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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함기석
네가 떠난 밤, 바다는 글자 잃은 시집이다
등대는 기린 눈망울을 껌벅이며 애처로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누가 맨발로 물 위를 위태롭게 걷는 소리
바람이 어린 삵처럼 방파제를 넘어와 민박집 방문을 긁어댄다
홑이불 잠을 걷고 문을 열면
첫눈이다 점점이 너의 입술이다 희디흰 숨결들
죽어서 차고 흰 해풍이 된 물고기들, 공중에서 공중을 놀고
내 영혼은 지금,
천천히 해저로 가라앉는 무쇠 닻
사랑의 입말은 핏물이 다 빠져나간 짐승의 마른 혈관이다
해저처럼 외로운 잠
네 알몸처럼 내 살 곁에 누워 바스락거리는 어둠
새벽녘, 먼 지층으로부터 여진처럼 울려오는 찬 물소리
만일, 인간이 사랑없이 살 수 없는 동물이라면 인간은 애인을 통해서 그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애인이란 이상적인 인간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고, 궁극적으로는 그 어떤 희로애락도 다 함께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랑은 이 세상의 찬양자이고, 사랑은 그 어떠한 고통도 물리칠 수 있는 천하무적의 용사이다. 사랑은 모든 기적의 주인공이고, 사랑은 언제, 어느 때나 영원한 청춘이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현저히 줄어든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고통도 줄어들고, 꿈은 그 키가 무한히 자란다. 애인은 천하장사, 아니, 전지전능하며, 애인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사랑의 한탄은 애인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한탄이며, 이 사랑의 한탄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시는 이 한탄의 치료제이며, 이 세상의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강장제이다.
함기석 시인의 [첫눈]은 그 주조음이 ‘사랑의 한탄’이며, 이 세상을 떠나간 애인에 대한 ‘연가’라고 할 수가 있다. 유신론자有神論者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심신이원론자인데, 왜냐하면 육체는 소멸할지라도 영혼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론자無神論者는 육체와 영혼은 하나라고 믿는 심신일원론자인데, 왜냐하면 육체가 소멸하면 영혼도 소멸하기 때문이다. 심신이원론자, 즉, 유신론자들의 육체와 영혼의 분리는 영혼불멸을 통하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싶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는 소멸하고 영혼은 죽지 않는다.
“네가 떠난 밤, 바다는 글자 잃은 시집”이라고 할 때, 너는 나의 육체가 되고, 나는 너의 영혼이 된다. 글자 잃은 시집이 시집일 수가 없듯이, 네가 떠난 나는 온전한 인간(바다)일 수가 없다. “등대는 기린 눈망울을 껌벅이며 애처로이 수평선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이 기린 눈망울을 지닌 등대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누가 맨발로 물 위를 위태롭게 걷는 소리”는 나를 떠난 네가, 죽어서도 죽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너를 생각하며 기린 눈망울을 지닌 등대가 되었듯이, 나를 떠난 너 역시도 그 바다를 건너와, “어린 삵처럼 방파제를 넘어와 민박집 방문을 긁어댄다.”
사랑은 천의 얼굴을 지닌 마술사이며, 그 모든 기적을 연출해내는 신이다. “홑이불 잠을 걷고 문을 열면/ 첫눈이다 점점이 너의 입술이다 희디흰 숨결들”도 나를 떠난 네가 되고, “어린 삵처럼 방파제를 넘어와 민박집 방문을 긁어”대는 바람도 나를 떠난 네가 된다. “죽어서 차고 흰 해풍이 된 물고기들”도 나를 떠난 네가 되고, “해저처럼 외로운 잠/ 네 알몸처럼 내 살 곁에 누워 바스락거리는 어둠”도 나를 떠난 네가 된다. 이에 반하여, 너를 떠나보내고도 너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나는 기린 눈망울을 지닌 등대가 되고, 또한 나는 민박집의 비통한 투숙객이 된다. 나는 “홑이불 잠을 걷고” “첫눈”을 너의 “희디흰 숨결”로 인식하는 내가 되고, “죽어서 차고 흰 해풍이 된 물고기들”을 너의 육체로 생각하는 내가 된다. 내 영혼은 천천히 해저로 가라앉는 무쇠 닻이 되고, 나는 해저처럼 외로운 잠을 자며, 네 알몸처럼 내 곁에 어둠을 눕힌다. 사랑만이 위대하고, 사랑만이 또, 위대하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가 없듯이, 너와 나는 끝끝내 이 세상을 떠나가서라도 이처럼 하나가 된다.
