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분이 주말농장에서 고구마순을 쳐내고 고구마를 캐고 있었는데 고구마 두덕에 고구마가 삐져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마를 심은 흙이 토질이 좋으면서 고구마가 결실이 좋으면 너무 많은 고구마가 달려서 고구마 두덕이 밀려나고 고구마가 두덕 밖으로 삐져 나온답니다.
주말농장 이다보니 퇴비랑 비료를 많이 쳐고 정성들여 가꾸어서 고구마 농사가 아주 잘 되었던것 같아요.
난 그 글을 읽다가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랏답니다.
그 시절에 시골에서는 너나없이 배를 곯고 가게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서 먹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만큼 어려운 시절 이었으니까요.
혼식 분식 산아제한 등 지금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들을 국가에서 장려하던 시절이기 때문 이니까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면 산을 넘어 학교에 오가면서 산에서 칡을 캐서 가져온 놈. 고구마를 캐서 가져온 놈, 새 둥지를 올라가서 새 새끼를 가져온 놈, 밤을 따온 놈, 그땐 그게 간식이고 놀이였고, 지금 사람들이 봣다면 참 신기 하리만큼 가지가지 이상한 짓들이지만 그때는 그런게 당연한 시절 이었으니까요.
혼식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라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면 보리나 밀이 많이 섞여서 도시락 밥이 시꺼먼 색이고 반찬은 묵은김치가 전부이고 좀 나은놈은 멸치볶음 그리고 조금 더 나은놈은 밥에 계란부침을 덮어온게 전부였어요.
특별하게 소금에 절인 무우짠지 조금 나은놈은 장에 박아둔 무우장아찌가 특별 반찬인 시절 이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가 4키로에서 8키로가 되는거리를 걸어서 다닐때라 오가면서 복숭아 감 자두 등은 내것처럼 따 먹고 고구마 밤 콩 등은 야산에 불을 지피고 구워 먹거나 생으로 먹는게 그시절 간식이었고 무우도 뽑아서 입으로 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학교를 오갓답니다.
지금은 야산은 그만두고 논밭둑에 불을 지펴도 처벌을 받으니 그럼 안 된답니다.
물론 그렇게 먹은 것들이 내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남의것을 내것처럼 먹다가 걸려도 기껏 기합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랫다간 파출소에 바로 신고가 들어갈 것이지만 그때는 수박 참외 서리도 보통 죄의식 없이 할 때 였으니까요.
생 고구마를 캐서 아니 고구마 두덕을 발로 툭 차면 고구마가 튀어 나왔으며, 풀에 쓱쓱 문질러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물면 달작지근하고 먹고나면 녹말이 입에 묻어 입술이 시꺼머지는데, 칡도 잘근잘근 씹으면 달달한데 입은 새까마 지거든요.
지금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가게에서 과자를 사 먹던지 컵라면을 먹으면 될게 아니냐고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배가 고픈 시절로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지원받은 마른 우유가루나 옥수수가루를 끓여서 나누어주던 시절 이었으니까요.
학교 담 주변에는 오차라고 하는 결명자를 많이 심어서 식중독 방지를 위해서 오염된 우물의 물을 끓여서 주던 시절 이었답니다.
이제 조용히 앉아 옛 시절을 뒤돌아보며 생각에 빠지고 있다보니 그 시절은 그 시절 나름대로 즐겁고 재미가 있었던것이 아니었나 회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