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른한 봄, 목신(牧神)의 오후 · 드뷔시|시와문학 | 나른한 봄, 목신(牧神)의 오후 | | | L'Orchestre symphonique Montreal, Charles Dutoit | |
목신의 오후
아, 이 요정들의 모습이 영원하였으면. 그녀들의 엷은 장미빛 살결이, 숲속같이 깊은 잠에 빠진 대기 속에 하늘하늘 떠오른다.
나는 꿈을 사랑하였던가? 내 의혹, 저 끝이 없는 고대의 밤의 성단이 쌓이고 쌓여 종려나무 실가지로 돋아나더니 생시의 무성한 숲이 돼 내게 일깨우니, 오! 끝에 남은 것은 나 혼자 애타게 그린 장미빛 과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자.
혹시 그대가 생각하는 여인(女人)들은 그대 엉뚱한 감각이 갈망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지를. 목신(牧神)이여, 환각은 한결 순결한 처녀의 푸르고 차가운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한숨에 젖은 저쪽 여인은 그대 털가슴에 깃드는 한낮의 산들바람처럼 대조적이라 할 것인가?
아, 그만! 움직이지도 않고 나른하여 정신이 혼미(昏迷)하니 안간힘을 쓰는 신선한 아침도 열기(熱氣)로 목이 조이네. 화음으로 추겨주었을 뿐, 내 피리도 이제는 물방울 소리를 낼 따름. 메마른 빗속에 그 소리가 흩어지기 전에 이제, 막 대롱 밖으로 터져 나가려는 것은 오직 바람(風)일 뿐이어라. 그 바람은, 주름살 하나 없는 지평에서 하늘로 되돌아가는 영감(靈感)의 가시적이고 맑은 인공의 숨결일 뿐.
태양에게 질세라 내 들뜬 허영(虛榮)이 휩쓰는 늪, 햇빛 반짝여 튀기는 불꽃들의 꽃 밑에 입술 봉하고 말없는 늪, 그 늪의 시칠리아 기슭이여 오오 이야기해보라. 재능으로 길들인 속빈 갈대를 내 여기서 꺾고 있었노라. 머나먼 초원에는 청록의 황금, 푸른 포도밭은 그네들 잎사귀를 샘물들에게 바치고, 그 위로 휴식하는 짐승 같은 흰 빛이 물결칠 때 목동의 피리소리 천천히 서곡으로 울려 퍼지자 백조 떼들이, 아니! 요정의 떼들이 날아올라 도망치던가, 아니면 물에 잠기던가….
죽은 듯이 모두가 야수의 시간 속에서 불탈 때, 「라」음을 찾는 자가 그리도 염원(念願)하던 결혼은 모두 그 무슨 재주로 다 사라져 버렸는가. 문득 소스라쳐 깨어나면, 첫 번 째의 타는 그리움을 위하여 나는, 해묵은 빛 물결 속에서, 오 백합꽃들이여, 그대들 중 어느 순진한 한 떨기처럼 홀로 우뚝 서 있을 뿐이리.
그네 입술이 들릴까 말까 내뱉은 부드러운 그 무엇과는 달리, 불성실한 이들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심시키는 입맞춤, 흔적도 남지 않은 나의 순결한 젖가슴은 그 무슨 장엄한 이빨이 깨문 신비스런 자취를 보여주는가. 하지만 아서라! 은밀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비밀 얘기처럼 푸른 하늘 아래서 쌍피리를 부노라. 피리는 두 뺨의 경련을 잊게 하고 긴 독주에 잠겨 꿈을 꾸니, 우리는 아름다운 꿈과 생시의 노래소리를 슬쩍 뒤섞어 그 둘레의 아름다움을 즐겁게 하였던가, 내 감은 두 눈으로 더듬던 등이나 순결한 허리의 몽상이랑 지워버리고 한줄기 낭랑하고 헛되고 단조로운 가락을 사랑이 조(調)를 바꾸는 그만한 높이로 피리는 불어내려고 꿈을 꾼다.
도피의 악기여, 오 깜찍한 피리여, 그러거든, 그대 한 송이 꽃으로나 다시 피어나, 호숫가에서 나를 기다려라! 나는 내 나직한 속삭임에 취해서 오래오래 여신들 얘기를 하리라, 열애에 찬 그림을 그려 여신의 그림자에 걸린 허리띠를 벗겨내리라. 하여, 내 모른 체하며 회환을 지워버리려고, 맑은 포도 알을 빨아먹고 웃으며 빈 포도껍질을 여름하늘에 비쳐들고 투명한 살 껍질에 숨을 불어 넣으며 취기에 잠겨 저녁토록 비춰 보리라.
