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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인식과 바람직한 삶
(가)
하수(河水)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들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만리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나 전포(戰砲) 만가(萬架)와 전고(戰鼓) 만좌(萬座)로서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 같이 우는 거야.” 하고 말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산중의 내 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거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의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퉁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노한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급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가 있는 탓이요,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것은 듣는 이가 슬픈 탓이요,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의심이 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는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같은 강을 아홉 번 건넜다. (중략)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리 밖에서 폭우가 온 때문이다.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黙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현기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 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는 밤에 강을 건너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인가?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깨달았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에 밟혀서 뒤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을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 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寄居)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왕(禹王)은 강을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으로 저어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의 판단이 먼저 마음 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크거나 작거나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데 그 험하여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경험해 볼 것이니,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 박지원,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나)
지금 우리 사회는 성형 열풍에 휩싸여 있다. 취직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남녀 구분 없이 성형을 하고 있는 사람이 급증하고 중․고생들 중 방학 기간을 이용해 성형을 하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예인들은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 당당하게 성형 사실을 밝힌다. 대중 매체가 조장한 ‘얼짱’, ‘몸짱’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성형에서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내용보다는 대부분 미용 성형을 부채질하는 언론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중략)
이런 가운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외모도 경쟁력이다. 성형을 꿈꾸는 아이들’편을 방영하고 10대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성형 수술 열풍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작진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18살의 세영이(가명)를 소개하면서 10대 성형 수술 유행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델을 꿈꾸는 세영이는 이미 한 차례 성형 수술을 했지만, 또 다른 성형 수술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줬다. 제작진에 따르면 세영이는 부모 집에서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 세영이는 식사비까지 절약하며 성형 수술을 위한 비용 마련에 열심인 상태로 성형 수술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못생긴 것은 죄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싶지 않아 성형한다.”고 말했다.
- 미디어 피플,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성형 열풍>
(다)
현대 문명은 현시적(顯示的) 소비자들로 넘쳐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옷 상표는 언제나 옷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오늘날 디자이너의 이름을 셔츠, 넥타이, 블라우스, 바지, 양말의 바깥쪽에 보란 듯이 박혀 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해 주고 광고비도 지불하는 셈이다. ‘랄프 로렌’을 가슴에 단 사람은 비싼 옷을 살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Bck to the future)’에는 1950년대의 한 소녀가 미래에서 온 소년의 이름을 ‘캘빈’이라고 추측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소년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캘빈 클라인’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다. 캐딜락은 수준급 차로 미국 전역에 정평이 나 있지만 비버리힐스와 시더허스트 동네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두 동네의 존경받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메르세데스 벤츠를 몇 대씩 가지고 있다. 캐딜락을 가진다는 것은 수치요, 모욕이다. 집 앞 도로에 캐딜락 한 대가 세워져 있다고 하자. 그 집 주인 얼굴은 창백해질 것이다. “저건 내 차가 아니야. … 누구 건지 알게 뭐야. … 천박한 이웃집 차일지도 모르지. … 누군가 간밤에 세워두고 달아난 모양이지. … 당장 청소부를 불러 치우라고 해야지.” 그들이 벤츠를 그다지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학 기술의 차이 때문’이라고 그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이 공학 기술 예찬론자들은 5만 달러 짜리 승용차의 공학적 원리를 이해하기는커녕 1백 달러짜리 VCR 하나 예약 녹화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VCR에는 낮이나 밤이나 12:00가 깜빡거리게 해 놓고 공학이니 뭐니, 기술이 어떠니를 따지려 든다.
(중략)
경제학자 베블렌(Veblen)은 수요는 ‘남들이 생각할 만한 그 상품의 가격’ 즉, 현시적 가격(conspicious price)에 비례한다고 했다. 만약 구찌 핸드백의 가격이 떨어져 아무 시장에나 흔하게 될 경우 그 수요는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할 것이다. 베블렌 식의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컨트리 클럽에 상표 없는 옷을 입고 나타나면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비버리힐스에 캐딜락을 몰고 가야만 할 경우, 남의 집 앞에 세우지 말고 주차장의 후미진 곳에 세워야 할 것이다.
