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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의 나의 초기 활동
테레시타 수말라베 수녀
내가 마리아 수녀회에 입회하여 마닐라 산타 메사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것
1986 년 1월6일이었다.
나는 15년간 줄 곳 이 곳에서 필리핀의 가장 가난한 아동을 돕는 주님의 봉사
사업에 종사하여왔다.
멋지고 보람 있는 생활이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소임을 받았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 연방 특별 구의 가장 가난한 지역인 산타마
리아에서 마리아 수녀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브라질은 필리핀을떠나 처음맡은 소임지로서 나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환경에다 언어까지도 생소하다.
금년 2001년 2월의 첫날 나는 처음으로 브라질에 발을 들여 놓았다.
날씨가 필리핀과 매우 비슷하여 달리 크게 대비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약
간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차가워지고 있어
새 생활에 어려움과 도전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였다.
어느 나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
아야 한다. 이 곳에 와서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혼란과 어려움이 생
기면 우리는 곧잘 바벨탑 탓이라고 했다.
우리수녀들은 3개월동안 선교사어학연수원에서 생활하면서 브라질의
언어인 포르투갈 말과 이 나라의 문화 그리고 선교사로서 활동하는데 중
요한 문제들을 공부하고 있다.
이생활은 내가 현재 살고있는 이 나라의 모든것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가 사랑할수있도록 내자신을 변형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는 36명쯤 된다.
모두가 포르투갈 말을 공부한 후 브라질의 각주(브라질에는26개주가
있음) 로 흩어져 자신들의 수도회 사업을 하겠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
고 있다.
학생들은 각각 다른 대륙에서 왔다. 다른 인종, 다른 피부색, 다른 언
어, 그리고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대단한 경
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졌지만 이 나
라의 언어와 문화, 배우려고 함께 애쓰며 보낸 시간이 보람 있다고 생각
한다.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마리아 수녀에게는 완전히 낯선 활동이다.
우리는 남을 위하여 매일 열심히 일하도록 훈련 받아 왔다. 공부는 우리
에게 매우 생소한 일이다.
이 곳 사람들이 말하기를 3개월은 어학 공부하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라
고 한다. 그 말이 맞다.
그러나 나에게는 학원에서 3개월이나 머무는것은 마치사막에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하루 빨리마닐라의 산타메사에 있는소녀의집 건물을 이곳으로 빨리
옮겨와 불쌍한 아이들을 돌봤으면 좋겠다.
이 학원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일주일동안 일반 가정집
에 머물게 하여 이 나라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직접 배우게 하는 것이
다. 이것을 에스타지오 라고 말한다.
나는 두 자녀를 가진 한 가정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가정을
가졌는데 부모의 집과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독립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양친과 딸,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네 사람이 함께 생활했다.
이 집 부모들은 매우 친절했다. 나를 마치 자신들의 딸처럼 대해주었다.
처음에는 그 분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물론 불편하게 여겨졌다.
딸이 사용하는 방 앞에 나의 방을 마련해 주었다.
이 방은 이전에는 창고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그러나 그들은 방을 새 모
습으로 바꾸느라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다. 전등을 갈아 끼었고 내가 일
주일동안 사용할 침대 작은 테이블에 전기 램프도 갖다 놓고 자랑스러워
하였다.
방에 옷장이 없어 나는 문 옆에 수도복을 걸어놓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사소한 불편을 제외하고는 집의 분위기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워
시간을 잘 지킬 수 있어 고맙기도 하였다.
이 작은 방에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바쳤다. 성경책과 천사와 성인
들, 성상들을 가지런히 얹어 놓은 예쁜 상 앞에 무릎 끓고 기도하였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소리 없이 화장실을 다녀와서 묵상과 아침기도를 바
쳤다.
내가무엇을좋아하는지벌써알고있는어머니이보넷트는아침식사에
빵을 준비한다.
딸은 늦게 일어나고 남편은 일찍 일하러 가기 때문에 늘 우리 둘이 따뜻
한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낮 동안 이보넷트는 나의 어학 공부를 도와주지만 내가 가장 애를 먹는
포르투갈 말의 ‘동시변화’에 대해서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한 사실
을 얼마 안가서 알게 되었다.
경우가 이러다 보니 나의 어학 공부에 자연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딸이 영어를 공부했기에 함께 있을때는 나의포르튜갈어를 고쳐주곤
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공부때문에 바쁜 몸이었다. 그러나 짬이 있는
대로 나는 그녀의 영어를 도와주고 그녀는 나의 공부를 돕기도 하였다.
이 집 부부의 4살쯤 되는 손자 카이로는 우리의 모임에 끼이기도 하였
다. 카이로는 항상 나의 시선을 끌려는 행동을 하였다.
