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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이사야-19 이스라엘은 내 것이라(이사야 43장 1-3절)
성경 말씀을 봉독합니다.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3절까지 봉독합니다.
[이사야 43장]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이사야서 43장과 44장 오늘 두장을 살펴 볼텐데, 바벨론에 가서 70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에 점점 고향 생각은 잊혀져가고 바벨론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거기에 뿌리내리고 아예 정착할 준비를 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점점 변질되어가고, 또 고향 생각이라든지 이런 것은 점점 희미해져가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기대라든지 소원 기도 이런 것도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그러한 때에 예언자는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사야 43장]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런 말도 우리가 보통 부흥강사들이라든지 QT하는 분들이 이 부분을 보고 자기에게 말했다고 자주 착하는 부분인데, 전혀 우리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벨론에서 자기 민족의 혹시 하나님께서 영 잊어셨거나 버린것이 아닌가, 아예 우리와 관계를 완전히 끝내버린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말씀해주는 것도 아니고, 70년간이나 잠잠하게 그냥 그야말로 바벨론 문화에 점점 물들어갈 때, 그들은 하나님과 우리는 상관이 없어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 조성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이름을 불렀다는 거예요.
이름이 옛날에 야곱이었는데, 이스라엘로 이름도 지어줬고, 또 지명하여 부를 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그리고 언약을 깨뜨린 쪽은 이스라엘 백성 쪽에서 언약을 깨뜨렸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점들을 부단히 상기시켜서 일깨우시는데, 2절에,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옛날에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물 가운데 홍해바다 건널 때도 함께 하셨고, 요단강을 건널 때도 함께 하셨어요. 항상..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한다는 거죠.
또,
..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때에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살아나온 경우가 있었고, 친구 세 사람은 불가운데서도 타지 않았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이 말은 좀 어려운 말인데, 고레스라고 하는 왕이 곧 나타나서 유대인들을 바벨론에 잡아 온 사람들을 풀어줄텐데, 풀어주는 댓가로 애굽 아프리카 전역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하겠다. 그런 뜻이예요.
그러니까 지금 구스라든지 애굽이라든지 스바라든지 이런 나라들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에 내 백성을 해방시켜라. 이렇게 이 이사야서 지금 40장부터 43장이 다니엘이 살아있을 때 이미 이것은 기록되었을 걸로 봅니다.
다니엘 전에 기록 되어서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바벨론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아마 이사야서 43장~45장까지를 쭉 펼쳐서 보여주면서 고레스 당신이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다 알고 있었고, 당신을 통해서 이루실 일을 미리 다 예언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보내는, 얼마 안되니까 포로잡혀 와서 그것보다 더 큰것을 줄테니까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면 구스와 스바와 애굽을 대신 점령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런 얘기예요.
그러면서 4절은 다시 이스라엘을 보고 한 말인데,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가 출애굽기 19장 5절-6절을 공부할 때 ‘내 소유가 된다’할 때 그 소유가 보통 소유가 아니고 43장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다” 하는데, 얼마만큼 보배롭게 여기느냐?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만큼 온 세상 나라를 다 주고 여기 허락된 것은 애굽 구스 스바 이 정도입니다만,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감정은 정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대로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기만 하면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만큼 그 정도로 존귀하고 보배로운 백성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겁니다.
‘세퀼라’라는 하나님의 소유가 그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는 겁니다.
지금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을 말씀을 잘 알아듣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면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보배롭게 여긴다는 겁니다. 보배예요. 사실은..
제가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그 가르쳐서 배운것을 사소한 것까지도 기억을 하면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제가 볼 때 보배롭게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소유요 보배다. 보배로운 백성이다.
늘 어떤 사람이 사소한 아주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제가 강의한 것 떠올려서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는 거예요. 일이 닥칠 때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야 저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요 그리스도의 보배다..
그래서,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남방 북방 어디서든지 다 돌아오게 한다는 거예요.
7절입니다.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참 훌륭한 아주 성실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고 진리를 진리되게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이죠.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읽어보면 굉장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직도 43장 8절에 보면,
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그래서 열방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떠들어가지고 모든 사람이 듣고 ‘옳다’, ‘맞아’, ‘아멘’ 이런 말이 나오게 해 보라는 거예요.
어떤 신이든지 어떤 유명한 사람이든지 어떤 귀신이든지 어떤 그 누구도 모든 사람이 듣고 ‘그 말은 진리다. 그 말은 옳다.’ 말 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10절에 보면,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택함을 입었을 때, 출애굽기 19장 5절-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소유로 선택할 때고 할 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이렇게 선택을 받았다는 거예요.
