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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620 (월)
- 장삼이사(張三李四)와 Average Joe
-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 (16)
- 문화, 여행 (60)
약 1년 반 가까이의 <불교사찰 둘러보기> 16편을 올리기 위해 불교와 관련된
책자들도 여러 권 사서 읽으며 자료를 찾고 서로 비교하고 글을 구성하고
또 만드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자료정리가 비교적 쉬운
글을 올리려 합니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은 전에도 15회에 걸쳐서 올렸던 테마로
앞으로 당분간 계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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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의 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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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름이나 신분이 별로 특별하지 아니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를 때
일반적으로 다음의 말들을 사용합니다.
즉, “장삼이사(張三李四)”, “갑남을녀(甲男乙女)”, “선남선녀(善男善女)”,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 “우부우부(愚夫愚婦)”, “초동급부(樵童汲婦)”,
“필부필부(匹夫匹婦)”, “유상무상(有象無象)”, “어중이떠중이”,
“오합지졸(烏合之卒)”, “오합지중(烏合之衆)” 그리고 “잡놈” 등등입니다.
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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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삼이사(張三李四)
- “장삼이사(張三李四)”란 “장씨(張氏)가 셋, 이씨(李氏)가 넷”이라는 뜻이 아니라
“장씨(張氏)의 셋째 아들과 이씨(李氏)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아니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 이 말이 어찌하여 “김삼이사(金三李四)” 또는 “이삼박사(李三朴四)” 등으로
쓰이지 않고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쓰이는 사유는 이 말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중국은 우리나라하고는 다르게 장씨(張氏)와 이씨(李氏)가 많습니다.
- 즉,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대개 장(張)씨네 셋째 아들 아니면
이(李)씨네 넷째 아들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장(張)씨와 이(李)씨가 많습니다.
- 최근 조사에 의한 우리나라의 성씨별 인구 순위는 “김씨(金氏)”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귀를 이어 “이(李)-박(朴)-최(崔)-정(鄭)-강(姜)-조(趙)-윤(尹)-장(張)-
임(林)” 등의 순서라고 합니다.
- 이를 다시 본관(本貫)별로 보면 “김해김씨(金海金氏)-밀양박씨(密陽朴氏)-
전주이씨(全州李氏)-경주김씨(慶州金氏)-경주이씨(慶州李氏)-경주최씨(慶州崔氏)-
진주강씨(晋州姜氏)-광산김씨(光山金氏)-파평윤씨(坡平尹氏)-청주한씨(淸州韓氏)”
등의 순서라고 합니다.
- 한편 또 현대 중국의 주요 성씨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데, 즉
“이(李)-왕(王)-장(張)-유(劉)-진(陳)-양(楊)-조(趙)-황(黃)-주(周)-오(吳)” 등의
순서라고 합니다.
- 즉, 중국에서는 1위가 이씨(李氏), 2위가 왕(王)씨이고 3위가 장씨(張氏)로
무척 많은데,
- 이씨(李氏)의 경우, 당(唐)나라 황제 이세민(李世民)이 개국공신들에게
“성씨 이(李)”를 하사했고, 나중에 후위(後魏)의 선비족(鮮卑族)에서도
“이(李)”씨로 바꾸어 사용한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합니다.
- 중국의 이씨(李氏)들은 영어로 표기할 때 "Li"를 주로 사용하며, 우리나라는
“Lee"를 주로 사용하는데, 참고로 미국에는 "Lee"와 ”Kim"을 이름(First Name)
으로 쓰는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나라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는 “Rhee"를 사용했습니다.
- 또한 장씨(張氏)의 경우 지금도 여러분들이 즐겨 찾는 후난성(호남성-湖南省)
북서부에 있는 “장자제(張家界-장가계=장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는
중국 사람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도 유명합니다.
- 또 그 안에는 “위안자제(袁家界-원가계=원씨 마을)”와
“양자제(楊家界-양가계=양씨 마을)”도 있습니다.
