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영화로 [만물상]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3.03.14 00:24업데이트 2023.03.14 00:33
0314 여론3 만물상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양자경(楊紫瓊·양쯔충)의 첫 꿈은 발레리나였다. 십대 중반에 영국 왕립 무용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삶은 순탄했다. 척추 부상으로 첫 꿈을 접었지만 딛고 일어나 연기로 진로를 바꿨다. 1983년 미인 대회에 출전해 미스 말레이시아가 된 것을 계기로 홍콩으로 옮겨 영화에 뛰어들었다. 훗날을 대비해 무술도 익혔다. 2년 뒤 기회가 왔다. ‘예스 마담’ 주연을 맡아 단숨에 아시아 최고 여성 배우로 발돋움했다. 첫 전성기였다.
▶1987년, 사업가와 결혼하며 은막을 떠났다가 5년 만에 갈라서고 돌아왔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간 줄 알았는데 경쟁하던 배우들이 그 사이 사라진 덕에 다시 일어섰다. ‘중경삼림’의 임청하도 ‘천녀유혼’의 왕조현도 1990년대 초 영화계를 떠났다. 다른 배우들도 해마다 10여 편씩 출연하는 다작을 남발한 끝에 대부분 이른 은퇴를 맞았다.
▶그렇다고 안주하지는 않았다. ‘동양의 할리우드’였던 홍콩이 쇠퇴 기미를 보이자 ‘진짜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007 시리즈 ‘네버 다이’에 본드걸로 출연했다. 이전 본드걸은 악당에게 붙잡혔다가 본드에게 구출되는 수동적 미인들이었다. ‘본드걸 양자경’은 달랐다. 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역 없이 격투신을 소화했다. “본드걸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두 번째 전성기였다.
▶양자경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앞서 윤여정이 조연상을 받았지만 아시아 출신 주연상은 남녀 통틀어 처음이다. 허리 부상, 결혼 실패, 홍콩 영화의 몰락 등으로 쓰러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도전을 거듭한 끝에 오른 고지다. 영화계는 “환갑에 세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지만 아카데미 단상에 선 그녀는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양자경은 쿵후 스타로 알려졌지만 호쾌한 발차기는 태권도에서 배웠다. 한국 배우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지난 2월 골든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받았을 땐 “나처럼 생겼고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선 분께 감사한다”는 소감과 함께 ‘미나리’로 같은 시상대에 먼저 섰던 윤여정 사진을 자기 SNS올리기도 했다. ‘미나리’와 ‘에브리씽’에서 두 사람이 맡은 배역도 비슷해서 이민자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 여성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거듭해 최고 권위 영화상을 받은 인생 역정도 닮았다. 양자경의 다음 목표 중 하나가 한국의 봉준호 감독 작품 출연이라고 한다. 그녀의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작품과 함께 맞았으면 한다
입력 2023.03.14 00:24업데이트 2023.03.14 00:33
0314 여론3 만물상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양자경(楊紫瓊·양쯔충)의 첫 꿈은 발레리나였다. 십대 중반에 영국 왕립 무용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삶은 순탄했다. 척추 부상으로 첫 꿈을 접었지만 딛고 일어나 연기로 진로를 바꿨다. 1983년 미인 대회에 출전해 미스 말레이시아가 된 것을 계기로 홍콩으로 옮겨 영화에 뛰어들었다. 훗날을 대비해 무술도 익혔다. 2년 뒤 기회가 왔다. ‘예스 마담’ 주연을 맡아 단숨에 아시아 최고 여성 배우로 발돋움했다. 첫 전성기였다.
▶1987년, 사업가와 결혼하며 은막을 떠났다가 5년 만에 갈라서고 돌아왔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간 줄 알았는데 경쟁하던 배우들이 그 사이 사라진 덕에 다시 일어섰다. ‘중경삼림’의 임청하도 ‘천녀유혼’의 왕조현도 1990년대 초 영화계를 떠났다. 다른 배우들도 해마다 10여 편씩 출연하는 다작을 남발한 끝에 대부분 이른 은퇴를 맞았다.
▶그렇다고 안주하지는 않았다. ‘동양의 할리우드’였던 홍콩이 쇠퇴 기미를 보이자 ‘진짜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007 시리즈 ‘네버 다이’에 본드걸로 출연했다. 이전 본드걸은 악당에게 붙잡혔다가 본드에게 구출되는 수동적 미인들이었다. ‘본드걸 양자경’은 달랐다. 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역 없이 격투신을 소화했다. “본드걸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두 번째 전성기였다.
▶양자경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앞서 윤여정이 조연상을 받았지만 아시아 출신 주연상은 남녀 통틀어 처음이다. 허리 부상, 결혼 실패, 홍콩 영화의 몰락 등으로 쓰러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도전을 거듭한 끝에 오른 고지다. 영화계는 “환갑에 세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지만 아카데미 단상에 선 그녀는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양자경은 쿵후 스타로 알려졌지만 호쾌한 발차기는 태권도에서 배웠다. 한국 배우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지난 2월 골든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받았을 땐 “나처럼 생겼고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선 분께 감사한다”는 소감과 함께 ‘미나리’로 같은 시상대에 먼저 섰던 윤여정 사진을 자기 SNS올리기도 했다. ‘미나리’와 ‘에브리씽’에서 두 사람이 맡은 배역도 비슷해서 이민자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 여성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거듭해 최고 권위 영화상을 받은 인생 역정도 닮았다. 양자경의 다음 목표 중 하나가 한국의 봉준호 감독 작품 출연이라고 한다. 그녀의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작품과 함께 맞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