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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誓願) 119]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5개월 전, 야마모토 신이치는 진융에게 ‘홍콩은 반환된 후에도 계속 번영할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는 경제뿐 아니라 ‘마음을 충족시키는 일’도 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융이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홍콩SGI를 비롯해 SGI 여러분이 부디 정신의 가치와 올바른 가치관을 많은 사람에게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홍콩 민중의 행복과 번영, 두 사람의 마음은 이 점에 있었다.
신이치가 멤버들에게 계속 강조한 것은 어떠한 곳이라도 불굴의 신심이 있는 한 ‘행복한 보토(寶土)’로 빛난다는 것이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그 사람이 소주(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니라.”(어서 512쪽) 하고 말씀하셨다.
1997년 7월 1일, 영국통치하에 있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어 역사적인 식전을 거행했다.
그 축하행사에는 홍콩SGI ‘진잉체조대’도 출연해 젊음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또 그날 저녁 개최한 기념음악회에는 홍콩SGI 각부 합창단이 출연했다.
신이치는 오랜 우인인 장쩌민 국가주석과 홍콩특별행정구의 둥젠화 행정장관에게 축전을 보냈다. 홍콩 멤버들은 중국에 반환된 홍콩을 ‘평화와 번영의 항구’로 만들자는 결의를 함께 다지면서 21세기라는 ‘제3의 천년’을 향해 날아올랐다.
신이치는 1995년 11월, 홍콩에 머물면서 마카오를 방문해 마카오대학교에서 명예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마카오 시청사를 예방했다. 포르투갈령인 마카오 또한 1999년 중국에 반환되는데 마카오 멤버들도 홍콩의 벗에 이어 희망차게 출발했다.
1995년 11월 17일, 아시아방문을 마친 신이치는 곧바로 주부, 간사이 지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일, 간사이문화회관에서 전국청년부대회와 간사이총회를 겸한 본부간부회를 개최했다.
그 자리에서 SGI 이사장 도와다 고이치가 ‘SGI헌장’을 발표했다.
[서원(誓願) 120, 6450]
SGI는 1975년 1월 26일, 태평양 괌에서 개최한 제1회 세계평화회의에서 탄생해 이후 불법(佛法)의 생명존엄 사상을 넓히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면서 각국·지역의 SGI는 지역과 사회에 신뢰를 넓히며 커다란 기대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에 1995년, 결성 20주년의 가절을 맞아 ‘SGI는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는가’라는 이념과 행동의 규범을 명문화하고자 SGI상임이사회와 이사회가 SGI헌장제정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10월 17일, SGI 총회에서 ‘SGI결의’를 채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준비위원회가 거듭 검토해 각국의 찬동을 얻어 헌장을 제정한 것이다.
‘SGI헌장’은 불법을 기조로 평화·문화·교육에 공헌할 것을 비롯해 기본적 인권이나 신교의 자유를 존중, 사회번영에 공헌, 문화교류의 추진, 자연과 환경보호, 인격도야 등을 강조해 10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7번째 항목에는 “불법의 관용 정신을 근본으로 타종교를 존중하고, 인류의 기본적 문제에 대해 대화하여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해 간다.” 하고 씌어 있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실현하려면 인류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에 서서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을 저해하는 최대 요인이 종교든, 국가 민족이든 독선과 배타성에 빠지는 일이다. 인류가 공존하려면 ‘인간’이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도와야 한다.
창가학회는 한신·아와지대지진에서도 재해자의 구호지원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각국의 SGI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했다. 이에 재해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한 SGI는 다른 종교단체 등과도 협력해 핵폐기 운동을 추진했다.
[서원(誓願) 121]
인도적 활동을 위해 종파나 교단과 같은 틀을 뛰어넘어 협력하는 일은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종교인의 사회적 사명이라는 점에서도 인간으로서도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과제를 해결하려면 서로 인격에 경의를 표하고 상대방의 신조나 문화적 배경을 존중해야 한다.
본디 여러 종교 창시자들은 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실현해 고뇌를 해결하기 바랐다고 해도 좋다.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흔히 니치렌 대성인을 ‘사개격언’ 등을 예로 들어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대성인은 타종이 의처로 삼은 경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어서를 보더라도 제경(諸經)을 인용해 인간의 삶의 자세 등을 설하고 있다.