불행히도 나는 카이로와 놀기에는너무 나이가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응접실 소파 등받
이를 들어 서로를 향하여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나타나면 우리는 얌전한 체 했다.
내가 말을 틀리게 하면 카이로는 내가 한 말을 되풀이 말하곤 했다. 어
떤때는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때 그가 우쭐대면 내 책을 보여
주며 읽게 하면 그는 그만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아직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집 식구들은 일반적으
로 텔레비 앞에 모여 앉기를 좋아했는데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내
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물러 나와 내방에서 책을 읽기
도하고 공부하기도 하고 기도도 했다.
성모 영보 대 축일은 우리 수녀회에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이날에 브라질의 마리아수녀회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우리는 수녀회를 소개하였고 젊은 여성
들에게 우리의 자선사업을 통해서 어린이들을 돕는 봉사 사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나의 짧은소개말 끝에 어떤이들은 우리 전화번호를 묻기에 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러나 미사를 집전한신부님은 나의 핸드폰번호를 알아 듣는데 애를
먹었다.
왜냐하면 실수로 나는 숫자를 포르투갈 말이 아닌 영어로 말했기 때문이
다. 성당 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거의 매일 나는 이 집 저 집 초대를 받았다. 거절할 수 없어 응해야만
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말을 많이했다. 식사 뒤에는보통 두, 세시간동안 여러가지
화제를 놓고 이야기한다.
짧은 가정생활체험동안 내가 가장 고마워한 것은 이 사람들이 우리를 진
정으로 받아 주고 그들 자신의 친 자녀처럼 대해주었던 것이다. 그 밖
에 우리자선사업이 빨리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외짝 어머니(이곳에는외짝어머니가많다)는 여러명의 자녀들을
입양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자녀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우리가 주기를 바
라고 있었다.
또 다른집에서는 초등학생이 된 입양딸을 우리에게 소개했는데 이집
부부도 그들의 딸이 하루빨리 소녀의 집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고 있었
다. 우리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대단하였다.
가정생활체험이 끝나기전에 이보넷트는 사람들이 잘 찾아가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약20분을 걸어서 간 곳은 한동굴이었다. 나는 이곳 동굴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목격하였다.
맑고 깨끗한물이 흐르는 동굴에 동정녀 마리아상과 수님상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의 주의를 요하는글에 주위환경을, 특히 흐르는 물을 더럽히지
않고 쓰레기를 버리지말라고 쓰여있었다. 그곳은 아직도 사람의 손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은 곳이었다.
천연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 주는 초록색 나무들이 무성하고
새들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창조주 하느님의 위엄을 찬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주의 선하심을
마음속으로 묵상하기 위하여 순박한 농부들은 이 곳을 찾고 있었다.
어학 연수원으로 돌아오는 날 이보넷트 가족들은 나를 차로 태워 주었다.
손자 카이로가 따라 오기를 원했지만 차에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울고 있는 카이로를 두고 떠나 왔다.
연수원에서 각자에게 작별의 포옹과 키스를 했을 때 딸 콜레트는 40분이 걸리
는 운행시간동안 물이 담긴 유리 그릇에 조심스럽게 가지고 온 흰 장미꽃을 나
에게 주었다.
이보넷트와 남편도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상이었다.
우리는 서로 하느님 축복을 빌었다.
그 후 이들은 다시 이하 연수원으로 나를 찾아와 또 하나의 선물을 주고 갔다.
이번에는 작은 십자가였다.
이것으로 나의 에스타지오 (가정생활체험)가 완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지키도록 천사의상을 주었고 인생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영적인
은혜를 받도록 십자가를 주었고 내가 이 곳에서 기쁜 생활을 하고 착하신 주님
께 나에게 원하시는 생활을 조심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흰 장미꽃
을 주었다.
현장 실습 3월24일-31일까지
허 유군다 수녀님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것처럼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만 한다는 원칙아래 선교사 학교에서 7주간 공부하고 35명
의 선교자가 각5조로 나뉘어져 브라질리아 위성도시인 소브라진뇨각 본당에
배치되었습니다. 각 조는 7명으로 구성되어 각 가정마다 한 사람씩 배치,
저희 조는 3분의 신부님,(스페인 2명,멕시코1명,)1명의 부제와 인도네시아 3
명의프랑스, 스페인, 한국,)신부님3분과 부제님은 말을 잘하시는 분이시고
수녀님들도 자기 나라에서 포르투기 공부 하시다가 오신 분들이라 말을 잘 못
하지만 언어 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혀 기초지식 없이 온사람은 저를 포함하여 몇 명 되지 않았고 또 거의 모든
분들이 브라질에 오신지 서너달은 된 분들이라 언어나 풍습에 조금은 지식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거의 까막눈만 면하고 겨우 인사정도 할 수 있고 짧은 대화
는 알아들을수 있는 상태, 미사도 책을 봐야만 응송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영어나 한국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브라질리안 가정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존심이 강하기에 영어사용은 원하지 않
았습니다.
