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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의 영광 제17편 황금과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2) -2018 8월 18일- 우린 오후부터 세게 3대 미술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즈 미술관을 한국 가이드와 함께 관람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행과 헤어지고 우린 이삭 성당으로 갔다
상트 페테르부르그(St,Petersburg)는 9세기부터 러시아 대공국의 영토였지만 1617년 스웨덴이 네바강에 요새를 세워 스웨덴 령이 되었으나 1700년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대제의 북방전쟁으로 다시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며 1703년부터 9년에 걸쳐 표트르대제는 야심적인 유럽식 도시를 건설하여 러시아의 수도로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의 상트 페테르부르그라고 명명하였다
독특한 러시아식 바로크 양식을 만들어 내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예술적인 도시로 지난 2세기 동안 크게 발전을 이루었으며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1924년에 레닌 그라드로 변경하였으나 1991년 시민의 요구로 본래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세게적인 예술가인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하여 푸시킨, 차이콥스키, 트로이
우린 이시악 성당으로 택시를 타고 찾아 갔다
성 이사악 대성당은 1707년 표트르 대제 때 지은 소박한 목조 건물로 된 성당인데 표트르 대제가 예카테리나 황후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으나 파괴되고 훼손되어 지금의 대성당은 예카테리나 2세 때인 1761년 건설을 시작해 약 40년 후 파벨 1세 때인 1802년 표트르 대제의 생일에 맞추어 5월 30일에 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르1세 대왕은 더 크고 웅장한 성당을 원하여 1818년 황제의 개축하기 시작하였다 한 개 125톤에 달하는 핀란드산 화강암 기둥 48개를 성당의 파사드에 원형으로 40년간 계속된 공사와 40만명이 투입된 공사는 마침내 1858년 5월 31일
성 이삭이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와 그의 아내 플라 첼라(Flaccilla)를 축복해 주고 있는 모습을 이사악 성당의 처마에 청동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장되지 못하고 고향인 프랑스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무려 101.5미터의 황금색 돔을 자랑하는 이사악 성당은 세계 최대 성당의 하나로 지금은 러시아 화가 카를 브리쵸프와 예술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이 150점 이상 전시되고 수 백개의 동상과 부조들이 있어 예술의 극치를 맛볼 수 있었다 지붕의의 조각품들은 "십자가 운반하는 그리스도""애도", "죄인의 대학살"및 "양치기에게 나타나는 천사"의 동상으로 있으며 24개의 천사 조각상이 만들어 져 있다고 한다
신 고전주의 양식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창세기의 이삭이 아니라 정교회의 성인인 달마티아의 이사악에게 봉헌되었다
서쪽 문 외부는"산상 수훈", "나사로 양육"및 "약자의 치유"장면을 묘사 한 조각은 I. Vitaly의 작품이라고 한다 성령을 기리는 위대한 돔 내부의 12사도와 성령들이 조각되어 있었고
한국어 가이드의 녹음기가 있어 우린 이것을 사용하였으나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따라 머리 부분에 천을 둘러야 한다고 한다
밝은 주간에 거룩한 문을 통해 본 성소인데
성상칸막이(iconostasis) 가운데는 제단 앞으로 크고 화려한 문이나 휘장이 있고
그리고 6개의 공작석 기둥과 2개의 청금색 기둥이 서 있었고 화려한 문들은 4복음서 저자들 수태고지, '최후의 만찬' 성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한 문 왼편에는 성육신(아기를 안은 어머니) 성상이 오른편에는 그리스도의
공원을 찾아 크루즈에서 준비해 온 샌드 위치로 간단하게 늦은 점심으로 대용하고 공원을 산책, 공원안에는 조각가 A,V Loganovsky의 청동상이 서 있었다
보고 미술관은 가이드설명과 함께 관람하가로 하고 겨울 궁전으로 갔다
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국왕으로부터 부채상환 조건으로 받은 300여점의 미술품과 자신이 수집한 예술품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1764~1787년 겨울 궁전 옆에‘소(小)에르미타시’와 ‘구(舊)에르미타시’를 건설하고 이곳에 미술품을 보관하고 귀족들만 은밀히 감상 하도록 하여 프랑스어로 '에르미타시(은둔지)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에르미타시 명칭의 유래이다.
