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를 벗어나는 지름길이 있으니”,이문구는교문敎門의 뜻으로 문자에 근거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윤회하며 맴도니”,이문구는종문宗門의 뜻으로 (어려운 문자를 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진정으로 깨달은 경계(悟處)가 있어야 비로소 철저하게 알 수 있다. (명나라의 저명한 유학자로 연지대사와 서신을 왕래하며 정토요의를 변론하신) 조로천曹魯川 거사는 종문에 통하고 교문에 통한 대통가로 비범함을 자처하였고, 더구나 그 뜻을 잘못 이해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그 문구에 담긴 함의를 법문하고자 하면 진실로 이른바 농담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대는(나에게 물을 필요 없이) 잠시 일체 쓸데없는 지견을 내려놓고서 일심으로 염불하여(염하는 주체인) 마음과 (염하는 대상인) 부처님이 둘 다 없어진 후 염하면 저절로 소리내어 크게 웃고 완전히 또렷이 알 것이다. 이때 이르지 못하면 설사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설해줄지라도 또한 알 수가 없다!
예컨대 이미 (당나라 때 최대 궁전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에 가본 사람은 그 경전의 갖가지 광경을 빠짐없이 다 충분히 알지만, 만약 함원전에 가 보지 못한 사람에게 매우 명백하게 설득할지라도 상대방은 여전히 막연하여 알지 못한다. 선종의 어구는 전부 다 사람들에게 참구하라고 가르치는 것인데, 그것을 문자의 뜻으로 이해하면 이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릇되게 깨달았다 여긴다면 그 죄과는 지극히 크다. 설사 정말 깨달았을지라도 생사를 요탈함에 대해 말하면 여전히 그것고가 멀어지고 또 멀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자력에 의지해 모름지기 확철대오한 후 번뇌. 혹업을 남김없이 다 끊을 수 있어야 비로소 끝마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사를 끊마칠 수 없다.
염불법문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어 염불하여 서방에 태어나길 구하면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해 업을 지닌 채 왕생한다. 그대의 근성도 어리석은 촌부의 수지修持를 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조로천 거사의 신분을 흉내내려는 망상을 한다면 생사윤회를 끝마치는 몫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삼악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표준방식이다. 왜 그러한가?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 이미 얻었다 생각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다 말하여 불법을 망치고 중생을 의심케하는 연고이다.
【주1】 선도대사께서는 《권화경로수행송勸化徑路修行頌》에서 노래하시길, “피부는 점점 쪼그라들고 머리털은 백발이 되고, 갈수록 걸음걸이는 늙어서 휘청거리네. 설령 금은보화 집안에 가득 있다 해도 늙고 병듦 면하기는 어려워라. 그대 천만 가지 쾌락 누린다 해도 무상한 죽음은 끝내 오고야 말리. 「오직 이를 벗어나는 지름길이 있으니」, 다만 아미타불만 염할 뿐이라.”
【주2】 연지대사 시대에 조로천 거사는 선종을 추천하고 정토법문을 오해하여 연지대사에게 편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종 이 문파는 특별히 정토법문을 물리치고 배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기 선사께서는 말씀하시길, 「(오직 이를 벗어나는 지름길이 있으나) 여전히 윤회하며 맴도니, (다만 아미타불만 염할 뿐이라) 염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 또한 말씀하시길, 「만약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 타향에 떠돌면서 동에서 부딪히고 서에서 부딪치니, 괴로워라. 아미타불!」 마치 이런 종류의 언어처럼 어떤 사람이 너무 지나치다 여기지만 조금도 원인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제기선사는 이미 이렇게 말한 이상 틀림없이 그의 이치가 있었을 것이다!”
연지대사는 답장으로 말씀하시길, “당신이 보내온 서신에서 또한 제기선사께서 고인(선도대사)이 염불을 권하는 게송에 대해 한 문구씩 그 말을 주해하였다고 말했다......거사는 이미 선종의 법을 통달하였는데, 왜 이것이 선조의 조사가 지금 바로 사람이 집착을 없애고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어인 줄 모르고, 지금 당신은 오히려 그것을 진실한 불변의 교법이라고 여기고 이해하여 언어문자 아래 죽어야 하는가? 고인께서는 「비로자나불 정수리를 밟고 나아가라(踏在毗盧頂上行)」 하셨다. 만약 이와 같다면 아미타불도 소용이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비로자나불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언어는 조사대덕의 어록 전기 중에 백천만억 이나 많다. 노쇠한 나도 40년 전에 이러한 말로 말솜씨를 뽐내고, 그것으로 자신의 문장을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있다. 나중에 이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일인 줄 알고서 이로부터 더 이상 감히 이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회상해보건대 여전히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달아오름을 느낀다! 또한 제기선사께서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는 사람은 비유컨대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 타향에 떠돌면서 동에서 부딪치고 서에서 부딪치니, 괴로워라, 아미타불!」 말씀하셨다. 현재 나도 그에게 응답하여 말할 수 있으니,「지금 그래도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본향으로 돌아가 동방을 버리고 서방을 얻으니, 즐거워라, 아미타불!」라고 말할 수 있다. 거사는 우선 말해보라. 이 한마디 말과 제기선사의 말씀은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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