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행 2장 1-6절
설교제목 : 하늘 불의 점화
위기의 시대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불안한 세상의 줄타기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스위스 선생님과 분석 시간에 유럽은 갑자기 초여름처럼 더워졌고, 스페인은 심각한 가뭄으로 물이 단수가 될 정도로 예측할 수 없는 기후위기를 경험하고 있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또한 스위스에서 두 번째 규모인 크레디트 스위스CS 은행이 파산하면서 스위스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으로 대만과 한반도에도 갈등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편향적 정치 노선으로 중심으로 흔들리며, 핵우산을 들먹이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사회, 정치, 경제, 기후 위기 속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질서에서, 도에서 벗어나 있는 마을에 비를 다시 오게 한 빌헬름이 전하는 중국의 기우사(Rainmaker)처럼 무위로써 위를 할 수 있는 시간, 기다리며 내향적으로 관조하는 것이 필요한 듯합니다.
기다리는 일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마가라는 사람의 다락으로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120여 명이 모였고,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결원된 12제자를 채우기 위해 맛디아를 제비뽑아서 결정합니다. 전체성을 이루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이 되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하늘에서 세찬 바람 부는 듯한 소리가 나고, 그 바람은 온 집안을 가득채웠고, 불길 같은 것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1-3). 이것이 성령강림의 첫 번째 장면입니다.
다음 그림은 아씨시에 있는 아레나 채플에 있는 프레스코화입니다(Giotto di Bondone,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23. Pentecost,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제자들이 둘러앉아 있고, 위에서 붉은 빛줄기가 떨어집니다. 제자들은 묵묵히 다락에 모여 기다렸습니다. 어떤 결정적인 시간이 오기까지 머물러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일이 없이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카엘 마이어의 “달아나는 아탈란타”의 28번째 도판에 발한실 속의 왕은 벌거벗은 채 자신의 불순물이 제거될 때까지 갇혀있음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묵히 머물러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성령은 임하였습니다.
거룩한 불의 점화
기다리며 기도하던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이는 바람이 불면 대기의 신선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듯, 영의 움직임은 바람으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종종 꿈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은 우리의 영혼을 다시 새롭게 하고 활기를 불어넣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이어서 불길은 솟아오를 때 갈라지는 것 같이 각 사람에게 거룩한 불꽃이 내려앉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 방황하던 그들의 마음 속에서 거룩한 불이 점화된 것입니다. 영혼의 불이 지펴졌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거룩한 불꽃이 점화될 때 소명에 다시 눈뜨게 되고, 자아의 힘이 아닌 점화된 불꽃이 우리를 이끌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모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이신 원형적 삶의 모델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각자에게 임하시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영혼의 발달과 운명을 실어나를 수 있는 힘이 생성됩니다.
융은 페레 마차트(Pere Lachat)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합니다.
“성령이 여러 명의 개인 안에 거주하면서 그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변형시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데 중요한 의미는 지닌다. ... 아들 수준에서 선악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없다. 거기에는 오직 치유할 수 없는 대극의 분리만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인간 영혼의 특별한 발달을 통해서 인간 개인 안에 있는 대극을 화해시키고 재연합하는 일은 성령의 과제와 임무인 것 같다.”
[C.G. Jung, The Symbolic life, CW18, para.1552f]
그리스도를 넘어서 거룩한 영을 자신 안에 담지한 이들을 통하여 대극을 화해하고 연합하게 과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되는 화육의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육화한 삶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습니다. 성육신 과정은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하지만 유일회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하늘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화육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하강을 통하여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위의 성령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 속에 침투하시고 육화하고자 합니다. 경험적인 인간 안에서 육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옛날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통하여 삼위의 하나님은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이런 경험적 인간은 하나님의 변환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개성화와 개별적 실존은 창조주 하나님의 변환에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C.G. Jung : Letters, vol 2, p314] 성령께서는 인간 안에 육화하시어 새로운 변환으로 나아가고 합니다. 우리에게 하늘 불의 점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하늘 불의 점화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의 변화는 두려움의 빗장을 열어놓았습니다. 로마 당국과 유대지도자들의 감시와 위협 앞에 있던 다락방에서 모여 있던 제자들은 그 문을 열고 세상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절망과 불안의 빗장을 열고 당당히 서서 말하기 시작하게 하십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바를 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용기있게 두려움에 마주하게 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과 직면하게 하시고, 용기있게 자신의 빗장을 열어 목소리를 내게 하십니다. 하늘의 불이 가슴속에 발화된 이들은 두려움을 넘어서 살아있게 하고 가슴 뛰게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러했으면 합니다. 두려움과 주저, 불안을 마주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불이 가슴 속에 발화되자 또다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른 언어들(각각 다른 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대목은 놀랍기만 합니다.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있어서 소통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지만, 성령은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요”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언어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하여 나타나는 신기한 기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같이 높이 되고자 위로 위로 쌓아 올린 바벨탑을 허무실 때 언어를 흩어서 소통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그 흩어진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 서로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언어의 벽 속에서 진정한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바벨탑을 쌓아가느라 다른 사람의 마음의 언어를 공감할 수 없습니다. 자기애성 특성으로 자신만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인 세상에서 남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몰두합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알아듣지 못하여 불화하고 무관심하게 살아갑니다. 같은 언어 속에 있지만,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기에 소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자가 내담자의 소리가 잘 들리고 그 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에 소통이 일어나고 라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든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소통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임하셔서 소통할 수 없는 것들이 다시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롱과 비난을 넘어
어떤 이들은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만, 어떤 이들은 성령의 충만한 자들을 가리켜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습니다(13). 한 사건을 바라보는 이들의 각기 다른 반응입니다. 기존에 가치에 익숙한 집단적 의견과 편견은 그들의 모습은 술 취한 자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현상, 낯선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비웃고 조롱하면서 인정하려들지 않는 형태와 유사합니다. 한 개체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때 주위환경 또는 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여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형편없어!”, “그것은 조롱거리 같은 것에 불과해!”
그런 조롱과 비난하는 무의식적 여론의 목소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 불이 점화되면 무의식적 비난과 조롱을 넘어서게 합니다. 내면에서 타오르는 하늘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불이 가슴에 타고 있으신가요? 하늘 불이 점화되어 거룩한 영의 불꽃이 비난과 조롱,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서서 경계의 벽을 허물고 이전보다 더 나은 인격적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복된 인생 여정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