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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도보순례단이 출렁다리에서 만난 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생명평화도보순례단
하루 종일 낯선 길을 걷고 있다. 말없이 빵과 물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가던 트럭이 일부러 멈춰서 간식을 전하기도 한다. 팽목항에서 이태원역까지 걷고 있는 ‘생명평화도보순례단’에게는 익숙한 장면이다.
“저희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지지하는 모습을 보고, 10·29참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3월 29일 청양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를 걷던 청년 박민우(30)씨의 말이다. 그의 겉옷 위 몸자보 앞쪽엔 ‘잊지 않을게요, 0416 1029’가, 뒤쪽엔 ‘팽목항에서 이태원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국가가 보호하지 못해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참회하기 위해 종교인들이 도보순례에 나섰다. 출발지는 전남 진도 팽목항, 종착지는 서울 이태원 10·29참사 분향소다. 무려 400㎞에 달하는 거리를 하루 평균 30㎞씩 14일(3월 20일~4월 2일)을 걷는 일정이다.
김현호(51) 성공회파주교회 신부가 제안해 윤숙희(56) 전 파주여성민우회 대표, 잇코(53) 일본 승려, 그리고 성공회안산교회 신자인 박씨가 함께했다. 이들은 배낭을 짊어지고 두 손에 쥔 나무지팡이를 의지한 채, 침묵 속에 50분 동안 걷고 10분을 휴식하며 순례했다.
‘잊지 않을게요 0416 1029’, 그 시작은 10•29참사 이태원에서 400㎞ 떨어진 4•16참사 팽목항이다. ⓒ 생명평화도보순례단
3월 19일, 광화문 10·29참사 분향소와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한 뒤 팽목항으로 이동해 이튿날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해남(21일)~목포(22일)~무안(23일)~영광(24일)~고창(25일)~줄포만 갯벌생태공원(26일)~선유도(27일)~서천(28일)을 지나 10일째인 29일 예산에 도착했다.
우리지역은 광시~대흥슬로시티~출렁다리~예산군청을 거쳐 성공회 예산교회까지다. 이날은 심규용 성공회예산교회 신부가 이들을 맞았다. 광시에서 만난 김 신부는 “지역에서 결합할 때도 있고, 제가 속해 있는 교회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그날그날 다른데, 하루 평균 4명은 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있다”고 일행을 소개했다.
그는 10년 동안 매년 생명·평화·환경·반전 등 묵직한 주제로 전국도보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2014년 9월 첫 번째 순례는 4•16참사가 계기가 됐다. 김 신부는 “지난해 순례를 끝내면서 올해가 정전 70주년이어서 휴전선을 걸을까 생각했는데,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참사를 보면서 세월호참사와 연결하는 몸짓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내면에서 자꾸 올라왔다. 재발을 막기 위해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몫을 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됐다”며 “충청도도 이념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지역이다. 그런데 외면하는 것인지, 침묵하는 것인지 역사적 조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헌영의 고향이 예산이다. 이곳 역시 아픔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예산을 택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 올바른 기억을 통해 아픔을 치유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생명평화도보순례단이 순례 10일째 날 청양을 거쳐 예산으로 들어오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윤 전 대표는 김 신부의 제안에 깊이 공감해 처음 도보순례에 참여해 첫날부터 동행하고 있다. “처음이라서 물집도 잡히고 통증도, 고관절도 있었는데 이겨낸 계기들이 있었다”며 “한번은 트럭이 멈춰 서길래 봤더니 물과 에너지바를 들고 와 전해주셨다. 시민들이 저희 몸자보를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간식을 챙겨주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모습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전남 영광을 지날 때 만난 한 시민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했다. “그분은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뒤 9년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가 살고 있었는데, 저희를 보고 기억이 떠올라 급하게 차를 돌려 음료수를 들고 찾아 오셨다. 안산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 친했던 동료교사가 단원고로 발령받아 일하다 세월호참사로 희생됐다는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박씨는 두 번째 도보순례다. 예산이 처음인 그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지나가던 차량들이 멈춰 기다리는 모습에서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느꼈다”는 첫인상을 들려줬다.
북을 두드리며 걷는 잇코스님은 한반도평화를 위해 기도하려 한국으로 온 일본 승려다. 강원도 철원에 머물며 평화이슈현장을 찾는다. 도보순례는 2018년부터 동참했다. 종교·국적·언어가 달라도 평화를 염원하고 생명을 위한 마음은 ‘만국공통’이다.
이들이 챙기는 필수품은 전기냄비, 누룽지, 김치다. 오전 6시 일어나 아침식사는 누룽지로 간단히 해결한 뒤 오전 8시에는 무조건 걷기를 시작한다. 누굴 만날지, 어디서 잠을 잘지, 어떤 일이 발생할지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다만 매 순간 일어나는 일에 충실할 뿐이다.
성공회 예산교회 신자들이 그들을 만나 마음을 더했다. ⓒ 생명평화도보순례단
김 신부는 “순례 초창기엔 미리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를 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못 걷는 분들의 속도에 맞춘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도착하는 것”이라며 10년여를 순례하는 동안 현장에서 터득한 ‘깨달음’을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팔찌’ 제안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왜곡된 상태로 기억하거나 잊어버리니까 이런 문제들이 자꾸 발생한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 시작한 것이 기억운동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당시 유행하던 건강팔찌에서 힌트를 얻어 세월호팔찌를 제작했다. 순례도 일종의 기억운동”이라며 기억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6참사 전부터, 대형 참사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성향들이 과연 어디서부터 발생했을까에 대한 고민도 했다고 한다. ‘남북분단’, ‘남남갈등’을 지목하면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면서 발생하는 분열적 현상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선순위에 밀린 안전의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세월호참사든 이태원참사든 국가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자나 깨나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 그게 국가가 할 일”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선장·안중면(30일)~오산(31일)~단원고4.16기억교실(4월 1일) 등을 순례한 뒤 마지막날인 4월 2일 이태원역과 광화문 10·29참사 분향소에서 성공회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시커먼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영영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 유가족들은 목놓아 호소했다. ‘잊지 말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사회는 함께 아파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해 10월 29일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158명이 또다시 스러져갔다.
생명평화도보순례자들은 팽목항에서 이태원까지 묵묵히 걸으며 물었다. 또 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