자기들만 천당가고 구원받을 종으로 택함받은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은 목적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는 거예요. 증인.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우리도 예수님께서 제자를 불러서 다른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될 것이라는 거야. 증인.
여러분 내가 억울한 일 당했는데 내 억울한 사정을 누가 증거해 줄 사람이 없으면 기가 막힐것 아녜요.
자유 수출 지역에서 일어나 사건. ‘목격자를 찾습니다.’ 그렇죠?
옵티마 승용차와 부딪혔는데, 증인 목격자를 찾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금도 증인을 찾는 거예요.
하나님을 증거해주고 하나님 입장을 변호해주고 할 사람을 찾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우기니까 증인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우리가 증거해야 될 큰 역사적 대 사건들을 놓고 무엇을 증거할 것인가?
증거할 주제를 적어 보니까 한 12가지는 증거해야 돼요. 우리가..
기본으로 12가지는 증거해야 되는데,
첫째, 하나님의 창조를 우리가 증거해야 되겠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를 증거해야 돼요.
그 다음에 우리가 타락되었다는 것을 증거해야 됩니다.
교리중의 교리죠. 창조했다는 것과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
세 번째 홍수로서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타락하게 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타락이라는 결과는 홍수심판을 초래하게 된 겁니다.심판이죠. 하나님의 심판하신다.
그리고 언어가 여러개이고 민족이 여러개이지만, 원래 그 뿌리는 하나에서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되고 민족이 나누어진 것이지, 이 민족도 다 하나다 하는 것을 증거해야 됩니다.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노가’라는 것도 증거해야 됩니다.
성씨가 다 노아의 후손들이니까 한 할아버지 후손들이죠.
그 다음에, 출애굽 사건은 큰 사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기 능력을 보이고 자기 스스로를 계시하는 사건중에서 큰 사건이 출애굽이죠.
그래서 그 이후로 출애굽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하나님을 떠올리고 기억을 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보다는 대체로 우리를 애굽땅 바로의 종 되었던 집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여호와로 맹세한다. 할 정도로 큰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
그 다음에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다는 거야.
하나님과 어떤 민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 이것이 바로 옛언약 구약 레위기 구약이죠.
언약이 체결되었는데, 그 이후로 언약은 계속 깨어지고 깨어지고 깨어져서 마침내 860년이 지나서 그 언약은 완전히 깨어져서 예루살렘에 함락되었다는 겁니다.
이것 큰 사건이예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함락된지 7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만 함락된게 아니라 바벨론도 BC539년에 함락되었다는 겁니다.
바벨론의 함락은 큰 사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이 말해주는 큰 사건을 말할 때 이런 사건은 그야말로 집고 넘어갈 큰 사건입니다.
바벨론이 함락되었다.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에 유대인이 돌아오는 사건과 연결되는데,
그 이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는 다시 결렬되고,
결과적으로 400년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육체가 되어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이것은 큰 사건이죠.
우리는 여기다 주목을 해서 우리 기독교가 탄생할 정도로..
그리고 십자가 부활 이후에 성령 하나님이 강림하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흘려서 죄를 다 속량했기 때문에 믿고 돌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다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그 이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교회는 또 타락해가지고 로만카톨릭이라는 그런 만국종교혼합주의로 떨어졌는데, 종교개혁이 일어난 거예요.
1517년에 루터 같은분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사건입니다.
여기까지 12가지 큰 사건인데, 이것을 우리가 다 증거해야 돼요. 최소한으로..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하는 것은, 역사안에서 우리가 현재와 미래에 과거라는 역사안에서 우리 선배들이 다 증거해왔지만, 앞으로 미래 세계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미래 세계를 책임지고 일하는 하나님을 증거해야 될 증인들이죠. 증인들..
그래서 이 이사야 시대에는,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자,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첫째 아는게 중요합니다. 아는게..
하나님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알고..
두 번째 알기만 하면 뭐합니까? 믿어야 돼요.
알고 믿어서 알아볼만큼 알아서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해가지고,
..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알고 믿고 깨닫고..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성경을 배우고 설교나 강좌나 여러 가지 방송이나 모든 것 전부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고 깨닫게 하고 여기는 그것까지 안 나갔는데, 알고 믿으며 깨닫게 한다까지 만 나왔습니다만, 제가 살펴 본대로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까지 가야 돼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까지 가야 돼요.