“사랑의 입말은 핏물이 다 빠져나간 짐승의 마른 혈관이다.” 아아,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고 그리워했으면 핏물이 다 빠져나간 짐승의 마른 혈관처럼 되었던 것이고, 또한,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고 그리워했으면 “천천히 해저로 가라앉는 무쇠 닻”이 되어 “해저처럼 외로운 잠”을 자면서도 “어둠”을 네 알몸처럼 내 살 곁에 누이게 되었던 것일까?
사랑의 찬가는 높이 높이 날아오르고, 사랑의 비가는 깊이 깊이 침잠한다.
떠났어도 떠날 수 없었던 사랑과 떠나 보냈어도 떠나 보낼 수 없었던 사랑이 다시 만나 ‘첫눈’처럼 희디흰 숨결들로 사랑을 나눈다.
문대통령은 대선 때처럼 사드 반대를 하고 우리 민족의 최소한도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다. 사드 배치는 치명적인 실수가 되고, 남북관계는 더욱더 요원해지고, 그 결과, 대중국 굴욕외교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문대통령은 너무나도 문약하고 필리핀의 두테르테가 왜 위대한 지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 참으로 너무나도 무능하고 문약한 대통령 때문에 망국의 초고속 열차를 탄 것과도 같다.
엄마의 잠언
양선희
맛있는 거 있을 때 실컷 먹어. 맛있는 게 없어지면, 사는 맛도 없어. 몸에 저승꽃이 피어도 청청한 엄마의 잔소리, 한 상 받는다. 겸상을 한 엄마는 내 젓가락이 자주 가는 잔소리를 내 앞으로 옮겨놓느라, 정신이 없다. 혀에 착착 감기는 성찬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나를 보는
엄마, 약을 달고 살며 여직 덜 아문 딸년의 날갯죽지 상처에 약이 잘 스며들도록 문지른다. 몸이 중하니, 몸을 아껴. 병 들면, 너만 서러워. 축 내려앉은 내 날개를 추켜올리는 엄마의 손길
추임새가 절로, 난다. 남 줄 때는 넉넉히 줘. 네가 적게 먹어도. 딸년 들려 보낼 보따리들 싸느라 미처 못다 푼 이야기. 사람이 제일 그리워. 사람구경이 큰 낙이다. 엄마의 잠언에 모처럼 웃고, 눈물, 콧물, 뺀다.
어둡던 귀
어둡던 눈
거짓말처럼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배가 고프면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먹는다는 것은 육체를 보존하는 것이고, 육체를 보존한다는 것은 먹이활동과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먹이활동이 다만, 먹이활동일 때, 그는 최저 생계에 시달리는 것이 되고, 먹이활동이 취미활동이 될 때, 그는 제법 여유를 가진 문화인이 된다.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고,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은 부유한 자의 몫이 된다.
산다는 것은 “맛있는 거 있을 때 실컷” 먹는 것이 최고이며, 이 “혀에 착착 감기는 성찬”을 먹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맛이 나지 않는다. 성찬을 먹는 재미는 건강을 지키는 것이며, 건강을 지키는 것은 몸에 날개를 달고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이다. “몸이 중하니, 몸을 아껴”야 하고, 산다는 것은 이 몸에 날개를 달고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몸에 날개를 달고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닐 때, 즉, 여유가 있어 “추임새가 절로” 날 때는 내가 좀 적게 먹더라도 남들에게 넉넉하게 베풀 줄을 알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모여 산다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사람이 제일” 그리운 것이다. 요컨대 “사람구경이 큰 낙이다”라는 [엄마의 잠언]은 최고급의 사회성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선희 시인의 [엄마의 잠언]은 첫째는 맛있는 음식에 맞닿아 있고, 둘째는 건강에, 셋째는 인간의 사랑에 맞닿아 있다. 산다는 것은 맛있는 거 있을 때 실컷 먹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건강을 잘 지켜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니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살며, 자기 자신의 것을 아주 넉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잠언이란 최고급의 삶의 지혜이며, 이 [엄마의 잠언]은 세속적인 성스러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세속적이라는 것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이고, 성스럽다는 것은 이 현실을 극복하고 하늘 높이 높이 자기 자신과 우리 인간들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그립고, 사람 구경이 가장 큰 낙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 밖에는 없다.
