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세력교체 중…친문(親文)에서 친명(親明)으로
- 19‧20대 대선 걸쳐 지속된 친문-친명 갈등
- 이재명 대선 패배 이후 도리어 ‘정권 책임론’ 부상
- 윤호중 비대위는 ‘비토’…원내대표엔 ‘친명’ 박홍근 당선
- 서울시장 ‘송영길 차출론’ 제기 등 지선 공천에 적극 개입하는 친명계
- 8월 전당대회 ‘승부처’…차기 지도부 구성 따라 세력 구도 결정될 전망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공고한 듯했던 친문(親文, 친문재인) 진영의 몰락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부터 이어진 계파갈등에서, 친명(親明, 친이재명)계는 친문계에 세가 밀려 당내 비주류로 자리하고 있었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을 기반으로 두고 있던 친문계는 오랜 기간 당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하며 민주당의 ‘친문 천하(天下)’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당의 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역대 최소 표차인 0.73%차 대선 패배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평가가 확산되면서 당의 여론은 이 후보 쪽으로 기울어졌다. 대선 이후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친문계 윤호중 위원장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이어진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친명계인 박홍근 의원이 선출됐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친명계는 6.1 지방선거 공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친명계 인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방선거 공천으로 당내 세력을 더욱 확대해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려는 친명계의 로드맵에, 친문계 역시 적극 방어에 나선 모습이다.
친문계와 친명계의 대립 구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9대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지사가 충돌을 빚었던 당시부터 양측의 계파 갈등은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이재명 전 지사와 대립하던 친문 계파는 친노(親盧)에서 친문, 친이낙연으로 이어지는 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전통적 지지층과 부딪힌 탓에, 친명계는 친문계와는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당내 비주류로 취급돼 왔다.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로 변하기 시작한 세력 구도
이런 분위기는 지난 20대 대선 경선에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전 지사가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우세를 보이자, 그에 힘을 싣는 여론이 확산된 것이다.
이재명 전 지사가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친문을 중심으로 한 이낙연계와 이재명계 지지자들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후보교체를 요구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김연진 스페이스민주주의 대표를 비롯한 당원 4,369명이 이 후보에 대해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신청하기도 했다. 친문 단체인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은 집회에서 이 전 지사의 ‘형수 욕설 파일’을 재생시키는 등 이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벌이다 선거 막판에는 경쟁 후보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지지를 선언했다.
친명계에서는 송영길 전 대표가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받던 사람”이라고 했다가 친문계 의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고, 친여 방송인 김어준 씨는 이낙연 전 대표가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3차 경선에서의 ‘신천지 개입설’을 꺼내들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계파 갈등이 지속되는 와중에, 대선 국면에서는 이재명 전 지사가 윤 당선인에 밀리는 구도가 이어졌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자,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친문‧친낙연계가 다시 당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전 지사와 윤 당선인이 불과 0.7% 차이라는 역대 최소 표차로 승패가 갈리는 결과가 나타나면서, 이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이 전 지사가 ‘졌지만 잘 싸웠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대선 이후에도 이어진 당내 ‘친명’ 흐름…‘이재명계’ 박홍근 원내대표 선출
대선 패배로 지도부가 물러난 이후, 친문계로 분류되는 윤호중 전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자 당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전임 지도부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한 상황에서, 당시 원내대표로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윤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당 지도부 역할을 대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또 정권 교체 여론이 높았던 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진단되면서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 떠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계인 윤 위원장이 당을 이끌겠다고 나서는 것에 불만을 품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물론 2030 세대 비대위원들을 다수 배치한 것 역시 ‘구색 갖추기’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 경험이 적거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인사들을 들러리로 세워 결국 윤 위원장 의도대로 비대위를 끌고 가기 위한 구성이라는 것이다. 또 윤호중 비대위가 결국 당권을 가져가기 위한, ‘비대위를 위한 비대위’라는 주장도 당내에서 고개를 들었다.
김두관 의원은 ‘윤호중 체제’에 반기를 들며 이재명 전 대선 후보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수진‧노웅래 의원 등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개별 의원들의 의사 표명에 이어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와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당내 최대 의원 모임 ‘더좋은미래(더미래)’에서도 비대위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렇듯 ‘윤호중 비대위’에 대한 비토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는 이후 당내 세력의 흐름을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전망됐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치르는 ‘콘클라베 방식’으로 진행된 선출에서, 친낙연계 박광온 의원과 친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결선 투표까지 간 선거에서 결국 당의 여론이 친명계인 박홍근 의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친문‧친낙연계는 다시 한 번 세력 구도에서 밀리게 됐다.
지방선거 공천 두고 또다시 대치…8월 전당대회에 미칠 영향에 촉각
친명계는 이 기세를 몰아 6.1 지방선거 공천에도 계파 인사들을 배치해 당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친명계 인물들을 대거 내세워서, 이를 계기로 당내 세력 전환을 가속하려는 의도다. 이런 방식으로 힘을 더욱 키움으로써 8월 전당대회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재명 전 지사가 지사직을 수행했던 경기도에서는 차기 도지사에 도전하려는 후보들이 쏟아졌다. 민주당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재명 전 지사와의 인연이나 공통점을 내세우며 ‘이재명 띄우기’에 나섰다. 안민석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 맞서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공언했고, 20대 대선에서 이 전 지사와 단일화를 이뤘던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는 선거 승리를 통해 이 전 지사와의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조정식 의원 역시 이 전 지사와 가까운 인사로 꼽힌다.
친명계는 또 서울시장 후보로 송 전 대표를 강하게 밀고 나섰다. 이수진·이용빈·전용기 의원이 공개적으로 송 전 대표의 출마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전용기 의원과 이동학 전 최고위원, 박영훈 전국대학생위원장이 송 전 대표가 머물던 경남 통도사를 찾았다. 지난달 29일에는 이 전 지사의 최측근 ‘7인회’의 멤버인 정성호‧김남국 의원이 경북 은해사에서 송 전 대표를 만나 역할을 요구했다.
특히 송 전 대표의 출마를 요청한 이수진 의원의 SNS글에 이재명 전 지사가 ‘좋아요’를 누르면서 화제가 됐다. 이목이 몰리자 이 전 지사는 ‘좋아요’를 해제했다. 이에 아직까지는 직접 정치 행보를 재개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이 전 지사가 측근들을 통해 의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친명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송 전 대표의 차출론에 반대하는 여론 역시 만만치 않아 6.1 지방선거에서 친명계가 완벽하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송 전 대표가 “당이 결정할 일”이라며 당에 결정권을 넘기면서도 가능성을 열어 놓자, 이에 반발하는 의견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당에 출마를 고심 중인 인사들이 꽤 있다면서 ‘후보난’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송영길 차출론’에 대해 “송 대표만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20대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우상호 의원도 “큰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가 다음 선거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최종윤 의원도 송 전 대표를 향해 “장수로 나설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친문계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이낙연 전 대표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거론되고 있다. 급부상하는 듯했던 ‘송영길 차출론’이 당내 반발 여론에 부딪힌 가운데, 후보로 꼽히는 3인의 행보도 관심을 받고 있다.
6.1 지방선거가 당의 세력 구도를 굳히는 하나의 분기점이자 8월 전당대회에서의 승리를 위한 기반 마련의 기회가 되는 만큼, 선거 공천을 두고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친명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친문계가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오랜 기간 친문계가 주류를 차지해 왔던 민주당의 세력 교체 흐름이 감지되면서, 당의 6.1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과 다가오는 8월 전당대회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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