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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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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고구려 모본왕의 한나라 태원(산서성 서남부 임분시)를 공격한 미스터리 실체는(?)
수구리 추천 0 조회 271 24.07.03 20:27 댓글 6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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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7.06 22:19

    @수구리 사료 원문은 엿장수 마음대로 없앨 수 없습니다. 궤변 그만 두시죠

  • 작성자 24.07.08 10:03

    사기> 원문 ‘攻大澤鄉 收’가 사족으로 저는 본다고(없어야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사기의 二世元年七月,發閭左適戍漁陽,九百人屯大澤鄉.
    초기 문장이 중요합니다(전체적으로 가장 주요한 부분이겠지요)
    전채적인 상황설명...
    진시황 2세 원년 7월, 빈민을 징발하여 어양에 수자리를 보내니, 900명이 대택향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진승 오광이 수자리를 가는 처음이면...
    사마천이 次(차례/순서)를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교대한다는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한서의 반고는 次(교대 의미가 있는 차례/순서) 자를 없애 버렸습니다

  • 24.07.06 22:08

    그런데 ‘대택향을 공격하여 대택향을 거두었다’는 표현은 공격의 대상이 거둠의 대상이 되어 어색합니다. 반고는 이를 ‘대택향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병사를 거두어들이다’ ‘攻大澤鄉拔之 收兵’라고 문장을 순조롭게 다듬었습니다. 전혀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대택향은 현에 속한 마을이기에 대택향에서 거병했으니 대택향을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문장은 비문입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입니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이 문장을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대택향이 현에 속한 마을이기 때문에 곧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대택향에서 거병했다.
    2) 대택향에서 거병했으니 (자신들이 거병한) 대택향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먼저 작은 마을 鄕에서는 거병할 수 없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원래 거병은 마을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여 몸집을 불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 작성자 24.07.06 22:25

    작은 마을(진나라 군대가 없는 마을)에서 거병했으니
    향에 군대가 없으니 거병 자체자체가 마을을 접수한 것인데..
    접수한 마을을 또다시 공격해서 마을을 접수할 이유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 24.07.06 22:10

    다음으로 자신들이 거병한 대택향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만일 대택향이 진승과 오광의 본거지라면 자신들의 본거지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대택향은 진승과 오광이 장으로 9백 명을 이끌고 목적지 어양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진을 친 곳으로 그들의 본거지가 아닙니다. 이들이 대택향을 공격하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결론을 짓습니다.
    <사기>의 어양에 대해
    索隠 ... 地理志 漁陽県名 在漁陽郡也  
    正義 括地志云 漁陽故城在檀州密雲県南十八里 在漁水之陽也
    라는 주석이 있습니다. 대택향에 대해서
    集解 徐広曰 在沛郡蘄県
    라는 주석이 있습니다.
    “대택향은 안휘성의 기현 부근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위에 대택향이 패군 기현에 있다고 합니다.
    “설사 대택향이 안휘성 기현 부근에 있었다면, 안휘성 기현 부근의 대택향은 어양을 지키기 위해 군사가 주둔한 대택향과 다른 또다른 대택향으로 봐야 합니다.”
    위에 패군 기현에 있는 대택향에 진을 차렸다고 했습니다.
    궤변 그만두고 이제는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기 바랍니다.

  • 24.07.06 22:11

    어양은 어양군, 대택향은 패군으로 이 둘은 서로 다른 곳입니다.
    역사지리 탐구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 바랍니다.

  • 작성자 24.07.08 09:18

    이미 설명했는데 댓글을 읽지 않은 것처럼 또다시 댓글을 달게 하네요..

    ----------------------------
    한서지리지 어디에도 패군에 대택향이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
    (한나라 시대에 패군 기현에 대택향이 있었다면,
    한서를 편찬한 반고가 한서지리지 패군 기현에 대택향이 있다고 기록했겠지요)

    따라서
    후대학자들이 반고의 변경된(잘못 해석한) 한서 진승열전을 읽고
    한서를 보니 패군 기현에 대택향이 있구나 하고 주석을 달았을 뿐입니다

  • 작성자 24.07.07 04:11

    내가 진승이 회수 지방인 안휘성에서 봉기한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지요
    진승은 지금의 안휘성 숙주시 지역에서 봉기했지만..
    대택향은 대택(대륙택) 부근이니...대택향은 안휘성의 패군 기현 부근에 있지 않았습니다

    (설사 대택향이 안휘성 패군 기현 부근에 있었다면,,,
    안휘성 패군 기현 부근의 대택향은
    어양을 지키기 위해 군사가 주둔한 대택향과 다른 또다른 대택향으로 봐야 합니다)

  • 24.07.07 02:29

    @수구리
    “한서 지리지 어디에도 패군에 대택향이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예 맞습니다. 지리지에는 그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료를 조금만 유의해서 읽어보면 ‘패군에 대택향이 있다’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한서 진승 열전> 원문에
    秦二世元年秋七月 發閭左戍漁陽九百人 勝廣皆為屯長 行至鄿大澤鄉
    라 하여 “鄿大澤鄉”이라 나옵니다.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鄿는 沛郡의 속현입니다.
    하급인 기현에 대택향이 있으면, 상급인 패군에 대택향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생각입니다.
    이미 <한서> 자체가 패군 기현에 대택향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후대학자들이 패군 기현에 대택향이 있다고 주석을 달았을 뿐”이라는 말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 24.07.07 02:29

    @수구리
    大澤鄉과 같은 자연 지형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후한서 군국지> 沛國 기록입니다.
    豐 西有大澤
    蘄 有大澤鄉 陳涉起此

