통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본다.
고조선의 아사달은 아라랏을 의미하며 아시아의 원음으로서 동방으로 이동하여 본래 살았던 지명과 산명을 그대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이 아라랏 산은 높이가 5,160 M 나 되어 천연설로 머리가 힌 (백두산)이다. 이 백두산의 이름은 古朝鮮과 그 子孫들이 韓半島 쪽으로 3 번이나 首都를 옮겨 오면서 그 이름을 사용하여 白頭라는 이름의 산이 아사달의 도읍지였던 몽고의 黑龍江省과 만주의 핑딩산(대한 지적공사: 황 일송 기자)) 근방과 현재의 백두산등 56 개나 된다(국조단군)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500개가 넘는다.
해설:
아라랏산은 터키의 동북쪽이며 앗수르와 이란의 국경지대의 삼각지며 이지역을 고대국명을 아사아(해가 뜬다)라 하고 그 서쪽은 유럽(해가 진다)은 앗수르어 이다. 자료 15
노아의 (창 9 : 26 )의 예언대로 장자 셈의 자손 (ASIA)에서는 영적인 종교(예수 석가 공자 마호멭)인 들이 출생하고 야벳은 과학이나 철학을 가나안 (함)은 육체적인 면에 발전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 수 그리스도 석가 여래
공 자 마호멧 성 당
해설 :
공자는 유교를 집 대성 하였으나 유교는 실상은 단군 왕검의 선부경에 원리를 기초로 한 것으로서 원세계의 아들 원극문이 말 하기를 중국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는 백두산족의 문화라 하였으니...공자는 알아도 단군을 모르는 것은 반성할 일이다.
자료 16
天符經
一始無始一 析三極無 盡本 天一一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無 㙺化 三天 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 三合六生 七八九 運 三四成煥 五七一 杳然 萬王 萬來 用變不動 本本 心本 太陽昻明 人中 天地一一 終無 終一
三一 神誥
天訓 : 帝曰 元輔 彭虞야 蒼蒼이 非天이며 玄玄도 非天이라 天은 無形質하고 無端倪하며 無上下四方하며 虛虛空空하고 無不在하고 無不容하니라
神訓 : 前述省略
天宮訓 : 天은 神國이니 有天宮하여 階萬善하고 門 萬德이라 一神悠居에 群靈諸哲護侍하며 大吉祥 大 光明處라 惟性通 功完者라야 朝하여 永得 快樂하리라
世界訓 : 爾觀 森列 星辰 數無盡 大小明暗 苦樂不同 一神 造群世界 神勅 日 世界使者 活 七百世界 爾地 自大 一丸世界 中火 震盪 海幻 陸遷 乃成見象 神呵氣包底 照日色烈 行羽化遊栽 物繫殖 翼
眞理訓 : 생략
해설 : 노아는 아담의 아들인 셋의 9 代孫으로서 94세에 셋이 죽고 홍수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나이 56세에 죽었다 단군조선의 건국시기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세대의 중간 지점인 벨렉과 욕단의 분리시기 ( 창10:25) 으로 볼 수 있다.
욥기서에 기록한 욥과 그 친구들의 대화 내용으로 본다면 성경의 기록된 계신인 성경의 내용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약2:19) 귀신들도 하나님을 한분인지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럼으로 토착화 신학이나 혹은 민족복음화의 이론으로 또 하나의 분파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비록 단군이라 할지라도 이를 빌미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리스도는 아담부터 계시의 전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마 1 : 1-18) (눅 5: 23-38)(창 3 :15)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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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君神話와 基督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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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 권 을 식 예정
중국어 : 장 세 화 !!
터키어 : 이 승 열 !!
몽골어 : 최 영 하 !!
독일어 : 강 명 수 !!
히브리어 : 유 재 원 !!
파본은 바꿔 드립니다 (본 저작과 번역 및 보급에 좋은 의견과 정보를 받습니다 )
인류의 시조는 아담 이요 그
중 시조는 노아 이다 그런대
우리 나라의 시조는 단군이다
그럼 어딘가에 단군의 역사가
숨겨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숨겨진 비밀의 열쇠를
찾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침 안개
가 거치듯 밝아 질 것이다
그 후에 독자 들의 의향에
따라 판단하고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무었을 어떻게 해
야 하는지도 말하게 될 것이다.