그후 차르들의 예술품 수집과 약탈 등으로 미술관을 확장하여 현재 약 3백만점의
궁전은 150 년 동안 왕조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힘겹게 물리치고 승전한 알랙산드르1세의 기마상과 당시 참전했든 장군들의 모습을 벽면에 전시하여 승전을 기념한 방이며 차코프스키도 1812년 서곡(Overture)를 작곡하여 승전을 축하했다고 한다
그랜드 홀과 방 유라시아와 동양의 유물 수집품 전시방
방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전시된 작품들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데, 러시아 혁명 후 귀족들로부터 압수한 무려 27KM에 달한다고 하니 대영 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과 같이 손색없는 세계3대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우린 약속시간이 되어 겨울궁전을 나오 미술관 쪽으로 갔다
미술관 가이드가 한국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온 사람은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우린 궁전 광장을 지나 겨울궁전을 마주보고 있는 멘시코브 궁전(Menshikov Palace)의 스테프 빌딩[General Staff Building]으로 가서 미술관으로 입장하였다
우린 스터프 삘딩 4층으로 가서 유명화가들의 독립된 그림들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4층 첫째방은 프랑스 화가 마티스 앙리Matisee Henri(1869~1954)방이다 1936년 빌표한 만년의 작품으로 푸른 부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자“Young woman
delectorskaya의 29세 때의 인물화로 약간의 비대칭 얼굴은 청순함과 독특하고 개성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어 주며 연 핑크의 얼굴과 목들미는 젊음의 상징이며 청순함의 표현이라고 한다
마티스의 유명한 그림 “댄스“이다 선으로 아름다운 몸매에 역동력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어 안정적인 정서를 나타낸다고 한다
마티스는 자기가 그린 작품을 한 달간 유심히 관찰하면서 완벽한 생각이 정리되면
카밀 피사로(Camille Passaro 1830~1903)의 1897년 작품 “센 강변”
프랑스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1876년 작품으로
1890년 작으로 “양귀비꽃 들판(Poppy Field)”이라는 연작중의 하나로 그는 시각에
1884년 작품으로 모네가 보르디헤라에 머무는 기간에 그린 작품으로 "보르디헤라의 정원, 아침의 인상(Garden in Bordighera, Impression of Morning)"이다
1875년 Degas Edgar(1834~1917)의 작품으로 “Placio de la Concord”이다 사람도 반쪽 마차도 반쪽 중앙의 넓은 공간등 작품의 구도를 파괴한 화가로 에드가르는 거의 발레리나들의 그림을 많이 그렸고 드가의 작품 속에는 모델들이 화폭의 중앙에 있는 법이 없고 항상 좌우측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1884년 작품으로 “목욕후( After the Bath)“인데 1년 전에 에드가르 가드는 비슷한 그림 “몸 닦는 여자(Woman Wiping Herself)”를 그렸다고 한다
폴 세잔( Paul Cezanne 1839~1906)은 화가이면 꼭 가고 싶은 프랑스 남부 도시
작품으로 화가의 집안에서 누이는 피아노를 치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 하였다 하여 부제를 ‘탄호이저 서곡’이라고 한다
1892년 발표한 “담배피우는 사람( Smoker)”이라는 작품으로 세잔느의 원근법 무시와 굵은 톤의 어두운 색감으로 무게감을 느끼는 작품이다 가장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은 안정되고 휴식이라는 자체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1891년 발표한 “목욕하는 사람들(Bathers)’라는 작품으로 굵고 밝은 톤의 미술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