추임새가 절로, 난다. 남 줄 때는 넉넉히 줘. 네가 적게 먹어도. 딸년 들려 보낼 보따리들 싸느라 미처 못다 푼 이야기. 사람이 제일 그리워. 사람구경이 큰 낙이다. 엄마의 잠언에 모처럼 웃고, 눈물, 콧물, 뺀다.
어둡던 귀
어둡던 눈
거짓말처럼
나무 번역가
손택수
세계일주여행을 떠난 장 콕토가 바다 한가운데 선상 갑판에서 찰리 채플린을 만난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초면에도 한눈에 상대방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정작 한 마디 말도 나눌 수가 없었지요 수줍어서? 아닙니다 그냥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채플린의 부인이 통역을 자청하고 나섰는데, 이때 채플린이 조용히 부인을 가로막습니다 통역이 되지 않는 상황, 한 마디 말도 주고받을 수 없는 이 순간이 오히려 그들을 더 간절하게 한다고, 말로 이 짧은 순간의 감동을 가로막지 말라고
시를 쓴답시고 나무들의 말을 번역하려 하였으나 오역 투성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식물사전을 펼쳐놓고 횡설수설 했지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느 도서관에서는 식물과 인문학 특강도 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잠시만이라도 말을 멈춘 채 나무와 저 사이의 침묵에 골똘해지는 편이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도무지 번역이 되지를 않는, 말이 멎은 자리에서 생겨나는 몸짓과 눈빛과 숨결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것이 어디 나무와 저의 관계 뿐이겠습니까만은
찰리 채플린은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1977년 사망한 영화배우였다. 그는 지극히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극복하고 20대 초반에 세계적인 배우로서 이름을 얻었고, 자기 자신만의 캐릭터인 ‘리틀 트램프’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가 있다. 극본 찰리 채플린, 연출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 주연배우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그의 천재성의 보증수표이자 영원불멸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장 콕토는 188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63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화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세계적인 예술가였다. 1909년 19살 때 그의 첫 시집인 {알라딘 램프}를 출간했고, 20살 때 두 번째 시집인 {경박한 왕자}를 출간하여 문단에 그 이름을 알렸고, 1929년에는 {무서운 아이들}을 출간하여 그의 이름을 전세계 알리게 되었다. {시인의 피}와 {오르페}는 상징적 이미지와 시적인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며, 그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로서 프랑스의 자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학교는 고귀하고 위대한 스승 밑에서 그 스승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그 스승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깨닫는 곳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귀하고 위대한 스승의 백만 촉광의 눈동자와 금성철벽마저도 꿰뚫을 듯한 목소리와, 그리고 그 무엇 하나 망설일 것이 없는 대범한 행동 등은 미래의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깨달음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천재는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고, 천재는 인종과 종교와 그 어떠한 문화적 장벽도 없다. 천재를 알아보는 것도 천재이고, 천재를 사랑하는 것도 천재이다. 장 콕토와 찰리 채플린은 동년배이자 조숙한 천재였으며, 그 천재의 새싹을 세계적인 사건으로 연출해낸 문화적 영웅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극본을 쓴 것도 그들이었고, 자기 자신의 작품을 연출해낸 것도 그들이었다. 자기 자신의 작품의 주연 배우도 그들이었고, 자기 자신들이 출연한 작품의 감독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자 모든 인류의 행복의 연주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장 콕토와 찰리 채플린의 만남----, 이 우연한 만남에는 언어라는 장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직 서로가 서로의 위대함의 체취를 맡고, 그 위대함에 무한한 경이를 표하는 전율과 감동의 시간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요컨대 한마디 말도 주고 받을 수 없는 순간, 즉,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이 더 소중했던 것이며, 최종심급은 위대함과 위대함의 대화이었던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위대함, 통역이 필요 없는 위대함, 침묵보다도 더 깊은 침묵으로 위대함과 대화를 나누는 위대함----. 