법화경(法華經)은 ‘만인성불’의 가르침이자 생명의 실상(實相)을 설한 원만구족(圓滿具足)의 ‘제경의 왕’인 경전이다. 이에 반해 다른 경전은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한 법(法)이 아니다. 생명의 전체상을 설하지 못하고 부분관에 그친다. 이러한 제경을 절대화해 법화경을 부정하고 배척하는 본말전도(本末轉倒)를 밝히기 위해 대성인은 명쾌한 말로 잘못을 짚어낸 것이다.
그리고 석존의 본의(本意)에 맞는 가르침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다른 종파에 대화와 문답을 요구했다. 그것은 오로지 민중구제를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 막부와 유착한 제종의 승려들은 대화를 거부하고 참언으로 권력자를 움직여 대성인을 박해하고 목숨마저 빼앗으려 했다.
그래도 대성인은 “원컨대 나를 해치는 국주 등을 최초로 이를 인도하리라.”(어서 509쪽) 하고 자신을 심하게 탄압한 국주나 승려들을 가장 먼저 성불로 인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자비와 관용으로 가득한 불법자(佛法者)의 삶의 자세가 나타나 있다.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이 마음이야말로 우리 행동의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서원(誓願) 122]
자신이 믿는 종교에 확신과 긍지를 갖고 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삶의 자세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른 생각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겸허함과 향상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종교 때문에 인간끼리 증오심을 키우고 다투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
현대에 종교인의 가장 큰 사명과 책임은 ‘비참한 전쟁이 없는 세계’를 구축하자고 굳게 결의하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실현한다는 공통의 근본목적에 입각해 인간과 인간을 맺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각 종교는 힘을 합치고 동시에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말했듯이 ‘인도적 경쟁’을 펼쳐 절차탁마해야 한다.
SGI는 이 ‘SGI헌장’으로 인류의 평화 실현을 위한 사명을 분명히 하고 인간주의를 추구하는 세계종교로서 더욱 크게 날아올랐다.
이듬해인 1996년에도 신이치의 평화여정은 계속되었다. 3월, 홍콩을 방문한 뒤 5월 말부터 7월 상순에 걸쳐 북중미를 방문했다.
이때 미국에서는 6월 8일, 콜로라도주에 있는 덴버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3일에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세계시민’ 교육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힘주어 말했다.
“세계시민은 생명의 평등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 다른 사람과 동고할 수 있는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보살이 그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자타 함께 이롭게 하는 보살 행위입니다.”
이튿날은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해 아카시 야스시 유엔 사무차장을 비롯해 각국 유엔대사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신이치는 24일부터 쿠바 문화부의 초청을 받아 쿠바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는 과감하게 행동했다. 행동만이 시대를 연다.
[서원(誓願) 123]
쿠바는 이해 1996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힘든 시련을 겪고 있었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자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소련이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잃고 점점 고립되었다. 또 이해 2월, 쿠바군이 미국의 민간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일어나 이 일을 계기로 미국은 쿠바에 경제제재강화법(헬름스·버튼법)을 입법하는 등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그렇기에 세계평화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쿠바에 가야만 한다. 거기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쿠바와도 교육, 문화 차원에서 교류의 길을 열자!’
쿠바행을 일주일 앞둔 17일, 신이치는 前미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 박사를 뉴욕시내에서 다시 만나 옛 우정을 나눴다. 박사는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신이치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한때의 풍문이나 이해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단호한 신념과 선견으로 행동해 21세기를 위해 평화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두 사람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신이치는 쿠바로 가기 위해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이동해 플로리다자연문화센터를 처음 방문해 세계 52개국·지역 대표가 모인 제21회 SGI 총회에 참석했다.
24일 오후 그는 700개 섬들로 이루어진 카리브해의 바하마를 처음 방문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기가 없어 제3국을 경유해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 바하마는 신이치에게 52번째 방문국·지역이 되었다. 이 나라에서도 남녀 멤버 두 사람이 신이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4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온 힘을 쏟아 두 사람을 격려하고 기념으로 한 구절을 선사했다.
