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빈 자리에
그대 떠난 빈 자리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꽃 한송이 피리라 천둥과 비 오는 소리 다 지나고도 이렇게 젖어있는 마음 위로
눈부시게 환한 모시 저고리 차려 입고 희디힌 구름처럼 오리라
가을 겨울 다 가고 여름이 오면 접시꽃 한송이 하얗게 머리에 꽃고 웃으며 웃으며 내게 오리라 그대 떠난 빈자리 절망의 무거운 발자국 수없이 지나가고 막막 하던 닙빛 하늘 위로 사랑 한다는 것은 영원 하다는 걸음으로
꽃 모자를 흔들며 기다리던 당신은 오리라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생명 다하는 그날 까지 우리 서로 살아 있다 믿으며 살아 있는것도 기다리는 것도 그래서
영원 하다 믿으며 그대 떠난 빈자리 그토록 오래 고인 빗물 위로 파아란 하늘은 다시 떠 오르리라
달 맞이 꽃
쥐똥나무 줄 지어선 길을 따라 이제 저는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달 맞이꽃 하염없이 비에 젖는 고갤 넘다 저녘이면 당신의 머리 맡에 울뚝 울뚝 노오란 그리움 으로 피던
그 꽃을 생각 했습니다
슬픔 많은 이세상 당신으로 해서 참 많이도 아프고 무던히도 쓸어내던 그리움에 삼백 예순날 젖으며도 지냈습니다
오늘 이렇게 비 젖어 걷는 길가에 고랑을 이루며 따라오는 저 울음 소라가 가슴 아픈 속 사연을 품어 싣고
굽이 굽이 세상 한 복판을 돌아 크고 넓은 어느곳 으로 가는지를 지켜 봄니다
당신이 마지막 눈 한쪽을 빼서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던 이세상 내 남아서 어떻게 쓸모있게 살아 가야 하는지를 당신은
철마다 피는 꽃으로 거듭 거듭 살아나 보고 또 지켜 보리란 생각을 하며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먼길 안에
이렇게 서서 한번더 뒤를 돌아다 보고 걸음을 다시 고처 딛습니다
잎 지고 찬바람 부는 때면 외롭기도 하겠고 풀 벌레 울음소리 별가를 스칠때면 그리움의 아픔에 새는 밤도 있겠지만
이세상 모든 이들도 다 그만한 아픔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사는 줄을 아는 까닭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멀리가는
바람속에 당신의 고운 입김 있으려니 생각하고 가장 먼곳에서 가장 가까이 내리는 빗발속에 당신의 뜨.거운 눈물도
섞였으려니 여기며 저는 다시 이세상 으로 통하는 길을 걸어 내려 갑니다 아픔 많은 내세상 자갈 길에 무릎을 깨기도 하고
괴롬 많은 이세상 뼈를 깎이기도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이야 누구 에겐들 앗기우겠습니까 ?
홀로가는 이 길위에 이침 이면 새로운 하늘 한낮의 구름 달이 뜨고 별이 뜨는 매일 매일 그런밤 있으니 이세상 다하는 날까지
달맞이 꽃 지천으로 피듯 우리들 사랑도 그런 어느 낮은 골짝에 피어 있겠지요
우리들 사랑도 그런 어느 그늘에 만나며 있겠지요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
하나의 과일이 익을때까지 우리는 오랜날 당신을 기다립니다 빗줄기가 우리의 온몸을 흔드는 밤이면 우리는 그 빗발이
다할때 까지 당신을 생각 하며 비를 맞습니다 소소리 바람이 몇달을 두고 우리의 가지를 꺽으려 할때 우리는 그 바람 속에서
바람이 다 하는날 새로이 오실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바람앞에 온 몸을 세워 놓습니다 때로 우리의 살을 깍는 것들이
끝없이 달려오고 때로는 우리가 한 없이 버림 받으며 있어도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 우라는 오랜날 당신으로 이겨 냅니다
어둡고 지리한 구름이 끝없이 머리를 덮고 뜨거운 화살들 껍질마다 꽃히고 새벽이 가장 가까히 오는 시간마다 몸서리 치며
빼앗겨야 하는 내 몸속의 얼마 남지 않은 따스함 마저 잃었을 때도 우리는 다 비우고 난 뒤의 넉넉함 으로 다시
