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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반전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예상했던 스펙터클 액션이 아닌 휴먼드라마의 뭉클함이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쟁영화면서 반전영화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래전 봤던 베트남 전쟁을 다룬 <플래툰>이 떠오른다고 할까?
한국전쟁 막바지의 상황인데, 묘하게 지금 현실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다. 한국전쟁을 그리고 있다지만 그 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됐다. 장면 장면에 의미가 부여될 만큼.
<고지전>.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있던 1953년 남과 북은 휴전 협정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영화의 시작이었다.
남과북 'KOREA'를 의미하는'AEROK(애록)' 고지
영화는 '애록(AEROK) 고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어디를 형상화 한 곳일까 싶었다. 나도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전쟁 가장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백마고지를 이름만 바꿔 놓은 것이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보다는 한반도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놓은 곳이었다. ‘애록’ 이란 지명에 그 의미가 응축돼 있다. 남과 북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문 국호 'KOREA'. 거꾸로 읽으면 'AEROK(애록)'이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한반도의 현재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처음부터 그런 게 눈에 띠니 장면과 인물들이 단순하게 안 보였다. 전쟁 중에 북과 소통하는 남측 병사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장교는 현실과 결부시켜볼 때 ‘국가보안법’이 연상됐고, 소통 공간인 벙커는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 간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빨갱이를 색출하기 위해 전출 온 방첩대 장교는, 막상 실체를 확인한 현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히고 만다. 씩씩거리지만 당장 어쩔 도리가 없다. 그도 같이 어울리며 조금씩 인정할 수밖에는. 국가보안법의 현재도 저렇지 않던가.
그렇다고 인민군과 소통하던 국군들이 빨갱이였냐고? 천만에 말씀. 그들은 현실에 가슴 아파 하는 시대의 젊음들일 뿐이다. 그러니 저격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먼저 총을 쏠 수 있었음에도 멈칫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잡힌 적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할 정도로 잔인하지만, 삶과 축음이 교차하는 순간적 찰나에 총을 내려놓는 눈빛에는 어떤 고뇌가 담겨 있었다. 옆에서 울부짖는 동료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들릴 만큼.
"잘 가라", 작은 평화가 왔음을 알려주던 인사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티피에스 컴퍼니
영화는 참으로 다양한 역설을 보여 준다. 안 보일 때는 막연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을 갖다가도 막상 얼굴을 맞대면 못 죽여서 안달이다. 그래 놓고도 막상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는 맞닥뜨림에서는 한 번 더 고민한다. 찌르는 자와 찔리는 자의 표정을 보면서 그냥 애잔한 슬픔이 교차됐다. 한 핏줄끼리 피 터지게 싸운다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1953년 애록(AEROK) 고지는 2011년 분단조국 코리아(KOREA)의 초상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오랜 시간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만나 부둥켜 않고 우는데, 한편에서는 서로를 적개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고 가는 술잔과 사진 속에 애틋한 감정들이 담아져 있지만, 맞대면 서로를 죽여야 하는 현실에 그 순간은 스치듯 짧기만 하다.
남과 북이 돌아가며 차지하는 고지의 벙커는 교집합과 같은 곳이다.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지만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과 북이 소통하는 고리가 된다. 어떤 면에서 소중한 존재다. 남과 북의 물품이 교차하는 공간. 개성공단과도 같은 곳이다.
전쟁을 그리고 있는 영화는 내내 전쟁의 위험성과 무모함, 그리고 파괴성을 강조한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적은 물론이고 아군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따르는 트라우마는 모르핀 주사로 잠시 잊을 뿐이다. 수없이 파괴를 일삼는 전쟁의 광기는 섬뜩하다. 반전 의식이 자연스럽게 고취된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그만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길 바랐던 이들의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는 그토록 염원하는 작은 평화가 왔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국군이 건네 준 미제 초콜릿을 먹는 저격수의 표정만큼이나 전쟁은 정작 실제로 전장에서 싸우는 당사자들에게 무의미하는 것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다.
‘전선야곡’ 노래 소리는 이 때문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남과 북의 병사들이 같은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애절함과 함께 반전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묻어났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쓸어안고 싶었소♬
전쟁의 무의미함을 일깨워주는 영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고지전>ⓒ티피에스 컴퍼니
영화는 미국의 존재도 살짝 각인시켜 준다. 비록 앞부분과 끝부분에 살짝 비치는 짧은 분량이지만 시사하는 것은 작지 않다. 지도에 선을 그리는 것도 그들 몫이었고, 피아가 뒤섞인 현장을 향해 폭격을 퍼붓는 것도 그들의 실체였다. 아군의 생존은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을 떠올리면 그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뿐이다. 시기와 장소가 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지전>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개인들에게 있어서는 전쟁은 무의미하며, 오누이와 연인 같은 이들의 사이에 생채기만 남길 뿐이라고. 휴전이 성사돼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평화 메시지에 잠시 동안이나마 내 마음이 들떴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오랜 시간 남과 북이 힘의 대치를 이어가고 서로 간 긴장이 유발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참 의미 있게 다가온다. 몸은 전쟁터에 있지만 속마음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군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기에.
입으로만 전쟁을 떠드는 사람들, 북쪽을 조금이라도 긍정하면 빨갱이라고 몰아 붙이려는 사람들, 그리고 구시대의 유물 국가보안법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