“이곳에도 / SGI / 있도다
바하마 창가학회 /만세”
[서원(誓願) 124]
신이치 일행은 바하마에서 쿠바정부가 준비한 소련제 비행기를 타고 수도 아바나에 있는 호세마르티국제공항으로 갔다.
24일 오후 5시반이 지났을 무렵, 공항에 도착하자 문화장관 부부를 비롯해 수많은 정부요인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신이치는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고 “민간인이지만 ‘용기’와 ‘행동’으로 사람과 사람의, 국가와 국가의 ‘분단’을 ‘결합’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21세기를 위해 온 힘을 다해 평화의 길을 열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쿠바에서 체재기간은 2박 3일이었지만 신이치는 많은 사람과 우의를 맺자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행사 하나하나에, 만남 한번 한번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25일 오후 4시, 국립 아바나대학교를 방문했다. 이때 문화교류에 대한 신이치의 공헌을 기려 하르트 문화장관이 국가훈장인 ‘페릭스 바렐라 최고훈장’을 서훈했다.
서훈식에서 문화장관은 “회장님은 ‘평화를 위한 불굴의 행동가’입니다. 이 서훈은 ‘평화를 바라는 민중의 연대’를 증명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어서 아바나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식이 열려 신이치가 ‘신세기를 향해 위대한 정신의 가교를’이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수여식 도중, 맑게 갠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행사장 강당 창문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다. 혹서인 쿠바에서 비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하늘의 선물이다. 그러나 너무나 격렬하고 갑작스런 뇌우였다.
신이치는 마이크 앞으로 가서 이렇게 말했다.
“뇌우, 이 얼마나 멋진 하늘의 음악입니까. ‘평화의 승리’를 위한 인류의 대행진을 하늘이 축복하는 ‘드럼의 울림’입니다. ‘대교향악’입니다.
또 이 얼마나 멋진 비입니까. 고난에 지면 안 된다. 고난이 몰아치는 폭풍우 속을 당당하게 나아가라고 하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지 않습니까!”
큰 박수가 일고 모든 참석자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행사장 가득 깊은 마음의 공명이 번졌다.
[서원(誓願) 125, 6455]
강연에서 신이치는 ‘21세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천년에는 인간의 존엄을 기반으로 한 희망과 조화가 숨쉬는 문명을 단호히 구축하고 싶다’는 심정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세가지 ‘가교’ 즉 서로 화합하는 길을 제시했다. 첫째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를 잇는 시심(詩心)을 통해 ‘생(生)의 전체성’을 회복하는 일, 둘째 타인의 고뇌에 동고하고 ‘인간’과 ‘인간’을 잇는 일, 셋째 교육에 힘을 쏟아 미래를 향한 희망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이날 저녁, 신이치는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과 혁명궁전에서 약 1시간 반 동안 회견했다. 늘 군복을 입기로 유명한 의장이지만 이날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평화와 우호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화제는 후계자론, 인재육성론, 정치와 인생철학, 세계관 등 다양했다. 그렇지만 일관해서 ‘대화’와 ‘문화’의 힘이 21세기의 평화를 구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대화였다.
신이치는 쿠바도, 세계도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SGI 운동은 어디까지나 평화를 바탕으로 체제를 뛰어넘은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국제적 운동이라고 말하고 그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불교사상의 필연적 귀결이자 구체적 표현이라고 외쳤다.
한편 카스트로 의장은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상호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쿠바와 일본이 적극적으로 교류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회견 이후 소카대학교가 카스트로 의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답사에서 의장은 “이번에 SGI 여러분의 쿠바방문은 평화에 공헌하는 인간주의를 주장하는 관점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강조했다. 또 일본은 자원도 적고 토지도 좁을 뿐 아니라 지진이나 태풍 등이 잦은데도 나라를 발전시켜왔다고 평가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일본 분들은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실증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신이치와 의장의 우정은 굳게 맺어졌다.
[서원(誓願) 126]
신이치가 쿠바를 방문한 뒤 일본과 쿠바의 문화, 교육 교류도 활발해졌다.
또한 2007년 1월 6일, 쿠바SGI가 정식으로 종교법인이 되어 그 등록식을 열었다.