..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스스로 있는 자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이사야서에서 흐르는 신학이죠. 구원자는 여호와 한분 밖에 없다.
‘예사야후’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
12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절대자란 말이죠. 절대자.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여기 번역이 어려운 말인데,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했는데, 뭘 보내느냐 하면 하나님의 종을 43장 44장 45장까지의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나중에 보면 고레스인데, 고레스를 보내어,
..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6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출애굽때에 바로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쓸어넣은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그런것 기억할 것도 없어.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19절 줄을 그으세요.
새 일이라는 것 때문에 ‘새일교단’이 나온거야.
이뢰자라는 사람의 새일교회라는게 새 일을 행한다는데, 새 일이 이뢰자라는 그 사람이 일어난 것이 새 일이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은 옛날에 애굽의 바로왕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다 쓸어넣은 일이 옛일이고, 새 일은..
옛날에 출애굽한게 옛일이고 지금 새 일은 바벨론에서 바벨론 성이 무너지고 해방되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새 일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모르고 새일교회라고 이뢰자 라는 사람이 멍청하게 해서 교단이 나온 거예요.
말 한마디 잘못 이해해가지고 교단이 나오는 거예요.
그 교단도 이단이예요..
성경을 역사적으로 보지 못할 때 그런 잘못된 해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엉뚱한데로 인도합니까?
그래서,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줄을 긋고 ‘고레스를 통해서 이루실 일’. 이렇게 하면 정확한 해석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알면 성경이 보이고 성경을 알면 역사가 보인다는 겁니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시랑은 재칼이라는 들개를 말합니다.)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지었다’는 것은 창세기에서 지었다는 말보다는 지금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 거의 칼과 염병으로 다 죽게 하고 지금 출바벨론 해야 될 이 백성을 내가 특별히 지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실은 출애굽때 모세가 찬송을 한 적이 있었고, 다윗이 개인적으로 찬송을 했습니다만 솔로몬때도 있었겠죠.
그 이후로 제대로 하나님을 찬송한 일은 없었습니다. 없었다가 출바벨론하는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하는데, 그 찬송가가 우리가 가진 시편이라는 겁니다.
시편이라는게 시작된 것은 모세때부터 시편이 기록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으로 이들이 1권~5권까지 시편을 수집하고 편집하고 실제로 부르게 된 것은 제2성전시대 스룹바벨 성전 시대에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편이예요.
곡이 다 붙어있고 그야말로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지은 백성이죠.
그래서,
지금 바벨론에서 잠을 잘 것인가 바벨론에서 뿌리내릴 것인가 이렇게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깨워서 새 일, 다시 말하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나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 하였으며
하나님 섬기는 것을 싫고 하고 번폐스러워 하고 괴로워했어..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내가 항상 향기로운 제물을 받아 본적이 없고 너희 죄만 보고 내가 살았다 그런 얘기예요.
그렇지만, 25절에,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이스라엘 백성이 허물이 없거나 죄가 없거나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제가 이 부분도 공부할 때 참 놀라워했던 부분인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 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살아버리고, 이웃을 위해서 한다하면서도 자기 실속을 챙기고, 그렇게 하는 수가 많아요. 사람들은..
남을 위한답시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이 되어버리고..
그게 죄라는 거예요.
옛날에 크로스웨이라는 것을 공부할 때 죄라는 것은 동그라미 그리면 돌아오는 거예요.
나가는 것이 아니고 뱅 도니까 결국은 자기에게 돌아와요. 목적이 자기가 되어버려요.
모든 일 하는게 목적이 자기가 되면 죄라는 거예요.
목적이 하나님이 되고 이웃이 되어야 될 텐데, 하나님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고 목적이 계속 자기를 위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죄가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거꾸로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야. 내 이름 때문에 하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이름 때문에 한다는데 덕은 다른 사람이 보는 거야.
그게 의(義)라고 하는 거예요.
의(義)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나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게 의가 되는 것이고, 죄라는 것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하지만 자기 실속을 챙겨버리면 죄가 되는 겁니다.
죄가 뭐냐 하면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할 때 그것은 의가 되고, 모든 목적이 심지어 목회자가 목회를 한다손쳐도 그것이 자기성공 자기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죄라는 거예요. 죄..