- 또한 제2위인 왕(王)씨를 사용하여 “왕삼이사(王三李四)”란 말이 생기지 않은
것은 “왕(王=임금)이 셋이면 어쩌고저쩌고”로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왕(王)씨는 중국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사이의 신(新)나라 때 잠시 있었던
황제 왕망(王莽)의 성씨로서 중국 사람이라 하면 “비단장사 왕서방”이라 할
정도로 중국에는 왕씨가 많은데,
-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왕족이 “왕건(王建)”의 왕씨였으나 고려 멸망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는 조선의 탄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옥(玉)”, “전(全)“, ”전(田)“씨 등으로 성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참고로 중국을 통일하여 황제의 칭호를 쓰기 시작하는 진(秦)나라부터의
건국한 황제들의 이름을 보면,
- 먼저 진(秦)나라의 시황(始皇)의 이름은 영정(嬴政)인데, 혹은 조정(趙政), 또는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설(說)대로 여정(呂政)이라고도 하며, 뒤를 이은
한(漢)나라는 고조(高祖) 유방(劉邦) 그리고 수(隋)나라 문제(文帝) 양견(楊堅),
당(唐)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 송(宋)나라 태조 (太祖) 조광윤(趙匡胤),
원(元)나라 태조(太祖) 성길사한(成吉思汗), 명(明)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그리고 청(淸)나라 태조(太祖) 누르하치(노이합적-努爾哈赤) 등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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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다른 표현
-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장삼이사(張三李四)”란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아니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에는 다음의 말들이 있습니다.
(1) 갑남을녀(甲男乙女)
- 갑(甲)이라는 남자와 을(乙)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 즉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2) 선남선녀(善男善女) =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
-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 역시 평범한 사람들을 일컫기도 하는데,
- 이의 다른 뜻으로는
① 불교에 귀의(歸依)한 남녀
② 불교의 신심이 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3) 우부우부(愚夫愚婦)
-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을 뜻합니다.
(4) 초동급부(樵童汲婦)
-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물을 긷는 여자라는 뜻으로, 보통 사람을 뜻합니다.
(5) 필부필부(匹夫匹婦)
-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를 말합니다.
(6) 유상무상(有象無象)
-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天地間)에 있는 모든 물체를 말하는데,
- “어중이떠중이”와 같은 뜻으로도 쓰입니다.
(7) 어중이떠중이
- “어중이떠중이”는 “여러 방면에서 모인 여러 종류의, 어중간하고 시원치 못한,
그저 그런 사람들”을 얕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 원래 “어중(於中) + 이(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로서
“어중이”는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 “떠중(中) + 이”에서 “떠중이”는 어중이의 첩어(疊語 = 같거나 비슷한 소리를
겹쳐 놓은 합성어)입니다.
- 이는 울퉁불퉁, 알록달록 등에 겹쳐지는 '“불퉁”, “달록”처럼
겹쳐서 쓰인 것입니다.
- 어중간(於中間)은 거의 중간쯤 되는 단계라는 뜻입니다.
- 이 어중간한 위치의 사람들이 “어중이”입니다.
- 따라서 “어중이떠중이”는 “여러 방면에서 모인 여러 종류의, 어중간하고
시원치 못한, 그저 그런 사람들”을 얕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 사투리로는 “어중잡이”, “어중잽이”라고도 합니다.
* “어영부영”, “어리둥절하다”, “어리벙벙하다”, “어리뻥뻥하다”, “어물쩍거리다”,
“어중간하다” 등등이 같은 뜻에서 파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8) 오합지졸(烏合之卒) = 오합지중(烏合之衆)
- "어중이떠중이“는 또 ”오합지졸(烏合之卒)=오합지중(烏合之衆)“과
비슷한 의미를 갖습니다.
- 이는 까마귀 떼처럼 아무런 통제가 되지 않는 무리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9) 잡놈
- ”잡놈“은 또 ”오합지졸(烏合之卒)=오합지중(烏合之衆)“과 비슷한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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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영어표현
-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영어표현은 “average Joe”입니다.
- “average Joe”는 특별한 부분이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 같은 말로 “ordinary Joe”, “Joe Six-pack” 등이 있으며,
평범한 여자인 경우에는 “average Jane”, “plain Jane”과 같이 사용합니다.
- 2005년 개봉한 미국영화에 <차고 지르기(Kicking &Screaming)>이라는
가족 코미디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주인공을 설명하는 내용에 “Phil Weston is
an average Joe, who had to put up all his life with his overly competitive
father, Buck.(필 웨스턴은 유난히 경쟁심이 많은 아버지인 벅을 위해 평생을
참고 지내는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고 합니다.
- 이 영화는 필과 그의 경쟁심 심한 아버지 벅이 각각 유소년 축구팀을 이끌며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제시 딜란(Jesse Dylan) 감독,
윌 파렐(Will Farell) 주연, 로버트 듀발(Robert Duvall) 조연 등이었습니다.
* 영어에서는 사람 이름인 Joe, Jack, John. Mary 등등이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언젠가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 영화 - 차고 지르기(Kicking &Scream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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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명익(崔明翊)의 단편소설 “장삼이사(張三李四)”
가. 줄거리
기차 칸 한끝 출입구 안짝에 자리 잡은 '나'는 북행열차 삼등칸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서글퍼진다. 편물 목도리를 머리에 감은 농촌 젊은이가 가래를 뱉은 게
하필이면 중년 신사 구두 콧등에 떨어졌다. 젊은이의 동행인 듯한 노인이
자기 보퉁이에서 신문지를 찢어내 젊은이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중년 신사는 부드러운 흰 화장지를 여러 장 꺼내 필요 이상으로 닦는다.