미국은 대립하던 쿠바의 경제제재를 점차 완화해 2015년 양국은 국교를 회복했다.
1996년 6월 26일, 신이치는 쿠바에 이어 파나마에 인접한 ‘중미의 낙원’ 코스타리카를 처음 방문했다. 이것으로 해외방문은 세계 54개국·지역에 이른다. 코스타리카는 헌법에서 상비군을 폐지하고 영세적, 적극적으로 비무장중립을 선언한 국가다.
이튿날인 27일, 신이치는 수도 산호세시에 있는 대통령관저에서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올센 대통령과 회견한 뒤 멤버들과 함께하는 교류회로 달려가 시를 선사했다.
“코스타리카 / 이곳에도 지용(地涌)의 / 벗 있노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 인생을 걸어라”
28일에는 중남미에서 처음 개최하는 ‘핵무기-인류에 대한 위협’전 개막식을 열었다.
여기에는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前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전시장소인 코스타리카과학문화센터에는 ‘어린이 박물관’이 병설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명랑한 목소리가 개막식장까지 들려왔다. 신이치는 스피치에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떠들썩하고 활기 넘치는 이 목소리, 이 모습이 바로 ‘평화’입니다. 바로 여기에 원자폭탄을 억제하는 힘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핵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합니다.”
이 자리에서 신이치는 ‘핵무기의 힘보다 더 위대한 생명의 힘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핵무기의 확대보다 더 강한 민중의 연대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여기에 인간교육, 민중교육의 중대한 과제가 있다고 외쳤다.
[서원(誓願) 127]
신이치는 북중미를 방문한 이듬해인 1997년 2월에 홍콩을 방문하고 5월에는 제10차 중국방문을, 10월에는 인도를 방문했다. 날마다 한정된 시간과 벌이는 투쟁이었다.
1998년은 2월에 필리핀과 홍콩을 방문하고, 5월에 한국으로도 발걸음을 옮겨 이때 처음으로 한국SGI 본부를 방문했다.
또한 1999년 5월, 세번째 한국 방문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2000년은 2월에 홍콩을 방문한 뒤 11월과 12월에 걸쳐 싱가포르를 비롯해 말레이시아와 홍콩을 순방했다.
싱가포르에서는 11월 23일, 나산 대통령과 대통령관저에서 회견했다.
대통령은 온후하면서 신념에 찬 사람이었다.
1974년, 일본 적군파 4명이 싱가포르의 석유정제시설을 폭파하고 종업원 5명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국방부 치안정보국 국장(장관급)으로서 냉정하고 단호한 신념으로 협상하고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나산 대통령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쿠웨이트로 이송을 요구해 일본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싱가포르 정부관계자의 동승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나산 국장은 직접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하여 결국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고 끝났다. 어떤 일이 있으며 직접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모두 책임진다. 이렇게 각오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자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일이 우선인가, 민중과 국민을 지키는 일이 우선인가, 그러한 삶의 본질은 유사시에, 또 세월과 함께 분명해진다. 시대는 더욱 진지하고 성실한 리더를 원하고 있다.
회견에서 나산 대통령이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입니다. 새로운 나라입니다.”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의 나라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공통의 목적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신이치는 대통령의 책임감 있는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발전하는 싱가포르의 혼을 보는 듯했다.
[서원(誓願) 128]
신이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요청하자 나산 대통령은 학회 청년부를 아낌없이 찬사했다.
“저는 독립기념일 행사 때 싱가포르SGI가 펼치는 연기를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정말 굉장했습니다. 싱가포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SGI가 펼치는 연기도 보았습니다. 조화롭고 멋집니다. 규율이 있습니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멋진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늘 이렇게 생각하며 놀랐습니다.
더욱이 청년이 주체적으로 참여합니다. 연기에는 불법의 가르침이 나타나 있습니다. 싱가포르 사회에서도 인간적인 질의 더한층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가학회는 사회와 국가에 훌륭히 공헌하고 있습니다.”
신이치는 기뻤다. 무엇보다 학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이렇게까지 사회에 넓혀지고 후계의 청년들이 상찬 받는 것이 기뻤다.
