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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4일. 새벽부터 캠프가 어수선하다. 말 한 마리가 없어져 마부가 한 시간 만에 찾아왔다. 이번에 시미코트에서 고용한 마부들은 전의 마부와 다르다. 말을 거칠게 다룬다. 그래서 말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서 발길질을 잘한다.
무추마을을 출발했다. 카날리콜라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넌다. 위쪽에 우기를 대비한 높고 긴 철제 구름다리가 있지만 나무다리가 정감이 더 간다. 물론 산간 오지에는 아직도 나무다리가 주를 이룬다.
시간 반가량 오르막길을 오른다. 마땅한 뷰포인트를 찾을 수 없어 막막하다. 옆에 있는 산이 높고 험하지만 뷰포인트로는 적격으로 판단된다. 스태프들을 야리마을로 보내고 카메라 팀만 데리고 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머리가 몽롱하다. 새벽에 먹은 꿀 탓이다. 산간마을에서 채취된 꿀은 약성이 있어 종종 취하곤 한다.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지는데 빽빽한 가시나무 군락마저 자꾸 앞길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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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팔 산군과 그 아래 야리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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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길이 멀다. 8부 능선까지 오르는 데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정상 부근에서 눈을 먹고 있는 산양들을 발견했다. 20여 마리쯤 되는 무리다. 우리를 보자마자 급하게 도망쳐 촬영은 실패했다.
9부 능선에 이르자 갑자기 기운이 솟는다. 꿀에 의한 명현현상이 사라진 모양이다. 대번에 몸이 가뿐해진다. 당겼다 놓은 화살처럼 정상까지 탄력을 받아 단번에 올라갔다.
오후 1시30분경에 정상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시야가 탁 터진다. 사이팔 히말산군, 제티바후라니 히말(6,850m), 나인파 히말(6,755m), 구르라 만닷타 히말(7,728m), 춘사다 히말(6,108m)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몽롱한 가운데 가시나무를 헤치고 올라온 보람이 있다.
한 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촬영했다. 내려가려는데 한 무더기의 야크 똥이 보인다. 풀은 없고 약간의 눈뿐인데 녀석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아마 히말을 감상하려고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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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경을 새긴 마니스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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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냥으로 시달리는 산양 무리
정상 아래쪽의 눈밭에 사람의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목동이 여기까지 올라올 리는 없다. 사냥꾼의 발자국이 틀림없다. 산양이 우리를 보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확실히 있었다. 무추 경찰이 압수한 사제총은 이 발자국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산양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오후 4시경에야 산 아래로 내려왔다. 한 스태프가 자장면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다. 면이 완전히 불었지만 꿀맛이다. 세 시간을 걸어 밤중에야 야리마을에 도착했다. 아홉 시간 만의 합류다. 힘은 들었지만 수확 많은 하루였다.
12월 15일. 야리마을은 10여 호 정도로 농사와 목축이 주업이다. 티베트에서 넘어오는 물건들은 짧은 기간 동안 이 마을에 머문다. 소규모 집하장이다. 마을은 3,800m 대에 불과하나 특히 춥다. 아직 주변 산에 잔설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은 일정상 티베트 국경 일대를 영상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시미코트로 출발해야 한다. 새벽에 출발하려고 했지만 전날의 과로로 카메라 스태프들이 운신을 못 한다. 할 수 없이 아침에 카메라 팀을 데리고 티베트 국경 쪽으로 출발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더니 목표로 하는 고개 초입에 도착하자 발목이 빠질 정도로 쌓인다. 잠시 눈을 피하려고 근처의 빈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내부 시설이 없다. 일종의 대피소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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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낭산(4,500m)에서 본 사이팔 히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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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그칠 기미가 없다. 가져간 짜파티와 삶은 달걀을 먹으며 오후 1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사실 시미코트부터 내심 눈이 왔으면 싶었다. 눈 덮인 산간마을을 카메라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히말은 과연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하필 국경 일대를 찍어야만 하는 오늘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그 마음을 아는지 작은 산새의 무리가 날아와 눈앞에서 재롱을 떤다. 먹이를 주고는 싶지만 가져간 곡식이 없다.
1시가 되며 더는 참을 수 없어 고개를 올라간다. 눈발은 여전하고 이제는 바람까지 분다. 안개까지 끼어서 도저히 사방을 분간할 수 없다. 화이트 아웃 현상이다. 아직 포기는 이르다. 기어이 4,600m 지점까지 올랐다. 정상이 얼마 안 남은 지점이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올라간다 해도 어차피 촬영은 불가능하다. 돌아서는 발길이 착잡하다. 내 평생 다시 온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 없이 야리마을로 돌아왔다. 스태프들은 눈발이 거세어지자 텐트를 걷어 현지인의 집으로 옮겨와 있다. 이 집은 3대 일곱 명이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옷이 젖은지라 염치 불구하고 불을 쬐러 들어갔다.