자료 17 표지해설
동굴교회
기암 절벽의 동굴교회는 Turky의 Cappadokya에
있는 천연 관광명소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기도
와 수련의 동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신약성경 벧전 1:1 행 2: 9 본도와 갑바도기아
지방이 언급되었다 요세프 사가는 이곳이 베드로
사도의 사역지 였다고 하는데 로마의 박해시에는
카타콤과 함께 피난의 본 거지였다.
지하에는 2만명이 살수있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
어 한문 표기는 土耳其 흑속의 나라라고 불렀다.
욥기2:12 -13, 5: 6, 7 : 5 등을 살펴 본다면
욥이 고난을 당하여 3친구와 같이 7 주야를 옷을
찢고 티끌을 무릅쓰고 흑에 앉자 시련에 동참하
는 대화의 장소가 여기 였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특히 9 : 7-8 에 기록된 내용은 단군조의 선기옥형의 천문(북두성 삼성 묘성)에 관한 논지는 고대 문명의 발자취의 추적과 모세5경의 창세기 의 문자적 계시기록 설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모세5경중에 창세기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로 노아의 홍수사건과 아담에서 노아까지 노아에서 아브람 까지 요셉의 애굽의 통치와 그간의 역사적 사실들을 문자의 기록이 아닌 기도의 영감으로 기록 했다는 해석들은 모세5경의 계시의 불가침적 논설이다.
CappaKoia 란 아람어의 “자비와 사랑”이란 의미로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형제지간 이라 할 만큼 유사할 뿐 아니라 노아 홍 수 이전에도 기록된 문자가 많다.
자료 18(1) 고대 인류(古代人類) 의 년보(年譜)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넣어 생령이 됨
대수 |
이 름 |
나 이 |
아 들 |
특기 사항 |
향수 나이 |
참조 사항 |
1 |
아 담 |
130 세 |
셋 |
가인 아벨 |
930 세 |
창5 ; 3-5 |
2 |
셋 |
105 세 |
에노스 |
셋이 886세 노아 출생 |
912 세 |
노아 26세 셋이 죽음 |
3 |
에 노 스 |
90 세 |
게 난 |
|
905 세 |
|
4 |
게 난 |
70 세 |
마할랄렐 |
|
895 세 |
|
5 |
마할랄렐 |
65 세 |
야 렛 |
|
895 세 |
|
6 |
야 렛 |
162 세 |
에 녹 |
|
962 세 |
|
7 |
에 녹 |
65 세 |
무드셀라 |
승 천 |
365 세 |
창5 : 25 |
8 |
무드셀라 |
187 세 |
라 멕 |
최 장수 함 |
969 세 |
홍수 당년 죽음 |
9 |
라 멕 |
182 세 |
노 아 |
라멕 44세 아담이 죽음 |
777 세 |
라멕 5년 전 먼져 죽음 |
10 |
노 아 |
500 세 |
셈, 함, 야벳 |
480 세 방주 제작 명령 받음 |
950 세 |
홍수 심판 |
600 세 | ||||||
11 |
셈 |
102 세 |
엘람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 람 |
엘람그돌라오멜 소돔 고모라 전쟁 이르 킴 |
600 세 |
아람-우스 욥이 출생 |
12 |
아르박삿 |
35 세 |
셀 라 |
|
438 세 |
|
13 |
셀 라 |
30 세 |
에 벨 |
|
433 세 |
|
14 |
에 벨 |
34 세 |
벨렉, 욕단 |
형제 분리 |
464 세 |
창10 : 30 |
15 |
벨 렉 |
30 세 |
르 우 |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짐 |
239 세 |
아브람의 조 상 이 됨 |
욕 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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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13 명 |
메사에서 스발로 가는 동편 |
산에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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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1:17-23 | |
16 |
알모닷 셀렙 하실마윗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위라 요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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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나라와 방언과 지역으로 나라를 세 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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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 31 |
자료 21 탐라국의 왕명과 재위 기간 및 년표 (BC2337-AD 938= 3275년간)
대 |
이 름 |
재위 |
특 기 |
1 |
을나왕 |
132 |
BC 3337 년 건국 ( 고조선 건국 BC 2333 ) |