중년 신사와 통로를 격해 있던 당꼬바지는 그걸 못내 못마땅해 하며 바라본다.
그의 옆자리 가죽 재킷의 청년은 맞은편의 캡 쓴 청년에게
"자네 지리가미(휴지) 가졌나?"
하고 묻고는, 자신도 그까짓 쯤은 많이 있다면 수북이 꺼내 코를 풀어서
통로 바닥에다 버린다.
중년 신사는 영락없이 두꺼비 상판이다. 코가 납작하고 입이 너부죽하여 취할 데가
없는 위인이다. 그는 옆자리에 끼어 앉은 젊은 여인의 등 뒤에서 고량주 병을
찾아내 쓴 약을 마시듯 홀짝 잔을 비운다. 또 여인 뒤편을 더듬거려 편포를 꺼내선
찢어 씹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서 여인에게로 옮겨졌다. 그녀는 회색 외투를 멋이라도
낸답시고 어깨에만 걸친 채 담배를 피우며 창밖으로 무료히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때 차표를 검사하는 차장이 왔기에 그 여인과 일본말로 잠시 옥신각신한다.
동행(중년신사)이 가지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다는 거다. 차장이 핀잔을 주자,
여인은 "그 자가 제 돈으로 산 차표라고 제가 가지는 걸 내가 어떻게 하느냐"고
투덜댄다.
신사의 딸인가, 첩인가 궁금해 하는 판에 당꼬바지가 불쑥 "만주도 북지도
댕겨 보문 돈벌인 색시 당사(장사)가 제일인가 보든"이라 운을 뗀다. 그래서 가죽
재킷과 캡이 화제에 끼어들어 갈보 장사를 허물하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
중년 신사가 자리에 돌아온 후 곰방대 노인이 술 한 잔 나눠 달래서
술판이 벌어졌으므로 이야기가 한결 활발해졌다. 신사는 과연 색시 장사꾼이었다.
"그 에미나이들 송화(성화)가 오죽한가요. 거어머어 한 이삼십 명 거느릴래문
참 별의별 꼴 다 봅네다.“
한다. 그는 옆의 여인이 도망한 당사자라 하며, 그녀를 찾기 위해 자식놈은
만주를 뒤지고 자기는 조선 땅을 헤맸다는 거였다.
여인은 그쯤의 풍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당꼬바지는 술 얻어 마신 터수여선지
"거 사실 옳은 말이야. 정말 앗사리한(깨끗한) 계집이문 비우쌀 좋게 도망도
안 할걸"
하고 맞장구를 친다. 가죽 재킷이나 캡도 일본말 섞어 야비한 말을 나누다가
어느 정거장에서 황황히 내렸다.
당꼬바지는 이야기 동무를 잃어 갑갑이나 한 듯이 하품을 해댄다.
S역에 도착하자 중년 신사는 플랫폼의 젊은이를 외쳐 불렀다. 형이 안 나오고
왜 네가 나왔느냐는 물음에 젊은이는, 그 사이 옥주년이 달아나서 형은 잡으러
갔노라고 대답한다. 중년 신사는 젊은이를 탓해서 거푸 뺨을 때린다.
그 옥주년도 잡혔다는 말에 안도하는지, 젊은이와 임무 교대를 하고 하차했다.
젊은이가 그녀의 뺨을 두세 대 갈긴다. 그 서슬에 여인의 담배가 떨어졌는데
여인은 입을 악무는 걸로 그만이다. 맞은 뺨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동안,
북받치는 울음을 참는 양하나 희한하게도 눈은 웃음을 억제하는 듯 하기도 했다.
여인이 눈물에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변소로 갔다. 젊은이는 '나'에게
실례했다고 천연스레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나는 괜히 현기증이 나고
불안스러웠다. 변기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입에서 선지피를 흘리는 여인의 환영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까 입을 악물고 웃음기를 띠는 걸로 보아
자살할 성도 싶었다.
젊은이는 아버지한테 얻어맞은 화풀이를 그것들한테나 하지 어디다 하겠느냐고
히들히들 웃는다. 여인이 변소에서 돌아왔는데 '나'의 걱정은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 자국 대신에 허옇게 분을 바른 얼굴로 젊은이에게 농지거리를
한다. 옥주년과 짜고 도망간 게 아니냐는 물음에,
"해두 이제 가 만나문 더 반갑갔게 말이웨다"고 능청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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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실린 곳과 최명익(崔明翊)
(1) 실린 곳
- 1941년 4월『문장』에 발표된 최명익의 단편소설.