그래서 우리가 신학을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아니면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목적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그러면 그것 자체가 농사를 지어도 의이고, 장사를 해도 의이고 공부를 해도 의이고 다 의예요.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런데 만약에 목회를 하고 선교사를 한다할지라도 그 목적이 자기를 위한 것이 되면 그것 자체가 죄가 되는 거예요.
여기 놀라운 말씀은 하나님께서,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한다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덕은 누가 보느냐? 우리가 보는 거예요.
에스겔에서도 내가 너희가 의로워서 건지는 것 아니다. 내 더럽혀진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건진다 그런 말을 해요.
순전히 의가 뭐냐? 자기를 위해서 한다는데 그 덕을 다른 사람이 볼 때 그게 진정한 의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 교회의 진리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으니까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저희를 대신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게 의라는 거예요
우리의 목적이라는게 항상 내가 나를 위한 것이 될 때 죄가 되는데,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덕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로우신 분이죠.
26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네가 한것 뻔하지 않느냐?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니까 시조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고 그 뒤에 모든 민족의 지도자 교사들이 전부다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거예요. 배역을, 등을 돌렸다는 거죠.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이사야 44장]
1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여수룬아’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른 별칭으로 부른건데, ‘아리엘’이라는 말도 있고 여수룬도 있습니다.
여수룬은 공의롭다는 뜻인데요.
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풀들이 솟아나는데, 풀이나 나무나 시냇가의 버들처럼..
버드나무가 잘 크는 나무죠. 아주 청청 푸르게 빠르게 자라요.
시냇가의 버들처럼 솟아나게 할 것이다.
5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깨닫고 알고 믿고 깨닫고 사람들이 돌아와서 나는 여호와께 속했다.
하고 자기 손바닥에 ‘나는 여호와 것이라 하나님의 것이라’ 스스로 그렇게 깨닫고 할 날들을 하나님께서 바라고 있는 거죠.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것은 바벨론에 가서 큰 교훈중에 하나죠.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이것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배운 가장 큰 주제예요.
7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
하나님 외에 누가 장차 올 일을 말할 수 있는지..
8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다른 신이 있는지는 하나님도 모른답니다.
전혀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는 거예요.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러니까 여러분 길에서 스님을 만나거나 절간에서 무슨 도사를 만나도 대사를 만나도 하나도 두려워할 것 없어요. 다 허망한 거야.
제가 아는 전도사님 한 분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스님이 있으면 목사님 날 보세요. 오늘 저 스님 딱 벗깁니다. 승복을 오늘 벗깁니다.
그분은 스님 킬러예요.
스님만 보면 입맛을 다시는 거야.
딱 붙잡고 얼마나 해가지고 기어이 승복을 벗기고 만다는 거예요.
아무리 어려운 데 가서 전도자로 가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이동근 전도사님이라고 그런 분이 있어요.
저 합천군 장산면인가 하면 거기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하여튼 스님만 보면 그저 입맛을 다시면서 오늘 옷을 벗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분을 우리 교회에 모실만한데, 열정파예요.
경찰 출신인데, 얼마나 전도에 열정이 있는지 특히 스님만 보면 입맛이 난다는 거예요.
허망한 거니까..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11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2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정규’란 말 처음 듣죠? 정규는 컴파스를 말해요. 컴파스.
..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14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15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도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인간들이 하는 짓을 하나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우상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식도 없고 생각도 없고 총명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거예요.
..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런 말 한번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 짓을 하는 거예요.
얼마나 멍청하면 사람들이 그러냐는 거예요.
20절,
20 그는 재를 먹고,
여러분 재를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를 먹으면 재색이 되는 거죠.
그래서 왜 여러분 승복이 재색인줄 아세요?
승복이 재색 아닙니까? 재빛깔.. 재를 먹었으니까..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흐리멍텅해가지고..
옛날에는 승녀들이 입는 옷이 물감이, 요즈음은 타르계통의 물감으로 염색을 하지만 옛날에는 옻칠의 검은 칠 그것을 가지고 묽게 해서 물을 들이는 거예요.
옛날에 지리산 기슭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옻을 많이 타는 사람이 있어요.
옻나무 근방에 가도 옻나무 스치기만 해도 옻에 걸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꿈에 중만 봐도 옻에 걸린다’ 그런 말이 있어요.
중이 입고 있는 그 옷이 재빛 옷이 그것이 옻칠을 가지고 염색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생시에 본 것도 아니고 꿈에 중을 봐도 옻에 오른다면서..
그런 대개 약한 사람을 말할 때 그렇게 말하는데, 재를 먹고 그야말로 재색이라. 회색분자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흴려면 희든지 검을려면 검든지.. 흐리멍텅하게..