- 토드 부르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논제1] 다음 글을 바탕으로 제시문 (가)에서 박지원이 깨우친 도(道)가 무엇인지를 삶의 태도와 관련시켜 설명하시오. (400자 내외)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거나 ‘범은 그려도 뼈다귀는 못 그린다.’는 말이 있다. 겉은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속은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람의 행동이나 말 같은 것은 눈과 귀를 통해 쉽게 듣고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속 생각이나 인격은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속담에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람을 겉과 속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사물의 두 측면은 철학에서도 중요한 논의의 주제가 된다. 철학에서는 이를 ‘본질과 현상’의 문제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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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설
<논제1>은 먼저 주어진 글(존재하는 사물이나 사람의 두 가지 측면, 즉 ‘본질과 현상’의 구분)을 바탕으로 박지원이 깨우친 도(道)를 삶의 태도와 관련시켜 설명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외물이 우리의 마음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 그가 깨우친 도이고, 본질을 인식하고 깨닫기 위해서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적인 삶의 태도를 보인다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제시문 분석
(가) 필자의 체험이 담겨 있다. 물소리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소리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홍수가 나서 흙탕물이 세차게 흐르는 물을 건너는데 사람들은 물을 보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은 물을 보면 현기증이 나서 물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중히 여기는데 필자는 눈과 귀를 믿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이 본질을 훼손시켜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친다는 것이다. 더구나 물보다 험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눈과 귀에 집착하면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이목(耳目)이 병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현상에 초연하여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나)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전형인 성형 신드롬에 관한 글이다. 이러한 성형 열풍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청소년층까지 확대되고 있는 광풍이 되고 있으며, 자신을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자기 혐오에 이르는 지름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성형과 같은 외모 지상주의가 무분별한 대중매체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외모에 대한 욕망에는 획일화가 작용하고 있으며 미에 대한 관념이 마치 사회적 관념인 양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 현시적 소비에 대한 글이다. 현시적 소비란 과시적 소비를 의미하는데, 필요에 의한 합리적 소비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소비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꼭 필요해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하여 창조되기도 한다. 소비는 사회적 속성이 있어서 소비를 통하여 부유층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소비는 생존의 필요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참고 자료
◐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은 육체이다. 오늘날 육체는 광고, 패션, 대중문화 등 모든 곳에 범람하고 있다. 육체를 둘러싼 위생, 영양, 의료와 관련한 숭배 의식, 젊음, 우아함,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에 대한 강박 관념, 미용, 건강, 날씬함을 위한 식이요법, 이것들 모두는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육체는 영혼이 담당했던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문자 그대로 넘겨 받았다. 오늘날 육체는 주체의 자율적인 목적에 따라서가 아니라, 소비 사회의 규범인 향락과 쾌락주의적 이윤 창출의 원리에 따라서 다시금 만들어진다. 이제 육체는 관리의 대상이 된다. 육체는 투자를 위한 자산처럼 다루어지고,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여러 기호 중의 하나로서 조작된다.
-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 목소리는 예쁘지만 몸매와 얼굴은 꽝인 여자 한나가 전신 성형 수술을 통해 미녀 제니로 거듭난다. 추녀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를 미녀로 떠받들어 모신다. 교통 사고를 당한 택시 운전사조차도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면서도 그녀의 미모 때문에 고통을 못 느끼고 황홀해 한다. 뚱보에서 미녀로 대변신하면서 한나에게는 여러 가지 기회가 찾아 온다. 가장 큰 변화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짝사랑 상대가 그녀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된 것과 미모에 가창력까지 갖춘 덕분에 얼굴 없는 가수에서 일약 톱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뚱보 한나와 미녀 제니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콘서트장에서 자기가 뚱보였음을 밝힌다. 하지만 그녀에게 시련은 닥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모가 아니라 용기와 솔직함이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다.
- 영화, <미녀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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