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과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
(정치평론가) 송우정치칼럼
대통령의 외교 행로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 재임(在任) 때나 퇴임(退任) 후, 심지어는 이 세상을 떠난 다음까지 찬사(讚辭)의 대상이기보다 악담(惡談)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고,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그리고 최근에 퇴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그렇다. 내각책임제 정부였던 제2공화국의 내각 수반(首班)이던 국무총리 장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역사의 사슬과 화려한 행각
그것은 한 마디로 반민주적인 대통령들에 대한 역사의 질곡(桎梏)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에게는 3선 개헌(改憲)과 영구 집권 획책이라는 역사의 사슬이, 박정희에게는 군사 쿠테타와 독재와 군사 정권이라는 역사의 수갑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는 '군사 정권의 후백제 후고구려'라는 올가미가, 그리고 김영삼에게는 '엉터리'라는 역사의 오랏줄이 물려 있다.
이들 대통령들은 재임 중에 화려한 정상(頂上) 회담과 외교 행각이 있었다. 이승만은 화려하게 미국을 방문했으나 조야(朝野)의 큰 환영은 받지 못했다. 박정희는 케네디를 만나러 미국에 가서 화려한 정상 회담을 했으나, 민주주의의 본산(本山)인 미국에서 환대(歡待)할 리가 없었다. 인권주의자(人權主義者)로 자처하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화려한 모습으로 한국에 왔으나 박정희를 따돌리고 전선(戰線)에 있는 미8군 영내(營內)에서 밤을 지내기도 했다.
천대와 슬픈 외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외교 행각은 천대(賤待)와 슬픔의 외교 행각이었다. 전두환은 재임 중에 소위 순방(巡訪) 외교(外交)라는 것을 즐겼으나, '아웅산 사건'이라는 역사의 슬픔을 남겼고, 김영삼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던 소련의 평화(平和) 자유(自由) 주의자(主義者)인 고르바초프가 미국을 방문하자 그를 만나려고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 가는가 하면,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그를 만나려고 제주도까지 쫓아가는 '구걸(求乞) 외교 행각'을 벌린 기록을 남겼다.
현직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부성(阿附性) 찬사(讚辭)나 아세(阿世) 곡필(曲筆)이 될 우려가 있어 말하기는 어려우나 대통령 당선 1년, 취임(就任) 8개월이 지나는 현 시점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외교 실적이 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 후에 1년도 되지 않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3 개국을 방문하여 정상 회담을 하였고, 한국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에 비하여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빨리 세계 최정상의 지도자와 교우(交友)를 한 셈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외교행각화(外交行脚畵)로는 명작(名作)임에 분명하다.
나는 裑대중 대통령의 외교행각화를 보고 김대중 대통령이 1960년대 말부터 부르짖던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미일중소(美日中蘇) 4개국 안전(安全) 보장론(保障論)을 상기하며, 현실적으로 세계 열강(列强) 대열(隊列)에서 탈루(脫漏)한 소련을 제외한 3개국 정상을 만난 것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3개국 정상 회담을 이루기까지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외교 교섭 일선에서 헌신한 각국(各國) 주재(駐在) 한국 외교팀의 노고(勞苦)를 치하(致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과 실제
찬사(讚辭)와 치하(致賀)는 이 쯤으로 끝내자. 우리 말에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그림이 좋아도, 그림의 떡이 되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난국(難局)에 처해 있다. 어려운 백성에게, 어려운 나라에 필요한 것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실제로 먹고 배가 부를 떡이다.
미국을 방문했을 때나,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대통령은 IMF 지원(支援) 체제(體制)에 있는 오늘의 경제를 살리고 상대국에 놓여 있는 경제적(經濟的) 마찰(摩擦)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 일들은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시적(顯示的)인 약효(藥效)가 우리 앞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나 일반 국민들은 경제의 문외한(門外漢)들이라 아직 그런 약효가 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에 짚고 넘어가야할 일은 3개국 순방 정상 외교의 안팍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候補) 시절 때부터 끈질기게 노벨 평화상 후보자임을 거론(擧論)하였고,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통일을 한 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강하게 피력한 일이 있다. 노벨 평화상을 타고 안타고는 노벨상 심사 위원들의 소관 사항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에 대한 집념(執念)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좋은 예화(例話)이다.
통일은 염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정상(頂上)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 다시 말하여 김대중 정부가 말하고 있는 '햇볕 정책을 통한' 한국의 평화적인 통일 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워낙 사안(事案)이 사안인지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公開的)이고 구체적(具體的)인 발표를 삼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統一)은 염원(念願)이 아니다. 비록 우리가 지난 날에는 통일이 몽매(夢寐)에도 잊지 못하는 염원이라고 했을 지라도, 21 세기의 문턱을 넘으며 21 세기의 여명(黎明)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는 통일은 염원이 아닌 현실(現實)로 닥아와야할 민족적 명제(命題)이다. 한반도를 남북(南北)으로 갈라 놓은 미쏘 양극(兩極) 체제가 허물어 룶고, 민족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도살장(屠殺場)으로 몰았던 6.25 남북 전쟁(戰爭)의 전범(戰犯)인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더욱 염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경제적 난국을 헤치는 대통령의 외교 행각 그림이나 통일을 향한 대통령의 외교 행각 그림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과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와 통일에 관한한 젖 달라며 울며 보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심정(心情)과 처지(處地)에 놓여 있다. 급(急)한 김에 대통령의 다음 번 수순(手順)은 무엇일가 귀를 기우려 경청(傾聽)해 보고자 한다.
첫댓글 김대중 대통령님은 연설을 하기 위해 미국 국회에 입장하실 때 3분이 넘는 기립박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또한 영어로 연설하시는 모습을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위 글은 1998년 가을에 쓴 것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