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3대 대첩
전국적으로 왜적을 물리치려고
, 불법을 닦던 승려들도
조국을 위해 의병으로 참전하였다.
휴정 서산대사는 평안도 순안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허영은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만치당 권율 장군을 도왔다.
사명당은 강원도에서 승군을 일으켜 휴정과 협력하였다.
의병활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해지고,
바다에는 해군이 승전보를 올렸다.
전세가 차츰 조선쪽에 유리해져갔다.
명나라는 조선으로 이여송이 이끄는
]군사 4만 3천 명의 원병을 보냈다.
조선의 장수 김응서와 힘을 합하여 평양과 개성을 차례로 회복했다.
왜군은 남쪽으로 퇴각하게 된다.
만치당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이순신은 노량해전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첩이라한다.
왜군은 조선군의 공격속도를 늦추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휴전을 제의한다.
휴전 교섭이 결열되자,
왜군은 다시 침략하니 정유재란이라 한다.
일본은 전번처럼 바다에서 실패를 하지 않기위해
, 이순신을 모략하여 조정에
그를 가두게 하였다. 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등용한다.
이순신은 적을 명량 해협으로 유인하여 큰 타격을 입히고
승리를 거둔다.
육지에서도 전열을 정비하여 왜군을 저지하였다.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이순신의 수군은 도망치는 왜선 수 백척을 노량 앞 바다에서
격파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황해도 4형제 의병장.
김만수 26세의 동생, 천수, 백수, 구수, 4형제가
황해도에서 소문난 의병장이다.
봉산에서 의병 9백 명을 모아 대장이 되었다.
장단에서 일어난 유극량의 군사와 합세하여
북상하는 왜적과 싸웠지만,
중과부족으로 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동생 백수가 전사하고 많은 희생자가 났다.
두 아우와 다시 전열을 정비해 이번에는 많은 적을 격파했다.
부찹벌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
불행이도 도총부 도사였던 아들
광협(光鋏: 27세)이 전사했다.
선조 26년(1593년) 진도군수로 임명되고,
이순신 군대와 광주의 의병대장 김덕령 군대에 군량미를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 시기하는 자들 때문에 공록을 받지못했다.
공조판서로 추증되고, 봉산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김 계(繼: 24세)와
김 위(緯: 23세) 등 6형제가 무두가
전라도 고창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오봉 김제민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여러곳에서 전공을 세워
벼슬이 부장과 병절교위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 해남에서 전과를 올리고 왜란이 평정되자 사직하였다.
백곡 김홍우(弘宇:24세),
모남 김광우(光宇: 24세),
양촌 김덕우(德宇:24세) 의 3형제와,
만옹 김기수(麒壽:24세),
국제 김성진(聲桭:24세) 등 한 집안과,
서석 김언욱(彦勗: 27세),
김언희(彦希: 27세),
형제 등 많은 광김들이 남문에서 창의하였다.
김제민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창, 장성, 직산, 용인, 소사 등지로 옮기면서 적과 싸워 전과를 올렸다.
군량미를 모아 재행소와 강화도로 보내는 등 공이컸다.
김 부(簿: 27세)는
훈련정으로 남원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김 명(溟: 27세)은
의병으로 참전하였다가, 병을 얻어 귀향했다.
적의 침입이 우려되어 형수와 조카와 자기 가솔을 끌고
피난중 적에 잡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이를 본 부인과 형수가 격분하여 강물에 투신 자살했다.
살아남은 아들이 15세였는데,
어머니가 투신 자살한 곳에 여막을 짓고 두분
부모님을 합하여 6년을 살았다.
두 형제 내외의 충절과
아들의 효도를 기리기 위해 한 집안에.
삼강을 다지켰다는 일문삼강( 一門三剛)의 정려(旌閭)를 내렸다.
오산 창의사에는 당시 의병으로 궐기한 분의
72위의 공신을 배향하고 있다.
광산김씨가 13위로 위에 설명한 분들이 포함되있다.
김언익(彦益: 27세)는
언욱의 맏형으로 선무량(종6품)이었다.
동생과 함께 활약한다.
김언조(彦勗: 27세)는
어가를 따라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의정부좌참찬(정2품)에 증직되고 구산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언희(彦希: 27세)는
언익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군량미 수 십석과
유지 80여 명과 같이 의거를 했다.
명나라 지원군이 남하 할 때 의병 600여 명과 함께 진주로갔다.
고종후(고경명의 아들)장군 휘하에서 육박혈전을 벌이다가 운명하였다.
장예원정(정3품)에 증직되다.
김윤국(潤國: 25세)은
임진왜란 때 양곡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영천군수를 지냈다.
명나라 삭신 심유경 접반관이 되었고 선산부사로 승진되다.
