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검색해 보았다..^^
왜냐면 [본래면목]을 참나라 하는데.. 참나를 어떻게 생각하면서 화두를 주는지 알아보려고..
父母未生前은 [父母未生前(부모미생전) 本來面目(본래면목) 是甚磨(시심마)]라 하여..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본래면목)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참모습]하다보니.. 그 말은 무언가 영원한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게 연상되고, 그것은 진아(참나), 대아로 설명하니 힌두교에서 말하는 브라만과 무엇이 다르냐 말이다.
그뿐 아니라니 본래면목인 [참모습]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불멸의 영혼과도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본래면목]이 그런 것이라면 상좌부에서 가르치는 마음은 찰라생찰라멸이라는 것과는 너무 다르지 아니한가.
그럼 [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을 가르치는 이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던가?..
펌 1.) 수행과정을 경청하는 동안 폴 니터 교수는 탄성과 웃음,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진제 스님으로 부터 ‘진아(眞我, true-self)’라는 법명과 ‘부모에게 몸을 받지전 나의 본래진면목은 무엇인가?(부모미생전 본래면목夫母未生前 本來面目)’라는 화두를 받은 데 감명했다고 밝혔다.
폴 니터 교수는 “‘진아’ 즉, 참나는 기독교 복음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참 자아를 찾도록 요구받고 있다”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불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스님께서는 화두 하나를 참구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데 2년 반, 5년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일흔 한 살이다. 내가 죽기 전에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진제 스님은 “깨달음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모든 인류가 ‘부모미생전 본래면목(夫母未生前 本來面目)’ 화두를 참구하며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다 잊으면 시공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하며 격려했다. 스님은 이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얼마나 간절함을 지속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언하며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펌 2.) 차를 모두 마시자 맥산 스님은 키림 여사에게 본격적으로 간화선에 대해 차근 차근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해나갔다. 스님은 간화선의 3요인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을 설명했고 키림여사는 통역을 통해 전해 들었다. 기초적인 설명을 끝내고 스님이 키림 여사에게 내린 화두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당신은 어떻게 태어났느냐고 묻자 키림 여사는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태어났다”고 답했다. 이어진 스님의 질문, 부모님이 만나기전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에 잠시 생각에 잠긴 키림 여사는 “아마 빛으로 존재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스님은 “논리적으로 판단하거나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면 안 된다”며 “부모님 이전에 나는 어디 있는가에 대해 큰 의심을 가져보라”고 당부했다.
펌 3.) “태어나기 전의 자네는 무엇이었나? 그 상태에서 어떤 필요나 바람이나 욕구가 있었을까? 실재에 대한 것이든 자유나 해탈에 관한 것이든 그런 바람이 있었을까? 자네의 그 이전은 일체요, 절대적 현존이요, 상대적 부재의 상태야. 그것이 자네가 바라는 진실한 모습이요 본성이지. 이것의 나툼이 의식이고, 내가 있음이며,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지. 그러나 태양의 반영이 태양이 아니듯 그것이 절대적 현존일 수는 없는 거야.”
‘네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란 ‘나(ego)’라는 개체적 인식이 없는 상태, 즉 무아(無我)의 경지를 말한다. 현상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지금이라도 내가 개체적 존재가 아니라 전체성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기만 한다면 바로 참나인 ‘절대성’의 상태란 것이다. ‘
절대’란 색(色)과 공(空)이란 상대성의 양쪽을 모두 포괄한다. 다만, 개체를 나라고 착각한 순간 개체의식에 속아서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시비분별하는 의식구조 때문에 진리의 전체성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하라지의 가르침이다. 그의 설법은 오랫동안 참선공부를 하다가 지쳐,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 심정의 구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과 발심의 동기를 제공할 전망이다.
펌 4.) 부모미생전본래면목,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펌 5.)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문자를 통한 말로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깨달은 분상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요.
펌 6.) 고향을 떠날때는 금방이라도 공부를 마칠것 같이 생각을 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공부가 진전이 없거나 몸이 아플때는 스님들도 옛 생각으로 끝없이 치달리게 된다. 그러나 한 생각을 다시 돌이켜 거슬러 올라가면 부모가 낳아주기 이전 본래면목이 나오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일체 생각과 경계가 공하여 흔적도 없다.
