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이야기의 힘
캐스린 번스(Edited by Catherine Burns)
<모든 밤을 지나는 당신에게(The Moth Presents All These Wonders: True Stories About Facing the Unknown)>(2017)
스토리텔링 대회를 여는 모스(The Moth)는 1997년 작가 조지 도스 그린에 의해 설립되었다. ‘모스’라는 이름은 주지아주 세인트사이먼스 섬에서 성장한 이 작가의 기억에서 나왔다. 그곳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밤늦게 친구 집 문간에 모여, 나방이 망가진 차단막으로 날아 들어와 문간의 전등 주변을 맴도는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버번을 마셨다. 모스는 라디오 프로그램 부문 피바디상을 받았으며, 이후 예술감독인 캐서린 번스가 말한 “현대 스토리텔링 운동”으로 성장해 “타지키스탄, 남극 대륙, 앨라배마 주 버밍행 등 전 세계 곳곳의 수많은 프로그램”에 영감을 주었다.
여기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는 리처드 프라이스, 조지 플림턴, 애니 프루,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유명한 작가들과 과학자, 저술가, 교사, 군인, 카우보이, 코미디언, 발명가 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기억하는 그대로의 실화”이며 생방송으로 전해진다.
이 책은 마흔다섯 가지 이야기를 글로 옮겨 모았다. 이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다양하고 고통스러운 인간 경험, 그리고 우리를 연결하는 공통된 주제인 사랑, 상실, 두려움, 다정함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절박해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며, 또 어떤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고 짓궂다. 어떤 이야기는 웃음을 터뜨릴 만큼 재미있으며, 또 어떤 이야기는 슬픔으로 마음이 산란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어조와 목소리에서 대단히 다양하면서도 풍자나 비판이 거의 없다. 청중과의 소통에 강조점을 두고 경험, 기억, 은혜의 순간을 공유한다.
모스에서 발표된 이야기들은 호메로스까지 거술러 올라가는 구전 이야기 전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런 만큼이나 이 이야기들이 갖는 개인성과 즉흥성은 스탠드업 코미디, 블로그 글쓰기, 토크쇼의 일화, 집단 치료에 빚지고 있다. 그렇지만 되는대로의 회상이 아니라 면밀히 초점을 맞추고 정교하게 조율한 이야기들로, 믿기 힘든 솔직함과 열정으로 익숙하거나 놀랍고 이상한 일을 전하며 통찰을 보여준다.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열세 살에 소년병이 된 이스마엘 베아는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에서 자신이 어떻게 열일곱 살 때 한 미국 여성에게 입양되어 뉴욕의 학교에 적응하려 했는지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베아는 자신이 페인트볼(페인트가 든 탄환을 서로에게 쏘는 게임으로 스포츠의 한 유형)을 왜 그렇게 잘하는지 새로운 반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내 성장 배경을 알면 더 이상 나를 아이로 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반 친구들은 나를 어른으로 볼 것이고, 그들이 나를 두려워할까 봐 염려스러웠다.”
“나는 침묵한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다. 즉 내 어린 시절에 동참할 수 있도록, 어릴 때 하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다른 이야기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중심이다. 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그의 오랜 공동연구자로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 스테파니 페이롤로와 사거리의 사각지대에서 자동차 충돌 사고를 당한 뒤 외상성 뇌손상을 입은 아들 RJ, 배우 존 터투로와 퀸스의 크리드무어 정신의학센터에 입원해 있는 문제 많은 동생 랠프, 런던 교외에서 미용사로 일하다가 젊은 데이비드 보위의 머리카락을 잘라준 후 그의 투어에 합류하고 이어서 음악 프로듀서가 된 수지 론슨.
가장 가슴 뭉클한 한 가지 이야기는 칼 필리테리의 <믿을 수 없는 마음의 안개>이다. 필리테리는 2011년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해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원전사고를 일으켰을 때 그곳 다이치 원자력발전소에서 현장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 사고로 약 18,49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30만 명 이상이 대피했다.
필리테리는 팀원과 동료들이 무사함을 확인한 후 자신이 일주일에 대여섯 번은 가서 식사하던 식당의 중년 여주인이 걱정되었다. 그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고 여주인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필리테리와 친구들은 여주인을 애칭인 ‘치킨 레이디’로만 알았다. 그 식당이 있는 작은 건물은 지진으로 심하게 금이 갔고 여주인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달 후 필리테리가 미국에서 출입금지 구역으로 돌아와 수소문할 때까지도 말이다. 결국 필리테리는 여주인을 찾아내기 위해 <재팬 타임스>에 도움을 요청해서 이 여성의 이름이 오와다 부인임을 알게 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거의 1년이 지나서, 필리테리는 오와다 부인한테 편지를 받았다. “저는 참사 현장에서 빠져나와 매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필리테리 씨, 몸조심하세요. 당신이 하는 일이 분명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 식당에 올 때 그래 보였던 것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볼순 없겠지만, 언제나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