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2장 몸을 섬기는 은사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를 섬기는 것은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우리는 가장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성령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서로간에 사랑이 자라갑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은사 때문에 서로간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은사에 대한 바른 입장을 정리해 주는 말씀입니다.
은사의 종류(8-10)
모든 은사는 성령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머리와 관계된 은사는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남의 비밀을 알게 됨), 영분별의 은사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입과 관계된 은사는 예언과 방언과 통역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손과 관계된 은사는 믿음(기적을 행하게 됨), 능력행함, 병고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은사는 무수하게 있습니다.
은사의 목적
은사의 목적은 한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7) 은사는 결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에 여러지체가 있는 것처럼 은사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은사는 철저히 섬기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철저히 섬기는 구조로 존재합니다. 오른 손이 오른 손을 위해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왼손과 온몸을 섬기기 위해 움직입니다. 귀도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몸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온 몸의 각 지체는 자기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 다른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은사의 목적입니다. 만일 은사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면 은사를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모든 은사가 철저히 섬기기 위해 사용되면 교회는 놀랍게 세워질 것입니다.
은사의 순서
흔히 사람들은 신비한 것을 큰 은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병고침이나 능력을 행하는 것, 방언을 하는 것등.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씀을 전하는 은사들을 앞세우고 있습니다.(28) 심지어는 방언하는 것보다 돕는 은사를 더 앞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처럼 신기한 것만 좋아하면 안됩니다. 중요한 것을 알고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모든 은사를 배척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모든 성도가 은사를 풍성히 받아서 가장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온전히 섬기는 마음으로 은사를 사용하면 은사를 사용하는 당사자도 즐겁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즐겁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점점더 강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모두 은사가 풍성하고 사랑으로 섬김으로 부흥의 주인공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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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는 성령의 은사.
1. 11장에서 예배의 질서에 관한 문제를 다룬 사도는,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다룹니다. 다만 은사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은사를 통하여 교회를 바르게 세움이 핵심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자칫 하다가 은사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2. 사도가 ‘신령한 것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은사들을 가리킬 것입니다(1).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상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녔었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분별력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분별해야 합니다(2~3). 분별은 성령의 은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모든 것을 시험해보라(범사에 헤아려)’고 했고(살전 5:21), 사도 요한도 ‘영들을 다 믿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요일 4:1). 은사도 중요하지만, 분별은 더욱 중요합니다.
3. 거짓 영의 특징은 감정을 지식 위에 두는 것이고, 성령을 그리스도 위에 두는 것입니다. 감정을 지식 위에 두면 이방 종교처럼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2). 그리스도 위에 성령을 두는 것도 은사를 이해하는 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사도는 삼위 하나님의 동등성을 강조하여, ‘여러 은사, 한 성령, 여러 직분, 한 그리스도, 여러 사역, 한 하나님’을 말합니다(4~6). 삼위 하나님은 죄인의 구속을 위해서 각기 다르게 일하시지만, 동등하시며 분쟁이 없으십니다.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는,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7).
4. 사도가 제공하는 성령의 은사 목록은 은사 전체를 망라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목록은 은사를 열거하는 다른 신약 본문과 동일하지 않습니다(고전 11:8~10; 롬 12:6~8; 엡 4:7~11; 벧전 4:7~11). 이점은 여기서 사도가 완전한 은사 목록을 작성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을 따라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각기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11). 모두 한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은사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은사 때문에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5. 하지만 고린도교인들은 은사에 따라서, 상대를 낮추어보거나 혹 우러러보는 심각한 분열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은사를 통해 누가 더 우월한가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보다, 개인의 은사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은사의 다양성이 결코 교회의 일치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6. 교회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3). 그러므로 그 안에 차별이 없습니다. 몸의 여러 지체 중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무시하거나 경멸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혹 불필요해 보이는 지체라도 그것이 없으면 몸은 불구가 됩니다. 서로를 경멸하는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룰 수 없듯이, 교회는 성령의 은사에 의해서 분열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성령으로 세례 받아 한 몸이 되었으니,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연약해 보이는 지체를 더욱 존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한 지체의 고통은 몸 전체의 고통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27).” 물론 하나님께서는 여러 은사를 몸의 유익을 위해 주시고, 그 은사들은 인간적으로 등급이 매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도는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주제인 사랑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7. 여러 모양의 은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사의 드러남이 아니라, 은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은사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를 사랑할 능력을 구하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적절하게 목적대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의 은사 때문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은사는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어떻게 공짜로 받은 선물을 가지고 자랑을 합니까? 성도로서 우리의 보다 큰 관심은 사도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랑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