선무원종훈에 책록되고 이조참판에 추증되다.
김은휘(殷輝:26세)선조
15년 호조좌랑으로 있을 때 아전들이 올린 회계장부에
많고 적음을 지적하니 아전들이 불복하였다
.정산한 결과 확실하니 아전들이 두려워하였다.
익위를 제수받아 의병을 모집하였다.
채찰사 송강 정철과 함께 군무를 계획하여 군공을 세우다.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가 되다.
김입휘(立揮:26세)는
함열현감을 거쳐 장예원 사의를 지냈으나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였다.
김공휘(公輝: 26세)는
율곡의 문화생으로 파주목사를 지냈다.
유곡의 추천으로 찰방을 거쳐 의금부 도사가 되고
정여립난을 토평하여 원종훈에 책록되다.
가는 곳마다 치적이 현저하였고, 사후에 휴정서원에 배향되다.
계휘, 입휘, 은휘, 공휘 4형제를 가르켜 황강 4파라 한다.
김공희(公喜:28세)는 선조조에 급제,
영광군수, 남원부사를 지내고 호조참판에 추증, 기양사에 철향되었다.
24세 절의신 휘 수연(양간공파‧ 사온승공파)
열부(烈婦) 김해김씨 부인의 순절
조선 중기 문신, 절의신, 자는 여심, 호는 금은.
아버지는 통훈 혼, 어머니는 숙인 금성 김씨.
집의공 수연은 무과에 급제하고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세가
허약하여 아들 4형제와 5부자가 함께 순절하였다.
부인 김해김씨와 며느리가 뒤따라 순절하니,
예조에서 충‧효‧열을 장계하여 선무원 종훈에 책녹되었다.
열부(烈婦) 숙부인 김씨의 본관은 김해로 진사 여종(汝宗)의 따님이시다.
나이 20세에 수연(壽淵:벼슬은 집의)에게 시집오니
부인은 천성이 순박하고, 행실이 정숙(貞淑)하였다.
효심은 더욱더 지극해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질들을 가르침에 도의(道議)로서 법도에 맞게
훈육해 현모양처의 도리를 다하여 가법이 엄정하고 화평하였다.
선조 임진(宣祖壬辰)에 왜구의 침입으로 난세를 만났다.
불행히도 정유년(丁酉) 재난을 만나 남편이 의병을 일으켰다.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남원성을 지킬 제 독전을 하다가
세부득이 중과 부족으로 적의 창살에 전사하자
아들 사형제
몽룡(夢龍), 몽필(夢弼), 몽령(夢齡), 몽업(夢業)이
진중(陣中)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역전하다가
4 형제가 함께 순사(殉死) 하였다.
열부 김씨는 부군과 아들 사형제가
모두 전사하였다는 흉보를 듣고 통곡하며 이르되,
“남편은 나라를 위해 죽고,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죽으니,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어찌 나 혼자만 살 수 있겠는가!”
하시면서 식음을 전패하고 절곡(絶穀)한지 7일 만에 운명하셨다.
이를 지켜보시던 맏며느리 정씨(鄭氏)도 탄식하면서
“시부모와 남편과 동기를 모두 잃고 어찌 나 홀로 살리요” 하고
목메어 자살하니 아 슬프도다.
평화롭던 가정이 왜구의 침략으로
한 집안 양대 오 부자(五父子)와 고부(姑婦)가 함께 가시니
참혹한 참상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요.
오호라(嗚呼)! 전화(戰禍)의 참상.
일문양세(一門兩世)가 삼강<三綱: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모두 갖추었으니
그 충의열(忠義烈)의 삼절(三節)이 빛나도다.
그 행실이 “삼강행실록”과 “호남절의록”에 실려 전해져서
열부 김씨의 열행을 찬미하게 된다.
열부의 남편 수연공은 양간공의 증손 사온승
성(成)자 이(利)의 칠 세손이며 호는 금은(錦隱)이다.
무과 급제로 사헌부 집의로 순절하시니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참록 되었다.
열부의 미덕(美德)을 기리는 삼강비(三綱碑)가
금산촌 앞에 세워지고
마을 뒤 금우사(錦宇祠)를 세워 향사를 모시고 있다.
※집의공께서 나라와 임을 위해 죽으니 군위신강(郡爲臣綱)이요,
4형제분은 어버이를 위해 죽으니 부위자강(父爲子綱)이요,
김씨 할머니께서는 남편을 따라 죽으니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고부가 모두 나라를 위해 죽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다가 죽고,
자식과 남편을 따라 죽으니 삼강(三綱)이다.
종보 97. 1. 1.
광산김씨약사. 광산김씨사. 광산김씨종보.
2023년 6월.
대구 경북 종친회 전 부회장, 선국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