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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교회서 40여 년간 울린 ‘나라 사랑 기도’ | ||||||
위도지역교회연합회, 8·15 광복절 연합예배 나라 위해 한마음 기도…끈끈한 유대로 공동체 형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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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의 격포항에서 배로 한 시간 쯤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섬 위도. 인구 수 13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그곳에서는 매년 4차례 특별한 연합예배가 열린다. 위도지역교회연합회(회장 김진우 목사)는 매년 3·1절과 8·15 광복절, 부활절예배와 부흥회를 연합으로 드린다. 배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과 끊임없이 일이 쏟아지는 섬 지역의 특성상 연합예배를 드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매년 연합예배 날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모여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비록 도시에서 열리는 연합예배처럼 많은 인원이 모이거나 화려한 무대는 없지만 하나님과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신앙의 순수성은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연합예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록 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교회를 오래 다닌 성도들은 기억을 더듬어 족히 40여 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신앙 선배들이 함께 모여 국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믿음의 유산이 되어 지금의 성도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박영빈 목사(식도교회)는 “작은 섬 마을에서 연합예배를 40여 년 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함께 위도 지역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위도지역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일제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 순교자는 없었지만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매일 매타작이 이어졌고 배교에 대한 유혹도 심했다고 한다. 한 교인은 “옛날에는 전도를 하면 ‘교회에 가면 매를 맞아야 할 것 같아 무서워 못 가겠다’고 대답할 정도로 후유증과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또 1993년에는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292명이 사망한 이 대형 침몰 사고로 숨진 위도 주민도 많았다. 사고 날짜가 주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학교 등교와 회사 출근을 위해 배에 탑승했던 위도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위도 지역 교인들이 지난 해 연합 야유회를 취소하고 비슷한 상처를 받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위로 기도회를 연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위도에서 20년간 사역한 장세준 목사(위도장로교회)는 “일제시대 때 받았던 탄압과 서해 훼리호 사건의 아픔이 오히려 이곳의 교인들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함께 모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며 “매년 드리는 연합예배가 이들에게는 사명이자 책임감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9일 열린 8·15 연합예배에서도 위도장로교회, 대리장로교회, 진리감리교회 교인 등 80여 명은 배를 타고 식도교회(박영빈 목사)에 모였다. 무더운 날씨에 지쳤을 법도 하지만 연합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얼굴에는 모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교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교제를 나눴다. 예배를 위해 모였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또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갖는 듯 했다. 이날 예배는 박영빈 목사(식도교회)의 사회로 박정근 장로(식도교회)의 기도, 회장 김진우 목사의 설교로 진행되었다. 김 목사는 ‘증인의 삶’이란 설교에서 “복음을 전하는 역사의 산 증인의 삶을 살아가자”고 말했다. 이어 식도교회 드림몸찬양선교단의 특송에 이어 류제규 목사(대리장로교회)가 봉헌기도 했으며 박영빈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도시 지역의 큰 교회들에 비하면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는 작은 섬교회들의 연합예배지만 우리에게는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며 “복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신앙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힘이 닿는 데까지 연합예배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이들의 고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연합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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