위대함이란 무한히 크고 장대하며, 전인류의 자랑인 거목을 뜻한다. 손택수 시인은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위대함의 역사 철학적인 의미를 꿰뚫고 있는 인식의 눈을 지녔으며,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 것처럼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제일급의 시인으로 거듭난 인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나무의 수사학}은 대단히 아름답고 뛰어난 시집이지만, 그러나 나무를 인간화시켜서, 나무의 심리와 생리와 그 고통을 사회화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나무의 수사학}은 불가능에의 도전이며, 미완의 시집이고, 그 미완의 시집으로서는 기념비적인 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무 번역가]는 그 회한과 반성의 시이며, 인간과 나무와의 마주봄의 대화를 꿈꾸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말도 필요없고, 식물사전도 필요없다. 오역도 필요없고, 횡설수설도 필요없다. “말이 멎은 자리에서 생겨나는 몸짓과 눈빛과 숨결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나무도 키가 크고 나무의 몸집이 하늘기둥이 된다. 시인도 키가 크고, 시인의 몸집도 하늘기둥이 된다. 이 세상에는 위대함처럼 키가 크고 그 몸집이 장대한 것도 없다. 위대함은 아름답고 장대한 것을 말하고, 위대함은 만국의 공통언어이다.
위대함을 아는 자는 이 세상을 중상모략하고 비방하기에 앞서서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자이다.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자만이 한 걸음, 한 걸음 그 위대함의 크기로 자라나게 된다.
오오, 우리 한국인들이여!
부디, 제발, 위대함 앞에서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법부터 배우기를 바란다.
비트코인의 입술
오 현 정
새벽 꿈결에 안아 본 당신, 낮 동안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할지
더 이상 베팅할 수 없으면 검은 가방에 넣어둔 푸른 지갑을
지갑 속 종이돈을 가상화폐로 바꾸세요
당신이 先物이면 내 膳物은 진짜 선물
서로가 물 먹였다 울먹이지 말고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시가를 물고 검색대를 유유히 통과하세요
실연의 아픔이 뭐냐고 청춘은 물을 거예요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사토시 나카모트의 예지대로
중매쟁이 없이도 당신에게 윙크하는 연인들로 넘칠거예요
아포가토 한 잔 나눠 마시지 않고 온라인으로 황금아기를 낳고
오래오래 비둘기를 품고 미소 짓는 거래가 한창 무르익어 가요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자 쌀과 도자기가 뒷전으로 밀려났듯이
당신이 내려 받은 소프트웨어가 이제 당신의 유일한 자산
캐면 캘수록 몸값이 치솟는 이유는 검게 뒹굴어본 호기심만이
채굴권을 암호로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비트페이는 이름도 모른 채 주고받은 설렘의 모든 책임을
당신에게 묻는 규약이자 절차
흠결 잡히지 않게 유의사항을 잘 숙지하시면
여의도에서 니혼바시, 월스트리트 어디에 있든
지구상 그 어느 지점보다 당신은 내내 상승세를 그리는 챠트쟁이가 될 거예요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비트코인이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이며, 암호화폐란 암호를 사용하여 발행하거나 거래하는 가상화폐를 말한다.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는 사토시 나카모트라는 익명의 인간이 2009년 개발하여 배포했으며, 이 암호화폐는 거래내역을 중앙서버에 저장하는 일반 금융과는 달리,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 모두의 컴퓨터에 그 거래 내역을 저장하게 된다. 암호화폐는 일반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발행주체)이 없고, 각자가 암호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무한정의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가 있다. 암호화폐는 민간업자가 발행하고 통제하는 대신 정부의 규제가 없는 화폐이며, 가상의 환경에서만 사용되는 전자화폐를 말한다. 