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2017. 2.3. 연중4주, 첫금요일, 예수 성심 신심 미사)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더 기뻐 할 것이다.” (루카.15,7)
루카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만큼 우리는 주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주님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이 필요한 우리는 그분을 갈망하는 만큼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참 자아가 아닌 거짓자아로 주님과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 참 자아로 주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연극을 하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어 버리고 전인격체로 관계를 맺습니다. 편협하지 않은 통합적인 인격체로 주님을 만납니다.
분열된 자아는 주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가지고, 자신의 한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합니다. 회개하는 죄인을 기뻐하기보다, 벌을 주시는 주님을 믿기에 회개를 두려워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하며 경계합니다.
회개하는 죄인을 주님은 기뻐하시지만, 우리는 낙인을 찍고, 주님은 두 팔로 안아주시지만, 우리는 잡는 손마저 뿌리칩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죄인을 풀어주어 가게 하시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을 마음에 묶어둡니다.
예수님 마음에는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지만, 우리 마음에는 용서할 만한 죄가 그다지 없습니다. 인간적 한계를 지닌 자신을 모르기에 회개할 필요조차 잊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신의 한계로 다른 사람들의 한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의 한계와 부족함마저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났기에, 회개하는 죄인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지만,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남에게 두려운 심판관이 됩니다.
김종오 아오스딩 신부(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