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사랑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저는 국민 축구선수 박지성선수를 존경합니다.
박지성선수의 자서전 멈추지않는 도전이란 자서전을 읽고 더욱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라는 팀을 알게된게 언제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 거의다 박지성선수가 입단한 후부터라고
대답할것입니다.
저는 98년부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팬이었고 존경하는 팀이었습니다. 그러한 팀에 대한민국의 축구선수가 뛰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박지성입니다.
과연 박지성선수가 실력하나만 가지고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입단을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박지성선수는 중고등학교때 무명이나 다름없는 외소한체격에 수비형 미드필더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대한민국 프로축구에도 부름받지 못했던 선수였고, 고등학교 졸업후 명지대학교 축구부로 입단하엿고,
그때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맞고있던 허정무 감독이 우연치 않게 대학축구리그에서 뛰고있는 박지성선수를 보았고,
그때 처음으로 올림픽대표팀으로 발탁되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처음엔 미흡하였습니다.
그후, 일본의 J리그 2부리그에 교토퍼플상가에 입단하고 입단 2년차에 J리그 2부리그 우승을 이끕니다.
허정무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고 박지성을 A매치 국가대표팀으로 차출합니다.
허정무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감독을 사퇴하고 히딩크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게됩니다.
히딩크감독은 지옥의트레이닝을 거쳐서 선수의 유명세 이름만 가지고 대표팀차출을 하지않았고, 실력하나만 가지고 차출하기 시작한 첫 감독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거쳐 히딩크눈에 들어온 박지성선수는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영표 선수와 같이 따라가게 됩니다. 네덜란드리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들을 배출하는 유명한 리그입니다.
브라질의 호나우도. 네덜란드의 루드반니스테로이,로벤,등 다 박지성이 뛰었던 아이튼호벤에서 뛰었던 선수였습니다.
입단첫해 박지성은 아시아인이라는 그리고 히딩크의 백으로 들어온 선수라는 호칭을 벗지 못했고, 잦은 부상때문에 팬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는 아시아의 작은나라 코리아에 선수였습니다.
입단첫해 시즌이 종료되고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내고 박지성선수의 장점인 체력을 더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입단 2년차부터 부각을 나타낸 박지성선수는 꾸준히 성장하였고, 팬들은 다시 기억하게됩니다.
입단 3년차 유럽의 최고 축제인 챔피언스리그 4강전 강호 AC밀란과의 2차전에서 박지성의 첫골은 당시 경기를 관람하던 알렉스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런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 아시아 선수는 누구인가? 가투소와 피를로를 꽁꽁 묵어놓는구나, 저선수에 대해서 알아봐라 "라고 스카우터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5년 박지성은 맨테스터유나이티드에 부름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현재 2011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입단 6년차인 그는 이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고참인 선수가 되엇고, 어린선수들이 배우고싶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끈질긴 압박수비, 공수전환, 축구의 흐름파악 등 퍼거슨선수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의 선수가 되었고, 큰경기에서 강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AC밀란과의 맞붙는 두번째경기 가투소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간 박지성을 또 기억하며, 모기같이 달라붙는 박지성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계유명선수들마저 인정하는 선수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살아남기 힘든 프로세계에서 살아남은 박지성입니다.
그 누구보다고 축구뿐이 몰랏으며, 엄청난 훈련, 그리고 많은 유혹의 뿌리침, 자기의 목표가있으면 이뤄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꿈을 이루고도 아직도 꿈이 남아있다는 그의 모습.
J리그 2부리그 부터 지금은 세계최강클럽 맨유까지 올라온 그의 모습의 박수를 보내고싶고
밑바닥부터 최고의 위치까지 갔으면서도 겸손한 그의 모습은 저를 감동받게하는 선수입니다.
절박함 하나만 가지고 노력하며, 꿈을 꾸는 박지성선수는 제가 자동차딜러로써 꿈을 이루게끔 멘토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인터넷을 보지 않고, 제가 알고있는 박지성선수에 대해서만 작성하였으며, 제가 존경하는 부분을 썻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