이 암호화폐로는 석유와 원자재를 사고 팔 수도 있으며, 음식값을 지불하거나 영화도 감상할 수가 있고, 앞으로는 현재의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암호화폐(전자화폐)가 종이화폐, 즉, 유로화와 달러화와 엔화와 원화 등을 누르고, 그 어떤 국가나 중앙은행의 통제도 없이 모든 상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는 현재 700개 이상이 존재하고, 이 암호화폐의 잠재적인 가능성 때문에, 이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투기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는 ‘종이화폐에서 전자화폐로의 통화의 혁명’이며, 모든 국가의 통화체계와 세계적인 기축통화체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무역의 신호탄이 될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문금융인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만일, 비트코인이 주요결제수단으로 모든 상거래를 장악하게 되면 바로 그곳에서 경제적 무질서가 생겨나고, 모든 산업이 마비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이, 암호화폐의 순기능이 무너지고, 그 얼굴도, 정체도 모르는 투기자본에 의하여, 전세계의 부가 다 빨려 들어가게 되고, 바로 거기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출신성분과 취미와 성격 등을 알면 우리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지만, 그 사람의 출신성분과 취미와 성격 등을 전혀 알 수가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익명의 인간은 괴물이며, 유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컨대 암호화폐의 익명성과 그것이 유통-소비되는 과정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무한한 가능성이고 두려움이며, 비트코인은 또한 자유무역의 대명사이자 무서운 혼돈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현정 시인의 [비트코인의 입술]은 무서운 입술이며,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입술에 키스를 해야만 하는 ‘난처함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비트코인은 지하에 숨어 있는 자이고, 그 정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변만화하는 얼굴을 지녔다. 새벽 꿈결에 일확천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품에 안겨 보았지만, “낮 동안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할지” 불안하고, “당신이 先物이면 내 膳物은 진짜 선물”이라는 불합리한 키스(약속) 때문에 더욱더 불안하다. 이 ‘先物’은 현재 현찰을 받고 미래에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재화(비트코인)을 주겠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膳物’은 지금 현찰로 그 비트코인을 샀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현재 비트코인을 판 당신은 이익을 보지만, 앞으로 비트코인 값이 올라가지 않으면 나는 손해를 보게 된다. “실연의 아픔이 뭐냐고 청춘”이 물으면, “서로가 물 먹였다고 울먹이지 말고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시가를 물고 검색대를 유유히 통과하세요”라는 시구는 이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상행위가 이미 서로가 그 도박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어떠한 원망도 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비트코인은 지갑 속의 종이돈을 가상의 화폐로 바꾸어 베팅한 만큼 도박이며, 이 도박은 일확천금이라는 황금률에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중독성이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마약왕을 꿈꾸고, 이 마약왕의 꿈이 있는 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비트코인의 중독자가 된다. 오현정 시인의 [비트코인의 입술]은 마약의 입술이자 도박의 입술이고, 최후의 만찬과도 같은 죽음의 입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트코인은 실패도 모르고, 비트코인은 실연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도박을 좋아하고, 비트코인은 마약을 좋아한다.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트의 예지대로 중매장이 없이도 만인들의 연인이 되어가고, “아포가토 한 잔 나눠 마시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황금아기를” 낳는다.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자 쌀과 도자기가 뒷전으로 밀려났듯이” 당신이 암호를 풀고 채굴해낸 비트코인은 앞으로도 캐면 캘수록 천정부지로 그 몸값이 치솟아 오르게 될 것이다. 이름도 묻지 말고, 출신성분도 묻지 말자. 피부색도 묻지 말고, 종교도 묻지 말자. 책임과 약속도 묻지 말고, 온갖 법률과 규제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당신의 자유와 선택에 의하여,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 있고, 당신의 미래는 이 비트코인이 약속해줄 것이다. 자, 모든 미래는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여의도이든, 니혼바시이든, 또는 월스트리트이든지 간에, 지금, 당장 그 모든 것을 다 걸고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인생은 크게 베팅하는 것이고, 크게 베팅할수록 천하를 다 차지하게 된다. 소인배는 간이 작아 쪽박을 차게 되지만, 천자는 간이 커서 한 나라와 이웃국가와 그 모든 제국들을 다 꿀컥 삼킨다.
