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육친(六親)을 많이 다루었지만, 지금은 육신(六神)을 다룬다고 한다. 그러면 육친 이후에 육신이 나왔을까? 막연히는 육친은 구태의연하고 육신은 왠지 참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상 육신의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육신 해석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재생관’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기준이 되는 잣대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회가 제시하는 관이라는 체제에 순종하면서 그 길을 잘 따르는 모범생을 이상적인 인물로 설정한 모델이다. 물론 육신에는 2트랙이 존재한다. ‘재생살’이 ‘플랜-B’이다. 이 말은 재생관이 전반적인 사회의 기준 모델이 되었을 때 육신이라는 모델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재생관이 먼저냐, 재생살이 먼저냐를 따진다면 당연히 재생살이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자, 맹자, 제자백가의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는 재생살의 시대였다. 개인이 나름대로 독창적인 학문의 영역을 만들어 놓고, 지역 군주가 그 사상이 마음에 들면 불러들여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게 재생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정된 국가체제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전의 모습이다. 준비된 인재는 주유천하를 하면서 쓰임을 받으면 종사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냥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개발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재생관이라는 것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개념은 ‘과거제도’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수나라 수문제가 처음 시작하였다. 지방 귀족들의 힘을 빼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과거제도는 신라시대의 독서삼품과가 있었으며, 고려 광종 때 중국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에 의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고 국사 시간에 누차 들어왔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인재선발의 기본이 되었고, 지금도 공무원시험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계속되고 있다. 관이라는 사회가 제시하는 인재상의 길을 따박따박 밟아서 사회체계 내에 순종적으로 처신하며 행동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명리 사주에서의 육신 해석은 과거제도가 정착된 사회에서 개발된 모델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역사도 육친보다도 훨씬 이전에 태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육친은 편협한 부분이 있지만, 육신은 사회 전반적으로 포괄적이다.
시대에 따라 공무원도 공무원 나름이다. 경제개발의 시기에는 검사/판사/의사 등 힘 있는 ‘사’자가 재생관에 속하고, 박봉의 일반 공무원은 배제된 적도 있었다. 털은 털이지만 ‘범털’과 ‘개털’의 구분이랄까. 지금은 모든 공무원이 선호의 대상이지만. 재생관에 속하는 직군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변하며, 사주 해석도 이에 맞추어서 변해야 할 듯하다. 사주 해석도 살아있는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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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
과학, 역사, 불교사상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본 직업이 작가이지 않으신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