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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 인천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인천의 근현대 역사·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배다리 지역을 '역사문화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낙후된 지역 여건과 근현대 역사·문화유산이 현존하고 있는 지역적 특색을 감안해 해당 지역을 '역사문화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배다리 마을이 지닌 역사·문화적 자산과 생활·생태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상징적인 역사문화마을로 가꾸어가자며 지난 4년 동안 노력해온 지역주민과 시민문화단체, 개인 활동가 등의 노력과 많은 인천시민과 지역 내외에 계신 분들의 성원과 격려가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대 개발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찬성측 주민들의 집요한 활동에 인천시가 적잖이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무엇이 진정 주민들을 위하고, 마을을 위하고, 인천의 미래를 위한 길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여 주민들을 적극 설득시키려는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더욱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민 찬ㆍ반 설문조사 실시 검토' 이야기가 일선 일부 공무원들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현실은 아직도 시대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찬성측 주민들이 어떠한 부류의 사람들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개인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태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그 동안 역사문화마을 조성을 요구해온 지역 내 전문 문화활동 주체들의 진정어린 제안과 호소는 단순히 개발반대 세력의 하나로 축소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 기회에 왜 그 수많은 사람들이 갈라진 마을을 다시 주민들의 품으로 되돌리고 전면철거 위기에서 구해내 역사와 문화, 환경, 생활·생태가 어우러지는 마을로 가꾸어 나가는 데 마음을 모았는지를 되돌아보는 일은 인천시가 최종 발표한 내용의 구체화 작업을 주저하지 않고 소신을 갖고 진행해나감은 물론 바람직한 방향성을 찾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다리 살리기 운동의 의미와 교훈
'배다리 싸움'은 무엇보다도 도로 하나 막고, 마을 하나 건져내자는 것이 아니다. 속도와 효율, 이익과 성장만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개발 논리, 도시상품화 논리에 대한 성찰이자 저항이며,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모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와 동인천역 재정비촉진계획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전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이익 논리 확산 및 재생산 구조 고착화와 연계되어 있고, 지역 차원에서 보자면 지난 민선 3, 4기 안상수 인천시정부가 도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벌이는 자본축적 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송도·청라·영종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자유구역 조성사업이 이를 시행하기 위한 거점이라면, '세계 일류 명품도시 인천 건설'은 시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구호이자 실질적 목표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공간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안상수 전 인천시정부가 계획했던 이러한 도시 유형은 르페브르가 말하는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기능을 사람에 두는 생활의 도시'가 아니다. 상품의 생산과 자본의 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편하기 위한 전형적인 '생산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배다리 산업도로와 재정비촉진계획은 바로 이러한 논리가 구체적인 지역과 마을에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배다리 살리기 운동은 우리가 꿈꾸는 도시의 미래와 유형을 두고 안상수 인천시정부와 벌이는 한바탕 대결의 장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난했던 배다리 살리기 운동의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도시재생 및 재개발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떠한 도시정책도 그 출발은 주민들에게서 나와야 하며, 그 성과로 인한 궁극적 혜택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우선해서 돌아간다는 확신을 안겨줄 때 거기에 적극 동의하고 협력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그 혜택을 받기는커녕 오랜 생활과 생존의 보금자리를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러한 면에서 배다리 관통도로와 재정비촉진계획의 실패는 하나의 사업에 따라 주민 삶의 근간이 어떻게 흔들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지도를 놓고 금을 그어대는 무책임한 계획 속에서 밀어붙인 행태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배다리 싸움은 안상수 전 인천시정부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고, 어떠한 정책과 사업이든 주민과의 대화와 협력 속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산업도로도 그렇지만, 재정비촉진계획도 입안하는 단계에서부터 충분한 설득 내지는 이해를 구하거나 광범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주민설문조사와 설명회, 공청회 등을 통해 행정적 요건만을 갖추어 처리를 하려다가 결국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나아가서는 사업 자체가 난관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일방적인 행정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 자체가 여전히 주민들을 행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셋째, 인천시정부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도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그 내용과 방법이 너무나 빈곤하다는 데에 있었다. 도시의 경쟁력은 유형의 신상품 생산만이 아닌 도시가 지닌 여러 가지 유무형의 잠재적 자산을 제대로 파악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을 통해 높일 수 있는 부가가치가 많은데도 이러한 요소들을 파악하는 감식안도 의지도 없다 보니 무조건 철거하고 초고층 주상복합빌딩이나 아파트를 짓는 방법 이외 또 다른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발'과 '보존'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나타났고, 민ㆍ민 갈등만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 배다리 싸움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대안의 제시였다고 생각한다. 