방 가운데 장작을 때는 철제 난로가 있고, 한쪽 구석에는 불상을 모셔놓았다. 노인 부부는 불상 앞에 초를 밝힌 채 불경을 외고, 아이들은 난로 옆에서 불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옷이 마르자 겨우 추위가 가신다.
허름한 창고를 얻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한다. 밤새 하얀 쥐들은 유난히 소란을 떨고 방에서는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주정을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허탕을 쳤다. 어쩌겠는가. 아무래도 티베트 국경 지역과는 인연이 없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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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가 축대 아래에서 노숙하고 있는 마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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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은 미끄러운데 계곡 다리까지 끊어져
12월 16일. 밤 사이 세상은 파란 하늘과 하얀 대지로 나뉘었다. 하얀 눈 속에 파묻힌 히말과 야리마을은 하나로 이어졌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마을인지 분간할 수 없다. 본래 자연과 인간은 하나다. 히말은 눈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를 전한다.
설국의 촬영을 끝내고 무추마을을 향해 내려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쪽은 전혀 눈이 없다. 아마 야리마을 근처에만 눈이 내린 모양이다. 운이 좋았다. 히말의 배려에 새삼 감사를 느낀다.
내려가는 도로는 차가 다닐 만큼 폭을 넓히는 중이다. 시미코트로 가는 물자 수송을 위해서다. 집이 예닐곱 채 보인다. 이사를 가고 모두 빈집이다. 추운 겨울 동안은 아랫마을에서 지낸단다. 우리만 이렇게 극성이다.
무추마을은 육안으로 보여 가까울 것으로 판단했으나 상당히 먼 거리다. 두 시간을 넘게 걸어서야 무추마을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벌써 마을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스태프들은 얄방마을로 먼저 보내고, 카메라 팀과 함께 일몰 뷰포인트를 찾아 급하게 산길을 올랐다. 한 시간을 올랐지만 역광 때문에 영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더 높은 고개로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 올랐다. 예상 외로 시야가 좋지 않다. 나무들은 시야를 방해하고 히말은 앞산에 가려 일부만 살짝 보인다. 해는 거의 다 져서 또 다른 곳을 찾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기운이 쭉 빠진다. 견딜 만하던 추위가 갑자기 심하게 느껴지며 몸이 떨린다. 수유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수유차는 현지인들이 즐기는 차로 야크버터와 발효차, 소금을 넣고 혼합해 만든다. 고소 증세에 효과가 있고, 따끈하게 마시면 몸이 후끈해지면서 추위를 이길 수 있다.
랜턴으로 어둠을 헤치며 스태프들이 기다리는 얄방마을로 향한다. 길은 경사가 심하고 눈 때문에 미끄러운데 설상가상으로 계곡의 다리까지 끊어져 있다. 한참을 뒤져 계곡에 가로로 걸쳐 있는 긴 나무를 발견했다. 누군가 베어 쓰러뜨려 놓은 임시 다리다. 잔가지가 붙은 생나무로, 눈까지 얼어붙어 있어 보통 미끄러운 게 아니다.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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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리마을에서 스태프들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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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이 발전기로 밝혀놓은 전깃불을 지표 삼아 겨우 얄방마을에 도착했다. 숙소는 기역자 모양의 커다란 이층 건물로 외국의 민간인 지원으로 지어졌다. 애초의 용도는 모르겠고, 현재는 나그네의 숙소로 쓰인다. 아침엔 설국을 촬영하고 저녁엔 허탕을 쳤다. 기복이 많은 하루였다.
12월 17일. 얄방마을에서 아침 밥 짓는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나흘 전에 방문했던 하얀 탑과 곰파가 보인다. 처음에 볼 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다시 보니 정감이 느껴진다.
눈 쌓인 경사면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썰매를 탄다. 썰매는 나무로 만들었고, 눈에 잘 미끄러지도록 대나무 발을 달았다. 우리네 썰매와 비슷하다. 천진스럽게 뛰어노는 저 아이들과도 이젠 작별해야 한다.
케르미마을로 향한다. 전에 새벽에 올라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마니스톤이 강가에 수북이 쌓여 있다. 마니스톤은 불경을 새겨 넣은 돌로 불심의 표현이다. 대부분 작은 크기로 학생들의 솜씨로 추측된다.
