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C 코리아 본부장 이기환 교수와의 인터뷰
한국인의 뿌리는 불교에서 찾아야죠
어릴 때부터 채식 실천, 불교 가르침 안에서 마음의 평화 찾아
UC 샌디에고에서 한국문화축제 개최, 한류열풍 시작한 장본인
USC의 한국 대표로 외국인에게 진정한 한국을 소개하려 노력
반백이 넘은 이기환(Steven Lee, USC 코리아 본부장, Director of USC Korea International Office)교수의 표정은 소년처럼 해맑다. 나이 50을 넘게 살아오면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가꾸어왔기에 저처럼 겉사람을 잘 유지했을까. 그는 절대동안의 비밀을 불교신앙과 채식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불교신자이셨던 증조외할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증조할머니는 제가 아주 어릴 때, 미륵존여래불을 새긴 목걸이를 해주셨는데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이를 빼놓고 다닌 적이 없습니다. 물론 목걸이 체인은 몇 차례 갈았지만요.”
미륵존여래불상이 그를 지키고 있어서였을까. 그는 절에 가면 그냥 마음이 편해졌다고 회고한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은 웬지 처음부터 친숙한 느낌이 들고 이유 없이 끌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리 친해지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죠. 교회를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거리감이 느껴지고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고요. 기독교의 서양적인 요소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반대로 불교는 자연스럽게 제게 친화력을 발휘하더군요.”
체계적으로 불교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서점에 가면 가장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분야가 바로 불교서적들이었다. 그 책들을 탐독해 가며 스스로 깨달았다. “아, 나는 사고방식으로 볼 때 불교신자이구나.” 하고.
그는 중년 들어 건강상 이유로 고기를 멀리한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채식을 실천했다며 아무래도 전생에 스님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소가 목욕하고 지나간 것 같은 설렁탕밖에 먹지 못해서일까. 그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은 고기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그는 친구들과 외식할 때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는 식당에 가면 괜찮은데, 고깃집에 가면 먹을 게 고기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나, 고기 안 먹어.’ 라며 까탈을 부리는 것도 너무 심한 것 같아 먹는 시늉은 합니다. 하지만 전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불자들 가운데는 자기 식성은 고기를 좋아하는데도 육식을 자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의 경우는 워낙 고기를 싫어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자가 됐습니다. 채식을 하니까 아무래도 맑은 기운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의 어릴 적 에피소드를 들어보니 입맛 하나는 확실히 스님이다. 성장기 자녀들에게 영양 풍부한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 생각한 그의 어머니는 고기로 국물을 내어 다른 요리에 몰래 섞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 입만 먹어봐도 “엄마, 이거 고기 넣은 거죠?” 하고 알아차렸다고 한다.
살면서 학식이 더해가고 삶의 지혜가 늘어갈수록 그는 불교가 종교 이상의 것임을 깨닫는다.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들 가운데 불교신자가 많은 것은 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는 종교이지만 철학이요, 과학이며 예술의 영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혼례도 불교식으로 올렸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는 성당에서의 혼배성사를 주장했지만 그의 황소고집을 꺾진 못했다. 당시 이기환 교수 커플이 살고 있던 시애틀에는 한국식 절이라고 해봐야 가정집을 개조한 소규모 사찰밖에 없었다. 그는 한 호텔을 빌려 스님의 주례사와 함께 불교식 결혼식을 올렸다. 종교적 가치라는 마지막 카드를 접고 남편을 따라준 아내에 대해 그는 아직까지도 커다란 고마움을 안고 산다. 이후, 아내는 차츰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어릴 때부터 불교적 가르침으로 키워온 아들도 최근에는 자신을 부디스트라고 부를 만큼, 그의 작은 불꽃은 가족 모두에게로 퍼져나갔다.
그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의 뿌리, 한국 문화의 근간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설사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불교를 모르면서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뿌리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인 석굴암, 불국사 등 문화재는 모두 불교의 유산이잖아요. 불교를 빼고난 우리는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다고 봅니다.”
사고방식이 지극히 한국적이라 그렇지 사실 그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모두 미국에서 다닌 반 미국인이다. 대학과 대학원의 석사 박사 과정 역시 모두 미국에서 마쳤다. 전공은 교육학과 한국학(Korean Sudies)을 비롯한 아시안 스터디즈(Asian Studies).
