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일 7월 22일(일) 그리스 순례 셋째 날 코린토 유적지, 아크로폴리스 언덕, 파르테논 신전
오늘은 순례 중에 두 번째 맞는 주일인데다, 저녁에 다시 이 호텔로 돌아올 것이라서 아침에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여유로운지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느긋하게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30분 코린토korinthos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오늘은 버스가 새 것으로 바뀌었다. 62석짜리 새 버스를 우리가 처음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버스 앞에 모니터가 있어서 바깥 풍경이 다 보이고 뒤에는 화장실도 있다. 김신부님께서 차를 축복해 주셨고 우리는 함께 성가를 불렀다. 차 주인이 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차를 이용하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조차 얼마나 많은 것을 따져왔던지......그 사람이 신자인지 아닌지, 혹은 성당에 열심히 나오는지 아닌지, 기도를 받을 만한지 아닌지 등등. 부끄러운 마음을 노래 소리에 감추고 싶었다.
버스는 푸른 에게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작은 호수에 물새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도 보이고, 왼편으로 살라미스 섬이 나타났다. 페르시아 전쟁 때, 살라미스 섬과 아테네의 항구도시 피레에프스 사이에 있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 함대가 병력이 훨씬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무찌른 살라미스 해전(BC 480)은 세계 4대 해전 중의 하나이다. 살라미스 섬은 동서양을 가르고 유럽을 가르는 섬이다.
어제는 무궁화꽃을 보았는데, '현대'공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더니 우리 나라 꽃과 태극기를 보고도 가슴이 뭉클하다. 차가 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 멋진 기사 그레고리는 내가 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목발을 들어 주고 손을 잡아주셨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어느 새 내 앞에 나타나셔서 또 손을 잡아 차에 타도록 도와 주셨다. 부담없이 우러나오는 몸에 밴 친절이 참으로 감사하다. 8시간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으므로 보조기사가 함께 탑승해야 하는데, 아들 야니를 데리고 다니신다. 부자의 모습이 보기가 참 좋았다.
차창 밖으로는 올리브 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땅콩처럼 생긴 피스타치오 나무도 많다.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코린토 운하를 지나갔다. 암벽 사이로 에머럴드빛 바닷물이 얼마나 푸른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코린토 운하는 사로니코스 만과 코린시아코스 만을 연결하고 있는데, 운하 위로 열차와 버스가 다니는 다리가 가로놓여 있다. 단단한 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길이 6km, 넓이 23m, 깊이 90m나 된다. 코린토 시대부터 계획되었고, 알렉산더 대제, 칼리귤라, 네로 황제 등을 거쳐 19세기(1893년)에 가서야 프랑스 엔지니어회사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이 운하로 에게해와 이오니아 해가 연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섬이 되었다. 운하는 두 바다를 이어주고 있으며, 지름길이다. 나와 하느님을 이어 주는 운하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테네에서 89km 떨어진 코린토는 지정학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교통과 교역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발달해왔다. 기원전 146년에 로마통치에 대한 반란으로 초토화되었고,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시이저Julius Caesar에 의해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는 도시로 재건되어 다시 번영한 항구가 되었다. 코린토는 기원전 27년 아카이아(펠로폰네소스 반도) 속주 총독부로 승격되면서 그리스인, 로마인, 유다인, 동방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인구 13만여 명이 사는 인종 박람회장과 같은 도시가 되었고, 자연히 종교도 매우 다양해져 마치 종교전시장 같았다. 바오로 사도는 두 번째 선교여행(50-52년) 때 코린토에서 일년 육 개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사도 18,1-17).