(2) 최명익(崔明翊)
< 생애 >
- 최명익(崔明翊 : 1903∼1972)은 박태원·이상과 함께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 최명익은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에서 태어나 1916년 평양보통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에는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으며, 1923년 돌아와
1928년경부터 유방(柳坊)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해방이후 1945년 9월, 북한 최초의 문화단체인 “평양예술문화협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 1946년 이후, 최명익은 점차 공산주의자의 길을 걸으며 1956년「서산대사」,
1961년「임오년의 서울」 등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 그러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부르주아였던 전력이 문제시되어
숙청되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활동사항 >
- 최명익은 1928년 홍종인(洪鍾仁)·김재광(金在光)·한수철(韓壽哲) 등과 함께
동인지『백치(白雉)』를 발간하였으며, 유방이라는 필명으로「희련시대」,
「처의 화장」을 발표했습니다.
- 1937년에는 동인지『단층(斷層)』을 유항림(兪恒林)·김이석(金利錫) 등과 함께
주관하였습니다.
- 그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것은 1936년 『조광(朝光)』에 단편소설
「비오는 날」을 발표하고 부터로, 광복 전에 중편·단편 소설 10편 정도를
발표하였으며,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창작집을
발간하였습니다.
- 그는 1930년대 지식인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상(李箱)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심리소설의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됩니다.
-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력증과 자의식의 과다에 매몰된 지식인과
속악하다고 할 수 있는 대중적 삶을 사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는 두 유형의
인물 대비를 통하여 1930년대의 지식인의 무기력과 절망감·소외의식을 강하게
형상화하려고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결국, 그는 “어떻게 살아야 인간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추구한 소설가라 할 수 있습니다.
- 최명익은 1945년 평양의 문예단체인 평양예술문화협회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나,
당시까지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러나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가 결정되고,
1946년 김일성이 북한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점차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1946년 3월 출범한 북조선문학예술총연맹 중앙상임위원과 평안남도 위원장을
맡게 되었으며, 1946년 말에 이루어진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호응하여
직접 함경도 성진구역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습니다.
- 해방 후 그의 두 번째 소설작품에 해당하는「마천령」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 최명익은 1972년 숙청된 이후, 김정일이 1984년 최명익의 유고작인
「이조망국사」를 완성하도록 조치함으로써 복권되었습니다.
- 이후 1993년에는「서산대사」와「임오년의 서울」이 북한에서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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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장삼이사와 유사한 평범한 것들에 대한 갈파이시군요. 비교적 어렵지 않아 쉽게 이해가 갑니다. 최명익이란 작가에 대해서는 이번에 학장님 강의로 배우게 되었는데,그분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제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제 해방 후 살던 지역 예술 문화 단체를 만들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었지만, 점차 김일성 이후 이데올로기가 권력이되면서 그곳에 있던 사람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린 결과.. 저희 친척들도 평안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1/4후퇴 때 남쪽으로 오지 않았다면 같은 처지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장님 감사합니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명익이 평안도 출신이라 주 사장님의 옛 연고지를 생각나게 하였군요. 남북 분단 후 북쪽에 닝아있었던가 또는 전쟁 때 납북된 사람들의 말년이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는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낼모레가 625 발발일이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김인환 네 학장님, 저희 친척들 연고가 평안도라, 그분들 의지와 관계없이 남쪽과 북쪽으로 나눠져, 고향에 있을때도 그리고 남쪽 피난내려와서도.. 물론 반공의식이 투철하긴 하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거기에 계시니.. 625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다시는 한명이라도 동족상잔하는 일 없이 예전 시절 함께 했던 대로 같은 이름 아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학장님.
이번은 역사 얘기 같네요. 중국 청나라 왕들의 성은 愛新覺羅(아이신줘러)인데 아이신은 金, 줘러는 겨레라는 의미라 합니다. 누르하치는 금(金)을 건국한 아구타의 16세손으로 아구타는 자신의 조상 신라의 김씨를 국호로 하였다 합니다. 결국 청의 왕은 김씨입니다. 참고로 周나라는 姬氏. 수와 당은 원래가 선비족들이었으며 요나라는 거란족, 금나라는 여진족, 원나라는 몽골족이라 합니다.학장님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역시 이 사장님의 박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홥니다. 아이신쥐러에 대하여는 학자들간에 논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뿌리들을 모두 함께 뭉쳐 놓으니 지금의 중국에 여러 문제점이 일어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점들이 점점 심각해져서 언젠가 위험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