지금까지 여러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늘 한국과 연관되는 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1989년부터 7년간, UC 샌디에고 한국학 전임교수로 일하던 때에는 ‘한국문화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첫 해는 별 기대 없이 2주간의 한국영화축제로부터 시작했는데 한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관심이 지대해 축제 규모를 확대했다. 한 달여 기간 동안 한국 영화 상영은 물론이요, 김덕수 사물놀이 패와 가수 최성수 초청 콘서트, 한양대학교 현대무용단 초청 공연, 팔만대장경 인쇄본 전시회, 한복패션쇼 등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총체적 문화 축제 한마당을 꾸몄다. 그후로도 약 5년간 한인문화축제는 계속됐었고 샌디에고 시장은 ‘한국문화축제 기간’을 선포하며 한국문화의 전통을 축하했었다.
“지금이야 한류가 대세이지만 그때만 해도 한류라는 표현조차 없었습니다. LA에서 발행되는 한인 일간지에는 매주 샌디에고 로컬 소식이 한 면에 걸쳐 실렸었는데 UC 샌디에고에서 실시하는 행사들이 거의 그 면을 도배하다시피 했었죠.”
이기환 교수는 UC 샌디에고 학부 과정에 한국학(Korean Studies) 부전공 코스를 처음으로 개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선구자가 되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지 알만한 이는 알 것이다. 안 그래도 결재 받아야 할 사람 많은 주립대학에서 편법 없이 정석대로 모든 과정을 밟아 올라가다 보니 한국학 부전공 코스 개설에 꼬박 2년의 세월이 걸리더란다. 처음 2개 반으로 시작한 한국어 클래스는 오래지 않아 10개 반으로 늘어났고 조교만도 6명이 되었다. 이는 당시 UCLA와 하와이 대학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400명 정도에 불과하던 한국어 학생의 숫자는 현재 수천 명으로 증가했다. 어쩜 이때부터 그의 인생 화두인 ‘한국 문화 알리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학생 한 명에게 한국에 대한 것을 가르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그 대상이 교사가 된다면 여러 명의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잖아요?”
이를 실천하고자 그는 1990년대 중반, UC 샌디에고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교육대학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도 그는 또 일을 저지른다.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교육 교사 자격증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시험적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도밍게즈 힐즈(Cal State University Dominguez Hills)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모집이 쉽잖았다. 이중언어 프로그램이라 학생들이 두 가지 언어를 다 잘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자격요건을 갖춘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캠퍼스에서 한다고 학생모집이 더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아시안 이중언어 연합(CSU Asian Bilinguial Consortium)을 결성한다. 플러톤, 롱비치, 노스리지, LA, 포모나, 도밍게즈 6대학의 학생들 가운데 한국어 이중언어 프로그램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누구든지 따로 입학허가서 없이 도밍게스 힐즈에 와서 한국어 이중언어 교사 프로그램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교사 자격증 프로그램에 등록했던 인원은 연평균 약 15-20명. 현재 캘리포니아 이중언어 교사나 한국어 교사들은 거의 모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아시안 이중언어 연합(CSU Asian Bilinguial Consortium)을 통해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기환 교수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USC 코리아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USC의 한국 대표로서 대외홍보는 물론, 우수 학생 유치, 기업•대학•정부기관과의 협력체계 만들기, USC 동문과 학부모 지원, 행정업무까지 실로 방대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한국을 찾는 USC의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한국의 대표로 한국과 한국 문화 알리미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USC와 한국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활발한 교류를 나누고 있다. 연구 차 한국을 방문하는 교수들, 연수를 받기 위해 찾는 학생들도 수백 명 수준이다. 또한 샹하이의 USC MBA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이들도 꼭 한국을 거쳐 간다. 지난 여름, 잠시 LA를 방문한 이기환 교수는 4주간 진행되는 글로벌 이스트 아시아 코리아 프로그램(Global East Asia Korea Program)을 위해 서둘러 인천행 비행길에 올라탔다.