선교사들을 유숙시키는 가정은 대부분 신앙심이 강하고 교회에 적극적으로 활
동한 분들이라 1주일동안(8일) 무료로 선교사 유숙 시켜 주셨는데 그들은 이것
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평신도들은 수도자나 성직자들을 자신의 가정에 모셨다는 기쁨에 모든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그러나 원래 목적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브라질 생활양식과 습관, 풍습을 배우
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만 했고 생활 습관이나 음식, 모
든 면에서 완전히 다르기에 꼭 신생아가 자신을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맡겨놓
듯이 저도 그들이 하자는 대로 주는대로 다 먹고 기도시간과 취침시간만
제 의지대로 하였습니다.
저를 받아들인 가정은 중류 정도의 성 가정으로 언어를 가르쳐 주려고 많이 노
력 하셨으며 23살 된 딸이 저의 선생 역할을 하여 1주일동안 확실한 시청 교육
을 하였고 실습 후에 발음이나 말하는 것이 많이 진보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니 아직까지도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사전 (포르투
기)입니다.
학교에서도 한국사람은 저 혼자였고 영어를 못 하시는분이 더많고 또 규칙상
다른 언어 사용하지 못하게 하시기에 사전은 무척 중요합니다.
1주일 그 가정에 거주하는 동안 그들은 자기들이 선교사를 받아 드렸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또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저를 내세우
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자랑하고 또 방문하자고 했습니다.
본당에서도 미사 때마다 또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앞에 나가 자신을 소개해야 했
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것을 하기위하여 여기에 왔으니 가끔은 제가 동물원숭이
같고 구경거리가 된들 어떠하리까? 하는마음으로 그저 웃고 계속 미소만 짓고
잘 되지않은 말도 열심히 해 보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말은 알아들어보려고
노력하니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여기는 한본당에 공소가 여러개 있는데 본당 신부님은 두분밖에 안
계시기에 선교사 신부님들은 공소에 배치되어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보통 공
소는 주일 미사만 있고 큰 공소는 1주일에 한번정도 평일 미사가 가능했고 아
주 먼 공소는 주일미사도 매주 못하고 격주로 아니면 한달에 한번 정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는 평일 미사가 보통 저녁에 있고 아침에는 대부분 미사가 없습니다.
특히 월요일에는 신부님들 쉬시는날이라서 전혀 미사라고는 없구요. 지역의
본당에는 청소년들이 많았고 또 활동도 많이하고 있었는데 엄숙함과 는전혀
거리가 먼 남미 특유의 활동적이고 개방적이고 활발한 성격이 교회안에서도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미사 도중에는 성가를 부르면서 손뼉 치고 율동을 하고 대 영광송을 노래할 때
는 팔을 들어 환호하고 미사반주는 대부분 전자기타 전자오르간을 이용하며
마이크를 사용하여 선창하여 미사의 장엄한 분위기 또는 전 신자들이 참례하는
분위기보다는 개신교적인 분위기가 더 컸습니다.
또 현재 브라질의 큰 문제는 1주일에 5개씩 개신교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곳이기에 어디든지 허락만 나면 우후죽순같이 생겨나며
그래서 가톨릭교회가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톨릭교회도 카리스막 틱 한 것과 섞어져 저에게는 좀 생소하
고 저도 미사도중에 이방인이 되지않기 위해 따라해야 하기는 하는데 팔이
높이 올라가지 않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음을 느끼면서 갈 길이 너무나 멀고 자
신의 기호나 체면을버리고 쉽게 내가 섬겨야 할 사람들이 원하는것을 기쁘게
쉽게 받아 드리지 못하는 나 자신의 아집과 선교사로서의 부족한 자질을 또 한
번 체험하였습니다.