오 요정들이여, 다채로운 추억에 바람을 넣어 다시 가득 채우자. 내 눈은 피리에 구멍을 뚫고 불후의 목구멍을 찌르고, 목의 타는 듯한 아픔이 물결에 실려 숲 위의 하늘로 광란하듯 절규한다. 감은 머리털은 빛과 오열 속에 사라진다.
오 보석들아! 내닫는 내발 아래 잠자는 미녀들 이리저리 팔을 뻗어 저희끼리 부등켜 안는다. 나는, 서로 안은 팔 풀지도 않은 채, 이 미녀들을 호려내어, 경박한 그늘도 들지 않는 이 산등성이에 날듯이 뛰어 오르니 태양열에 장미향기 모두 닳고 엎치락뒤치락 우리들의 열정은 불태워 버린 대낮같다.
그대를 찬미하노라, 처녀(處女)들의 분노여, 오, 성스러운 전라(全裸)의 짐이 주는 미칠 듯한 감미로움이여, 번갯불이 몸을 떨 듯, 불타는 내 입술의 목마름을 피하려 그대는 미끄럽게 달아난다.
살의 저 은밀한 몸서리침이여, 무정한 여자의 발끝에서부터 수줍은 여자의 가슴에까지, 광란의 눈물에, 혹은 보다 덜 슬픈 한숨에 젖은 순진함은 벌써 옛날 얘기. 이 간악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좋아서, 머리칼 뒤엉킨 깊은 숲속 같은 포옹을, 신들이 그리 잘 맺어 준 포옹을 떼어놓은 것이 나의 죄.
한쪽 여자의 행복한 주름 속에 내 불타는 기쁨의 웃음을 감추려 하자마자, (온몸에 불을 켜는 작은 동생, 순진하고 얼굴도 붉히지 않는 저쪽 여자의 흥분에, 정숙한 그네 흰 깃털이 물들도록, 한손가락만 꼭 잡고 있는 동생), 어렴풋한 죽음으로 풀리는 내 팔에서 나의 포로는 끝내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내 아직도 그로 하여 취해 있었던 가엾음의 눈물도 남기지 않은 채.
할 수 없지! 다른 여자들이 내 머리에 난 뿔에 머리채를 감고 행복으로 이끌어 주리라. 정열(情熱)이여, 너는 알리라. 빨갛게 벌써 익은 저마다의 석류 알은 터져서 벌떼들로 지저귀고, 때맞게 잡는 자에게 쉬 반하는 우리들의 피는 욕망의 영원한 모든 벌떼들을 위하여 흐름을. 이 숲이 황금빛과 잿빛으로 물드는 시각, 불 꺼졌던 잎사귀 속에서 축제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트나 화산이여, 비너스가 그대를 찾아와 그의 순박한 발길을 그대의 용암위에 옮겨놓을 때 한숨의 슬픈 잠이 벼락 치듯 오고, 불꽃은 차츰 일그러진다. 나는 여왕(女王)을 보듬어 안는다! 오, 반드시 오고야 말 징벌….
아니다, 하지만, 언어가 부재하는 나의 영혼, 무거워진 육체는 정오의 씩씩한 침묵 앞에 결국은 쓰러진다. 이제 그만 불경한 생각을 잊은 채, 목마른 모래위에 잠들어야 한다. 아, 포도주의 효험 좋은 별들에게 입술을 여는 것은 이리도 좋은가! 한 쌍의 요정들이여 안녕! 나는 그대가 둔갑한 그림자를 보리라.
1842년 오늘 태어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느 말라르메 (Stephane Mallarme,1842~1898)의 몽환적인 시 ‘목신(牧神)의 오후’와 참 어울리는 날씹니다. 점심엔 봄볕 비끼는 창(窓)가에서 꾸벅꾸벅 말뚝잠(똑바로 앉은 채 자는 잠)이나 고주박잠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자는 잠) 자는 분 있겠군요. 춘곤증과의 싸움 이기고 상쾌하게 봄 보내시기를! ※ 코메디닷컴·이성주의 건강편지·목신의 오후
‘목신의 오후’는 판이 잠 (Pan's Slumber)에서 깨어나, 욕정의 대상을 현실에서 찾아 즐긴 뒤 도망간 요정을 회상하며 꿈속과 과거의 욕정을 그리워하는 회상을 표현한다. ‘판의 요정에 대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한 여자는<몸에 불을 붙이는>정열을, 다른 여자는 <흰 깃털의 정숙함>을 육화한다. 이 상극성이 지탱하는 긴장감 속에 목신이 찬미하는 시적 성감대가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여자들이 <포로>로 화하는 순간, 종말을 고하는 <죽음으로 풀리는 내 팔에서>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정숙함을 더욱더 선호하기에 흰 깃털의 정숙함을 다른 사물로 전이하여 그 성적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음악 감상 Symphony Orchestra/Leopold Stokowski | | L'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eal, Charles Dutoit | | Philharmonia Orchestra, Pierre Boulez | |
목신(牧神) · 판(Pan, The Faun) | 로마신화의 파우니(Faunus) 《반인 반양(半人半羊)의 숲·들·목축의 신; 그리스신화의 사티로스(satyr)》 목신·판(The Faun)은 헤르메스 신과 님프인 드리오페 사이에서(무슨소리! 바람둥이 헤르메스가 떡갈나무 밑에서 암염소를 타고 놀았던 게지...) 태어난 목신인 판은 수염 투성이의 노인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 어머니인 드리오페가 깜짝 놀라 도망갔다고 한다. 판은 몸은 인간이고 발과 귀와 뿔은 산양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와 피리를 들고 머리에는 솔잎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있었다. 판은 산과 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곧잘 쫓아다녔다. 판은 장난이 심해 밤에 숲 속에서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공포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 'panic'은 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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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
무언지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섬 해변의 숲속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폰느는 아련한 꿈속과 같은 상태에서 나무 사이로 목욕을 하고 있는 요정을 발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도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뿌연 실체에 마음을 이끌리며 샘가에서 보았던 요정을 떠올린다. 어떤 힘에라도 이끌리듯 달려가 사랑의 신 비너스를 껴안는다.