2008년 프리먼 재단(Freeman Foundation, 미국과 극동 아시아 지역 나라들과의 국제적 이해를 돕기 위해 설립된 재단)에서는 극동 아시안 스터디 센터(EASC, East Asian Studies Canter)에 40만 달러를 기부했다. EASC에서는 이 기금으로 USC 학부생들 가운데 장학생을 선발해, 한국 일본 중국 등 극동아시아 국가에서의 단기 유학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수업료는 물론, 항공료와 체류비용까지 전액을 부담한다. 올해에도 12명의 장학생이 선발돼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 프로그램 코스의 타이틀은 ‘세계적 시각에서 본 살아있는 한국(Korea in motion in Global perspective)’이다. 강의는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서 진행됐는데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에게도 오픈돼 7명이 등록했다. USC는 미국 내 여러 대학 가운데 한국 유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다. 총 학생 4만명 가운데 750명이 한국 유학생이다. 한국인 유학생 뿐 아니라 유학생 전체의 인구도 가장 높아 4만명의 25퍼센트인 1만명의 유학생이 다니고 있다.
USC 당국은 세계 각국의 우수인재라면 글로벌 시티즌 그 누구라도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취지 하에 정책적으로 유학생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클래스메이트 중 전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 숫자가 많으면 미국인 학생들도 그만큼 국제적인 안목과 세계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는 계산에서다. 올해 학부 신입생 정원은 2900명이었는데 지원자만 6만이 넘었다. 이 가운데 25퍼센트 정도가 유학생으로 채워진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유학생들에 대한 입학 사정 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USC 동문들의 활동상은 눈부시다. 해외에서의 실제적 경험을 중시하는 학풍 때문에 거의 모든 학부학생과 석사과정 학생들은 해외에서의 견학과 현장 학습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7개국에 개설돼 있는 USC 대표부들은 학교의 세계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기환 교수가 디렉터로 있는 USC 한국 대표부, USC 코리아는 7개의 대표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한국인 유학생 수가 가장 많아서도 그렇고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집중돼 있어서도 그렇다. 기러기 아빠가 되어 한국에서 생활한지 이제 5년째에 접어들지만 학교 업무가 워낙 바빠 외로움을 느낄 만한 시간적 감정적 여유가 없다고 한다. 이미 그에게 있어 상당히 이국적인 나라가 되어 있는 한국에 대해 그는 여전히 관심이 많다. 박사 학위를 가진 자이니 공부를 할 만큼 했을텐데도 그는 한국에 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란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다닌 그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냥 한국인이 아닌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 음식을 먹으니 나는 당연 한국인이겠지, 생각하지만 코리안과 코리안 아메리칸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미국에 살아온 햇수가 늘어갈수록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면서 현지화되는 부분이 적잖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가 상대하는 학생들과는 세대 차이까지 더해진다. USC 코리아 사무실에도 학기별로 3-4명의 인턴들이 일하고 있는데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을 대할 때면 화성인을 대하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하는 그의 시각은 늘 ‘호기심 천국’이다. 또한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고 흥미로운 것도 없겠지만 그에게는 별천지로 다가온다고. 그 다양한 업무 가운데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학생과 교수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을 소개하는 일이다. ‘다정도 병인양 하여…’라더니 그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너무 많아 늘 몸이 피곤하다.
“미국인들은 대개 일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선진국가였고 그들의 눈에 신비한 문화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지요. 중국은 경제규모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나라인데다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라 기선을 제압하죠. 중국과 일본 가운데 끼어 있는 한국은 사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나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한국을 불 수 있게 해주려 하다 보니 몸이 힘드네요.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그는 USC 코리아를 찾은 미국인들, 그리고 전세계인들에게 참 한국의 정신(True Korean Spirit)을 보여주고자 애쓴다. 그는 한국의 정신은 불교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고 믿는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사회상이 많이 변화했어도 한국인들의 정신세계 뿌리에는 불교가 있습니다. 물론 유교적 영향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유교는 행동과 에티켓에 관한 것이죠. 한국인의 정신에는 불교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습관만 보더라도 그래요. 얼마나 불교에서 나온 표현들이 많이 있어요? 불교는 우리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는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과 한국학생들에게 이 점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불교는 우리 문화와 정신세계에 부인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불교문화와 역사에 애써 무관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해 부인하고 적대감을 갖는 것은 내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와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방문객들과 함께 석굴암 불국사와 같은 불교 문화유적은 물론, 서울의 조계종을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곳은 DMZ(비무장지대), 궁전, 그리고 사찰들이라 웬만큼 코드가 맞다. 처음에는 현대적 도시계획 하에 지어진 강남의 멋진 빌딩들도 보여줬지만 외국인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파악했다.
