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2~3년 전부터 만나려다 못 만난 원주 굉아 보살은 원주 연세대 캠퍼스 수영장에 가서 만났다. 많은 자료가 있으나 이사를 한 뒤 한 곳에 보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자료가 없으니 깊은 이야기는 진행되지 못했다.
10월 20일, 상주 석문사 스님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통화를 해서 안양의 굉법 거사를 인터뷰했다. 굉법 거사는 관징 스님이 오셨을 때 사진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여 석문사에 주었다고 한다. 그 사진을 이미 입수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사진에 굉법 거사도 들어 있었다. 관징 스님이 부채에 ’南無阿彌陀佛‘이라고 써주신 것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10월 20일, 「극락 가는 사람들」 85명의 원고를 편집 담당자에게 넘겼다. 그리고 10월 21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정토와 선」을 살 수 있습니까?“
같은 날 오후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토와 선」을 살 수 있습니까?“
두 사람과 이야기해보니 두 사람 모두 오대산 북대봉 미륵암 덕행 스님 때문에 관징 스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덕행 스님은 일찍이 관징 스님을 마음의 선지식으로 모시고 매년 「극락세계 여행기」를 찍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한다고 한다.
10월 22일, 새벽 6시에 출발하여 당일 오대산 북대봉까지 가서 굉행 스님과 함께 4시간 가까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일 굉행 스님과 묘수 스님을 빼고 책을 만들었더라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공양을 하고 정원 법사가 월정사까지 데려다 주어 시내버스를 타고 진부까지 와서 저녁 7시 반 차를 타고 집에 오니 밤 10시 반쯤 되었다. 하루 종일 뛰었지만 오늘은 기분 좋은 법담을 해서 그런지 그렇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1월 5일, 고양에 있는 대안 조형연구소를 갔다. 宏惠 스님 원고에 ’큰스님의 데드마스크를 떴다‘는 내용이 있어 연락처를 알아 찾아갔다. 대안 거사는 앞으로 관징 스님의 흉상이나 좌상을 건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과 손발을 석고로 떠놓았다는 것이다. 석고를 뜰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 떠놓은 석고도 사진을 찍었다.
11월 12일, 대둔산 지장암을 갔다. 등정 스님이 지장암의 노스님도 관징 스님으로부터 법명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어 바로 찾아간 것이다. 굉각 스님은 만나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분당 약사암에서 찍은 사진에서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11월 25일,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도서출판 토방의 대표 여래심 보살을 인터뷰했다. 관징 스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극락세계 유람기」를 출판해 7,000권 이상 보급하면서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받았다는데, 그 이야기를 싣고 싶어 일찍이 원고청탁을 했으나 사양을 해서 나중에 찾아가 인터뷰를 한 것이다.
13) 맺음말
이것으로 8년간 발로 뛰었던 자료수집 여행의 긴 장정을 마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극락 가는 사람들」이란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다. 그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징 스님과 인연을 맺어 극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69명 중국, 미국, 대만, 싱카포르 같은 외국에서 21명을 합하면 모두 89명의 크고 작은 글이 실린다.
글쓴이는 이 긴 여행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 단 한 번도 관징 스님을 만나보지 못한 글쓴이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마음속에 관징 스님의 총체적 이미지가 완성되어 갔던 것이다.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얻은 것도 많고, 어려운 일도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좋았던 일을 보기로 한다.
첫째, 참 많은 법담을 나누었다. 인터뷰할 때 만난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대부분 염불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수행하며 겪었던 경험을 나눌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둘째, 참 많은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야기의 주제가 관징 스님이기 때문에 마치 사형사제처럼 친하고 편안한 사이가 된다. 관징 스님과 인연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소박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묻어나는 따뜻한 인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힘들었던 점도 보기로 한다.
첫째,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동안 관징 스님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틀렸다는 방대한 자료와 사진들을 모은 파일을 가지고 다니면서 한두 시간 설명한 뒤에야 마음을 여는 제자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만남들은 그동안 비난 받는 스승에 대한 대변을 못하고 속으로 앓고 있던 터에 진실이 밝혀지자 그때 서야 기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만남은 해원의 효과가 있었다.
둘째, 많지는 않지만 제자이면서 비판의 대열에 서 있던 분들도 있었다. 글쓴이는 끈질기게 자료를 보여주고 대화하였다. 어떤 분은 5번째 만남을 가졌던 분도 있다. 몇 분이 그동안의 오해를 참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고 모두 화합으로 가는 효과가 있었다.
셋째, 시간을 내주지 않아 몇 번씩 전화를 한 분들이 뜻밖에 많다. 어떤 분은 10번을 전화하고, 몇 번이나 전화를 준다고 하면서 연락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불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감정에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끈질기게 계속하였다. 그리고 늘 이때 ’관징 스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였다. 이런 인내와 설득의 과정은 글쓴이가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넷째, 중국에서 만난 몇 사람들의 끈질긴 ’관징 스님 기념관‘ 투자제의는 정말 견디기 힘들 때가 있었다.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책만 쓰는 사람이지 절을 짓거나 기념관을 지을 여력이 없다고 했으나 중국인들의 끈질김이란 인내의 한계를 벗어날 때가 많았다. 이제 그런 끈질김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기념관을 짓기를 바란다.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2015년 11월 28일
보정(普淨, 서길수, 맑은나라 불교연구회 이사장)
- - - - - 終 - - - - -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나 모 아 미 따 불
나 모 아 미 따 불
나 모 아 미 따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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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셨습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
나모아미따불()()()
지금 여기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정토법문이 아니면 금생에 왕생 해탈하는 길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극락 다녀온 스님 이야기』를 『부처님 오신 날 봉축 기념』 불서로 법공양 준비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이야기가 가장 핫한 이슈가 되어 경전 읽어주는 채널에서도 한 달 만에 57만회를 기록하는 신기록을 보고 있습니다. 서 길수 교수님이 큰스님의 모든 행장을 찾아 기록한 대서사시를 운 파 거사님께서 긴 시간 사경하여 올려 주셨습니다. 무량공덕이 되실것 입니다. 그동안 애 쓰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모아미따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처님나라에 갈수 있는 선근을 심으셨습니다~~~^^
부처님말씀으로 또 뵙길 바랍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