몽롱한 관능적 기쁨에 빠지고 그 후 환상의 요정은 사라진다. 망연한 권태가 그의 마음을 감싸고 목신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내음 속에 잠들어 버린다.
… 이런 나른한 봄날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C. Debussy.1862~1918)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의 이름을 불후의 작곡가로 만든 최초의 걸작이며 그의 <인상주의>의 작품을 최초로 분명하게 한 명작이다. 이 곡은 드뷔시가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의 거장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 의거하여 작곡되었으며 30세 때부터 2년간에 걸쳐 작곡하여 1894년 12월에 파리에서 초연되어 대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다.
드뷔시는 최초에 이 <목신의 오후>에 의한 3부작(전주곡, 간주곡,종곡)을 계획했었다. 결국 이 전주곡만이 완성되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말라르메의 시의 사상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와 몸은 사람이고 허리부터 아래는 짐승과 같이 생긴 반인반수의 신이다. 무더운 여름날의 오후 나무그늘 아래서 졸던 목신은 잠을 깬다. 그의 마음은 꿈과 현실 속에서 떠다닌다. 목신이 환상의 나래를 펴다가 환상이 사라지고 풀 위에 누워버린 목신은 풀 향기 위에서 다시 존다.
`목신은 양떼를 이끌며 피리를 불고 춤을 춘다. 때는 여름날 오후인데 그 목신이 수풀이 우거진 시실리 해변의 그늘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떠분다. 그런데 어제 오후, 하얀 몸에 금발을 한 귀여운 물의 요정들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물의 요정들은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지 환상 인지 잘 분간할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목욕을 한 것이 백조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물의 요정인 것만 같다. 이처럼 목신은 뒹굴면서 멍하니 회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목신은 또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포옹하는 환상에 잠기는데 피로에 지쳐 한낮의 뜨거운 열사 위에 다시금 쓰러져 잠에 빠진다.`
곡은 대체로 시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시를 구상적으로 취급했다기보다는 환상적인 분위기와 또한 관능적인 꿈의 흐리멍청한 희열 등을 음으로써 자유롭게 표현하여 훌륭한 세련미를 이루었다.
이 전주곡은 대체적으로 세 개의 주요선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첫머리에 나오는 무반주 플루트의 멜로디는 나른한 표정의 환상적인 멜로디로 목신의 몽상을 나타낸다. 두번째 선율은 오보에, 이어서 현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은 아름다운 물의 요정에 대한 욕망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부에서 먼저 목관, 이어서 현에 의해 나타나는 세번째 선율은 사랑의 비너스에 대한 관능의 도취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이 세개의 주요 선율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떠올랐다가는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하프의 하강하는 음형을 곁들인 호른의 화음은 목신이 환상에서 깨어난 후 덧없는 권태에 빠지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플루트의 선율이 울려나오고, 생발앙티그의 맑은 울림과 콘드파바스의 피치카토 사이에 무한한 여운을 남기어 꿈 속으로 이끌어간다. (연주시간 : 10분)
-출처: 교양인을 위한 음악해설과 감상기법(김을곤 편저)
| | Vaslav Nijinsky, in the ballet Afternoon of a Faun. painted by Leon Bakst The ballet L'apres-midi d'un faune (or The Afternoon of a Faun) was choreographed by Vaslav Nijinsky(1890-1950) for the Ballets Russes, and first performed in the Theatre du Chatelet in Paris on May 29, 1912. Nijinsky danced the main part himself. As its score it used the 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 by Claude Debussy. Both the score and the ballet were inspired by the poem L'apres-midi d'un faune by Stephane Malla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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