차대를 짊어지는 청년들의 성장이, 제자들의 승리가 바로 자신의 기쁨이자 즐거움이고 희망이다. 이것이 스승의 마음이다. 이것이 사제(師弟)의 유대다.
이튿날 24일, 호주 시드니대학교가 신이치에게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명예학위기 수여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주변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졸업식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행사 장소는 싱가포르 중심부에 있는 호텔이었다.
시드니대학교는 호주 최초 대학이자 유학생 약 3천명이 공부하고 있는 세계로 열린 대학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이 많은데 싱가포르도 그 중 하나다.
‘유학생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이나 우인들에게도 경축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는 배려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졸업식을 거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섬세한 배려심에도 학생중심의 교육사상이 맥동하고 있었다.
학생을 위한 대학이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인간교육의 확고한 기반이 된다.
[서원(誓願) 129]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총장 일행과 함께 입장하는 신이치의 등장으로 싱가포르에서 여는 시드니대학교 졸업식을 시작했다.
이 대학의 크레머 총장과 킨니어 부총장보는 여성교육자였다. 특히 총장은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높이 평가받아 호주의 ‘인간국보’로 지정되었다.
부총장보가 ‘추천사’를 읽자 총장이 신이치에게 명예학위기를 건넸다.
이어서 학생들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이름을 부르자 졸업생 45명이 순서대로 총장 앞에 나와 증서를 받았다. 그때 총장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지금 어떤 과제에 도전하고 있나요?”
“사회를 위해 열심히 공헌해야 합니다!”
“즐겁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자애롭게 격려하는 듯한 따뜻한 광경이었다. 신이치는 그 모습에서 애정이 넘치는 교육의 커다란 힘을 느꼈다.
답사에 선 신이치는 창가교육의 아버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이 1903년에 발간한 ‘인생지리학’에서 자신이 입은 모직으로 된 옷도 원료가 호주산이라는 점 등을 예로 들어 모든 인간의 생활은 세계 무수한 사람들의 노고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고 논한 점을 소개했다. 그리고 마키구치는 일본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옥사했다고 말했다.
“제국주의가 거칠게 몰아치는 시대에 마키구치 회장은 한발 먼저 ‘지구적 상호의존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공헌해야 자타 함께 번영한다는 ‘인류공생의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인류는 ‘군사’나 ‘정치’, 그리고 ‘경제’ 차원에서 다른 국가를 억누르려는 하드파워 단계를 지나 ‘인도주의’를 새로운 지표로 내걸어 문화, 정신성, 인격이라는 소프트파워로 절차탁마할 것을 강하게 제창하셨습니다.”
신이치는 21세기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자타 함께 번영하는 인류공생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전망했다.
[서원(誓願) 130, 6460]
신이치는 25일, 싱가포르 소카유치원을 방문했다. 유치원은 두번째 방문이지만 템피니스에 있는 새 건물은 처음이었다.
신이치와 미네코에게 원아 대표가 꽃다발을 선물했다. 신이치는 “고마워요!” 하고 말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있고 수줍어하는 아이도 있었다.
“여러분을 만나서 기뻐요. 어제 여러분 작품을 담은 앨범을 보았어요. 모두 참 잘했더군요.”
아이들은 일본어로 귀여운 합창을 들려주었다. 작은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열창했다. 신이치도 함께 손뼉을 쳤다.
“일본어도 잘 하는군요.” 원아들 얼굴에 웃음이 일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원장이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원내에는 원아들이 영어로 쓴 메시지 카드도 전시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세계평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모든 사람을 여러 나라에 데려가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일만 하십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신이치는 미네코에게 말했다. “고맙군. 21세기가 기대되는군.”
그는 미래에 뜬 희망의 무지개를 보고 있었다.
신이치 일행은 유치원에 이어 싱가포르SGI 본부를 처음으로 방문해 세계광포 4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
여기서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만이 부처로 되는 종자(種子)인데”(어서 1553쪽)라는 어서를 배독한 뒤 힘주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끝까지 불러야 합니다. 어본존을 어머니, 아버지라 생각하고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모두 말하면 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전부 어본존에게 말하면 됩니다. 반드시 모두 어본존에게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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