2 |
건 왕 |
439 |
禹王 塗山 회의시 치수의견서 왕자 부류 참석 제출 |
3 |
삼계왕 |
644 |
단군조선 아사달산 神享후 受恩 1048년 장수(세계 인류중 최다 ) |
4 |
일망왕 |
188 |
奇子 元年 自 檀君 入 亞斯達山 爲 165년 朝 周 獻 洪範 過 作 麥秀歌 讚 千世之壽 于高氏相繼而 享國之理 |
5. |
도제왕 |
164 |
기자조선 문혜왕에게 거북을 바치고 경전을 선물로 받았다 |
6 |
언경왕 |
152 |
亦從 周制 置 景天尺 始知 南克 2 주간 선춘 후추 지후 감지 |
7 |
보명왕 |
99 |
周영왕 21년경술 8월27일경자 孔子생 경왕 23년 문례 주하사 老子 |
8 |
봉천왕 |
93 |
공자 서역 괘사전왈 건곤기역지문 임술 2월 18일 을축 공자 졸 |
9 |
환 왕 |
101 |
주 현왕 36년 연왕이 기자조선 번한지방 천여리를 찬탈 기자 피입 탐라 시서예악 의무 음양복무지서를 번역교화 제도 주화 |
10 |
시 왕 |
68 |
주 보왕 원년 병오 진이 서주를 고취로 천도 임자 동주 멸망 기자조선 삼로 왕 형 2년이다 |
11 |
욱 왕 |
40 |
진시왕 爲 황제 기자 箕姓 定名 遣 徐市 求 三神山 불사약 庚辰 축 장성 |
12 |
항 왕 |
50 |
한고조 초 의제 심 서초패왕 항적 원년箕子朝鮮 애왕 15년연인 위만 피 축 이도 금마군마 진 변한 급 50국병립 위만 피노관난 축기준 도 왕검성 |
13 |
위 왕 |
52 |
한 무제 원봉 3년 기유 공손축 위만손자 우거 정벌 4군 설치 동방삭의 권류로 영주 불로초 구거 |
14 |
영 왕 |
47 |
마한 효 왕 기형 10년 한 4군 한 소제 시원 5년 以爲 2 部 |
15 |
후 왕 |
51 |
수 신라성주 한 선제 5봉 원년 마한 원왕 기훈 2년 지 을사 백제 소멸 진한 임진 강우 신라 혁거세 서라벌 위 왕 |
16 |
두명왕 |
49 |
한애제건평원년신왕분반역14년 동명성왕 고주몽 본성해씨 원인 고시례지 후예 분봉 시 게 9이지 성 한 원제 권소 2년 고 송양 성천 위 도 읍 동부여왕 무자 취 유화 득금와 난생어구려산 도지 졸본 계 해부류입왕 취예씨 생유리 백제 온조 12년 주몽 취왕녀 생자 장왈 불류 차왈 온조 |
17 |
선주왕 |
50 |
신라 박유리 21년 고구려 민중 원년 백제 다류왕 17년 하락수로 2년이다 하락 아도간 9추장 견 龜峰異氣 득 금합 6금난 배출 6동자 장왈 수로 남 천축국 왕녀 생10자 수로 제 5인 위 분 5 가야 왕 신라 석탈해 출생 시 한 명제 견사 헌하 석씨지 景 고속기내 가지 |
18 |
지남왕 |
50 |
한 화제영원 6년 신라 박파사 15 축 월성 고구려 태조 42년 백제 기륵 18년 혁거세 38년 遣瓠公 왜인 입국자 빙마한 잉 연해 지 본국 찰 산천 풍속 칭지왈 차 본 도 동남극 노인성 공 북두지형 운 사지 권면 세수번공 애맥 파속 신라 이물 교역 |
자료 21(2) 탐라국의 왕명과 재위기간 및 연표
대 |
왕 명 |
재위 |
특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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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성방왕 |
51 |
한 충제 영가원년 박일 성왕 12년 고구려 태조 93년 백제 개류왕 18년이라 신라 아달라왕 2년 한 환제 영수원년 시계 계림령 (죽령 조령) 시화 동물 화 사상통고 본국 공선 상선 井貿土産 각색 품목 천하재보지방 칭언 |
20 |
문성왕 |
48 |
한 헌제 건안 원년 경자 위왕 비 신축 한소열 임인 오왕 권신라 석내해 원년 고구려 고국천왕 18년 백제 초고왕 31 이였다 차시 탐라 유해 기상이변 경년불해 신령과 3신제사후 회복 (동례: 신령지성 신명지도 치복우국야) |
21 |
익 왕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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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두 언
한민족(韓民族)의 역사(歷史) 그것은 이 땅에서 호흡(呼吸)하고 살아온 우리 선조(先祖)들의 총체적(總體的)) 발자취다 무릇 뿌리 없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역사(歷史) 없는 민족(民族)은 존재(存在)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牧會)자 신분으로서 이러한 민족(民族)의 궤적(軌跡)을 되돌아보고 연구(硏究)정리(整理)하여 민족(民族)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우려 몸부림치는 분이 바로 고 재상 박사이다
특히 성자 예수가 희생(犧牲)과 사랑을 몸소 실천(實踐)하여 전쟁 갈등 원망 미움 파괴 등 암흑과 같은 세상에 희망(希望)의 빛을 던져 주었듯 단군(檀君)성조(聖祖)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가르쳐 정의(正義)롭고 바른 세상(世上)을 열어 주었다는 점은 맥을 같이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民族)은 단기(檀紀) 4343년의 장구(長久)한 역사(歷史)속에 평화(平和)를 추구하며 지나는 동안 6.25와 같은 참담한 시련도 장대(壯大)하게 딛고 일어서서 G20 정상회담(頂上會談)을 개최(開催)하는 나라로 발전(發展)하는 근저에는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과 단군(檀君)사상(思想)이 역동적(力動的)으로 gm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 한다
