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에덴동산에서 찾아보는 ‘주의’ 교회 이야기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본문 : 창세기 2장 17절(8~17절)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새번역>
영어 속담 중 보통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영어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로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으로 주로 표기되거나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옵니다. 유명한 ‘고백록(Confessions)’의 저자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와 그의 어머니 성 모니카(St. Monica)는 밀라노에서 살다 로마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밀라노와 달리 토요일이 금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중에 밀라노에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는 대주교 성 암브로스(St. Ambrose)에게 말한다. "When I am here (in Milan) I do not fast on Saturday, when in Rome I do fast on Saturday."(내가 밀라노에 있을 때는 토요일에 금식을 하지 않았는데 로마에서는 토요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이 말을 사용한 후부터 사람들 입에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는 표현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현지의 관습과 예의를 따르다, 혹은 법을 지킨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이 말이 다소 앞서 나가 특정집단, 가령 군에 입대했으면 그에 맞게 (고개를 숙이고) 행동하라는 식으로 다소 강압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어원이야 어찌됐든 이는 어떤 상황에 처할 경우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순리라는 뜻일 것입니다. 가령 외국에 와서 살면 그 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뿐만 아니라 한국에 오면 한국법을, 일본에서는 일본법을, 중국에서는 중국법을 따르는 것처럼,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 나라에 맞는 법으로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런 속담류들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맞는 말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 받아들일 수 있는 일에는 웬만해선 ‘왜’라는 의문문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순리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반드시, ‘순리대로’를 적용해야 하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가장 먼저 이 땅에 만들어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동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진 에덴동산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장소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고 나서, 아무리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어떠한 이유로라도, 하나님의 법칙을 깰 수는 없습니다. 법칙에 순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에,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피조물의 선택은 마땅히 순종을 뛰어 넘은 복종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자신이 직접 일구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제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여기 에덴동산을 맡아서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 위임식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16~17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구절에 대해서 우리의 해석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셨고, 아담은 들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이 명하셨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 하필 그런 나무를 만드셔서 앞으로 혼란을 만드셨던 건지 의아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으니 먹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금지하셨으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자유의지’와 함께 해석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류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법칙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제외하고 모든 것은 아담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곧 이어 창조된 여자, 하와에게도 자신이 들은 그대로 동일하게 가르쳐 주기만 하면 됩니다. 질문할 필요도 없고, 논의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 이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2025년 표어로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를 채택하고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1월에 나누었던 우리의 정체성으로 증인이며, 기도하는 사람이며, 주인의식을 가진 종이며, 호감이 가는 존재로서의 우리는 사실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준비된 우리는 오로지 ‘주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주의’ 교회인지는 이 한 구절이 완벽하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마태복음 6장 33절A, 새번역>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교회여
야 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는지 질문하거나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묵상하거나 답답한 마음에 반문할 내용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언제나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돌아와야 할 원점이면서,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말씀하신 그대로 ‘아멘’으로 순종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왜’라는 질문이 아닌 ‘네’라는 대답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출발점에 잘 서 있기만 해도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기본이라고 생각해서 기본기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기초부터 튼튼해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도, 하와도 결코 선과 악을 아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뱀의 유혹에 오히려 말씀으로 물리쳤어야 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흔들리게 됩니다. 아담도 하와를 붙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아담에게도 하와와 동일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창세기 3장 6절, 새번역>
‘주의’ 법칙에서 ‘나의’ 법칙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의 결과는 정말 참담했습니다. 정말로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장난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실수라고 봐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어겼고, 이미 늦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신학자들이 신앙생활이 아주 단순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라고 하는 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말라!” 이 법칙을 알려주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교훈이나 장로들의 전통을 두고는 수많은 질문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음으로 하고!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주의’ 교회라고 천명하고서도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따를 마음이 없다면 그건, ‘나의’ 교회이며, ‘사람의’ 교회일 뿐입니다. ‘주의’ 교회는 말 그대로 주님의 것으로만 구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교회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당연한 법칙으로 따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교회는 교회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절대적인 목적이라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라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주의’라는 이 단어를 기초로 하여 딛고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아니라, ‘주의’ 나라와 뜻 위에 세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1월에는 ‘우리’라는 정체성에 대한 묵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2월에는 ‘주의’ 라는 말이 가진 엄청난 뜻을 발견하고, 다시 기초로 돌아 가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회복시켜 드리는 2월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어인 ‘주의’ 방법이 드러난 말씀을 살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주의’라는 단어에 민감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닮아가야 할 예수님도 이 ‘주의’ 라는 단어를 알려주셨고, 외치셨고, 먼저 그 단어 앞에서 언제나 순종하셨던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그 구절들 중 몇 가지 말씀을 나누면서 ‘주의’ 라는 단어를 남은 주일 하루 한 걸음 더 깊게 묵상해 보시길 소망합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태복음 7장 21절, 새번역>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복음 12장 48B~50절, 새번역>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누가복음 22장 42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내 주여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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