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관음사 주지 수진스님
취재/강효훈
대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현대 한국불교 포교의 성공적인 모델로 그 명성이 전국을 넘어 전세계에 유명하다. 대관음사의 뉴욕 분원을 방문한 대관음사의 주지 수진스님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수진(修眞)스님은 오늘의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태동하게끔 한 회주 우학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동국대 불교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불교학과 명상상담심리학을 전공하였다. 또 청소년과 장애우, 군 포교 등 포교의 최전방에서 불법을 펼치는데 앞장서왔다. 특히 동국대 재학중 군복무를 마쳤음에도 출가후 군종장교를 지원하여 군법사시절 16개 사찰을 군대내에 건립하고, 7명의 현역군인들을 출가시켰으며, 군 전역후 미국 뉴욕도량에서 활동하다 올 1월 주지로 임명받았다.
대형 사찰의 주지스님이라 하여 기자는 연세지긋한 스님과 인터뷰할 생각을 갖고 방문하였으나 기대와 달리 젊은 주지스님이라 놀랐고, 매의 눈매를 가진 강렬한 눈빛에 두번 놀랐고, 강한 외형과 달리 사람을 사로잡는 특유의 친화력과 백만불짜리 미소에 한번 더 놀랐었다.
기자: 짧은 방미(訪美)일정가운데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큰 절의 주지스님이라기에 몇몇 형식적인 질문을 준비했습니다만 다 잊고, 자유롭게 스님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수진스님: 이렇게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제가 주지로 임명된 후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젊은 스님이 주지이냐고 물어옵니다. 한 단체나 조직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연륜과 경륜이 물론 필요하지만 저는 젊기에 더욱 왕성하게, 참신하게 활동할 수있는 장점이 있지요. 우리가 티벳불교등에서 보듯이 어린 린포체에게 나이많은 승려들이 가르침을 받고 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되느냐 안되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구태의연함을 떨쳐버릴때 우리는 발전을 할 수있지 않을까요?
기자: 한국사회가 특히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것같습니다. 한국의 대관음사는 특히 포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걸로 알려져있습니다. 주지로 임명되시고 포부나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들을 수있을까요?
수진스님: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현재까지 저의 은사스님이신 우자 학자 우학 큰스님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른 깨달음의 성취는 온 세상이 정토가 되는 근본이요, 시작이며 완성”이라는 기치아래 큰 성장을 해왔으며, 지금 현 시점은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부나 특별한 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의 우학큰스님께서 처음 세우신 뜻을 근간으로 내실을 더욱 견고히 다지며 사찰을 운영하고 포교하며 위상을 재정립 할 것입니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듯이 근본에 충실하며 스승의 뜻에 따르며 수행하며 포교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포부라 할 수있겠습니다.
기자: 어찌 들으면 식상할 수있는 답변일 수있는데 다른 인터뷰와 달리 그 진정성이 참으로 피부에 와닿습니다. 숱한 경험에서 우러져나온 말씀이라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같군요. 그럼 스님의 해외포교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수진스님: 우선 뉴욕 대관음사는 군법사로써 전역을 하고 제가 처음 부임한 곳이고, 현재도 뉴욕 대관음사에는 제가 군법사시절 모시던 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늘 저와 연결고리가 존재해 있는 곳입니다. 뉴욕에서 소임을 보며 느낀점은 재외교포들을 위한 불법의 전파가 미약하다는 것과 현지 미국인들에게 전법은 아직 더욱 미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한국불교가 근본을 지키면서 우리의 우수하고 얼마든지 그네들에게 어필할 수있는 것이 많다고 봅니다. 백인사회에 불교를 전한 ‘샴발라 센터’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자신합니다.
현재 1000일 산문을 닫고 무문관 결사 수행에 정진중이신 우학큰스님께서는 한국 감포도량에 프랑스 보르드에 위치한 틱낫한 스님이 세운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 같은 수행 공동체를 건립하여 세계 어느나라 어떤사람이라도 세상의 번잡한 물결로부터 벗어나 언제든지 와서 수행할 수있는 센터를 만들 계획이며,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을 재편하여 전세계 한국불교를 전파하는 전초기지로 삼으시리라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시군요. 대관음사는 여러모로 많은 물적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질문이 당돌하게 느낄 수있으시겠지만, 무소유가 한때 세상을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무소유의 진여법은 망각되고 문자의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해 비싼 거래가 오고 갔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주지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수진스님: 욕계세상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방편으로 맑은 가난을 문자로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소유의 문자에 매달려 궁핍한 가난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부에 집착하기 때문에 무소유가 궁핍한 삶으로 오해될 것을 염려해 맑은 가난의 중도를 추구해야하는 것아닌가 합니다. 무소유란 말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아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마라는 뜻이죠. 대관음사의 의료, 교육, 복지등의 일련의 사회사업들은 불국토의 이상실현과 구활창생(救活蒼生)의 일환일 뿐이며, 우학큰스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무일(無一) 우학이란 명명으로 한푼의 돈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않겠다는 각오를 하신셈이고, 모든 일체의 재산을 재단에 환원하시고, 엄정한 집행 속에 재정을 관리해왔습니다.
UN 웨삭행사에서 수진스님
기자: 큰절, 주지스님 등등 외형적인 모습을 떠나 불도를 닦으시는 스님으로써 수행할 때의 마음자세나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수있는지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수진스님: 도를 구하는 길이 쉽지는 않겠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 깨달음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찾아오는 것을 알때까지 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그 또한 얻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존재, 에고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는 생각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영입니다. 깨달음은 과일이 자연스럽게 익어가듯, 때가 되어야 합니다. 묵은 업장을 한장, 한장 씻고 닦으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나를 채워가는 것으로 향합니다. 나만의 스펙, 나만의 개성, 나만의 삶…전체와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나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안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늘 공부하는 사람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기자: 우문현답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미주현대불교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진스님: 우학 큰스님께서 신년 신도들에게 무문관으로부터 전하신 메세지를 대독하는 것으로 말씀을 대신하겠습니다.
“다섯가지 당신 있음에”
당신 있음에 행복합니다.
당신 있음에 감사합니다.
당신 있음에 힘이납니다.
당신 있음에 최고입니다.
당신 있음에 다행입니다.
그렇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생각, 우리는 우주의 입장에서,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일시동인(一視同人)의 한자식이라 볼 수있다. 그것이 원효대사가 일컬은 일여(一如)사상, 개인과 전체는 하나라는 개전일여(個全一如)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터뷰 시종일관 큰 절의 주지스님으로써의 권위나 쓸데없는 장막따위는 찾아볼 수없었고, 본인을 내세우기 보다는 은사스님이신 우학스님의 뜻을 앞세우며 본인의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시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한 질서속에서 평(平)을 유지하며 화(和)하는 보급과 포교를 해나가는 대관음사와 수진스님은 제2의 도약을 넘어서 전세계에 한국불교의 발현광대와 위상을 떨칠 것이라 기대하며 건승을 기원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