성체 앞이라 해도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엄숙하거나 예를 갖추기보다는 늘 함
께 계시는 분이고 예수님도 한가족처럼 가볍게 그렇게 하는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유숙한 가정의 안주인이 성체배령자였는데 성당열쇠와 제의방 열쇠
개인이 소지하고 계시면서 병자들 성체배령 맡아서 하고 계셨는데 성체를 모시
고 가는 도중에도 사람들 만나 인사하고 얘기할것 다하고 저로서는 참 의아할
정도로 자유로웠습니다. 그렇다고 성체께 대한 존경심이나 사랑이 없는것은
아니고 형식에 별로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실습도중 현장체험 목적으로 한 병원과 학교도 방문해보았는데 수녀님이 하시
는 학교들은 모두 사립 학교여서 시설이 아주 뛰어났고 모든 면에서 또 어디든
지 부자들은 원하는 것은 다 누리고 사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으며 병원은 시
립병원이었는데 검사실 설비와 체계적인 면에서는 아주 뛰어나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난한 이들이 설 수 있는 땅은 너무나 좁고 가난한 이들이 자
유롭게 드나들기에는 문턱이 너무나 높았습니다.
이나라 사람들의 기질은 대부분 친절하고 정이 많으며 화를 내지않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시간 개념이 없습니다.
인사 방법은 껴안는 것이고 또는 서로 뺨을 맞대면서 인사하는 것인데 한국 사
람으로서는 큰 희생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배워야죠.
1주일동안 평신도 가정에 유숙하면서 안 주인과 함께 음식 만들고 설거지를 하
고 청소하면서 한 동작 한 동작 할 때마다 이것이 포르투갈말로 무엇이냐? 물
어가면서 외우고 발음 교정하고 그러나 자고 나면 또 잊어버리니 끊임없이 되
풀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브라질 어린이들을 돌보려면 이나라 음식도 알아야 될것이고 또 제가 먹을
줄 알아야만 아이들 앞에서도 자신있게 행동할 수있을것 같기에 무엇을
먹을줄 아느냐고 물으면 다 먹을수있다고 대답하여 가능하면 가장 기초적인
음식 다 먹어 보려고 했으며 또 많이 배웠습니다.
한국음식에 비해서는 조리법이 간단하고 식생활이 간편했지만 양이 많고 자
주 끊임없이 먹는 것 아무 때나 먹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아침은 빵, 버터, 커피등 아주 간단히 먹고 점심식사는 준비를 많이하여 잘
먹고 남은 음식은 저녁에 저녁식사 원하는사람만 먹는 아주 간단한 식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축제를 아주 좋아하고 파티도 자주하는 민족들이었습니다. 저녁
에는 늦게까지 마시고 즐기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낙천
적이고 정열적입니다. 제가 관찰하기로는 여자어린이들, 청소년 하물며 늙은
아주머니까지도 노출이 지나치게 심하여 걱정되었습니다.
나중에 소녀의 집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어떨까? 어떻게 우리 정신대로 정숙하
고 또 정결 교육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노출이 심합니다.
미사 참례하러 오면서도 등판은 아무 것도 없고 앞만 가려진 옷을 입고 들어오
고 배꼽이 나오는것은 양반축에 속하고 시내 한복판에서도 비키니만 입고
조깅을 할 정도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하는 걱정도 해 보았
습니다.
또 실습도중 본당 평일 미사에 참례하였는데 미사 전에 한 권 씩 미사 안내 책
자를 나누어주고 표지에는 소녀의 인물사진 전면 인쇄 되었기에 의아하게 생
각 하였는데 이것이 이15살 생일기념축하봉헌미사였는데 전문적인 가수가
와서 성가 부르고 비디오 사진 촬영하고 축사 헌화 기념품 증정하고 가족들마
다 메시지 봉헌하고 하면서 유별나게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상한것은 같은 날 동시에 가난한 집 딸도 15살생일축하 미사를
하는데 이 소녀의 이름은 미사 지향 때만 잠깐 언급되고 부자집 딸 한 명을 위
하여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는 것입니다.
미사 후에 가난한 집 딸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다시 한
번 한탄하며 많이 서글펐습니다.
선교사로서 언어도 중요하지만 이 나라풍습이나 습관을 익히는 것 또한 언어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많이 듣고 많이보고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혀가 풀리지
않아 원하는 것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물어 보고 싶고 의문이 가도 그저 보
는것 정도로 만족하고 열심히 보고 잘들리지 않지만 열심히 듣고 사진 찾아
조금씩 배웠습니다.
1주일 실습기간 동안 긴장되고 당혹스러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언어 풍습 이 나
라 사람들의 생활습관,식 생활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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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1년 브라질 사업을 위해 출발하여 오로지 순명과 가난한 이들에게 향한 사랑의 이름으로 낯선 곳으로 파견된 수녀님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선교는 흰색순교의 삶이라고...
선교지에 파견된 모든 수도자들을 위해서도 마음 모아 기도 올립니다~
새로운 나라의 소임으로 불리는 형제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이라~~
개척자의 순교정신으로 임하는 모습이 참 고맙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하신 성모님의 보호와 도우심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