    서한의 패군이 후한의 패국과 같은 자리입니다. 여기 대택도 있고, 기현에는 대택향이란 마을도 있습니다. 나아가 대택향에 대해 진섭이 이곳에서 기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사 대택향이 안휘성 패현 기현 부근에 있었다면, 안휘성 패현 기현 부근의 대택향은
    어양을 지키기 위해 군사가 주둔한 대택향과 다른 또다른 대택향으로 봐야 합니다.”
    님이 한 말입니다. ‘패현’은 ‘패군’의 오기이겠죠. 그런데 왜 “어양을 지키기 위해 군사가 주둔한 대택향”이라고 원문 내용을 변조합니까? “어양으로 가는 도중에 주둔한 대택향”이라고 올바로 표현하기 바랍니다.
    패군 기현의 대택향이 진섭이 주둔하고 거병한 곳이 아닌 ‘또 다른 대택향’ 제2의 대택향인가요? <후한서 군국지>에서 기현 대택향이 진섭이 거병한 곳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료를 제대로 읽기만 해도 님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 24.07.07 02:32

    @수구리 다음으로, 님이 말하는 대륙택은 거록군 거록현에 있는 택이지요. “대택향은 대택(대륙택) 부근” 이 말도 님이 한 말입니다. 대택향이 대륙택 부근이라는 주장입니다. 정말일까요?
    <후한서 군국지>의 기록입니다.
    鉅鹿郡 ... 雒陽北千一百里
    沛國 ... 雒陽東南千二百里
    대택향이 있는 패국(군)은 낙양 동남 1,200리 거리에 있습니다. 반면에 대륙택이 있는 거록군은 낙양 북 1,100리 거리에 있습니다. 무려 2,300리 떨어져 있습니다. 대택향이 대륙택 부근이라는 님의 주장은 완전 헛소리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부디 미망에서 벗어나 역사지리연구를 제대로 하기 바랍니다.

  • 작성자 24.07.07 08:56

    @모량 .
    1) 후한서 군국지에만 나오는 패국 풍현 서쪽에 있는 대택!!!
    2) 그리고 후한서 군국지 원문에 없는 낙양으로부터 해당 군까지의 군국지 거리!!!
    (이걸 정확한 거리로 믿어야 하는지!!! --> 참고정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
    후한서 군국지는 AD 440년 경에 펀찬된 사서입니다
    -----------------------

    1) AD 90년의 한서 지리지 편찬시기 보다 대략 350년 이후에 편찬된 사서이고요
    2) BC 90년의 사마천 사기 편찬 시기보다 550년 이후에 편찬된 사서입니다

    AD 90년 경에 편찬된 한서지리지에 나오지 않는 패군 풍현 서쪽의 대택이
    AD 440년 경의 후한서 내의, 패군 풍현 서쪽에 대택에 있다는 군국지 내용인데

    -->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에 나오는 BC 210년 경에 패군 서쪽에 대택이 있다고 주장해도 되는지!!!.

    따라서
    ■■■■■■■■■■■■■■■
    지금 토론하는 대택, 대택향은
    ■■■■■■■■■■■■■■■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에 기록된 BC 210년 경의 대택, 대택향이지,
    후한서가 편찬된 AD 440년 경의 대택,대택향이 아님..

  • 작성자 24.07.07 11:39

    @모량 .
    ★★★★★★★★★★★★★★★★★★★★★★★★★★★★★★★★★★★★★★★
    ★■ "사료를 제대로 읽기만 해도 님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
    ★■ "대택향이 대륙택 부근이라는 님의 주장은 완전 헛소리입니다." ★■
    ★■ "거듭 말하지만 부디 미망에서 벗어나 역사지리연구를 제대로 하기 바랍니다." ★■
    ★★★★★★★★★★★★★★★★★★★★★★★★★★★★★★★★★★★★★★★

    이런 말투부터 고치기 바람..
    ■■■■■■■■■■■■■■■■■■■■

    따라서 저런 님의 말투에 의해
    앞으로 님의 댓글에 더 이상의 답변은 없습니다
    (이 댓글이 마자막 댓글임)

  • 작성자 24.07.07 06:56

    @모량 西有大澤이 나오고, 낙양으로 부터 거리가 없는 후한서 군국지 원문은

    https://blog.naver.com/1517plan/222927423667

    에서 확인 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
    후한서 군국지에
    ----------------------
    대택이 있다는 풍현은
    태핵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기현에서 북쪽으로 200km(500리) 거리에 있으니
    기현의 대택향과 관련이 있을 수 없겠지요

  • 24.07.07 11:25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허세를 부리고 있네요.
    풍현과 기현의 거리는 모르지만(님이 아는 듯 하니 증거를 제시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제외하더라도
    이미 패군(국) 기현 대택향이 진섭이 거병한 곳임은 명백합니다.
    님이 말하는 거록군 대륙택이 패군 대택향과 같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호타하 이북 하북성 중북부가 고구려 영토라는 주장이 <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헛소리가 아니란 말인가요?
    망상입니다.
    요동군에 의무려산이 있는데 고구려 영토가 의무려산에서 서쪽으로 수천리 거리의 하북성 중북부라니 기막힌 말입니다

    (그동안 논란을 주고받다가 자신의 논리가 무너지니까 도망친 적이 도대체 몇 번이었는지 기억하나요? 오역을 지적해도 막무가내로 우기고, 오독을 지적해도 궤변을 늘어놓고... 그런 말투요. 님이 정신차리라고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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