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신작장편 '비밀과 거짓말'
2005/01/26 17:22
오늘 은희경의 신작 장편 '비밀과 거짓말'이 도착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했군요. 그녀가 미국 시애틀에 머물면서 연재했던 소설입니다. 2003년 여름부터 2004년 봄까지 계간지 문학동네에 4차례 실렸던 작품인데, 그 직후부터 언제 책으로 묶여나올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바로 오늘입니다. 장편 '마이너리그'를 낸 후이던가, 언젠가 은희경은 형제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 불후의 명편 '상속'이라는 중편을 내고 나서였을 것입니다. 이번 장편은 주인공인 정영준이란 영화감독을 가운데 두었을 때, 정영준의 아버지이자 풍운아적 기질을 가졌던 토건업자 정정욱, 정영준의 할아버지이며 독립운동에 연루도 돼있고 학문에 조예도 깊었던 정성일, 이렇게 3대에 길친 정씨 집안의 이야기가 지방 소도시인 K읍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어느 소설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저는 이 소설이 은희경의 자서전에 가까운 자전적 소설이라고 믿는 편입니다. 정영준만 은희경으로 바꿔 놓으면 나머지는 거의 개인사에 진배없는 사실적 토대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느낌입니다. 몇해전 어느 여름날인가. 박상우 이순원 은희경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썰렁하게 식어빠진 닭 백숙을 젓자락으로 헤집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은희경이 전화를 한통 받는 것 같았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황망하게 자리를 떴습니다. 그 전화는 은희경의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다음에 읽은 중편이 '상속'이었고, 그 '상속'에는 삶을 탄생과 욕망과 죽음으로 조망하는, 가장 문학적인 울림통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습니다. '상속'은 평생을 연부역강한 정열로 살아온 토건업자 남자가 병으로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자손들이 그 앞에서 보이는 허둥거림 같은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리얼하게 형상화 돼 있습니다. 은희경의 부친은 건설회사 대표이셨습니다. 저는 이번 '비밀과 거짓말'을 그 '상속'의 연장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확장된 형태로 삶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마구 달리다가 흘끗 되돌아본 삶을 가장 넓은 지평선 위에 올려놓고 싶은 작가적 열망 말입니다. 작가의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십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비로소 유치한 장식이 잔뜩 달린 채로 빛이 바랜, 청춘이라는 무거운 외출복을 벗어놓는 느낌이다. 이제는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73&logId=2553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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