20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내가 지금 순 헛된 것을 섬기고 있지 아니한가. 그 말 한마디도 못해. 깨닫지 못하니까..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그러니까 이제는 70년 동안 복역의 때가 끝났고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어. 충분히 맞을만큼 얻어맞았으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금만 때리라고 했는데, 이 나쁜 놈들이 너무 세게 때려가지고 여호와 손에서 배나 받았으니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하나님께서..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다시 한번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할 때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겁니다.
..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25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26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그러니까 지금 예루살렘이 70년 간 황무지가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게 될 것이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그러니까 이것은 이미 고레스 왕이 이 때 쯤 태어났거나 말았거나 그런 때, 고레스가 겨우 자라고 있을 때라든지 아니면 고레스가 장성해서 바벨론이 아직 침공해 오지 않았는데 고레스를 통해서 이루실 일들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28절에,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자,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과 하나님께서 종을 삼으시는 어떤 대상들이 유대인에게 국한 된게 아니지 않습니까?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나의 종 나의 목자라고 한다니까..
..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그러니까 아무나 어떤 누구가 와서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한 사람이 없는데, 고레스라고 하는 그 페르시아 왕이 와서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한다는 거야.
..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줄을 그으세요.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중건되리라.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중건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건데, 이 말을 그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안식일교가 생긴 거예요.
예루살렘이 중건되리라 했는데 누구를 통해 중건되느냐? 고세스를 통해서 중건될것 아닙니까?
고레스가 고레스 칙령을 내려서 예루살렘이 중건되리라 하는 것을 그 고레스 칙령을 기산점으로 해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중건되리라 말을 에스라가 온 것을 엉뚱한 연대계산을 해가지고 1843년 3월 21일에 예수님이 올 것이라고 엉터리 계산을 한 거예요.
이런 것도 성경 한절 잘못 이해하므로 해서 한절 알지 못하거나 잘못 오해해서 엉터리 교리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특히 이런 예언서 같은 경우는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 가지고 이상한 계산 해가지고 이단 사이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직하게 제대로 안 배우면 성경을 혼자서 QT하면 어렵고 거기다가 에언서 같은 것을 혼자서 QT하다가는 아주 위험해요.
반드시 지도하는 사람과 함께 공부를 해야 돼요.
거기다가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28절 전체를 묶어서 다니엘서 9장 27절이라고 각주를 하나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 공부할 때 도움이 되겠죠.
그리고 다니엘서 찾아보고 마칩니다.
다니엘서 9장 27절 이하입니다.
25절부터 보겠습니다.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예루살렘 중건을 누가 한 거예요? 이사야서 43장을 보니까 고레스가 한 거죠.
고레스 칙령은 BC538년에 난 거죠.
..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일곱 이레 동안에 이루어질 일이 있고, 육십 이 이레가 이루어질 일이 있습니다.
일곱 이레는 49년이니까 50년, 다시 말해 한 희년 동안에 이루어질 일이 있는 것이고,
한꺼번에 육십 이 이레라고 말하지 않고, 일곱 이레가 이루어지는 일이 있고, 다시 육십 이 이레 동안에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볼 때 간격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죠.
그 간격이라는 것은 대체로 말라기 끝나는데서부터 예수님 기름 부음을 받는 때까지 하면 약 434년 쯤 될 겁니다.
이렇게 보면 아무 어려움 없는 건데, 이런 것을 역사적으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식교 같은 이단이 나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누구를 통해서 하느냐 하면 고레스 왕을 통해서..
..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성전이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는 하는 것은 스룹바벨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 고레스 칙령으로 스룹바벨로 해서 이루어질 일들을 미리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미리 이야기하니까 예언서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하실 때 ‘너는 내것’이라 할 때 내것인데, 일단 내것이 무엇을 위한 내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증인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택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도 꼭 목회자나 선교사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믿어서 다 전도자가 되고 또 주님의 증인이 될 때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예수님 재림까지를 다 증거할 수 있는 증인 되기 위해서 증거 문서가 되는 말씀을 익히 정확하게 배워서 신실한 증인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 바로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또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제는 내가 옛적일 생각할 것 없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그 새 일은 옛날에는 애굽에서 나왔지만 이번에는 다시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나올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이 일은 고레스라는 하나님의 목자,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성취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것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도 않고 그대로 문자대로 성취된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웠사오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익히 배우고 나아가서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