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국 난창(南昌)을 다녀왔습니다. 무더위에 스트레스가 쌓여 불쑥 해외나 나갔다 오자고 결정하고 당연히 시원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갑자기 가려다 보니 곳곳이 항공편이나 숙박 어느 한쪽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더위에 간편하게 대구출발 대구도착으로 하자 하고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곳이 난창입니다.
난창은 여름철 중국 4대 화로火爐 중의 하나인데, 제가 참 바보스럽지요? 제가 해외여행 경험이 적다 할 수는 없는데 당최 노하우라는
게 쌓이지가 않습니다.
대구-상해(국내선)-난창(국내선)-상해-대구의 3박 4일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첫날 밤 10시 넘어 호텔 도착, 마지막 날 아침 8시 45분
공항 발이어서 사실 2일 정도가 여행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이은 비행기 연발, 간발의 차이로 놓친 열차, 무엇보다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더위 때문에 전반적으로 최악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생각나는
것은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제 호텔 방에서 내려다 본 등왕각의 모습입니다.
난창에는 우민사(佑民寺, Youmin)라는 절이
있습니다. 개원사(開元寺)라고도
불렸던 이 절은 남북조 시기 양나라 무제 때 처음 세워졌는데 547년 이름이 상란사(上蘭寺)에서 대불사(大佛寺)로 바뀌고 이어 당 개원(開元) 연간(개원은 당 현종 때의 연호)에
개원사로 바뀝니다. 이후 무너짐과 중건을 거듭하다 중화민국 초기 정치적 혼란기에 파괴된 것을 중건하며
사명이 우민사로 바뀌고 1991년 현재의 건물들 대부분이 중건됩니다.
개원사 시기 우민사는 당나라 대력(大曆) 4년(769년)에 이름난 선승 마조 도일(709~788)이
이 절을 방문하여 설법 한 이후 이 절에 머물면서 선풍을 떨쳐 신도들이 모여들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 강남 불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홍주종(洪州宗, 홍주는
난창의 옛 이름)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종파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출신인 마조는
강서도일이라고도 불리는데, 육조의 제자인 남악 회양의 제자로서 중국 당나라 최고의 선승, 중국 최고의
선승, 나아가 중국의 선은 마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선사입니다. 그의 법명에 속성인 마(馬)에다
조사의 뜻인 조(祖) 자가 붙은 것만 봐도 그가 중국 선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권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卽心卽佛(즉심즉불), 非心非佛(비심비불), 平常心是道(평상심시도)를
특징으로 하는 마조선을 뿌리로 하는 선의 나무는 크게 번성하는데요, 마조의 2세 제자 중에는 신라인이 10명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도의(道義, 780~935, 속성은 왕씨)입니다.
도의는 마조의 제자인 서당 지장의 제자인데 한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우민사에는 도의를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거기엔 '대한불교조계종조도의조사비'라고 적혀있습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시기는 변혁기로서 그 가운데서 사상계의 변화도 있게 되는데 불교에서 선종의 유행이 그 하나입니다.
서산대사 휴정이 그의 선거귀감에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禪是佛心, 敎是佛語)이라고 했듯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진 부처의 법이
달마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지고, 중국에서 경전이나 교리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교종에 비해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직관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고 깨달음에 이르는 독특한 중국적인 불교 종파인 선종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선종은 당나라 때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그 선종이 신라 말 신라에 전해져 고려 초까지 이른바 9개의 선문으로 정리됩니다. 9개의 선문은 가지산, 실상산, 동리산, 성주산, 사굴산, 사자산, 봉림산, 수미산, 희양산을
말합니다.
신라에 선을 가장 먼저 전한 인물은 법랑(法朗, 4조 도신道信에게서 법을 배웁니다)이고 그의 선법은 신행(神行)에게 전해지지만 이들의 선은 북종선(중국의 선은 5조 홍인 이후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으로 분기되는데
남종선이 결국 중국선을 대표하게 됩니다)으로 교종과 충돌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후 영향력은 지속되지
못한 상황에서 남종선을 맨 먼저 전한 사람이 바로 도의입니다.
784년(선덕왕 5년) 도당한 도의는 서당(西堂智藏, 735~814)의
제자가 되고(도의라는 이름도 서당이 지어줍니다) 이어 백장
회해를 찾아 불법 강의를 받고(이 때 백장은 도의를 보고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 江西禪脈 摠屬東國之僧"라고 했다고 합니다.) 821년(헌덕왕 13년) 귀국하게
됩니다. 이 해가 결국은 한국에 남종선이 전해진 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구산선문 중 중국에 유학하지 않은 희양선문의 도헌(道憲)과 청원 행사의 법을 이은 수미산문의 이엄(利嚴)을 제외한 모든 선문 개창자가 마조 도일의 법을 이은 선승들입니다.
그러나 도의가 선법을 펴기에는 당시 신라 불교계의 사정이 교종의 영향력이 여전한 채 녹록치 않았고, 무위임운(無爲任運, 인위적으로 행함이 없이 자연적 도리에 내맡김)의 종(宗)으로 표현된
그의 선법은 이해되지 못하고 ‘악마의 가르침(魔語)’으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이에 때가 아님을 절감한 도의는 강원도 양양군 진전사(陳田寺)에 은거해 40년을 정진하다 제자 염거(廉居)에게 선법을 전하고, 염거는 보조 체징(普照體澄)에게 법을 전해 체징은 전남 장흥군 가지산에 보림사를 세워
가지산문을 개창합니다.
9산 선문 중 가장 먼저 성립한 것은 실상산문이지만 남종선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은 도의이고
그 도의의 법을 계승한 가지산문이 현재 한국 최대 불교 종파인 조게종의 뿌리가 됩니다, 그래서 대한
불교 조계종 종헌 제1조에 ‘본종은 신라 도의 국사가 창종한
가지산문에 기원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우민사는 한국 선불교, 좁게는 한국 불교 조계종의 뿌리가 되는 절인 셈입니다.
우민사 불전에서 무릎을 꿇고 향을 올리며 기도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불교에 대한 아니 모든 종교에 대한 신앙은 저렇게 자기를 낮추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