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궁을 운반체라고 생각해요. 이 아기를 향한 애정이 너무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제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8000달러를 받고 의뢰인 부부의 수정란을 품어 열 달간 아이를 키워주는 인도 대리모 안잘리의 말이다.
또 다른 대리모인 사로즈도 말한다. “시어머니가 저 같은 며느리가 없다며 기뻐하셨어요. 아들은 이런 큰돈을 벌어온 적이 없었거든요.”
사로즈 남편의 월급은 25달러다. 인도에서 대리모 사업 거래액은 한 해에 4억550만 달러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 등 소득이 높은 나라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돈만 있으면 가족의 역할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펴낸 ‘감정노동’을 통해 인간, 특히 여성의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갈파했던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지탱되는 구조를 분석한다.
가사 도우미, 아이 및 노인 돌보미, 웨딩 플래너는 이미 익숙하다. 연애 방법을 지도해주는 러브 코치, 파티 플래너, 정리 컨설턴트, 육아 설계사, 아동 배변 훈련가까지 가족의 기능을 대신하는 직업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가족의 역할, 나아가 개인의 삶이 시장화된 것이다.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더 바빠졌다.
저자는 ‘가정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여성들이 가사 및 간병 도우미를 하기 위해 미국, 유럽, 홍콩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과 파장에도 주목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필리핀은 국내총생산(GDP)의 12%, 아이티는 15%, 네팔은 23%를 해외에서 보낸 송금이 차지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굶주리고 때때로 분노하며 지낸다. 이주 여성들 역시 자식 보고픈 마음을 꾹꾹 누른 채 대신 고용주의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 붓는다.
한편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가족은 잘 지내나요?]( ‘So How’s the Family?) 라는 책이 있다.
"가족은 잘 지내나요?" 이 평범한 안부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답하기 궁색한 질문이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던지는 이 질문은 단순히 가족의 안부를 묻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가장 사적인 영역이자 감정의 최후 보루였던 '가족'과 '돌봄'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에 잠식당했는지를 파헤치는 서늘한 고발이다.
저자는 현대인이 맞이한 거대한 모순을 짚어낸다. 오늘날 우리는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을 돌볼 시간을 잃어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시장'이다. 아이를 키우는 보육 교사, 집안일을 도맡는 가사 도우미를 넘어 이제는 생일파티 플래너, 연애 코치, 심지어 슬픔을 대신 달래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과거에는 친밀함과 유대감으로 채워지던 공간이 결제 시스템과 계약서로 대체된 것이다.
혹실드는 이를 '사생활의 시장화'이자 '감정의 아웃소싱'이라고 부른다. 돈만 지불하면 효율적이고 완벽한 돌봄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 과연 우리의 가정은 평안해졌는가?
돌봄이 상품화될수록 인간의 본연의 감정은 소외된다. 부모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부채감을 돈으로 보상하려 하고, 아이는 자본의 논리로 짜인 효율적인 스케줄 속에서 자라난다.
이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진정한 정서적 교감은 메말라간다. 더욱 가슴 아픈 지점은 이 시장화가 만들어낸 글로벌 격차, 즉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이다.
선진국의 중산층 여성이 일터로 나가기 위해 고용한 가사도우미는 대개 개발도상국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정작 자신의 아이를 고국에 남겨둔 채, 타국의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한다.
누군가의 완벽한 가정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가정은 해체되어야 하는 이 잔인한 사슬은, 현대의 돌봄이 얼마나 불평등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감정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된다.
하지만 감정마저 외주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감 능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혹실드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본이 잠식한 사생활의 영역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장에 저항하는 새로운 '공감 지도'를 그려야 한다. 돌봄을 단순히 개인이나 시장의 영역으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안에서 함께 책임지는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보장하는 노동 환경,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이 선행되어야만 이 비극적인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가족은 잘 지내나요?"라는 질문에 우리가 기꺼이 "네"라고 답할 수 있으려면, 시장에 넘겨주었던 우리 안의 온기와 사적인 시간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잣대 대신, 서로의 살을 맞대고 감정을 나누는 진짜 '돌봄'의 가치를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의 가족도, 우리의 영혼도 안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