그가 한국의 숨은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가장 권하는 것은 깊은 산 속에 좌정하고 있는 사찰로의 산행이다. 그 자신도 미국에 돌아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한국에서의 산행이더란다.
“한국에서 등산을 하다보면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심산유곡에 절이 나오잖아요. 땀을 한참 흘린 후에 나타나는 사찰은 건축물도 아름답고, 주변의 고요한 정적도 감동적이죠. 이는 직접 체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요. 서울은 공기도 좋지 않고 도심에는 아파트와 고층빌딩 등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은데 산에 오르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갖죠. 깊은 산사에 들어가면 며칠 그곳에서 지내지 않아도 템플 스테이를 한 것처럼 힐링이 됩니다. 저는 업무상 일본도 자주 가는데 한국 사찰의 아름다움과 깊이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만들어놓으셨는데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서양적인 것들만 추구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USC 코리아 본부장 자리는 USC 교수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보다 잘 알릴 수 있는 기회라서 선택했다. 물론 학교에서 기대하는 만큼만 일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로 성에 차지가 않는 것은 그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참으로 자랑스러워 하고 한국적인 것을 더할 수 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을 소개하고 홍보하며 한국의 위상을 올리는 일이라면 앞으로도 뜨거운 가슴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한국 사랑, 한국문화 사랑은 하와이에 이민왔던 9살 때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태권도장에 다니며 무술인의 꿈을 키워갔단다.
“본래 한국의 무술이었던 태권도가 현대로 오면서 일본 가라테 영향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유도와 합기도도 배웠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일본화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래 한국의 무술은 움직임이 유연하고 원형에 가까운데 일본화되면서 직선적으로 바뀌었더군요.”
태권도 유도 합기도 3가지 무술의 블랙벨트를 획득한 그는 무술을 깊이 연구한 끝에 우리 무술의 순수한 동작을 찾아 ‘국무도’라고 명명하고 보급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술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화랑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 가운데서도 화랑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힘을 펴지 못하고 있어요. 그나마 태껸이 부활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무술인의 꿈을 꾸고 무술에 빠지면서 불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무술도 승려들이 사찰에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했던 전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도밍게즈 힐즈(Cal State University Dominguez Hills)에 있을 때만 해도 태권도 학과가 있어 체육과 학생들은 태권도를 의무적으로 배웠어야 했다. 당시 30대였던 그는 학생들 앞에서 태권도 시범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었다고.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몸이 따라주질 않네요. 하하하.”
USC, 한국 유학생 숫자 최고,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
남가주대학(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2012년 가을학기 기준, 유학생의 숫자는 약 7900명, 이 중 상당수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학생들이다. 남가주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695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약 8.8%를 차지한다. 현재까지 수많은 한국인 졸업생을 배출했다. USC에 따르면 매년 USC에 입학하는 한국 국적 학부생은 약 80명. 석•박사과정 등록생은 외국인 중 한국 국적자가 약 1,800명으로 중국 학생 다음으로 많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기환 교수에 따르면 이 숫자는 2년새에 더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유학생 교육에 있어 USC는 글로벌 리더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유학생들을 위해 미국 내 어떤 대학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USC는 한국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안전부 등 국내유수 대학교 및 정부 유관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해외 연수 프로그램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USC에는 약 8만여 권의 장서 및 멀티미디어 자료를 보유한 한국학 도서관(Korean Heritage Library)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자 별도로 운영되는 한국학 연구소(Korean Studies Institute)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코리아 프로젝트(Korea Project)’를 진행하는 한편, 매년 ‘한국 영화 페스티벌(Korean Film Festival)’도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7개의 USC 국제 사무소(International USC Offices) 가운데 한 곳을 한국에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5월, 서울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에서는 ‘USC Global Conference 2013’ 행사가 열렸다. USC 글로벌 컨퍼런스는 격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로 각 학계의 최신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환태평양 지역의 주요 현안들을 논의한다. 작년 주제는 “인류의 글로벌 도전 과제(Global Challenges for Humanity)였다” .
작년 컨퍼런스에는 USC의 석학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했고 정치인, 경제인, USC 동문, 학자 등 약 500명이 참석해 21세기 학문별 주요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이자 USC 석좌교수이기도 한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기조연설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