아무리 세태(世態)가 변하고 생업(生業)이 바쁘다 해도 지나온 삶의 궤적(軌跡)을 외면 할 수는 없다
역사는 자동차의 백미러(Back mirror)와 같은 것이라 했다 차(Car)가 안전(安全)하게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미러를 보아야 한다 과거(過去)에 안주(安住)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未來)를 설계(設計)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군(檀君)성조(聖祖)에 대한 연구(硏究)는 참으로 가치(價値)있는 작업(作業)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가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연구(硏究)자료(資料)에 있지 않나 싶다 고 재상 박사의 높고 깊은 뜻에 경의(敬意)를 표 한다
2010년 10월 10일
그린 비젼 코리아 중 앙 회 장 (겸)
(사) 한국 민족문화 사업회 상임고문 송 창 달
자료16 종교(宗敎)의 연원(淵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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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
(유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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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상무기를 만듬 |
가 인 |
셋 |
아벨 |
제사제도로 순교해 순 교 | |||||
홍수에서 구원받음 |
노아 (10대손) |
120년 동안 방주 지음 | |||||||
함 |
셈 |
야벳 |
헬라철학 소크라데스 시조 | ||||||
가나안 |
구 스 |
아 람 |
룻 |
아르박삿 |
앗수르 |
엘람 |
에베르 |
왕국 | |
여부스 |
라아마 |
이므롯 |
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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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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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겔 |
소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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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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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 |
| |||
엘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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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렉 |
욕단 |
(아우) |
스바로가는 동편에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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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 |
알모닫 세렙 하살마윗등 13명의 아들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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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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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 |
| |||||||
(하란에서 205세에 죽음) |
데라 |
| |||||||
(갈대아우르에서 죽음} |
하란 |
나홀 |
아브람 |
엘람왕그돌라오멜이소돔고모라전쟁을 이르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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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 |
라반 |
이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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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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