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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87)/연단
제목 :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시는 하나님
성경 : 사 48:1~11
찬송 : 290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1011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48:1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
사 48:2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
사 48:3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
사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사 48:5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사 48: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사 48: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사 48: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사 48: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사 48: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소개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로 특권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진실과 공의가 결여된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리셨고 그 일을 성취하심으로 그가 살아 계신 능력의 하나님임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의 우상에 현혹되어 여호와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패역한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믿음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새 일을 알리심으로 그들이 여호와만 신뢰하기 원하십니다.
왜 여호와께서 이 같은 사랑을 베푸실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행여 자기의 언약 백성의 비참과 고난으로 열방이 여호와의 능력과 성품을 의심할까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고난으로 연단하셔서 정결한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실로 여호와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고집이 센 이들을 ‘쇠심줄 혹은 고래 심줄’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만큼 질기고 쉽게 고집을 꺾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집에 대해서만큼은 이스라엘, 유다 백성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고집은 보통 사람을 뛰어 넘었습니다.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쇠와 놋같이 완고한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독점적으로 주셨습니다.
√사 48:1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이 세상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특별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파워가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순수한 혈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혈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식물로 비유하면, 일반적인 식물이 땅의 진액을 빨아들여서 산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액으로 사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 나라들처럼 사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자꾸 세상을 따라갔습니다. 열심히 다른 나라와 어울리고 그들이 믿는 우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졌습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술을 마시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가치관을 열심히 추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진실이 없다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는 뜻이고, 공의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직과 공평은 성공의 시대에는 사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더 유명하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정직한 것이나 공평한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의 세계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세계만 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의 성공은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하는 것에 불과하고, 새로운 힘과 축복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최고이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성공하는 길인데 이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 48:2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
누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는 거룩한 성 출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거룩한 성 출신이라면 그 몸과 생각에 거룩한 것이 묻어날 것입니다. 사람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아무래도 태어나서 자란 곳의 풍토가 몸에 배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는 본인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이나 말에 거룩한 냄새가 조금은 배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보기에 좋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내면을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어느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벽이 있었습니다.
√사 48:3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
사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하나님은 남들은 알아들을 수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완고했고, 목의 힘줄이 얼마나 질긴지 ‘쇠의(바르젤/철) 힘줄’과 같아서 아무리 끈으로 끌어도 바꾸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마는 단단한 놋으로 되어 있어서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라고 말해도 숙여지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고집이 아닙니다. 목은 한없이 뻣뻣해서 고개를 숙일 줄을 모릅니다.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고집이고 완악함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에게는 그릇된 선민의식이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안하무인이 된 것입니다.
√사 48:5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드디어 하나님이 어느 우상도 알아내지 못했고 이스라엘 백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바벨론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나라를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에게 유다가 완전히 망하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유다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충동질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망했고 살아남은 자는 모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 없어지고 유다라는 나라는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은 바벨론에서 우상을 버리고 말씀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세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쇠의 힘줄을 자르는 것보다 더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나님만 믿고 우상을 다 버린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죽도록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다크호스 고레스를 통해서 바벨론을 멸망시킨 사건입니다. 고레스라는 인물의 등장을 점칠 수 있었던 우상이나 점쟁이는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완고함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쇠의 힘줄 같고, 이마는 놋과 같이 철판을 깔았다는 것입니다. 그 완고함이 멸망을 불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풀무
쇠와 놋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풀무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유다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자 최후의 카드를 꺼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의 풀무를 통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 48: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사 48: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예전에 알리셨던 것이 성취된 것을 보고 여호와의 증인 역할을 감당하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새 일’을 알리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패역한 그들은 예전에 들었던 말이라면 예언이 주어져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새 일’을 ‘꽁꽁 감추어 둔 일’이라고 규정하시고, ‘지금 창조된 것이지 옛적에 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십니다. ‘새 일’은 이스라엘이 지금껏 알지 못했고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 48: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물론 ‘새 일’ 즉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여호와께서 예전에 이미 알리셨습니다(45:21).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듣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일을 이루실지 감추어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이 예언의 성취를 통해 여호와를 신뢰하기는커녕 신실치 않게 행할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모태부터 ‘배역자’라고 불렀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다는 표현(1절)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붙들고 산다는 것은 모태에서부터 타락한 우리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해 내셨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죽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데 성공하신 것입니다.
√사 48: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현재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언약을 폐하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참으시겠다는 은혜의 선언을 하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 내 찬송을 위하여”는 여호와께서 결정을 내리신 근거입니다(43:21; 44:23; 45:23).
그 결정이란 금속을 제련하듯 이스라엘을 뜨거운 불에 연단하셔서 찌꺼기를 제거하시는 것입니다(1:25). ‘고난의 풀무불’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멸망에서 바벨론 포로 생활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말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과정이 은을 제련하는 정도로 철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 27: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사 27: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만약 그랬다면 찌꺼기 같은 이스라엘이 다 타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9절의 ‘내 이름을 위하여 … 내 영광을 위하여’는 11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사 48: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와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여호와 자신의 영예를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의 확실함은 ‘내가 이루리라’라는 선언뿐만 아니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라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명시 됩니다.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로 계속 남겨 둔다면 열방이 여호와의 성품이나 능력을 의심할 것이기에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모두 고난의 풀무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말씀의 가치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으시고 나를 낮추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내 고집이 쇠 힘줄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쇠 힘줄이 되어서 나를 끝까지 지켜 줄 것입니다.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마련하신 풀무라면 신앙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고,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학교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고난을 잘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기대하며 소망을 품고 주님을 바라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