인생은 어차피 도박판이고, 크게 걸면 크게 딴다. 이 비트코인, 이 암호화폐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힘들지만, 이 암호화폐의 정체를 알아차린 오현정 시인은 이처럼 ‘난처함의 노래’를 부른다. 이 난처함의 노래는 그 주조가 비꼼과 야유로 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 그 비꼼과 야유 속에는 일확천금의 도박판에 가담하고 싶다는 욕망이 매우 진하게 배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움의 속도
복효근
우체국 통유리창에
새가 연신 날아와 부딪쳐 죽더란다
우체국장은 맹금류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이고 있었다
유리창에 되비치는 창공에 속았든가
유리창에 반사되어 제게로 날아오는 한 마리 새를 제 짝으로 알았을까
우체국 유리창을 통하여
새는 하늘 저 넘어 주소지로 저를 옮기고 말았는데
죽을 만큼의 힘으로 저쪽에 닿고 싶은 그 순간을
그리움의 속도라 부르겠다
서로에게 날아 오르려던 그 새들은 하나가 되었을까
그리운 저쪽으로 편지를 부치던 날이 언제였던가
나 지금
죽을힘을 다하여 이르고 싶은 그곳이 있기나 한가
그 먼 곳으로 제 생을 통째로 날려 보낸 새를 보며
우체국 생애안심보험에 대해 물으려다가
그냥 돌아온 날이 있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문화 이전의 야만인이고, 이 야만인의 늪에 빠져서 좀처럼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첫 번째는 건국이념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민족통일이 왜 중요한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이여, 하루바빠 야만인의 탈을 벗고 세계일등민족이 되고 싶은가?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홍익인간의 이념을 정립하고, 이 홍익인간을 양성해낼 수 있는 세계 제일의 교육제도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한국인들이여, 하루바삐 외세를 추방하고 진정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해내고 싶은 꿈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하루바삐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오고 가며 남북통일의 첫 단추를 꿰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홍익인간을 양성해내기 위하여 철학을 가르치고 독서중심의 글쓰기 교육제도를 창출해낼 것이며, 곧바로 가까운 시일내에,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낼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삼천리 금수강산에 쓰레기 하나 없게 만들 것이고, 즉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그 어떤 국가보다도 더욱더 고귀하고 훌륭한 민족국가, 즉, 영원한 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해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유엔평화기금으로 출연하여 모든 세계인들이 기립박수를 치게 만들 것이고, 미군이 다시는 한반도에 들어오는 일이 없게 만들 것이다.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고귀하고 위대한 민족에게 돌아가고, 더럽고 추한 것은 더럽고 추한 민족에게 돌아간다.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 즉, 홍익인간의 첫걸음은 홍익인간의 양성이고, 그 두 번째는 하늘이 무너져내려도 외세를 추방하고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고, 여기에는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기를 각오하면 죽는다. 임전무퇴와 살신성인의 정신이 [그리움의 속도]를 낳고, 이 그리움의 속도는 ‘유리창 너머’의 영원한 제국의 세계로 우리 한국인들을 인도해 줄 것이다. 그리움의 속도는 기적의 속도이며, 이 기적의 속도는 홍익인간과 남북통일과 영원한 제국의 꿈에 맞닿아 있다. 유리창 너머- 즉, 영원한 제국의 길이 비록, 수많은 새들(국민들)의 시체가 쌓이는 길일지라도 우리는 그 어떤 “생애안심보험”마저도 거절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우체국 유리창을 들이받는 심정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홍익인간이 된다는 것, 영원한 제국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소위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보다도 더 뛰어나고 더 잘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도 불구대천의원수이고, 일본도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중국도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러시아도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소위 이 4대강대국들을 발밑으로 깔아뭉개버릴 수 있는 최고급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그들마저도 우리 한국정신과 한국문화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도 철학공부, 둘째도 철학공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종적으로는 세계적인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이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을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러나 내 꿈을 도저히 실현시킬 방법이 없다.
내 {행복의 깊이} 네 권과 나의 책들을 읽어보면 여러분들은 나의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나의 두뇌에 달려 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오오, 그리움의 속도여!
오오, 죽을힘을 다해 날아갈 영원한 제국의 속도여!!