바로 하나의 도시와 마을이 지닌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존중하고 가꾸어가는 가운데 주민들의 생활·생태를 잘 파악하면서 잠재적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이 도시 발전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확장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실 재정비촉진계획 안에서도 '문화'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자생적, 자발적 문화를 모두 없애고 새로 지을 건물 속에 가두어놓는 방식이었다. 문화의 박제화, 경관화, 수단화가 아닐 수 없다. 배다리 싸움은 바로 '문화'에 대한 이러한 사고와 접근을 거부하고 삶의 과정과 형태 속에 문화를 재배치하고 그곳에서 재정의를 시도하였다. 즉, 배다리의 모든 것을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야기하였으며, 배다리 싸움 또한 문화적 관점에서 벌이고 이어나가고 평가하였다. 또한 싸우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주체의 의해 마련된 기존의 장르화한 문화 형태도 배다리라는 상황과 맥락 속에 연관되고 접속되면서 '문화적 힘'이라는 게 어떻게 발생하는지 직접 체험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진정한 문화도시 내지는 공동체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다섯째, 결국 배다리 싸움은 르페브르가 말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 되찾기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도시를 살아가면서 주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공공적, 공익적 권리를 도시정책 및 행정의 책임자들이 제공해야 함은 물론 주민들 스스로가 그러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말해주었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정책 및 행정의 제1순위를 주민에게 두고 시행해야 하며, 주민들 또한 적극적인 참여의 주체가 되어 자기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앞서도 거론했지만 우리의 행정은 주민들을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그들에 의해 역할을 위임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민들 또한 이따금씩 돌아오는 선거철에 한 표 행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리를 다했다고 치부하거나 직접적으로 자기 이익과 연관된 사안에만 즉각적인 관심을 보여왔을 뿐이다. 그러한 면에서 공공성, 공익성에 기반을 둔 양자간 소통은 그 동안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배다리 싸움은 바로 이러한 면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고, 그것이 자연스런 도시운영의 구조 속에 정착되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해주었다.
<배다리위원회> 출범, 민·관의 새로운 협력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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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배다리 스페이스 빔에서는 '배다리문화축전' 개막식을 겸하여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위원회>(이하 '배다리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출범식은 지난해 말 인천시가 배다리 산업도로를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올해 초 동인천역 재정비촉진계획에서도 '제척'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황에서 그 동안 배다리 현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활동해왔던 <배다리 관통산업도로 주민대책위>,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 <배다리 주민ㆍ상가 대책위>와는 '별도의' 통합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지난 3월초부터 준비모임을 가져오면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도모하고 구체적인 활동방향과 사업계획을 논의해온 결과였다.
<배다리위원회> 출범이 중요하고 소중한 이유는 그간 싸움을 통해 얻은 여러 가지 의미와 교훈, 새로운 가능성을 안고 변화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도시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원 속에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각계의 전문가들이 결합하는 가운데 관이 적극 협력하고 지원하는" 논의와 실행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자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주민들이 도시의 권리를 찾고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자 최소한의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배다리위원회>는 문호를 열고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고 누구라도 지혜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 그것 자체가 참여자치 내지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험의 장이 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함은 물론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좀 더 섬세하게 마을의 발전을 위한 계획과 사업을 수립하여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감은 물론 모두를 위한 일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식을 더욱 성숙시키고 공동체적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방향성 속에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을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배다리위원회> 차원의 남다른 노력도 필요하지만, 관의 태도와 역할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되 미리 어떤 그림을 그려 나서거나 적용시키려 하지 말며, 실질적인 대화를 통한 충분한 논의와 검토 속에서 법적, 행정적,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협력자의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배다리를 역사문화마을로 만드는 데 민ㆍ관 협력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창영초교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최초 발상지 기념비 앞에서 개최한 '배다리문화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