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5년 12월 20일이다.
금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뒤 덮인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데
비는 오지 않고, 몸을 움추리게 하는 음랭한 공기가
햇빛을 아쉽게한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후하게 계산을 하더라도
살아 온 날의 절반을 크게 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것도 좋은 것 즐거운 것은 다 까먹어 버리고
괴롭고 아픈 것만이 남아 있는 세월일 것이다.
60년을 넘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 세월동안 나는 평범 이하의
눈에 띄지 않는 인간으로서 살았다.
평생을 소작농으로 살면서 인생의 의미를
"자식을 낳아서 자손을 이어가는 것" 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은
가난한 농부의 기대 밖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백하면 금새 무시로 돌아 오는 학력"만을 받았고,
그 학력을 노력과 의지로 극복하고
하급이지만 공무원으로 퇴직한 나를
특별한 무엇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려는 사람은 없다.
나에 대한 그러한 평가는 가까운 친척일수록,
몇 않되는 추억을 같이하는 어릴 적의 친구일수록 더하다.
어쩌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어떻게 살기에 얼굴도 보기 힘드냐?"는 것이다.
"먹고 자고, 자고 먹는 것 같은데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않된다"는
좋게 봐야 건강을 걱정해 주는 말이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인생낙오생'에 대한 조롱하는 말이다.
1년 쯤 전이었을까. 친척의 결혼식에 만난 막내 여동생에게
지나는 말 끝에
"책상 위에 컴을 올려 놓고 지내니 한번 쯤 내 까페에 들려 보라."는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대뜸
"오빠 어린애 같은 짓을 하는 곳에 갈 시간이 어딨어?"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하기사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서기관이 되어 자긍심으로 꽁꽁 뭉쳐 살고 있는 그의 눈에
일생을 공무원의 밑바닥에서 살다가 퇴직 후에는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연금으로 살면서
컴 앞에서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주위에서 조차 그렇게 밖에 인정을 받는 내가
세상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산다면 그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나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말을 해주면
평생 익숙히 받아 온 것이 아니라 기쁘기 보다는 어색할 뿐이다.
나는 세상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지 않는다.
그저 남이란 존재는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 하지나 않고,
내가 하는 일이나 쌓아 온 것에 대해서 삽질이나 하지 않으면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세상의 외면을 받으며 살아 온 내가
까페를 만들고 영향력있는 까페로 키워 가려는 욕심은
가당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까페를 시작한 2007년 3월 31일 부터 8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을 오게 하기 위해서 영화를 올려 놓았었다.
나는 형제나 옛친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 없는 인간이지만
대한민국 제일의 영화관을 구축한 까페이기에
회원수는 이제 55천명을 육박하게 되었다.
"5만이 넘는게 무슨 의미야?"하는 누구의 말처럼
까페를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8년동안 아내의 눈총을 먹으면서도 내가 견디어 온 것은
까페가
내가 아무리 못난 사람이지만 내게도 입이 있고,
지꺼리지 않으면 구린내가 날 만큼 쏟아 내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곳이고
그 말들은 까페가 커질수록 크기를 더 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내게 있어서 영화는
까페에 사람을 오게하고 까페를 늘리는 수단일 뿐이었다.
영화를 올리는 것은 올리려고 노력을 하는 만큼 내 시간을 가져 가고,
영화가 가져 가는 시간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없어져 버렸기에
어렵고 괴로운 작업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국 까페를 하는 목적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까페에 올려진 영화뿐이 되버렸다.
남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듯이
나도 영화란 것을 그렇게 밖에 인정하지 않았는데,
내 인생에 까페를 빼면 무엇이 남고, 까페에 영화를 빼면 또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 딜레머에 빠져서 방황하는 시간이
지난 11월 부터 며칠 남지 않은 금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다.
한해를 보내는 것. 한 살 더 늙어 가는 것.
그러한 것은 바다 위에 띄워 놓은 부표처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해 보려하지만
한해의 끝자락에 있는 마음을 상실감에서 벗어 날 수 없게한다.
정말 영화를 구하고 회원들이 감상할 수있도록 인코딩하고
자막의 싱크를 맞추는 일에 쫓기며
하루 종일 아내의 얼굴조차 마주 볼 시간이 없는 현재의 생활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한해를 보내는 이 시점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혼돈한 마음이지만
사실은 까페를 시작하던 그 시간부터 시작되어
점 점 늪속에 빠져 드는 듯한 내 자신에 대한 회의이다.
그 어두운 혼란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뻗어 오는 일이 얼마전에 생겼었다.
어떤 분이 영화 '패세이지'를 신청하면서 " 그영화를 다시 감상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다시 가져 보는 것이다. 부탁한다" 는 말을 했고
다른 어떤 분이 '인간의 조건'을 신청하면서 그와 같은 의미의 말을 덧 붙인것이다..
아마 그 영화들은 시중에서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일 것이다.
그 영화들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동영상을 구했지만
화면은 화면대로 제멋대로 이고, 영상과 자막 의 싱크가 따로 따로인 동영상이었다.
지금 게시판에 올라 있는 동영상은
16대9 모니타의 화면에 꽉찬 쾌적한 영상에 싱크도 꼭꼭 맞지만,
모두 3번의 인코딩과 5초마다 0.5초씩 어긋나는 싱크를
한땀한땀 털실을 꿰어 쉐타를 짜듯이 일일이 싱크를 맞춘 것이다.
지금 다음과 네이버를 통털어 그런 종류의 영화를 구하고
쾌적히 감상할 수 도록 작업할 사람은 나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또 있고, 이 글을 읽는 다면 댓글을 달아 주었으면 한다.
지금 일을 같이 하던지 내가 이 까페를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늙어 버릴 때
이 까페를 물려주고 싶다.
나는 엄청난 보람을 느끼면서 게시판에 그 영화들을 올려 놓았다.
그 감동은 지난해였던가 아니면 더 오래 됬던가
'조윤숙,'이영수' 주연의 1978년도 작, '소나기'를 올려 놓으면서도 느낀적이 있다.
문득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그러한 영화를 구하고 추억을 돌려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글은 나 아니라도 쓸 사람이 많고, 내가 애써서 써 놓아 보았자
읽는 사람에게 읽는 고통을 주는 것일 바에야
차라리 다른 누구도 구할 수 없는 영화를 구해서
추억을 돌려 주는 일이 의미 있지 않는가고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있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내가 까페를 하는 의미를 그런 보람 속에서 찾아야 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 박서규 / 보리수 -
감사해요
이야 정말 수고가 많으 십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잘읽고갑니다 ~~
힘 내셔요 홧팅.
화이팅
자주오고싶은 카페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구나 부럽네요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0^.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행복만 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