터미널박
김지요
돌아 갈 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5분 간격으로 오는 전화에 대고
연신 중얼거린다
상대가 없는 혼잣말을 하듯
여긴 터미널이야
터미널이라고 했잖아
타야 할 차를 놓치고도
흥건한 취기에 즐거운 그는
아무 걱정이 없다
어디든 데려다 주는 터미널이니까
걱정 마 터미 늘이야
아 ㄹ아서 간 다고 했자느
막차 끊기믄 태택시 타믄 대지 머
먼지 쌓인 간이 의자에
목적지에 사로잡혀 달려 온
몸을 다 내려놓는 중이다
꼬인 혀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사내의 행동에 실실 웃는 사람들과
어차피 아는 사람이 없으니
같이 웃어도 좋은 사내
막차 같은 하루가 저물고
행인 1,2,3이 사라지고
애가 타는 신호음이 계속 되어도
괜찮아 터미널이야
괜찮아 터미널이야
----2018『시인광장』6월호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인연도 다 부질없는 것이고, 아버지의 죽음도, 아내의 죽음도, 자식의 죽음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천년을 살아도 하루를 산 것과 같고,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산 것과 같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길에 돈과 명예와 권력이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
“여긴 터미널이야/ 터미널이라고 했잖아.”
터미널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오고, 터미널에서는 그 어디든 다 갈 수가 있다. 차를 놓치면 다음 차를 타면 되고, 다음 차를 놓치면 또 다음 차를 타면 된다. 그러다가 차가 끊기면 택시를 타면 되고, 택시를 못 타면 술에 취해 “먼지 쌓인 간이 의자”에서 자면 된다.
내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고, 내가 잠 드는 곳이 천하의 명당이다.
참다운 나그네의 길에는 근심과 걱정이 없다. “먼지 쌓인 간이 의자에/ 목적지에 사로잡혀 달려 온/ 몸을 다 내려”놓으면 바로 그곳이 천국이 된다.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고, 모든 것이 해탈의 길이다. 천국의 삶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공연히 자유니, 사랑이니, 평화니, 또는 보호무역이니, 비핵화니, 사유재산이니, 민주주의이니, 사사건건 복잡하게 말을 만들어 떠들 필요가 없다.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장미는 꽃다발로 피고, 길가의 돌멩이는 금은보석으로 빛나고, 모든 인간들은 나의 충신처럼 웃는다.
참다운 나그네의 길에는 그 어떠한 장애물도 없고, 참다운 나그네는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다.
김지요 시인의 [터미널박]은 우리 시대의 성자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오지의 여자
조 영 심
하늘 말고는 모두 오지겠지,
오지에서 오지게 살아가는 저 여자에겐
아니,
하늘과 땅을 제 섬에 한껏 들여놓고
비바람 야금야금 거름 치는 저 여자에겐
하늘마저 그렇겠지, 나처럼
나는 절대 아냐, 믿고 사는 그대처럼
제 둥지 밀어낸 사내 대신
밤낮 허리 못 펴고 살아온 인간
남일 마다 않고 발 벗고 나서는 상일꾼
남의 젖은 이야기에 제 설움 섞는 사람
말 못 하는 짐승 밥 먼저 챙기고
무릎으로 기꺼이 제 허물 헤아리는
허벅지 유난히 탄탄한 여자
제 섬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살 날 받아 놓아 살짝 눈꼬리 흔들렸지만
아직도 뜨겁고 뜨거운 여자
오지게 오지에 사는 그 여자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고, 나폴레옹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잔 다르크는 ‘나는 프랑스를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말을 남겼고, 세종대왕은 ‘백성을 바르게 가르치는 소리’ 즉, 한글을 창제해냈다. 아름다움도 우연이 아니고, 위대함도 우연이 아니며, 인간의 행복도 우연이 아니다. 아름다운 인간, 위대한 인간, 행복한 인간들의 한 마디 말 속에는 그의 인생 전체의 역사가 담겨 있고, 그 역사 속에는 만인들의 반대방향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온 그의 집념이 담겨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오지奧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최악의 생존조건에 해당되지만, 그러나 이 최악의 생존조건이 ‘불가능은 없다’라는 최상의 생존조건으로 변모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이 불모지대를 기필코 지상낙원으로 건설하겠다는 집념으로 무장한 사람에게는 오지는 더 이상의 오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 말고는 오지가 아닌 곳이 없지만, 그러나 이 오지에서 “제 둥지 밀어낸 사내 대신” “밤낮 허리 못 펴고 살아온” [오지의 여자]에게는 이제는 하늘마저도 오지가 된다. 따지고 보면 “하늘 말고는 모두 오지겠지”라는 말은 모두가 똑같은 처지에서 살고 있다는 긍정의 말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마저도 오지겠지라는 말은 이 세상의 삶의 찬가가 된다. 이 무한한 긍정과 찬양 속에서, “남일 마다 않고 발 벗고 나서는 상일꾼”이 되고, 또한, 이 무한한 긍정과 찬양 속에서 “ 말 못 하는 짐승 밥 먼저 챙기고” “남의 젖은 이야기에 제 설움 섞는” 한풀이를 하게 된다.