생활용품을 말에 싣고 시미코트로 가는 마부들과 동행한다. 이 물건들은 티베트에서 오는 것들로 대부분 중국산이다. 마부들은 창(막걸리)을 마셔 주흥이 도도하다. 창은 도수가 약해 출출하고 목마를 때 즐겨 마시는 술이다.
티하우스를 지나자 길고 높은 고개가 나타난다. 전에 새벽에 지날 때 고전했던 고개다. 힘을 아끼며 천천히 고개를 오른다. 고갯마루의 돌탑에 꽂힌 장대에서 타우초가 바람에 펄럭인다. 타우초는 불경이 쓰인 천이다. 주로 노랑, 빨강, 초록색이 있다.
고개 부근의 작은 능선에 올랐다. 낮은 설산의 뒤쪽에서 구름에 잠겨 있던 아피 히말(7,132m)의 머리가 삐죽 드러난다.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원래는 이번에 아피 히말을 촬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너무 일정이 오래 걸려 포기했는데 막상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따또파니가 있는 케르미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나라파니마을로 향한다. 닷새 전에 보았던 폭포에 도착했다. 기암절벽과 절벽 허리에 난 돌길, 그리고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말들을 한동안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길이 좁고 험해서 리얼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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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방마을 앞을 흐르는 카날리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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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다니던 아이들 보이지 않아 섭섭
낯익은 티하우스에 들렀다. 사제총을 압수해 가는 경찰을 만났던 곳이다. 이제 경찰은 없고 대신 현지 처녀가 수유차를 건넨다. 네팔을 사랑하는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정을 담아서일까. 다른 때보다 유난히 맛있다.
저녁 무렵 나라파니마을에 도착했다. 이틀 걸리는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한 셈으로 내리막길이라 가능했다. 마을 여기저기에서 여인들이 저녁을 지으려고 돌절구에 곡식을 빻는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제 다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전에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은 밤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왠지 서운하다. 산간마을에서의 야영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시원섭섭하다.
12월 18일. 40일간에 걸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 조망이 좋지 않은 계곡 대신에 산길을 택했다. 카메라 팀만 데리고 가이드마저 잘 모르는 산길을 무작정 올랐다.
계곡 건너편으로 계단식 밭과 마을이 여러 군데 보인다. 길은 갈수록 좁아지더니 나중에는 나무꾼들이 다닐 법한 소로로 들어선다. 결국 길을 잃고 헤매다가 멀리 가타(목도리)가 많이 걸린 나무를 발견했다.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가타가 걸려 있다면 큰 길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무 쪽으로 올라가보니 역시 기대한 대로 주도로가 있다. 이 길은 광대한 사이팔 히말산군을 파노라마로 보면서 걸어갈 수 있는 멋진 길이다. 사이팔 히말의 조망은 시미코트 인근까지 계속된다.
지나가던 현지 여인이 도시락으로 지니고 있던 짬빠 도너츠를 준다. 마침 시장해서 맛있게 먹었다. 짬빠는 보릿가루로 만들어 고소하다. 다만 약간의 돌가루가 씹히는 단점이 있다. 보리를 돌절구에 찧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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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르미마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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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산에서 나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10여 명의 남녀노소가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다. 그 중에는 열 살을 갓 넘은 여자 아이들도 있다. 여인들은 남자가 들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시미코트로 팔러 간다.
히말이 삼면 파노라마로 보이는 지점에서 기다리던 스태프들과 합류해 점심을 먹는다. 나뭇짐을 진 예닐곱 명의 여자 아이들이 옆에 와서 휴식을 취한다. 호두를 깨뜨려 먹기도 하고, 간식으로 생쌀을 먹는다. 쌀은 덜 여물어서 싸래기처럼 잘고 녹색을 띤다.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찰기가 있다.
카메라 팀만 남기고 스태프들을 시미코트로 먼저 보냈다. 일몰까지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바람이 차서 옷이 부실한 스태프들이 애를 먹는다.
사이팔 히말 자락과 시스네 히말, 아사자투파 히말의 일몰은 장엄하다. 먼저 시스네 히말과 아사자 히말이 벌겋게 물든다. 사이팔 히말은 해가 지는 방향이어서 물들지 않는다. 대신 해가 떨어지는 순간 후광처럼 머리 부분에 아름다운 노을이 물들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시미코트 시내의 로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내일 아침에 최효범 대장 일행과 나는 비행기를 타고 네팔 간지를 경유,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다. 스태프들은 비행기로 슈리겟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네팔 간지를 경유, 카트만두로 간다.
40여 일간 여행을 하며 각양각색의 히말과 현지인의 풍물을 영상에 담았다. 그 영상은 내 가슴에도 화인(火印)처럼 각인되어 있다. 히말은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