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동물
나무늘보의 생존 비결
바쁜 현대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동물은 나무늘보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여유롭고 느긋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무늘보는 이름처럼 나무에 살며, 가지에 매달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늘보를 뜻하는 영단어 'Sloth'는 느리고 게으르다는 의미도 있는데, 스페인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에서도 모두 같은 뜻으로 쓰인다.
나무늘보가 이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건 정말 느려서다. 한 시간 내내 움직여도 200여 미터밖에 못 가는데, 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기에 사실상 저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동물학자들은 나무늘보가 1분에 4미터정도 움직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느리다는 것은 야생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천적을 만나도 재빠르게 도망갈 수 없으니 말이다.
이들이 느린 이유는 근육을 빨리 움직일 만큼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아서다. 나뭇가지를 붙들고 이동하다 피곤해지면 그대로 잠들고 나뭇잎을 씹다가도 잠에 빠진다.
'그러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고?'라는 걱정은 필요 없다. 손톱부터 몸통으로 이어지는 뼈와 근육의 구조가 특이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무에 매달려 잘 수 있다.
심지어 나무늘보는 그 상태로 새끼를 낳기도 한다. 늙거나 병들면 매달린 채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무에서 태어나 나무에서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 한번 참 찰떡같이 지었다.
나무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절대 안 내려올 것 같은 나무늘보는 8일에 한 번씩 땅으로 내려온다. 다름 아니라 똥을 누기 위해서다. 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삼는 나무가 있어 대변을 볼 때가 되면 아주 천천히 내려와 나무 밑에서 볼일을 본다.
나무 아래에선 퓨마와 같은 포식자를 만날 확률이 높아 위험할 텐데, 왜 굳이 땅으로 내려와 똥을 누는 걸까?
나무늘보가 나무 아래에서 똥을 누면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나무에게 비료를 줘 나뭇잎이 풍성해진다. 이건 나무늘보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잎이 많을수록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좋고, 식량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나무늘보의 털 속에 사는 나방에게 그 똥이 꼭 필요하다. 물론 나무늘보에게도 나방은 없어선 안 되는 존재다.
나무늘보의 털은 원래 갈색이지만 자라면서 점점 초록색이 되어 간다. 이는 털이 변색되는 게 아니라 털에 녹조가 자라기 때문이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가느다란 홈이 있어서 녹조가 자리 잡기 쉽다. 녹조는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든다. 이 양분을 먹는 것이 다름 아닌 나방이다. 나방은 나무늘보의 털에 살면서 녹조가 광합성해 만든 당을 먹고 똥을 눈다.
나방의 똥에는 나무늘보에게 꼭 필요한 단백질이 있다. 나무늘보는 털을 핥아 영양분을 섭취한다.
나방은 성체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나무 밑에 있는 나무늘보의 똥에 알을 낳는다.
그 알에서 태어난 나방은 다시 나무 위 나무늘보의 털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나무와 나무늘보, 녹조, 나방은 공생하며 완벽한 생태계를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느리고 힘없어 보이는 나무늘보는 두 종을 제외하고는 멸종 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개체 수가 많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퓨마와 독수리 같은 동물은 뛰어난 동체 시력을 가지고 있어 재빠르거나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은 쉽게 알아보지만,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은 오히려 잘 인식하지 못한다.
약점인 줄 알았던 그런 움직임이 야생에서 살아남는 데 큰 이점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무늘보는 나무와 구분하기 어려운 보호색을 갖추고 있어 다른 동물들이 알아보기 더 어렵다.
나무늘보는 빨라지려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비결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