당신을 기다립니다 ]하나의 과일이 익을 때까지 우리는 오랜날 당신을 기다립니다
접시꽃 꽃씨를 묻으며
모든것이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들판에 사랑 하는 사람이여 나는 이꽃씨를 묻습니다
이 들녘 곱디 고운 흙을 손으로 파서 그 속에 꽃씨 하나를 묻는 일이 허공에 구름을 심는 일처럼 덧없을 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약속 입니다 은 가락지 같이 동그란 꽃씨를 풀어 묻으며
내가 당신의 순하던 손에 끼워 주웠고 그것을 몰래 빼서 학비를 삼아주던 당신의 말 없는 마음처럼
당신 에게로 다시 돌려주는 내마음의 전부 입니다 늦은 우리의 사랑처럼 저문 들판에 접시꽃 꽃씨를 묻으며 잊혀지는 세월 지워지는 추억 속에서도 꼭 하나 이땅에 남아 있을 꽃 한송이 생각 합니다
마늘 밭에서
마늘 밭에 바람이 소리 없이 분다 민들레 꽃씨가 들을 건너다 가볍게 떨어지고 뚝 사초도 함께 흔들린다
쓰러지고 쓰러지며 마늘 잎은 소리가 없다 맵고 단단한것 하나씩 키우기 위해 왕겨 지푸라기 두엄 덩이와 함께 썩으며
어둡고 쓰리던 시절 다 보낸 뒤에도 마늘 잎은 바람에 몸을 휘이며 아우성 치는 법이 없다 뜨겁지 않은 봄볕 속에서 잎끝 노랗게 태우며 살아도 소리침 하나 없이 마늘 잎은 쓰러지고 일어선다 바늘밭 위로 바람이 분다
흙 묻은 머리칼 귀밑 머리께로 쓸린다
장다리 꽃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 꽃은 가장 짙다 남녘으로 떠돌며 사무치게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장다리꽃 껴 안았다
벼툿길로 바람은 질러 오고 고개 이쪽에 몇개의 큰이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노래 남기고 손사래 치던 장다리꽃
고개를 넘다 비를 맞으며 손 바닥에 시를 시를 적었다 남은 세월 젖으며 살아도 이길의 끝까지 가리라고 적었다
등줄기를 찌르는 고드래 같은 빗줄기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 꽃은 가장 짙다
눈을 쓸면서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내 아직 어려서 눈물이 믾고 오직 한가지만을 애터지게 사랑하여
내 일상의 뜨락에 가득 가득 눈들이 앃일때 당신은 젖은 빗자루로 내 앞의 길을 터주고 헐거운 내 열정의 빗장마다
세차게 못 박아 주던 망치 소리 였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철철 고여 넘치는 우물 이기전에 그 우물에서 퍼올린 두레박 가득한 하늘빛 이기전에 썩고 버려진 것들과 함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섞이어 흘러가지
아린 소금물 첨벙 첨벙 허릴 적시며 외진 갯가로 배 밀어 가시던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눈 내리는 당신의 하늘만 다 못거둔 아품 이지 않고 눈발 처럼 소리도 못하고 땅속에 스러지는 이 땅에도
아픔은 너무 깊지 않습니까 ? 내 다시 이렇게 눈을 쓸며 당신 앞으로 갈때 슬픔은 오직 슬픔의 것이라 하시며 손가락 끝으로
쑥새 몇마리만 가리키려 하십니까
당신의 갯가 위로 부는 바람은 이땅 위에도 붑니다 당신 앞에 덧없이 지는 이국의 꽃 말고
땅에 떨어저 모진 바람 밑에 썩는 믾은 것들은 우리가 거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
비겁한 우리를 미워하는 우리들 사랑에 희망의 누룩으로 당신은 썩을수 있고 의롭지 않는 것들과 싸우는
우리 마음속 횃불타는 기름으로 당신도고일수 있습니다 당신이 뼈 아프게 찿는 양식을 나 또한 일생을 바처 찿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허기처럼 내리는 이 눈발로 하늘의 양식을 빚어내고 계시렵니까 ? 녹는 것들이 모여 물줄기 이루어 가듯
이 땅에서 서로 뜨겁게 녹으며 사랑하면 짧은 이 삶이 고이어 영원으로 흐르지 안겠습니까 ?