순례객들은 코린토 유적지로 가려면 델피를 지나가야 한다. 아크로 코린토 산은 해발 575m이다. 산꼭대기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은 남아 있지 않고 성벽만 남아 있다. 유물 전시관(코린트 박물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미케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고, 로마시대의 유물도 있다. 질그릇, 거울, 가면, 방패 등도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그늘 아래서 설명을 듣고 나면, 마치 소나기를 피하듯 햇빛 속을 달음질쳐서 나무 그늘을 찾아 들었다. 미사는 유적지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드렸다. 나무 밑에는 제대로 쓸만한 바위 하나와, 긴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중요하다. 바위 위에 미사 준비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촛농이 흘러내렸고, 생수병을 잘라서 만든 바람막이가 까맣게 그을렸다. 김신부님의 주례로 여유있게 드린 미사에서 오랫만에 진하게 평화의 인사도 나눴다. 미사 후에 사진을 찍고, 캥크레애를 보러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캥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사도 18,18b). 캥크레애는 바닷물 속에 잠겼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기둥 몇 개만 보일 뿐이었다. 초대 성당자리, 창고 자리 등의 흔적이 산기슭에 남아 있었다.
코린토 운하 바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빵, 샐러드, 멸치 같은 생선튀김, 밥, 감자튀김). 식사 후에 운하 옆에서 배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신호등이 있어서 배들이 한쪽 방향으로 교행하도록 되어있다. 운하 위에 가로놓인 도로가 있었는데 배들이 어떻게 지나갈 때는 도로가 어떻게 되나 궁금했다. 신기하게도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가 물 속으로 잠기는 것이었다.
아테네의 아크로 폴리스로 가는 길은 바오로 사도가 세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가시던 길이었다. 버스는 바다 가까이 바오로 사도께서 걸으셨던 구도로를 달리는 데 위쪽으로는 협궤열차가 다니는 일반 철길이 있고 그 위로 새로 난 대로가 있다. 내 신발을 보니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코린토 유적지에서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느라 묻은 먼지이다. 나는 바오로 사도의 삶을 먼지 만큼이라도 따라 갈 수 있을까? 멋진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가에는 유도화가 활짝 피어있고, 갈매기들이 회의를 하는지 모두 한쪽 방향으로 앉아 있다.
다음에 간 곳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국가(폴리스)의 중심이었던 언덕으로 폴리스의 수호신을 제사 지내는 신성한 지역이다. '바오로가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를 하였던 곳'(사도 17,22-34)은 덩그마니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에는 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나타났으며, 아크로폴리스('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라는 뜻) 중심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식 거대한 궁전으로 기원전 438년에 아테네 여신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세워졌다. 파르테논이란 '처녀의 집'이란 뜻으로 도리아식 건축의 최고봉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유적 제1호이다. 아레오파고스에서 보니 파르테논 신전은 산꼭대기에 있다. 어제 수도원에도 못 갔으니 신전에는 올라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오르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대리석 바닥이 무척 미끄러워서 살얼음판을 가듯 조심조심 올라갔다. 역사의 흔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신전에서 내려와 일행들은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으로 추정되는 곳에 갔고 나는 먼저 버스로 돌아왔다. 차 안의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병 꺼내 마셨다. 시원한 물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오후 6시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는데 마침 보초(?)들의 교대식이 있어서 버스를 세우고 잠시 구경을 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추어서 보고있다. 그 곁에서 비둘기들도 구경을 한다. 성당, 학술원, 대학, 도서관, 개선문, 로마시대의 목욕탕, 근대올림픽 경기장, 시내를 관통하는 전차도 보았다.
어제 저녁을 먹은 귀빈식당에 갔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인사를 한다(며칠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식당 이름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이 식당에는 한국으로 전화를 걸기 편리해서 집에 전화를 했다. 쌀밥에 미역국, 상추, 오징어볶음, 생선, 김치, 고추 등 푸짐한 한식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커다란 짐을 들고 들어오지 않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옥상 수영장에 올라가니 장식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 보니 어린 아이의 생일파티가 있단다. 손님들이 모여드는데 인형처럼 예쁜 아이가 있다. 아마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아테네의 야경을 잠깐 구경하고 내려왔다. 그리스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파티를 끝낸 사람들이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 프란치스카와 로비에 앉아 있었다. 내일은 그리웠던 파리로 갈 것이다. 가방을 챙기고 설레이는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했다. |
출처: 티나의 오두막 원문보기 글쓴이: 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