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양종윤
주기율표
원소의 나라
홀로
알 수 없는 하늘의 이야기만 되새김질한다
피와 살을 나누고
골수를 쪼개
자가분열로
무한증식하는 나라
태 없는 이
불러오는 아랫배
강으로 흘러드는
목마른 계곡은
천에 하나
만에 둘
바늘귀로 이어지는
아득한 사막길
뜨거운 바람이 이는
풀무
퉁소소리가
낙타등에 올라탄다
둘이 하나 되면
셋이 아홉이 되고
아홉은 여든하나
여든하나는 육천오백예순하나가 되는
기하급수의 역사
이상한 순혈의 나라
*소수: 약수가 1과 자기 자신 뿐인 자연수
왕릉
-21세기 세기의 푼수 풍수나들이-
양종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데 행여 죽은 송장이 산 송장을 살리기도 하는지 죽는 쪽으로 한발 더 발걸음을 떼 썩은 송장이 없어진지 이백팔십년도 더 된 속이 훤한 흙무더기를 바라보니 거의 삼십 미터쯤 되어 보이는 소나무 군락이 엎어놓은 밥그릇을 향해 굽신굽신 빙 둘러서서 갓 지어낸 밥알 냄새를 맡은 개미떼처럼 도토리보다 잘게 자른 깨알 스토리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하나같이 제각 앞에서 휘휙 등을 돌려 뒤돌아나가며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청량한 피톤치드와 만보에 가까워져 갈수록 굼실거리는 두 종아리를 매표소에서 값을 매겼던 입장료와 상계를 하고 나서도 덤으로 늘 익숙한 사람과 잡스럽게 투닥거리지 않고 조금 덜 익숙한 사람과 밝은 미소로 오늘 하루의 달력을 넘길 수 있는 이윤이 남는 서쪽 해넘이에 투석기나 기중기를 따로 돈 내고 빌리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좀 잘 모여 서보라고 하는 사이 이초 동안 비친 주검보다 외로운 짙은 그림자의 역사는 근 육십년의 편년체일지 상고 선사 그리고 불곰이었고 아주까리였고 차돌멩이였고 푸석푸석 흩날리는 흙먼지였고 흐물흐물 살점 속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물이었고 까맣게 변색된 뼛속을 송송송 관통하는 계절의 찬 바람이었던 신화 같은 이야기를 뭉뚱그려 편집한 기전체일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에 노하기라도 한 듯 형형한 눈빛과 기가 절절절 끓는 손끝에 비해 주황색 불꽃 하나 꺼질듯 말듯 맥없이 떠받치고 서있는 몸뚱아리가 차갑고 더디고 무른 양초 같아 쓸데없이 있지도 않은 남의 송장 빈 땅속까지 두리번거리면서 무엇 하러 길흉 같은 것을 따지려 했는지 쉬이 쉬이 내려오면서 되돌아보려고 해도 흙바닥인지 모래바닥인지 잔뜩 뒤섞여 있는 오솔길엔 설치된 거울 같은 것이 없다
벽지의 불
양종윤
올리브기름을
엉겅퀴 가시에 바른다
손끝이 찔린 희생제물
운명통을 앓을 거다
미끈한 바람결에
깜빡하고 켜지는 형광등
대낮에 반딧불이라니.......
눈이 부시다
이제 눈물일 수 없는 술 한 잔에
보편이 되어버린 뼈해장국
눈꺼풀이
초침보다 빠르게 바르르 떤다
시린 눈에 얼룩지는
속사람이 그립다
무릎이라도 꿇고
고개도 숙이고 싶은
옛골 쪽에서만
청계산을 오르내리는
이 달의 마지막 날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표정
다시 얇은 겉옷을 걸치며
일교차 심한 냉소
<시작노트>
소수처럼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고 할지 점점 줄어든다고 할지 헛갈린다.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약수가 없는 소수와 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시를 쓰는 사람은 소수처럼 오롯하고 꼿꼿하게, 그럼으로써 홀로 외로운 길을 기하급수로 질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지평선보다 넓은 광활한 공감과 공명의 세계로 나아가야만 하는 사림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하지만 늘 알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오래 전에 풍수지리사라는 민간자격증을 딴 적이 있다. 산골 태생인 데다가 어릴 때 아버지도, 큰아버지도, 큰집 형님도 간간히 묫자리가 어떻다느니 시골 마을과 분교의 풍수가 어떻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고, 어른이 되어 알게 된 것인데 태어나 자란 마을의 뒷산으로 백두대간의 한반도 혈맥이 지나기도 한 까닭이고, 임진왜란 이후에 산천을 둘러보던 사명대사가 우리 마을에 들러 꼿꼿한 매화의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알게 된 것도 사실 괜히 주제넘게 AI를 이야기 하는 21세기에 생뚱맞게 옛 풍수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 또는 가문의 발복을 바라는 것이 풍수일 수 있지만, 비보풍수나 국토풍수를 보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미신적인 요소가 적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현대 물질문명이 놓치고 있는 상식과 과학에 기반한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생각해 보는 것은 현대적 변용이랄까.....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기후위기 속에서 소중하게, 그리고 두렵게 여기던 바람과 대기, 물과 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정비하여 보도록 우리를 유도하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왕릉에 나들이를 간 기회에 패철을 들고 길흉을 따져보겠다고 하는 것도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나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도 있을 리 만무했다. 꼿꼿하고 존중할만한 소수가 아니라 외롭고 편벽된 소수가 되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목사인 친구와 각별하다. 근 삼십년 만에 다시 자주 보게 되었는데 서로를 인정하는 부분과 서로 다른 부분을 구별하면서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약간은 영향을 받아서인지 갑자기 요즘 쓰는 글이 예전과 달리 좀 구도적이고, 수도적인 색깔이 짙어진 것 같다. 어쩌겠는가 싶다. 그것이 퇴보일지 복고일지, 아니면 다시 그 어떤 알 수 없는 궁극에 대한 갈구로의 회귀일지 21세기 본류에서 뒤떨어진 그런 무언가가 될지 모르지만 그냥 솔직하게 근래 적어둔 몇 개의 글 중에서 골라서 겨우 내놓아 본다. 부족함과 퇴보일지 모르면서도 점점 더 부끄러워하지 않는 묘한 담대함만 이상하게도 늘어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