하늘과 땅을 제 섬에 한껏 들여놓고,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일마저도 다 해낼 수 있는 [오지의 여자]는 그러나 보통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고통은 그의 병사가 되고, 죽음의 신은 그의 호위병사가 되고, 미래의 희망은 그의 왕홀王笏이 된다. 하늘과 땅을 들여놓은 그 섬, 그 오지는 그의 왕국이 되고, “허벅지 유난히 탄탄한 여자”는 오늘도 그의 왕국을 바라보며, “자, 우리 모두 가장 멋지게 살다가 가는 거요”라고 이 세상의 삶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뜨겁고 뜨거운 여자
오지게 오지에 사는 그 여자
아름다움도 가장 뛰어난 것을 말하고, 위대함도 가장 뛰어난 것을 말하며, 행복도 가장 뛰어난 것을 말한다. 하나를 보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으면 대한민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고, 이 세상의 오지, 즉, 최악의 생존조건----자기 자신의 일터--- 속에서도 후회없이 살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인간이 될 것이다.
조영심 시인은 허벅지 유난히 탄탄한 여자이고, 세종대왕의 자랑스러운 후예이다.
조영심 시인은 “나는 오지의 여자이고, 오지는 나의 천국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아름다운 삶과 위대한 삶과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을 한 권
최혜옥
저문다는 것은 가벼워지는 것
잎잎이 새겨진 최후의 열정은 붉은빛이다
물기 한 점 없는
노을을 표절한 문장이 이토록 뜨거운가
사족을 지우는 나무들
같은 무늬로 집단 투신하는
저 몸짓은 사선 또는 곡선이다
몸으로 쓰는 곡진한 사연
읽기도 전에 받침이 빠지고 탈자가 늘어난다
바람이 불때마다 뚝뚝 문맥이 끊어진다
나무의 변심을 의심치 않고,
고요히 더 고요히
가벼이 더 가벼이
퇴고 중인 가을 한권
붉은 유서가 기록되는 허공이 어지럽다
----최혜옥 시집, {왼손의 哀歌}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저녁 해가 진다. 저문다는 것은 가벼워진다는 것이고, 가벼워진다는 것은 에너지의 양이 다 줄어간다는 것이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는 활활활 타오르지만, 저녁 해가 질 때는 순간적으로 서산의 하늘을 붉게 물들여 놓고는 사라져 간다.
잎잎이 새겨진 최후의 열정은 붉은 빛이고, 물기 한 점 없는 노을(단풍)은 뜨겁게 타오른다. 돈도 무거운 짐이고, 명예도 무거운 짐이고, 권력도 무거운 짐이다. 모든 사족蛇足들과 모든 무거운 짐들을 다 태워버리고, “고요히 더 고요히/ 가벼이 더 가벼이”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최혜옥 시인은 [가을 한 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붉은 유서’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천국잔치’를 아주 조촐하지만 근사하게 열고 싶다. 아담한 중급호텔을 예약하고 나와 함께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하여 시도 낭송하고 노래도 부르며, 이 세상의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도 마음껏 대접하고, 어느날 노자처럼 물소를 타고 떠나거나 엠페도클레스처럼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지고 싶다.
‘퇴고 중인 가을 한 권’이 완성되면, 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죽음을 죽고 싶은 것이다.
더럽고 추하지 않게, 비록, 사인史人이 아닌 야인野人의 처지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번영과 행운을 기원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철학예술가의 죽음을 죽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