화랑 에서
선생님 ! 모래밭이 있는 화폭을 지나 물방울 모래 한알 버리지 않고 소중히 걸어가신 당신의 맨발을 만났습니다
졸업식날 선생님 께서 주신 만든꽃 세송이를 한해가 멀게 옮기는 이삿짐 마다 꾸려 넣은것은
저도 아름다운 화가가 되리라는 소망 이어서 먼지 덮이는 삶을 늦도록 뉘이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밑 그림으로 자화상을 그리기가 가장 좋아 빛과 어둠 목탄으로 새기며 오래도록 여백에 넣을
정지된 풍경을 떠올리곤 했지요 선생님 ! 아름다움이 가장 숨길수 없는 눈길에서 만나자고
봄 풀처럼 형체로 커 오르는 것이라면 인간들은 무슨 뜻으로 제 살던 벽에 들소를 그렸을까요 ?
과일 몇개가 얹힌 탁자 모서리나 꼼짝 않고 하늘 받치고 선 나무들과 식물원 조각 조각 끝없이 황금 분할 하는
햇빛으로 하나 가득 채워가라 하시며 당신께선 한번도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그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삶은 추상화 일수 없고 어느 아름다움도 사람의 일과 떨어져 있는것은 없습니다
외곬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아름 답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삶의 방울일때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
십오년 가까히 못뵈온 선생님은 오늘 화랑에서 그림 으로만 뵈옵고 물러 갑니다
수몰민 김시천
물푸레 나무 베어 도끼자루 만들었네 높은산 소나무 찍어 노를 만들고 버려진 송판으로 거룻배 한척만들었내 아내와 함께
아침강에 배 저어 나가 떠오르는 것들 건저 왔지 돌절구, 연자매, 맷돌은 가라앉아 아니뜨고 무거운 슬픔들도 영영 가라앉아
아니뜨고 크고작은 이별들도 떠오르지 않았지 까맣게 올려다 보던 은행나무 위로 회치는 배를 밀어 나가며
다시는 피지 않을 산수유꽃 생각 했네
어떤날은 디딜방아 를 건저오고 어떤날은 구유도 건저오고 간혹 지게가 물살에 밀려오는 날도 있었지
물 한모금 솟지 않는 산마루일 망정 아내와 함께 울없는 집을 짖기로했네 흘러 내리는 돌들 모아 마당에 깔고 불 없는 밤은
서로 안고 견디었네 이곳에 다시 남으리 한 많은 이땅의 텃밭에 마늘 놓고 씨 뿌리고
끝끝내 떠나지 않는 사람들과 다시 남으리
너의 피리
각 고개 아래서 네가 피리를 불면 강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백오십척 물 밑에 가라앉은 제원군 청풍면 물태리
떠나가던 사람들 두고간 소리쫗겨 올라온 사람들 다 못건저온 소리들이 비봉산 허리를 감으며
시퍼렇게 독오른 바람되어 솟아 올라 강물 위를 우우우 몰려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옮겨 지은 고가 마다
사람 잃은 부엌문 삐걱 대는데 추녀밑 씨레기 다발 강 바람에 흔들리고 뒤안의 마른 댓잎 서로 살 베이며 지르는 소리
둥구미 다래끼 나무 쇠스랑 기대 누운 댓돌위에 저녘놀 소리없이 젖으며 내리는데
하루해 멀다하고 떠나가는 산골 학교 어찌하여 너는 떠나지 않아야 하는지 말하지 네 속마음 고인 소리들 들려온다
어떤 연인들
동량역 까지 오는 동안 굴은 길었다 남자는 하나 남은 자리에 여자를 앉히고 의자 팔걸이에 몸을 꼬느어 앉아 있었다
여자는 책 갈피를 한장 한장 넘기고 남자는 어깨를 기울여 그것들을 읽고 있었다 스물 여섯 일곱 되었을까 !
남자의 뽀얀 의수가 느리게 흔들리고 손가락 몇개가 달아나고 없는 다른 손등으로 불꽃자국 별처럼 깔린 얼굴위
안경태를 추수리고 있었다 뭉그러진 남자의 가운데 손가락에 오래도록 꽃이는 낮선 내 시선을 끊으며 여자의 고운손이
남자의 손을 말없이 감싸 덮었다
굴을 벗어난 차창밖으로 풀리는 강물이 소리치며 쫗아오고 열차는 목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남자의 손가락 두개 여자는 남자의 허리에 머리를 기대어 있었고
남자의 푸른 심줄이 강물처럼 흘러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