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씨 (DREAM SEED 의)
병상에서 보내는 편지 34회
2017.07.01
제목: 믿음이란
여러분은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해 본적 있습니까? 아얀색 옷에 훤칠한 키와 빛나는 광체 그리고 인자한 모습의 외모와 멋진턱수염, 까만머리에 백인스타일의 모델 뺨치는 풍체가 생각 납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을 상업화 해서 세상의 모든 성화나 동상에 인간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리거나 세운것 입니다.성경 이사야서 53장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이사야 53장입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마른땅 사막에 돋아난 연하고 약한 풀과 같았고 훌륭한 풍채도 없어서 아무도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지 못했고 죽어서는 당시 부자였던 아리마데 요셉의 개인 묘지에 묻히셨습니다.지난해 예수님의 모습을 법의학에 근거하고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그분의 모습을 영국의 한 일간지(더 미러지)가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그신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잘생긴 외모도 아니고 사람들이 상상한 백인도 아닌 150센티 정도의 키에 했빛에 그슬린 얼굴을 소유 하셨다고 합니다.복음송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이기에 그분은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를 갖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믿음"이 였습니다. 그 "믿음"이 그분으로 하여금 모든 장애를 상쇄시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평강과 기쁨을 향유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전도 봉사 헌금 등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이뤄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편견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어떤 상황, 처지,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견디며 행하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 약속의 실현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실패의 원인을 아십니까? 수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았고 그녀들의 이방신들을 방치하였고,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을 우상과 바알신으로 물들여 버렸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어떤 것이든 모두 하나님과 연관시키고 생각 해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 일로 경험하고 연관 지어야 합니다. 여기에 두종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모두 다 총명하여, 명문대 입학하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한 사람 이렇게 생각 합니다. 이제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떵떵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반면에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거라.”똑같은 일을, 한 사람은 세상일로,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일 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출발을 하였으나, 그 열매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 나라를 본 것입니다. 청결한 자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부정이나 부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돈, 섹스, 권력 이 세 가지는 인류 최대의 유혹입니다. 세상 문제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것 같아도,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이세가지 요소가 만들어 내는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가지는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평생에 걸친 추구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돈은 현대인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 앞에 이데올로기도 지위도 학벌도 전통도 가정이나 국가도 심지어는 교회까지도 돈의 힘 앞에 머리를 숙일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돈의 힘을 알고 계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돈은 신적 존재라는 말입니다.
돈이 우리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직통으로 결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탐욕과 돈이 결탁하는 순간, 사탄은 더 많이 가지라고 충동질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도록 부추깁니다. 그래서 방해가 되는 요소는 그 무엇이든지 가족이든 사회든 교회든 무엇이든지 제거해 버립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를 위하여 일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은 의미를 위하여 일합니다.
더 훌륭한 사람은 나눔을 위하여 일합니다.최고로 훌륭한 사람은 볼품없고 오합지졸이었던 제자들의 발을 씻겼던 예수님처럼 약자의 섬김을 위하여 일합니다. 섬김은 자신의 것을 내어 줍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문지기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하나님의 문지기는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문지기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필요한것은 의식주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인간들은 신뢰가 생명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더 중요한 신뢰가 있습니다. 정권의 신뢰보다도 국민과의 신뢰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신뢰보다도 으뜸인 것은 하나님과의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가장 정확한 답이 나옵니다.오래전부터 저는 아내에게 당부하고 또 우리부부가 공감하는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다름아닌"믿음"에 관한 저의 생각이며 아내도 공감합니다.성도님들과도 함께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우리자녀들 뿐만 아니라 모든 "믿음"의 식구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믿음"에 관한 소신입니다. 육신이 죽어서 까지 아내와 자녀들을 구속 하기위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에 이르러 구원을 받게되고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은혜에 감사하여 그리스도인 답게 선한 행동으로 변화되어 가는거 같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내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사랑으로 구원을
받게됩니다.그런데 우리는 이"믿음"이란 단어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쉽게 사용하고있는거 같습니다.믿음이란 나와 절대자이자 창조주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이지 진정한 "믿음"이란 단어는 사람과 사람이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은 마치 방정식의 함수와 같아서 무수이 존재하는 변수 엑스값에 따라서 와이 값은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사람을 믿고 행동 했다가 큰 실망을 경험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당하게 됩니다.사람을 믿고 결혼을 하고 돈을 빌여주고 사람의 미래를믿고 기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은 "믿음"이란 단어를 사용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우리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믿음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로 맺어저야한다고 생각 합니다.끝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이해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랑의 관계이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람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 따른 나약한 한사람의 존재로 보아야지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배우자, 자녀들,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가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까.그사람이 내가 믿는대로 잘 될거라는 "믿음"의 출발에서 기인합니다.그러나 같은 출발이라도 인간사이의 믿음보다는 피조물의 나약함을 알고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며 격려하는 삶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젔을 겁니다.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금전 거래도 마찬 가지입니다 사람을 믿고 빌려 줬다가 돈잃고 관계도 멀어지게되는 광경을 무수이 목도하게 됩니다. 이것역시 단순한 도움이나 상대방이 잘될경우 내게 도움이 될수있으리라는 막연한 사람사이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사람사이의 금전 거래는 절대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됩니다.아무런 조건없이 자기 능력안에서 그냥 주십시오 상대방의 말에 현혹되어 무리해서 빌려주면 안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회적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습니다.우리가 쉽게하는 말로 때론 도움을 받기도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던거 같습니다.도움을 받을땐 감사하고 실망을 줄때는 관계가 소원해지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가족간,친척간,사회적 관계이든 어떤 경우에도 "믿음"의 관계는 나와 영원 불변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사용하는 구별된 단어이어야 합니다.내가 어려울때 나에게 도움을 준경우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내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 줄땐 상대방을 믿고 들어주는게 아니라 사랑하기에 내가 할수있는 사랑의 분량 만큼으로 응해야 합니다,그러게하면 서운할것도 아쉬움도 전혀없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별어려움 없을거라 생각 합니다. 나에게 돌아올 반대 급부를 생각하고 상대방을 믿는 것은 위험이 있는 일종의 거래입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거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우리 자녀들과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크고 소중한 유산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입니다. 그동안 많은 교우님들과 가족들이 저에대한 걱정과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삶의 이른 중반기에 정말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뇌병변 발생후 지금까지 뇌질환을 동반자 삼아 왔습니다.그러니 이제 하나님 앞에서 저의삶을 믿음의 자녀처럼 행복하게 매듭 지어야 한다고생각 합니다.제가 제 삶을 겸손하게 매듭짓고 정리하는 것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믿음의 가족들에게도 덕이 될거라 생각합니다.그래서 저는 이런 복된 기회를 주신 예수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이러한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릴수 있게한 주님께 감사하겠고 이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좋으신 주님의 뜻이 미력하나마 저같은 큰 죄인을 통해서도 여러분들과 함께 할수 있어서
정말 행복 했습니다. -아멘-
담주는 유산에 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