[父母未生前(부모미생전) 本來面目(본래면목)]을 화두로 받아 공부하는 이들은 각자의 높이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가르치는 [본래면목]의 눈높이는 무아인 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접이다.
그것은 본래면목을 진아 참나, 대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뜻은 [무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게 된다..^^()..
첫댓글 01. 2012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신 진제스님은 평소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찾을 것을 당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 일각에서는 [본래면목이란 참나]는 힌두교의 브라만처럼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와 비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펌 6.)은 어느 스님 글에 나오는 설명인데.. 본래면목이 나오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일체 생각과 경계가 공하여 흔적도 없다.
라고 하고 있죠. 그는 본래면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생각과 경계가 공하여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며 브라만과 같은 존래로 볼 수 있나요?..
02. 만일 진제 어른스님이 참나를 브라만같은 존재로 여기신다면..
저 위에 나오는 스님만도 못한 생각이 됨니다.
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전통 불교를 가벼이 보지 마세요..()..
103. 펌 5.)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문자를 통한 말로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깨달은 분상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요.
는 돌아가신 청화 스님의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청화스님은 학승처럼 보입니다. 그 말은 스님은 선교를 하나로 뚫고 계시던 몇 안 되는 스님이라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시설(=prajnapat 반야) 이라 하여 세간언어로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의미하니.. 문자를 통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다 하는 것은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부모미생전 소식이 불교의 진의를 품고있다면 일반 언어로 전할 수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104. 그런데 남방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시설(施說)을 개념 정도로 새기므로서 스스로 모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념(槪念)으로 번역되는 빤냣띠(pa??atti)는 √paj?n?ti(분명히 알다, 꿰뚫어 알다)의 사역형태인 pa???peti 에서 파생된 명사로 ,.. ‘알게 하는 것 = 개념, 정의, 이름’ 등을 뜻하게 되었다.
아비담마의 근본주제가 아닌 세속적인 개념이나 명칭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시설(施設)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concept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개념(pa???tti)과 반대가 되는 것이 바로 오온(五蘊), 12처(十二處), 18 계(十八界 ),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 正道), 12연기(十二 緣起), 선법(善法), 불선법(不善法)과 같은 궁극적 실재(勝義, paramattha)이다.
<마하시사야도의 의 빠띳짜사뭅빠다(12연기)에서>
제가 하고픈 말은.. 지금 남방불교가 초기 불교라 하여 들어오고 있는데.. 그 자체는 너무 고무적인 우리 불교를 다시 바라보면서 새롭게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조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염려인 것은.. 찬밥 쉰밥 가리지 않고 마구 섞어서 들어 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 예를 시설(施說.. 부처님 말씀)이란 말로 보여드리고 있는 겁니다.
시설이란 단어가 나오는 경을 찾아보면.. <잡. 12-301. 가전연경>
그 때 존자 산타가전연( 陀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施說)]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취함[取]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다른 예를 찾아보면.. <잡. 16-433경>
여래·응공·등정각은 보다 나은 법을 연설하신다.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열어 보이시고 [시설(施設)]하시며,
일으켜 세우고 분별하시며, 풀어 말하고 밝게 나타내시며, 드러내시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이렇게 경에서 사용되는 [시설]이란 말은 4성제를 포함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세간에서 사용하는 개념과는 분명 같은 게 아니죠.
하여 그것을 [궁극적 실재(勝義, paramattha)] 라고 마야시 사야도 비구님 본인이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205. 각설하고 [부모미생전] 화두 얘기를 계속하지요..^^
펌 5.)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문자를 통한 말로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깨달은 분상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요.
-> 이 말은 고 청화 어른스님이 한 말이죠.. 저는 청화 어른스님은 좋아합니다..^()..
십오륙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어른스님이 뉴욕을 방문하셨습니다. 대법회를 대학 강당을 빌려서 했는데.. 대단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